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말하는가.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지만, 시작부터 가슴이 답답해지고 울화통이 터진다.
가난이라는 무게 때문에 짊어져야 했던 폭력이 성추행으로, 미성년자 강간으로, 사랑을 빙자한 데이트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폭력의 완성은 성매매였습니다.이 책을 쓰게 된 주된 이유는 빈곤하고 자원이 없는 여성인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폭력이 가해졌는지, 그 폭력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 폭력이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에 관해서도, 그리고 성매매의 굴레를 마침내 떨쳐버리기 위해 살아온 그 이후의 삶도 풀어보았습니다. - P7
커갈수록 아버지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그 폭력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네 아버지같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너를 때린다는 것은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라고 말했다. 맞는 것도 억울한데 내 잘못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밖에선 법 없이도 산다는 아버지는 집에서는 절대 권력의 폭군이었다. 내가 안 맞으면 엄마를 때리는 나쁜 아버지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 P21
미셸 푸코는 죽이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주권자의 생사여탈권에 기초한 전통적 권력이 생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권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양적인 증감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출생률, 이병률, 수명, 생식력, 건강 상태와 같은 고유한 변수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시작한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출현에 주목한 바 있다. - P171
총독부 관리들이나 일본인 학자들은 조선인 절대 다수가 계몽되지 못해 미신과 관습에 사로잡힌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미 성숙한 근대인인 일본인과는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시스난디는 피식민지인을 아동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이러한 인식이 근대 식민지 체제들 안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성숙과 성장을 해야 하는 ‘아동’의 존재와 이들을 돕는 책임을 가진 주체로서의 ‘성인‘으로 상징되는 성장과 발전의 테마는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에 손쉽게 유비되었다. 식민지인의 차이는 야만의 상징인 동시에 아동의 미성숙함에 대한 대응물로 간주되곤 했다. - P182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모종의 인식론적 전환, 즉 성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접근에서 의학적·생리적 접근으로의 전환과 같은 이분법을 통해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도 여전히 비의료인 지식인들은 ‘성교육‘에 대해 발언권을 가졌으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의학적 전거를 동원했다. ‘불순혈설‘을 둘러싼 논쟁은 지식인 그룹 내부에서의 담론의 혼재를 잘 보여준다. ‘불순혈설‘은 여성이 한 명 이상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면 혈액 중에 이미 성관계를 한 남성의 혈액이 남아 ‘순혈한 혈통‘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론으로 1920년대 조선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 P185
여성성과 남성성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신체적으로 양성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새로운 사유의 발전에 있어 1920~30년대 내분비학의 발전은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인간이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과학자들은 이것을 모든 여성들이 남성의 요소를 가지며 모든 남성들이 여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성전환수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양성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내분비학 학자 오이겐 슈타이나흐를 비롯해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성전환 실험/수술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이러한 작업을 ‘창조‘라고 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수술은 호르몬을 사용해 지배적인 성별의 신체적 특징과 성행동을 억제하고 잠재된 반대 성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 있는 존재이며, 호르몬을 통해 신체를 한 방향이나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성별이란 내분비물의 추가나 감량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양적인 차이로 이해되었다. - P214
식민지 당국은 조선인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특유의 제국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본국‘ 일본에 비해 더욱 가부장적으로 조선인의 성을 통제했다. 이것은 공공의 의제로서 성담론이 논의되는 지형을 매우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성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는 상업화와 의료화를 매개로 사적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 주제가 되었다. 성이 개인화되고 내밀화되는 경향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자발적으로 관리하는 ‘자기관리‘의 주체이자, 끊임없이 자신의 성생활과 남성/여성 정체성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잠재적 환자로서 이러한 담론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 P218
