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이 왈,
"어찌 속지 않으시리오? 다만 겁내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려 하였는데 심히 눈이 멀어 귀신을 꺼릴 줄 모르니 호색(好色)하는 사람을 여색(女色)에 굶은 귀신이라고 하는 옛말이 틀리지 않으니 귀신이 어찌 귀신을 두려워하리이까?"
모두 크게 웃더라. - P184

섬월과 경홍이 들어온 후 승상을 모시는 사람이 많은지라. 승상이 각각 거처하는 곳을 정했다. 정당의 이름은 경북당이니 유 부인이 계신 곳이고, 그 앞은 연희당이니 좌부인 정 부인이 처하고 경북당의 서쪽은 봉수궁이니 난양공주가 거했다. 연희당 앞은 응향각이니 그 앞은 정하루라. 이 두 집은 승상이 거처하며 궁중에서 잔치하는 곳이고, 누각 앞은 치사당이고 그 앞은 예현당이니 이 두 집은 승상이 빈객을 맞이하고 일을 하는 곳이다. 봉수당 남쪽에 해진원이 있으니 숙인 진채봉이 거처하는 곳이고 연희당 동남쪽은 영춘함이니 가춘운의 집이고, 청하루 동서에 각각 작은 누각이 있으니 녹색 창과 붉은 난간이 극히 화려하고 행각을 지어 청하루와 응향각에 연결되어 있으니 동쪽은 화산루요 서쪽은 대궐루라. 계섬월과 적경홍이 있는 곳이더라 - P193

두 부인이 여섯 낭자를 거느리고 관음화상으로 나아가 분향하고 말하되,
"유(維) 연월일(年月日)에 제자 경파 정 씨, 소화 이 씨, 채봉 진 씨, 춘운 가 씨, 섬월 계 씨, 경홍 적 씨, 요연 심 씨, 능파 백 씨는 삼가 남해대사께 아뢰나이다. 제자 여덟 사람은 각각 다른 곳에서 나서 자랐으나 한 사람을 섬겨 마음이 합해져 하나가 되었습니다. 비유컨대 한 나무의 꽃이 바람에 날려 궁궐에 떨어지고, 혹은 규중에 떨어지고, 혹은 촌가(村家)에 떨어지고, 혹은 길거리에 떨어지고, 혹은 변방에 떨어지고 혹은 강호에 떨어졌지만 근본을 찾으면 어찌 다름이 있으리오? - P221

오늘로부터 맹세하여 형제 되어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두구든지 다른 마음이 있으면 천지가 용납하지 않으리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대사는 복을 내려주시고 재앙을 없이 하여 백 년 후 함께 극락세계로 가게 하소서."
하였더라. - P222

"사부는 어찌 소유를 정도로 인도하지 않고 환술(幻術)로 희롱하나뇨?"
대답을 듣기도 전에 구름이 날아가니 중은 간 곳이 없고 좌우를 돌아보니 여덟 낭자 또한 간 곳이 없는지라. 놀라고 당황해하더니 높은 누대와 많은 집이 한순간에 없어지고, 향로에 불이 이미 꺼지고 지는 달이 창에 이미 비치었더라. 스스로 자기 몸을 보니 백팔염주가 손목에 걸렸고 머리를 만지니 깎은 머리털이 까칠까칠하였으니 완연히 소화상의 몸이지 대승상의 위의가 아니더라. 정신이 멍하여 오랜 후에 비로소 제 몸이 연화도장 성진 행자인 줄 알고 생각하니, 처음에 스승의 책망을 듣고 풍도로 가고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 양 씨집의 아들이 되어 장원 급제 한림학사를 하고 출장입상하여 공을 이루고 벼슬에서 물러나 두 공주와 여섯 낭장하 같이 즐기던 것이 다 하룻밤 꿈이라.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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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새뮤얼 R. 서머스와 마이클 I. 노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지된 반흑인 편견이 감소했다고 대답한 백인 응답자들은 반백인 편견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인종주의를 제로섬 게임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 관점은 너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면 나에 대한 적대감이 늘어난다는 제프 세션스 전법무장관의 말에 잘 압축되어 있다. 이 연구가 진행되던 당시 미국 백인들은 실제로 반백인 편견을 반흑인 편견보다 더 큰사회문제로 여겼다. 오로지 한 명을 제외한 미국 대통령 전원이 백인이고, 역사적으로 의석의 90퍼센트를 백인이 차지해왔고, 백인이 보유하는 평균 순자산이 비백인보다 10~13배 높은데도그렇게 믿었다. 사실 인종 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30년 전 중위 흑인 가구의 보유 자산은 6,800달러였으나 지금은 불과 1,700달러이며, 이에 반해 중위 백인 가구의 자산은 같은 기간 10만 2,000달러에서 11만 6,800달러로 증가했다. 자원의 축적이 너무 불균형해서 백인성이라는 인종 프로젝트는 실질적으로 백인 과두체제를 뜻한다고 철학자 린다 마틴앨코프는 표현한다. - P119

