이나연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갈 때면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들 뭔가를 하고 산다는 게 경이로워요. 살아가는 것도 대견하고,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해요. 자기 스스로 책임을 다 떠안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이 결국 화를 부르더라고요. 사람이 언제나 표준에 맞춰 살 수는 없으니까. 가끔씩은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인데 내가 실수할 수도 있지. 이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고 여유로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 P197

유지영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가 시 「케테 콜비츠에 쓴 대로,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세계는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들 중 아주 일부가 그저 말하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견딜수 없어하는 남성들이 많다. - P199

박선영
우리는 이제 봄날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손을 무작정 잡아끌고 나올 수도 없고, 뿌리깊은 거악을 일시에 다 소거해버릴 수도 없는데 말이다. 봄날이 말하는 해답은 이런 것이다. 여성에게 던지던 질문을 구매자와 알선자들에게 던지는 것. 그리고 여성을 사고파는 대상으로 바라보는이 세상과 우리의 처지를 성매매 업소에 빗대어 보는 것. 그 모습은 거울에 비친 듯 닮아 있다. - P225

봄날
탈성매매 이후에도 저는 ‘업소에서 잘나갔던 여성‘ 또는 ‘업주에게 사랑받았던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았어요. 내세울 게 없잖아요. 업소에서 20년 일하는 동안 어떤 구매자까지 만나봤다. 이런 진상까지 처리해봤다. 이런 것들이 제 이력인 건데, 여성인권센터에서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사람들도 만나고 자조自助 모임도 나가면서 제 경험을 서서히 말하기 시작하다가 이 생각의 틀을 깨는 사건이 하나 생겼죠. 성매매 종사 여성이 구매자에게 목 졸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추모식에 다녀오면서 문득 깨닫게 된 거죠. 나는 피해자였구나. 20년 동안 쌓여 있던 온갖 분노, 억울함, 이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업주를 만나면 내가 귀싸대기라도 때려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때 어떤 틀이 깨진 것 같아요. 자학했던 시간이 너무 아깝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되돌리고 싶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나는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고 전사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죠. - P227

그런 흔들림이 늘 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되돌아가고 싶은그 마음을 끊어내는 게 반성매매운동이구나. 숱하게 흔들리는 나를볼 때마다 ‘정신 차려야지‘라고만 할 게 아니라 ‘오늘은 마음이 힘들구나‘ 하면서 나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 거죠. 돌아가면 어떻다는걸 뻔히 알잖아요. 잠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면 다시또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곁에 있던 친구들 중에 누가 업소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섭섭하고 아파요. 하지만 저는 알아요. 몇 번씩 탈성매매를 시도하고 왔다갔다하는 것도 그의 시간이잖아요. 그러다가 결국 "언니, 이제 쉼터 들어왔어요" 라고말하는 걸 들으면 울컥하고 안도감이 느껴져요. - P230

정인숙
상처가 회복되면 침대에 걸터앉는 것부터 시작을 해요. 걸터앉은 다음에는 일어서고, 그다음에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걸 시켜요. 그때 많이 느꼈어요. 아, 나는 다시 태어난 거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기능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어요. 다치기 전 모습 그대로, 그런데 화상을 입으면 ‘구축현상‘ 이라는 게 와요. 피부도 오므라들고, 손도 굳어버리고, 겨드랑이나 발가락도 붙어버리거든요. 땀구멍이 없어져서 땀 배출을 못 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많이 힘들어요. 이렇게 사고가 나기 전에는 당연했던 걷기, 보기,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못 하게 됐을 때 충격이 엄청 컸죠.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 P245

하리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많이 사라졌어요. 스무 살 넘어서 엄마에게 사촌오빠와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그랬거든요.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자기는 남자들이 바글거리는 시골집에서 나고 자랐고, 그 집에 머슴들도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런 일이 없었겠냐고. 그런 일 숱하게 있었다며 자기한테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며 신경질을 냈어요. 엄마의 반응에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10년이 지나 겨우 말을 꺼냈는데 조금도 공감해주지 않아서요. 배신감과 서운함이 컸어요.
IN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그 말이 너무나 마음에 걸려요. ‘숱하게 있 - P297

었지‘라는 말. 엄마가 겪은 일들은 뭐였을까. 엄마는 아직도 몸과 마음이 마비되어 있구나. 그래서 그냥 회피하는구나. 엄마는 자기 트라우마에 대해서 저한테 영영 얘기해주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게 슬퍼요. 서로 털어놓고 안아주며 같이 울고 싶어요. 그럼 후련해질 텐데.. - P298