20세기 초는 세계 각지에서 근대적 여성 고등교육기관과 기숙학교가 등장한 시기로, 동시대적으로 많은 국가들에서 매우 유사한 형태의 로맨틱한 관계들이 출현했다. 선배와 후배 여학생들 사이에서 혹은 여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었던 이 로맨틱한 열정은 미국에서는 스매싱smashing 혹은 크러쉬crash(현대의 ‘걸크러쉬‘의 어원)로, 영국에서는 레이브raves로,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는 마미 momm와 베이비baby로, 그리고 일본과 조선에서는 ‘S‘로 불렸다.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는 기사기획에 맞추어 일관되게 ‘동성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의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명칭은 ‘S’(S언니/S동생)였다. - P233
박람회 안내원들은 키스를 판매하는 "키스껄"이라는 소문에 시달리는가 하면, 여자 운전수들은 키스를 하려 달려드는 승객을 피하려다 충돌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흥 공간이나 공적인 노동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행위들은 ‘변태성욕’이나 폭력으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이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변태성욕’과 폭력의 경계가 특정한 성적 행위의 유무나 행위를 둘러싼 강제성의 여부가 아니라, 피해 대상이 ‘어떤 여성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회는 이른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입술을 보호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카페 여급이나 여자 운전수처럼 노동하는 여성들은 이러한보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피해자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 여성들에 대한 성적 접근은 정상적인 남성성의 범위 안에 있는 일상적인 ‘히야까시(괴롭힘)’의 형태로 사회적으로 승인되었다. - P98
하층계급 남성들의 ‘변태성욕’은 거의 서사나 맥락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원래 변태성욕자‘로 단정적으로 가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많은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성과학은 ‘문명화된 서구‘라는 가정 뿐만 아니라 중산계급이 특별한 성적 도덕성과 고결함을 갖는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의사와 학자들이 백인 중산계급 출신으로, 자기가 속한 계급의 가치와 이해를 연구와 학설들에 반영했기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이유로 비유럽인뿐 아니라 자국의 하층계급 역시 전형적으로 비도덕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당대의 의사들은 성적인 허용성과 관능이야말로 빈민과 노동계급의 특징이며, 중산층과 상류층만이 고결한 성도덕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104
서구 성과학의 도착 범주들은 ‘변태성욕’이 식민지 조선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이식되지 않았다. 성적 정상/변태의 기준은 근대적 법을 통해 구축된 불법/합법의 경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조선의 관습과 식민지라는 독특한 조건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조정되었다. 연령과 폭력을 둘러싼 모호한 기준들이 보여주듯이 이 경계는 매우 불투명했으며 대상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태성욕‘을 저지르는 범죄자의 전형은 보다 뚜렷한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이 ‘선천적인 범죄자들’은 흔히 하층계급 남성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1930년대에 비등하는 ‘변태성욕‘ 성범죄에 대한 공포 속에서 식민지 최하층 남성들은 식민지 경제 체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위험한 성적 타자로서 재규정되었다. - P110
크로스드레싱 실천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집단은 바로 ‘신여성‘이었다. 조선 최초의 "단발낭"으로 알려진 기생 출신의 신여성 강향란은 1922년 "남자양복에 캡 모자"를 쓴 차림으로 정측강습소에 등교해 남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음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한복에 갓을 쓰고 다니는 남성이 조선인, 화복和服을 입은 남성이 일본인으로 식별될 수 있다면, 양복, 그것도 남성용 양복을 입은 채 거리에 나타난 이 여성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녀에게 적합한 정체성은 바로 근대적 개인일 것이다.강향란은 자신이 "단발"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실연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 "남자에게 의지를 하거나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긴 머리는 여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긴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단지와 함께 굳센 사랑의 맹세를 의미했다. 강향란은 이제 그 머리를 연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자름으로써 경제적·정서적으로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기를 표현했던 것이다. 강향란의 단발은 자신 역시 "남자와 똑같이 살아갈 당당한 사람"이며 "남자와 같이 살아 보겠다"는 일종의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자기선언이었던 셈이다. - P122
오히려 이 경계 자체를 심문하고 이에 깊은 불안을 드리우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성이 과거 시험에 비견되곤 했던 당시의 치열한 입학시험에서 남성과 나란히 경쟁할 뿐 아니라, ‘남자양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과를 공부할 수 있다면 여성과 남성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 P128
물론 현실에서 대부분의 인터섹스의 삶은 여전히 수술과는 무관한 채로 남아 있었다. 경제적 자원을 가지지 못한 하층계급인터섹스들에게 있어 수술처럼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의학적 개입은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규범적인 여성/남성 몸 모델을 통해 분류될 수 없는 신체가 일종의 ‘불구자‘일 뿐만 아니라 치료할 수 있고 치료되어야만 한다는 사고는 분명 당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인터섹스 당사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두 개의 성별 정체성과 이에 상응하는 두 개의 신체, 그리고 두 개의 배타적인 삶의 방식만을 자연적이고 유일한 질서로서 새겨 넣는 과정이기도 했다. - P165
2022년 3월에 온 책오늘 책 택배 와서 3월 책 올린다.3권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산 책, 4권은 새 책.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빨리 읽고 싶다. 10권 세트 다 읽고 읽을 계획인데..