2016년은 몇 가지 요인 때문에 백인성이 가시화된 해였다. 미국에서 백인이 머지않아 소수자가 되는 인구학적 전환이 닥쳐오고 있고, 평생고용이 줄어 무력감을 느낀 일부 백인이 이민자에게 화풀이를 했으며, 퍼거슨 판결(분리하되 평등하다는 인종 분리 원칙을 확립한 1896년연방대법원 판례로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례에 의해 폐기되었다 - 옮긴이) 이래로 사법제도,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인종적 불의에 항거해온 흑인과 갈색인 운동가들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 백인은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자기들도 피부색으로 표시된다고 느꼈고, 그런 방식의 노출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바는 - 수치심이었다. - P123

2017년 2월 1일, 5세의 이란계 아이가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로 다섯 시간이나 억류됐다. 미성년자임에도 "위협 가능성이 확인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슬림이 다수인 7개국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한 트럼프 행정명령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 소년은 메릴랜드주에사는 미국 시민이었는데도 당국은 상관하지 않았다. 공보 비서는 "단지 연령과 성별을 이유로 그들이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고 상정하는 것은 잘못되고 그릇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트럼프행정부에 대한 분노는 그날따라 더욱더 생생하고 선명했다. - P125

시인으로서 나는 지금까지 시종일관 영어를 권력 투쟁을 위한 무기로 취급해왔고, 나보다 더 힘센 자를 상대로 그 무기를 휘둘렀다. 그래서 영어로 애정 표현을 하는 데에 서투르다. 집에서 나는 소리가 바깥에 들리지 않도록 늘 조심하다 보니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안으로 들이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고통과 불가분하게 뒤얽힌 사랑으로 양육된 나머지, 그 사랑을 공기 중에 일단 노출해버리면 그것이 산화되어 괜히 내가 영어로 내 가족을 배신하는 꼴이 될까 봐 두렵다. - P140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이 나라는 좌우 양편에서 정체성의 축소를 겪었다. 백인 국가주의가 발흥하자 수많은 비백인이 분노와 자존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방어하는 한편 수 세기에 걸친 백인의 비서구 문화 착취에 대해 보상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정당한 분노에서 초래된 한 가지 부작용은 예술가와 작가에게 오직 자신의 개인적인 인종적 체험만을 근거로 발언하라고 요구하는 "자기 차선 지키기" 정치였다. 그런 정치는 - 인종집단이 깔끔히 나뉘지 않고 중첩되는 삶의 복잡한 현실을 무시한채 - 인종 정체성의 순수성을 가정할 뿐만 아니라 인종 정체성을지적 재산권으로 전락시킨다. - P141

말을 이렇게 하지만, 전례도 별로 없는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관해 내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다문화적 합일성이라는 안이한 환상이나 도덕성을 과시하는 살균된 언어에 기대지 않고서 쓸 수 있을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 P151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려서 내가 10대가 됐을 때 우리 가족은 교외 백인 거주지 내 수영장 있는 집에 살았다. 나는참새가 염소 소독제 섞인 수영장 물을 한 모금 마시러 휙내려왔다가 다시 휙 올라가는 모습을 창문으로 내다보곤 했다. 거기로 이사했다고 해서 우리 집에 감돌던 불행이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그런 고립된 생활 환경이 모종의 안도감을 주었다. 내 사춘기 불행의 원인을 분석하려면 엄마에 관해 써야하는데, 이 책에서 그 작업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 내 안으로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을까? 아시아계 미국인의 내러티브는 항상 엄마로 귀결되어야 하나? 시인 호아응우옌을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제일 먼저 물은 것이 "엄마에 대해 말해봐요"였다.
"좋아요." 내가 말했다. "어색함을 깨주는 질문이군요." - P164