저는 말하는 몸에 영감을 준 책 『헝거』에서 이런 게 좋아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할 수 있는 작가의 용기. 아니, 용기가 아니라 바닥까지 내려가는 고통. 세상이 무너질 듯한 고통을 겪고도 다음날 아침 일어나 또 세상으로 나와 말하고 글쓰며 살아가는 것. 그걸 설명하는 단어는 ‘강인함‘ 인 것 같아요. 저는 제 안에도, 여러분에게도 그런 강인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P298


그 당시엔 제가 개신교를 믿었는데 하루에 정말 수십 번씩 기도했어요. 살 빠지게 해달라고, 먹기 전에도 무릎 꿇고 몇 분간 기도했던것 같아요. 내가 이걸 먹고도 살이 찌지 않게 해달라. 몇 달 동안 하루에 300킬로칼로리씩 먹으면서 지내다보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온갖 이명 현상이 나타나거나환영이 보이기도 하고, 어지러워서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이러다가 정말 죽겠구나‘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또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찔 테니까, 살이 찌느니 이런 상태로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병적인 상태인 거예요. 그런 거식증 시기가 한 1년 정도 지속됐죠. - P304

우리는 몸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는 데 익숙해져 있잖아요. 마치 몸은 내 소유물이고 정신이 곧 나인 것처럼.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근거이자 양식은 이 몸밖에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네몸을 날씬하게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부피를 줄여라‘ 라고사회가 요구할 때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너의 존재를 줄여라‘ 라는 말로 들리는 것 같아요. 물론 건강을 위해서 근육을 만든다거나 자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뚱뚱한 여성에게 인정과 환대를 전혀 베풀지 않는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이 하는 다이어트는 결국 이 세상에서 나의 자리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 경험도 그러했고요. - P306

노지양
록산 게이가 자신의 몸을 ‘우리 cage‘라고 표현하는데 그 말이 굉장히 많은 여성들에게 와닿을 거라 생각했어요. ‘감옥이었다‘, 내가 여기 갇혀 있다는 말이요. - P320

페미니즘은 굉장히 생활밀착형 지식이에요. 내 인생을 자꾸 바꾸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해요.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일하는 여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에 페미니즘 책을 한 권씩 번역하면서 제 생각과 삶의 태도도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러니 꼭 많이 읽으세요. 아무리많이 읽어도 넘치지 않아요.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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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티
오나리 유코 지음, 코카게 옮김 / 늦여름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그림이 잔잔하게 예뻐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이야기도 잔잔하다. 늘 함께 싱거운 밀크티를 마시던, 마음을 나누던 이웃친구가 이사를 간다. 쓸쓸함과 기다림과 반가움이 함께하는, 친구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전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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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진
저에게는 읽고 쓰는 저녁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요. 다른 회사들은 변수가 많잖아요. 야근하는 일도 생기고요. 이런저런 노동을경험하면서 깨달았어요. 콜센터는 업무 시간 외에 야근하는 경우가없거든요. 전화가 꺼지면 퇴근을 하는 거고요. 집까지 일을 가져가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볼 만하겠다 싶어서 일을 시작했어요. 노동하면서도 글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제게 중요한 구직 조건이었어요. - P95

처음 콜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데 여기 와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오래 버티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다시 이 일을 하게되면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제 노동을 생각하게 되니 자괴감이 덜하고 이 노동을 좀 덜 미워하게 되더라고요. - P97

강성 민원을 응대할 때는 심장이 벌렁거리기도 해요. 2년을 했는데도 수화기 너머에서 화내거나 짜증내거나 욕설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정말 놀라요. 저는 아직 그렇더라고요. 감정만 상하는 게 아니라 몸이 상하기도 하는 직업이에요. 그런데 왜 감정노동으로 부르게 됐을까요. 많은 서비스직을 감정노동이라고 부르잖아요. 주로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렇게부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콜센터의 육체노동적인 측면은 어쩌면 그보다 덜 말해지는 게 아닐까요. - P99

송해나
이 사회는 임신한 여성의 몸에는 관심이 없어요. 임신부들도 자조이 들도하면서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임신부들은 열외라고, 현대의학에 버림받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여성의 몸을 재생산 도구로만 보는 학계의 인식에 의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 피해는 임신한 여성이 오롯이 겪고요. 사회는 모성으로 극복하라고 이야기해요. 이게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니에요. 임신부가 조금만 고통스러운 티를 내면 모성이 없다고 말해요. 여성의 몸은 아기를 낳기 위한 모체로만 존재한다는 거예요. 저에게는 이날 아팠던 기억이 현대의학에 버림받은 아픔으로 각인된 것 같아요. 사회는 재생산에만 관심을 가지고, 아기를 살리는 게 먼저더라고요. - P108