이와 같은 예는 ‘남색‘과 ‘수간’과 같은 특정한 성적 실천이 타 인종과 민족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존재로 정의하기 위해 인종주의적 기표로 동원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다나카 지우라가 이러한 변태성욕의 지도속에 특별히 대만, 조선, 중국, 인도를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현실에서 식민지 확장이 진행 중인 지역들은 바로 이렇게 에로 그로한 상상력이 투사되는 장소들이 되었다. 식민지인들 역시 이러한 타자의 소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 P32
범죄 기사는 ‘공익적인’ 목적을 갖지만, 선정적인 측면을 부각할 수 있어 상업적인 활용도가 클 뿐 아니라 쉽게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 분량 조절도 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의 신문들은 1930년대에 억압적인 정치적 환경 속에서 강력한 검열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면이나 경제면 대신 사회면의 범죄 기사와 문예면의 강화에 더욱 주력하는 경향을 보였다. - P36
시체성애가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근대소설의 중요한 소재로 채택되는 이유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혐오감 때문이다.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명백히 다른 사람들에게 위해를 주지는 않지만, 너무나 혐오스럽고 지독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곧장 불법적인 행위로 지정해야만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성행위로 ‘시체성애‘를 지목한 바 있다. 혐오가 동물성을 숨김으로써 인간의 유한성과 취약성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면, 부패하고 노폐물이 된 시체는 즉각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문화적 금기로 인해 시체는 특별한 성적 판타지가 투사되는 대상이 된다. - P42
이 장에서는 일본의 변태붐과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문화적 지형을 경유해, 식민지 조선에서 대두된 기이하고 낯선 존재들에 대한 열광을 살펴보았다. 언론의 상업주의적 동기에 의해 더욱 부추겨진 낯선 존재들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은 한편으로는 인종적 타자들의 기이한 성적 실천에 대한 민족지적 관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형적이고 음란한 범죄’ 서사를 소비하고자 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소비는 정상/비정상, 규범/변태, 근대/야만과 같은 당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뤄졌다. 기괴하고 낯선 존재들을 소비하고 그로부터 쾌락을 얻는 과정은 성적 · 인종적·계급적 위계들을 오락으로 만듦으로써 지배질서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데 긴밀하게 연루되어 있었다. - P53
동료 학생들에 의한 기숙사 방 감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있는 화장실 구조, 교지기의 불시 순찰 등 주요섭이 제안한 방법들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 판옵티콘을 연상시킨다. 푸코는 시선의 비대칭성을 보장하는 판옵티콘의 모델이 감시당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항상 보이는 위치에 노출되어 있으며 감시당하고 있다는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감시자가 부과하는 행동의 코드를 내면화하게 만드는 ‘정상화‘의 효과를 생산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변소의 배치와 이를 통해 작동하는 시선의 효과는 단순히 ‘성적 악습’이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들로 하여금 바람직한 성규범을 내면화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성적 악습’의 실행을 둘러싼 수치와 두려움의 감각을 신체에 새겨 넣는 역할을 한다. - P61
그리고 이렇게 단속된 전형적인 관계는 ‘자유연애‘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총각과 처녀가 ‘자유연애‘를 하다 발각되었을 때 총각은 매를 맞고 처녀와 그녀의 집안 식구들은 마을 밖으로 추방을 당하는 처벌이 촌락공동체에 의해 집행되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처벌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자유의지와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의 존재였다. -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