"엄마가 아시아인이잖아요." 그가 말했다. "흥미로운 분일 것이 틀림없어요."
엄마 얘기는 일단 미루자. 그보다 아시아 여성들과 맺은 우정에 대해 먼저 쓰려고 한다. 안 그러면 엄마가 책을 아예 장악하고 이 에세이들을 전부 관통하여, 결국에는 오로지 엄마에 관한 책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 전에 나는 먼저 원한부터 풀어야겠다. 이 나라에 대해서, 이 나라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미리 정해진 대본을 안겼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엄마가 당시 망가진 상태였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어쩌다 그리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병이 병으로 명백히 진단되지 않으면 자식이 그 멍에를 짊어진다. 이를테면 엄마가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며 차선을 급변경해서 다른 차를 받을 뻔했을 때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었던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꼈다. - P165

영진 리는 풍자극 『용비어천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백인 남자가 아시아 여자를 사귀는 이유는 백인 여자보다 용모가 더 나은 아시아 여자를 사귈 수 있어서이다. 우리는 사귀자는 말에 쉽게 응하고 자존감도 낮기 때문이다. 저급 브랜드를 택함으로써 더 호화로운 사양을 누리는 것과도 같다. 게다가 아시아 여자는 백인 여자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백인 남자와도 데이트할 의향이 있다." - P183

에린과 나는 명미 킴이 가르치는 시 과목에 등록했다. 킴은 짧게 친 머리에 긴 검정 치마를 입어 성직자처럼 보이는 30대 후반의 객원교수였다. 첫날 교수가 침묵에 관해 강의했는데 그것이 문학사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박살 냈다. 교수는 어떻게 해서 시형(poetic form)이라는 회로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에 의해 충전되는지 논했다. 시라는 것은 완벽하게 형성된 구절보다는 더듬거림, 주저함을 잡아내는 그물이라고 했다.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심문이라고 했다.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유대계 시인으로서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 파울 첼란의 경우 "그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의 불가능성과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단을 찾는 작업 사이에서 방향을 잡아갔다"라고 킴은 설명했다. - P190

바로 그 점을 명미 킴이 내게 최초로 가르쳐주었다. 내가 눌변으로 여기는 부분- 내가 이중언어 사용자라는 점, 어렸을 때 영어 때문에 고생한 점 -을 역이용해 영어를 두드리고, 그것을 나의 갈등하는 의식에 가장 근접한 나만의 어휘소 목록 속으로 녹아들게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 P191

이것은 그 애가 지닌 가장 한국적인 속성으로, 죽음과 생존을 동시에 격렬하게 욕망하는 충동이 서로 상쇄되지 않고 합쳐져 있었다. 그 때문에 얘와 함께 지내기가 참 괴로웠다. 헬렌은 에린과 나를맹렬히 몰아세웠고,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자기가 미술가가 되면안 된다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다. - P198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을자극하는 고통은 일단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면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본다.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덜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한 번 입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 부정은 항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주지만, 그건 국소적 요법에 불과하다. 겪은 일이 꿈에 나오거나 다른 더치명적이고 만성적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 P213

그런데 왜 나는 차의 살인 사건을 더 일찍 찾아볼 생각을 안 했지? 나도 서평을 쓸 때 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살인 앞에 강간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삭제하지 않았나? 강간이라는 단어는 글에 손상을 가하면서 어떤 주장이든 엎어버린다. 강간을 넘어서 분석을 이어가고 이해를 도모할 방도가 없다. 그것을 직시하든지 아니면 시선을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죽음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때때로 나는 뉴스 기사에서 범죄피해자가 아시아인이면 일부러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그 사건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관하기 싫다. 왜냐하면 분노속에 방치되기 싫기 때문이다. - P231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조상의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두 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 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 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 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 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마술적 사고가 드러나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예다. 즉 백인이 흑인과 갈색인에게 저지른그 모든 죄가 자기들에게 열 배로 되돌아올 것이 두려워서, 백인종은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기 위한 일종의 예방 조처로서 자신들의 몰락을 지레 상상하는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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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이 너무 많아. 별표친 것만. 눈물난다.
제2의 성 주요 인용구는 어려워 혼자 이해가 안되지만, 김은주 선생님이 자세히 풀어주시니 이해가 되네.