그렇게 열 달 동안 제 몸을 희생하면서 고생한 산모가 출산의 순간에 "나보다는 아기를 살려주세요" 라고 말한다는 건 아기를 낳아보지않은 이들의 환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기랑 저는 초면이거든요. 저는 아기를 낳고서 아기를 낳았다는 느낌보다는 아기를 배출했다는 표현이 더 와닿았어요. 아, 나 살았다. 죽지 않았다. 아기가 내 배 위에,
올라온다고 해서 감격스럽지 않았어요. 내 배 위에 올라온 아기는 너무 낯설었어요. 출산하고 울었는데 살았다는 안도감에 운 거거든요. - P109

김명선
몸이 힘들고 아파서 긴장해야 할 것 같아 병원을 나선 후에 터미널에 가서 어디든 제일 빨리 가는 버스를 탔어. 전주로 갔는데 아는 게 있어야지. 한옥 숙박이 하루 7만 원이라는 거야. 나는 한 번도 그런 돈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 혼자면 5만 원에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나가서 돌아보고 사진으로 다 찍었어. 잠을 자진 않았는데 이부자리가 너무 예뻤고 창에 달이 비치는 거야. 생전 처음으로 6천 원짜리 국화차를 마셨고 최고 비싼 비빔밥을 먹었어. 살아가면서 나를 위해 10만원은 써야겠구나, 싶더라고. 지금까지 날 위해 10만 원을 안 써봤네?? - P134

유지영
이 사건을 들려주자, 평소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던 지인은 "자기도 몰랐겠지만 아마 몸에 그 말을 내내 품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정돈된 말을 나도 모르게 해낸 사건 이후 오드리의 얼굴이 자주 떠올랐다. 나는 이렇듯 몸이 품은 말을 찾아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몸이 품고 있는 말. 그 말을 내가 느낀 그대로 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40

오드리
제가 당사자지만 저조차 정말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는 게, 하나의 감정으로 결론지어질 수 없는 부분이 훨씬 크더라고요.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배척하면, 행복했던 기억들까지 날아가버려요. 그런데 또 행복했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 안고 있다보면 저 자신이 너무 다쳐요. 그런 모순이 있어요. - P146

봄이
저처럼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모든 한국 여성, 아시아 여성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불쾌한 경험을 했더라도 그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요. 또 그때의 경험이 불쾌했겠지만 나를 단단하게 해준 일이라고 생각하셨으면 해요.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다보면 사회문화적 맥락이 달라서 취약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를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만 마음에 갖고 있으면 조금 더 안전할 수있지 않을까요. 물론 모든 혐오가 사라져야 마땅하고, 왜 우리가 그렇게 조심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지만요. 저도 어떤 게 나를 상처받지 않게 할지를 생각하거든요. 나를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 P156

박나비
그렇지만 그때 사귀었던 사람이 피임을 정말 안 하는 사람이었고, 저랑 사귀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와도 세 번의 낙태 경험이 있었으면서 피임을 계속 안 했어요. 한국 사회에서 피임에 대한 남녀의 인식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죠. 낙태 경험이 세 번있는 여자는 피임을 정말 철저하게 하겠죠.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하지 않았던 거죠. 남자니까. 자기 몸으로 임신할 일이 없으니까요. - P161

유지영
그러므로 만일 "너는 언제 너 자신을 여성이라고 느끼니?"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엄청나게 당황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왜 여성인가.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러므로 알지도 못한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알아야 할 일도 아니었다. 역사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도 하루를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비장애인처럼. 무언가를 알지 못해도 그게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보통 우리는 그걸 ‘특권’이라고 부른다. - P166

챠코
만일 외국처럼 제3의 성이 한국에 도입된다면 성을 바꾸려는 논바이너리가 있을까요. 주민등록번호가 남아 있는 한 번호 때문에 언제든지 차별받으리라는 걸 알잖아요. 저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 성별을 나타내는 번호가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은 여자, 저런 사람은 남자‘ 라는 법적인 규정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 P171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단호하게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는 없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분 주변에도 분명 논바이너리가 있을 거거든요. 저는 분명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도 논바이너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이랑 같은 사람이 있다. 당신이랑 비슷한 사람이 여기 있으니 같이 살아남자는 이야기를 하고싶어요. 살아남아서 성별 이분법이 타파된 세상을 같이 보고 나서 죽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P172

