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러 번 반복해서 확인해온 것처럼, 서구 철학의 역사는 차이를 단순한 대립관계로만 이해하죠. ‘차이는 불온한 것이다‘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차이는 대립에서만 생겨난다는 전제 때문이에요. - P375

차이에 대한 이런 사고에는 ‘주체는 동일하다‘라는 전제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비주체였던 사람들이 나도 주체가 되겠다고 저항을 할 경우에 처하는 문제점을 한번 보죠. 비주체가 주체가 되는 과정은 주로 ‘우리가 모두 동일하다‘고 하면서 정리를 해왔죠. 그런데 오드리 로드는 그런 입장에 반대하잖아요. 비주체였던 사람들이 우리를 비주체로 만든 사람의 방식처럼 주체가 되겠다고 하는 것, ‘우리는 동일하다‘라고 하는 건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왜? 내가 주체의 자리에 가겠다는 방식 안에서 주체의 동일성을 선취하겠다고 하면, 우리를 비주체로 몰았던 사람들처럼 어떤 존재들을 또 비주체로 만드는 형태들이 되니까요. - P380

대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주체가 되는 것들을 막아버린다는 거죠. - P383

그래서 저는 로드의 이 문장이 흥미로웠어요. 절절하기도 하고요. "지극히 미국적인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주변을 경계하며 살아야 했고, 억압자의 언어와 태도에 익숙해져야 했으며, 심지어 때로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착각 속에 그들의 언어와 태도를 차용하기도 했다." - P384

차이는 이분법으로 볼 게 아니라는 거예요. 차이는 그들이 갖고 있는 특성일 수도 있고, 각각 다 차이가 나는 특성들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걸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고요. 이 차이를 차별로 만들고, 차이를대립이라고 생각했던 소위 동일한 주체들이 사실 자기도 하나의 차이 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이 차이들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들이 알려고 해야 되는데 거꾸로 알려달라는 것도 문제라는 거고요. 차이를 분열로 만드는 건 차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 너희들 탓이라는 게 로드가 말하려고 하는 바인 거죠. - P391

차이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지 말자는 것, 차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서구 철학, 백인들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오드리 로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죠. 그리고 차이를 분열로 책동하는 전제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차이 자체가 분열이 아니라 차이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분열을 일으킨다는 게 차이에 대한 오드리 로드의 새로운 생각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차이를 우리가 재정의하겠다‘라고 나아가는 거죠. - P391

자기의 특권을 인식하기. 나를 정상성에 놓고 말하는 게 아니고, 내가 백인이라는 특권, 내가 가진 위치의 특권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리 잡는 것. 이게 되게 달라요. 보통 우월성을 앞세워서 이야기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오드리 로드는 사실 그 우월한 자들은 우월성을 정상성이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라고 호명해요. 그런데 특권을 인식한다는 건, 내가 ‘모든 인간‘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특권을 지닌 존재로서 이야기한다는 거죠. 자신을 ‘모든 인간‘이라고 호명하지 않고. - P393

특권을 가졌다는 걸 인정하기. 자기 특권을 인정함으로써 특권에 따른 이익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특권이 주는 이익들이 있잖아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 여러 가지를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거죠.
차이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를 설명할 때 자신의 문제점을 소위 억압자들에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자기의 역량을 길러내는 것에 힘쓰라고 하는 거예요. 동시에 억압자(로드는 억압과 피억압이라는 아주 단순한 구도로 이야기를 시작하니까요)들은 피억압자들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말고, 네게 특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세계를 이해하라고 하는 거죠. - P395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가부장제를 해체시키고 가부장제라는 구조의 부정의한 억압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 다양한 차이들의 맥락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앞선 페미니스트들의 가부장제에 대한 분석을 진짜로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페미니즘이 가진 급진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급진적radical’라는 말이 뿌리라는 말에서 왔잖아요.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가 어떻게 유지되고 공고화되는지 기초적 이해를 제공한 건 사실이에요. 이들을 우리가 래디컬하다고 하는 건, 이들이 근본을 봤기때문인 거잖아요. 베티 프리단은 그것이 신화로 작동한다는 걸 봤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을 성 계급이라고 호명할 만큼 재생산제도라는 게 여성에게 얼마나 억압적인가를 보면서, 그 안에 깃든 섹슈얼리티의 문제 같은 근본성을 봤어요. - P405