그중 첫 번째 의미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실존철학 개념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문제에 착목해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펼쳤다는 겁니다. - P103

이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은 타자라는 개념인데요. 타자는 다음과 같은 바를 전제해요. ‘어떤 집단이든 대척점에 있는 타자를 세우지 않고서는 단일한 하나가 될 수 없다. 이 말은 사실상 동일성이 ‘어떤 변치 않는 본질이 있기에 동일하다‘라는 정체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시몬 드 보부아르의 통찰은 동일성은 그런 식으로 성립되는 것이아님을 강조하는 거죠. 요샛말로 ‘인싸(인사이더)‘, ‘아싸(아웃사이더)‘ 같은 이야기로 알 수 있어요. 누군가를 타자로 딱 배척하는 거죠. 우리는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면 하나가 되잖아요. 바로 보부아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어떤 집단이 하나가 되려면 나와 대척점에 있는 타자, 나와 다른 존재를 세워놓으면 된다는 거예요. 실은 동일성이란 우리가 가진 본질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타자를 배척함으로써 획득되어왔다는 거죠. 그게 되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 P111

이 책에서 중요한 말은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말은 여자라면 어때야 한다는 것들에 대해서 여자가 왜 그래야 되느냐는 거예요. - P115

《제2의 성》에서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왜 여성성을 신화화했는지에 대한 분석이에요. 이 분석이 탁월해요. 보부아르가 살았던 시대에 이 신화화에 일조한 사상이 바로 정신분석학이에요. 특히 프로이트요. - P1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그걸 아주 중요한 신화, 원형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가족 모델을 만들어놔요. 두 번째로 그 속에 존재하는 여자를 언제나 결핍된 존재, 타자, 없는 존재로 만들죠. 결핍된 존재, 없는 존재니까 여자의 본성이 시기, 질투가 되는 거죠. 없기 때문에 언제나 원하는 거예요. - P119

프로이트는 가족과 재생산을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으로 설정하는데, 사실 그걸 털어보면 인간 남성을 인간의 기본 모드로 만드는 중요한 장치가 바로 가족과 재생산이라는 거예요. 이게 가부장제고, 이게 원초적으로 여성을 옭아매는 억압이라는 통찰이 《제2의 성》에 등장해요. - P119

보통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제2물결 페미니즘을 예고한 책이죠. 여성 억압의 본질이 가부장제, 가족, 재생산, 어머니됨에 있다는 통찰을 줘요. - P120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타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남자는 여자를 타자화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던 거죠. 이게 굉장히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실제로 남녀의 위치라는 건 - P126

언제나 비대칭적이라는 걸 밝혀냅니다. 이것이 페미니즘의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에요. 우리가 페미니즘을, 그 이론을 이해한다는 건, 남녀의 성차가 비대칭적인 상태이며 그것들을 교정하려는 어떤 시도가 페미니즘의 출발점이라는 걸 이해한다는 거예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통해 이것에 대해 일종의 논증을 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P127

보부아르가 말하는 건, 여성이 주체가 되려고 하는 건 굉장히 실존적 고민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 P133

특히 남자들은 여자들이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걸 이용한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여자는 구체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호성을 인정하지도 않고 자기가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또는 ‘타자‘라는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기 때문에, 자기가 주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와 같이 여자는 구체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라는 이야기가 중요해요. 그래서 페미니즘은 언제나 구체적인 이야기들에서 시작해요. - P134

자세하게 묘사를 하는 건 그래야만 여자가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겁니다. 이러한 묘사를 읽는 여성들은 여성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 경험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함께 겪고 있고, 겪어왔던 일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다른 세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의 출발은 여성들의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라고 할 때 ‘경험을 말하고 경험을 경청하라. 그리고 경청을 통해 우리는 페미니즘의 출발을 마련할 수 있다‘라고 하죠. 보부아르도 그래서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고요. - P135

그래서 "무한히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것 외에는 눈앞의 실존을 정당화하는 길은 없다"라고 쓰는 거예요. 자기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는 내가 자기초월을 통해서 계속 자유로운 존재로서 내 실존의 자유를 완성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게 아주 중요해요. - P142