정김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잘하는 걸 해야 할까하고 싶은 걸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이 많아요. 그런데 부모님하고 이야기해보면 50대가 되어도 이 질문에 대답을 못 찾고 있더라고요. 열여덟 살인 지금 당장 결정할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요. 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열여덟 살이 잘 모르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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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희
용기를 내서 찾아갔는데도 말 한마디 못 하고돌아가는 분들도 있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침묵도 치료의 일환이고 과정이라고요. 용기가 날 때까지 기다려주식는 거죠. 억지로 끄집어낼 수는 없으니까요. - P18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 그걸 듣는 저도 제 이야기를 좀 편하게 털어놓는 거 같아요. 작가가 너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제 안에 묻어뒀던,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던 상처들이 떠올랐어요. ‘드러내기‘의 힘을 크게 느꼈고, 저도 그 상처를 드러내려고 글을 적어봤거든요. 생각보다 심플하게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자주 선물했어요. - P21

유지영
나는 간혹 고기를 먹지만, 스스로 나의 메뉴를 정할 수 있을 때는 고기를 주문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 P24

정혜윤
채식하는 사람들은 "너 그러면 채소도 먹지 말지. 채소는 안 아픈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요. 그것도 중요한 질문이에요. 식물은 뭘느낄까. 알면 너무 좋겠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바꾸지 않기 위한 근거로 어떤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떤 말을 할때 그것이 변화를 막는 도구로 이용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너 고기안 먹어? 나도 안 먹어볼까" "사실 우리 고기 좀 많이 먹지?" 이렇게 말한다는 건 대단히 훌륭한 일이에요. - P27

쿤데라의 같은 책에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의미를 찾으려고 살아간다‘는 내용의 글이 있어요. - P31

유지영
"(삼성 반도체 산업재해 피해자인)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씨, 그분은 아무도 이 문제를 모를 때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매번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설명해야 해요. 그러다보니 토씨까지 똑같아졌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말해요. 그걸 다 견딘 거예요. 만일 누군가가 뭔가를 이루었다면 그 숱한 다시, 다시, 다시를 이룬 거예요. 굉장히 지치죠. 그런데 그렇게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 P33

김시녀
‘금수저‘ 가정 말고는 다 노동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살아갈 텐데, 어느 현장에서 일하는 병들고 다치면 누구나 치료받아야 하는 게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 P39

배복주
저는 많은 사람과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특히 비장애 남성과 연애하면서 그 사람의 가족을 만날 때는 여성이 아닌 장애인으로 무성화되는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은 아픔이죠. 누구에게나 연애의 각본이 있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그 연애의 각본 안에서 움직이지만 장애 여성의 각본은 조금 더 복잡하게 꼬여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 P47

유지영
대개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지능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모든 글쓰기 행위는 몸에 귀결된다. - P50

유지영
그는 역으로 자신의 몸을 그리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그림이 모두 그린 사람 자신을 닮아 있었다’는 걸 발견했노라 말한다. 관찰당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다시 자기만의 시선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일. 훗날 이슬아의 작가론을 쓴다면 나는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하게 들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 P51

곽민지
폴댄스는 대상화되기 쉬운 운동이에요. 그런데 폴댄스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상화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많이 해요. 전에는 보들보들하고 가느다란 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가 이제는 피부도 하는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피부 표면으로 폴에서 버티고 내 몸의모든 부위가 폴 위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대상화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져요. - P69

내가 내 외모를 비하하는 일도 상대방에게 외모스트레스를 부추기는 것이 되는데, 이를 몰랐던 시절도 있었어요. 여성으로서 내 몸이 얼마나 대상화되었는지 인식할수록, 폴댄스를 할수록 과거의 나를 수치스러워하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 나는 왜 그런생각을 했지‘라면서요. - P72

강혜민
사무실에 들어올 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같이 있잖아요. 이 사람들이랑 같이 들어오려면 지하철을 타거나 저상버스를 기다려야 해요. 무진장 오래 걸리죠. 이 사회가 장애인의 시간과 비장애인의 시간은 달리 쓰게 만들었으니까요. 어떤 분이 교통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있는 걸 방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좀 덜 방해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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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선물로 온 책 택배. 내가 받은 선물은 아닌데 선물수령자는 시큰둥하니 내가 읽어야지 뭐~~ 반가운 작가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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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2022-03-01 1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 수령자가 뉘신지요

햇살과함께 2022-03-01 14:28   좋아요 4 | URL
큰아이요 고모가 읽다가 재밌다고 보내준 건데 관심없네요 ㅎㅎ 덕분에 저만 득템~

mini74 2022-03-01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뭔가 그 장면이 연상돼요. 햇살과 함께님 득템 추카추카 드리옵니다 ㅎㅎ

햇살과함께 2022-03-01 20:50   좋아요 1 | URL
ㅋㅋ 저도 조카한테 예전에 생일에 책선물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역시 돈이 최고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