근본적인 차이, 근본적인 문제, 구조를 혁파하거나 여성을 종속에서 끊어내려면 가부장제가 다양한 차이들의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검토할 수 있도록 차이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전략을 가져와야 하는데, 이 모든 경험을 동일하다고 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주인의 집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반대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구조를 유지하는 데 우리도 기여하는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P406

로드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사실은 이 구조를 유지시키는 위치에서 우리가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적어도 동일성의 정치는 아니어야 된다는 이해인 듯 싶어요. 동일성의 정치에서 차이의 정치로 넘어간다면 이 구조를 유지하는 데에서는 우리가 벗어날 수 있다는 거죠. - P409

그리고 이 차이를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이 감정이 가진 원천을 알아보는 것이고요. 나아가 이 감정을 새로운 힘으로 변환시킬 때, 내가 받는 차별은 내가 가진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소멸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이 주변과 중심이라는 경계들도 붕괴될 수 있다는 전망을 그리는 거죠. - P426

저는 근대적 도덕 주체, 실천 이성의 주체를 가장 최선의 윤리적 가치로 삼는 논의에서 우리가 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윤리적 전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요. 페미니즘 역시도 윤리적 전회가 필요하고요. 페미니즘의 정의와 윤리가 근대의 정의와 윤리를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페미니즘은 윤리적 전회를 일으키고 새로운 가치들을 제안하기도 했죠. 근대 도덕의 원천은 이성에 있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페미니즘은 감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들과 거기에 필요한 중요한 가치들을 제안해요. 하나는 차이와 타자성의 존재고 또 하나는 연결성, 관계성이라는 윤리적 가치죠. 로드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에서 제안하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들이에요. 그리고 로드는 분노나 혐오가 나쁘다고, 그것을 버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 P432

저는 오드리 로드의 이런 태도가 진실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공통적인 어떤 것들을 원래 갖고 있어서 하나가 아니라는 것.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를 통해서 말할 수 있고, 나와 상대방이 말을 건네고 말을 들음으로써 어떤 차이를 조율할 수 있는, 그 차이를 힘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세대와 이야기할수 있는, 어떤 페미니즘적 방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제2물결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여성들 간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는 인식론적 틀거리에서 차이를 존재론적인 힘, 즉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우리 존재를 새로 만들어내는 힘으로 여기며 다른 정치를 주창한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모색하는것으로 나아갑니다. 저는 이것이 제2물결 페미니즘의 최종적 성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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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렌츠의 모든 기적은 수평의 평평함이 아니라 비딱하고 비스듬한 것이었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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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레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가 알았다면, 폴레트의 마음을 되돌리도록 시도해봤는지 에메렌츠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어요." 에메렌츠가 말했다. "앉으시겠어요? 앉아서 콩 까는 걸 도와주세요, 이것으로는 우리 네 명에게 부족해요. 가고 싶은 사람은 가야죠. 여기 왜 머물러야 하겠어요. 우리는 그녀의 삶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준 거예요. 집에서도 그녀는 고통받지 않았으며, 대가 없이 그 허름한 집에서 사는 것도 허락되었지요. 게다가 나는 그녀에게 모임도 주선했어요. 슈투도, 아델도 그리고 나도, 그녀에게는 우리 모두가 충분치 못했지만, 그녀의그 모든 이상한 고정관념을 좋은 마음으로 다 들어주었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마저 들어주었어요. 가끔 프랑스어로 말했거든요. 프랑스어로 말해도 우리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얘기만을 갈라진 목소리로 읊어댔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고독하다는 것을요. 나도 알고 싶은 게,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사람도 단지 생각을 하지 못할 따름이에요. - P137