그런데 대자존재가 되는 걸로 만족하는 게 아니에요. 그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자유를 실현하는 거니까요. 이 과정이 한 번으로 끝나면 즉자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겠죠. 왜? 시간이 지나가고 있잖아요. 그 안에서 계속 쟁투하고 대자존재가 되려고 하는 과정들, 계속 반복적인 운동들의 양상을 펼쳐가는 걸 변증법적dialectic 과정이라고 이야기해요. 그 과정과 자유론을 연결하는 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특히 보부아르의 주요한 생각이에요. - P144

여자에게 그런 본질이 있는 게 아니라 억압의 구조, 가부장제라는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공통적인 느낌을 받는 거죠. 우리의 속성이 아니라 구조가 같기 때문에, 구조의 유사성으로 인해서 억압의 체험 양상이 유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여성의 본질이 그러하다‘라고 학습하게 되잖아요. 사실은 구조의 본질이 그러하다‘라고 해야 하는 거죠. 구조를 비판하기는 쉽지만, 사실상 이 구조를 작동하게 하는 행위자는 정확히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구조는 문제시될 수 있더라도, 이 문제가 있는 구조의 어떤 지점을 타격해야 이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가 불 - P152

분명한 거죠.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역시 그 구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구조의 작동에 기여하기도 해요. 그래서 구조는 단단해요. 문제를 느끼는 자, 체험하는 자는 그 구조의 단단함을 더 강하게 느끼고요. 문제를 느낄 수 없는 자에게는 구조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죠. 마치 공기처럼요. 구조는 그걸 체험하는 여성에게만 있을 뿐이죠. - P153

그리고 여성이 나의 주체성을 드러내면 자꾸 혼나요. 그래서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죠. 그러면 그 안에서 에너지 소모도 많지 않을까요? 주체적으로 에너지를 다 발휘할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이래도 되나, 저래도 되나 고민하다가, 남자들이 100을 펼칠때 여성은 못하는 거죠. 에너지 50은 자기 안에서 소모해버린 다음에 결정하는 과정들 속에서 발전이 늦다는 거죠. 심리도 그런 식으로 형성되고요. 그걸 이겨낸 여성들은 아주 소수겠죠. 그리고 얼마나 드세겠어요? 소위 ‘드센’ 여자들인 거죠.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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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조히스트인 만큼이나 사디스트이고, 바로 그런 기질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끌렸던 것이다. 이왕 무안해질 거라면 청중도 나 때문에 무안해하길 바랐고, 너무 무안한 나머지 피부를 찢고 튀어 나가고 싶을 정도였으면 했다. 인종에 관해 솔직하게 쓰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으나 그보다 더 원한 것은 안주하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었다. 부끄러워 움츠러들게 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내 정체가 안주하는 무리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형식 실험에서 실패만 거듭하고 인종에 관해솔직하게 글 쓸 방법을 찾아내는 작업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 P92

퀴어 이론가 캐서린 본드 스톡턴은 퀴어 아동이 어떻게 "옆으로(sideways) 자라는지" 적으면서, 퀴어의 삶이 흔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톡턴은 유색 인종 아동 역시 옆으로 자라는데 그들의 어린 시절도 퀴어 아동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백인 아동이라는 모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어린시절을 옆으로 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지금도 그때를 돌아보면, 어린 소녀가 내 시선을 피해 숨으면서 나의 기억들을 깜박거리는 환상의 그림자놀이로 유도한다. - P101

미국뿐만 아니라 전지구에 기억을 심어주는 할리우드 산업은 백인 향수를 일으키는가장 수구적인 문화적 주범이며, 무한 반복되는 타임루프에 갇혀 1965년 이후로 미국의 인종 구성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인정하길 거부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출연진을 보면, 유럽 혈통만조심스럽게 골라 그들만 미국인으로 등장하도록 보장하는 백인우월주의 법이 아직도 이 나라를 "보호"하고 있는 것만 같다. - P107