"당신은 짐승을 죽여본 적이 있나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죽일 거예요. 때가 되면, 비올라에게도 주사를 놓게 해서 당신이 죽일 거예요. 누군가에게서 모래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그것을 저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죽어가는 그에게 당신은 삶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으니까요. 내가 폴레트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녀가 삶이 지겨워 떠나고자 했을 때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죽일 수도 있어야 해요. 참고해두면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나 진심어린 관계를 맺고 있는 하느님께 물어보세요. 그들이 만났을 때 폴레트가 하느님께 무슨 말을 했는지 말이에요." - P145

에메렌츠국國의 철학을 인민교화원들에게 전했을 때 그들은 살면서 가장 좌불안석의 곤란한 순간들을 겪었을 터였다. 그녀의 눈에는 호르티, 히틀러, 라코시, 카로이 4세가 똑같은 인물들이었다. 권력을 가진 그 누구, 명령을 하는 그 누구, 그리고 누구에게나 아무때나 지시를 할 수 있는 그 누구는 항상 무슨 추상적인 명분으로 그것을 행했다. 좋든 나쁘든 위에 있는 사람, 만약 에메렌츠를 위해서 저 위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억압하는 자들이다. 에메렌츠의 세상에는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슬로건을 내걸든, 어떤 깃발 아래에서 국경일 행사를 하든 그들은 모두 똑같았다. - P154

나는 최대한 빨리 귀가할 것이며, 자정 이전에는 집에 도착하고 싶다고 에메렌츠에게 일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할 테니 그녀에게 건너갈 힘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곤할 것이라니, 왜죠? 이미 가축들을 먹이고 젖을 짜고 잠재우며 오백만 가지 일을 마친 사람들을 문화회관 안으로 밀어 넣었으니, 당신의 강의를 듣는 그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피곤할 테죠. 그들의 일이 어떤지 당신은 전혀 감을 잡을 수도 없을 거예요. 그냥 앉아서 횡설수설할 따름이니까요." - P171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거나 최소한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에메렌츠의 기억의 우물은 그 심연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싶었다. 여기에서, 부정할 수 없이 실존하는 그녀 삶의 한때의 무대에서, 내 의식 속에 에메렌츠라는 존재의 실제적인 좌표들을 그려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여기에 이미 그녀의 집은 없다.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거기에도 아직 집이 없다. 말하자면 그녀의 집은 그런 환경 속에서는,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과 단절된 그런 집인 것이다. 빛을 잃고 땅거미를 채색하고 있는 저 줄무늬들 사이에서 푸르러지는 이 저녁에, 단 하나의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녀에게 이 마을은 사라졌다. 에메렌츠는 그녀를 받아준 도시로 떠났지만, 그 도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P179

나는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이유를 밝히거나 혹은 논리적이 될 때는, 그런 환경들에 놓여 있을 때가 아니라 때가 되었다고 그녀가 느낄 때였다. 에메렌츠에게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녀가 지닌 개인적인 신화 속에서 시간은 물레방아가 끝없이 도는 방앗간 주인의 제분 작업과 같았으며, 누구의 포대가 맡겨지는가에 따라 제분기가 사건들을 솎아냈다. 에메렌츠의 믿음에 따르면, 그때까지 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그 누구도 제외된 사람은 없었다. 그 방앗간 주인은 죽은 사람의 곡식도 제분해서 포대에 담는데, 다른 사람들은 단지 그 밀가루를 등에 지고 가져가서 그것으로 빵을 만들 뿐이었다. 나의 포대는 이미 그녀가 지닌 감정의 백열이 사랑만이 아니라 완전한 믿음 또한 의미했을, 크게 잡아 3년 이후에야 그 순서가 되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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