번스틴에 따르면 인종적 순수란 단순히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아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로서 "음, 나는 인종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데"와 같은 언급 속에 엉켜 있으며, 여기서 나는 보는 일을 가로막고 있다. 순수는하나의 특권이자 인지 장애, 즉 잘 보호된 무지의 상태이며, 일단 이것이 성인기까지 오래 이어지면 당연히 누려야 할권리로 굳어진다. 순수는 성적인 것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굳이 특정해서 "표시되지 않으며"(unmarked) "자유롭게 본연의 너와 나가 될 수 있다"라는 신념에 기대 사회경제적 위계 속에 놓인 자신의 지위를 외면하는 것이다. - P108

그런 일이 너무 관행처럼 발생해서, 엄마가 어떤식으로든 백인 성인과 상대할 때면 나는 늘 바짝 경계하면서 중간에 끼어들거나 엄마를 옆으로 잡아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이어야할 부모의 굴욕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의지하지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12

이 나라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굴욕은 잘 알려져 있지않다. 우리는 아시아인은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에 주눅이 들어 있다. 근면성을 발휘하면 존엄성으로 보상받으리라 믿고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근면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만들 뿐이다.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 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 온 나라가 초래한 것이되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 아시아인이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은 너무나 은근히 퍼져 있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도 남들에 비하면 나쁜 처지가 아니었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종적 트라우마는 누가 앞서고 뒤지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문제는 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이례적이 아니라 실은 오히려 전형적이었다는 데 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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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4-20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햇살과함께 님! 찌찌뽕~
저 이 책 읽고 있어요!! >.<

햇살과함께 2022-04-20 14:04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역시 이 책도 지나치지 않으셨군요 ㅋㅋ 저 지난주 새로 산 책 읽고 싶은 조바심에 더 진도가 안나가는 듯요^^
 

궁녀를 시켜 어전의 유리 연갑과 백옥 필통과 옥으로 된 두꺼비 연적을 양 상서 앞에 옮겨놓고 모든 궁인이 미리 대령하였는지라. 각각 화전, 비단 수건, 부채 등을 앞에 내놓자 상서가 술기운을 타고 붓을 떨치니 바람과 비가 놀라고 구름과 안개가 이는 듯한지라. 절수도 지으며 사운도 지으며, 한수를 쓰기고 하고 두 수를 쓰기도 하니 필세(筆勢)가 휘동하여 용이 울며 봉황이 나는 듯하여 나무 그림자가 옮겨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다 썼는지라. 궁녀가 차례로 어전에 글을 바치니 상이 칭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시고 모든 궁녀에게 이르시되,
"학사가 수고하였으니 모름지기 각각 잔을 바쳐라." - P102

양 상서가 그 여자를 보니 구름 같은 머리털을 위로 올려 금비녀를 꽂았고 소매 좁은 전포(戰袍)에 석죽화(石竹花)를 수놓았고, 발에는 봉의 머리처럼 수놓은 신을 신었고, 허리에는 용천검을 찼더라. 천연한 절대 미색이 마치 한 송이 해당화 같으니 만일 종군(從軍)하던 목란(木蘭)이 아니면 금합(金盒)을 도적하던 홍선(紅線)이러라. - P121

상서가 매우 기뻐,
"경이 위태로운 목숨을 구하고 몸소 섬기고자 하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으리오? 백 년을 함께 늙기 원할 뿐이리라."
하고는 이날 밤에 원수가 장중에서 요연과 잠자리를 함께 하니 창과 칼의 빛으로 화촉(華燭)을 대신하고 조두(斗)소리를 금슬(琴瑟)로 삼으니, 군영 가운데 달빛이 밝고 관문 밖에 봄빛이 가득하였으니 깊은 밤 비단 장막에 한 조각 각별한 정과 흥이 넘치더라. - P123

이 소저가 말하되,
"저는 누추한 사람이라. 엄친이 세상을 버리시고 모친이 응석받이로 기르시니 무슨 배운 일이 있으리오? 스스로 한탄하는 바는 남자는 천하에 벗을 얻어 어진 일을 돕거늘 여자는 시비 밖에서 서로 만날 사람이 없으니 어디 가서 허물을 고치며 뉘게서 학문을 닦으리오? 저저께서 반소(班昭)의 문장과 맹광(孟光)의 행실을 겸하여 몸이 집 안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명성이 온 나라에 가득합니다. 누추함을 벗고 빛난 덕을 보기를 원하더니 이제 저저께서 버리지 않으시니 평생을 위로하리로소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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