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2
솔르다드 브라비.도로테 베르네르 지음, 맹슬기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석기시대부터 성차별이 시작되었다는,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을 알려준다. 그림과 글씨가 아주 앙증맞지만, 그 담고 있는 내용은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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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그녀는 자신을 물고 있는 부리가 된다. 그리고
용수철 뚜껑 같은 자연은, 시간과 도덕을 담고
아직 쿨렁쿨렁한 그 납작한 트렁크에
이 모든 것을 채운다. 곰팡이 핀 오렌지 빛 꽃
여성용 약품들, 납작 누른 여우 머리와 난초꽃 장식밑으로
흉측하게 튀어나온 보디세아의 젖가슴.

잘생긴 여자 두 명이, 도도하고, 날카롭고, 미묘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에이드리언 리치, 「며느리의 스냅 사진들] 중. - P7

철학의 역사는 오랫동안 남성들만의 것이었다.
철학사에서 여성의 이름이 보이게 된 지는 얼마 되지않았으며,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생각하는 여성이라고 한다면, 그는 미쳤거나 사회부적응자이거나 남성을 유혹하는 악녀였다. ‘남자를이겨 먹으려는’ 이런 여자들은 ‘여자답지’ 않은, 희한한 존재로 여겨졌다. - P7

20세기에 들어서, 드디어 자신을 철학자로 선언하는 여성 철학자가 등장한다. 자신만의 공부공간을 갖지 못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책으로 가득 찬장폴 사르트르의 서재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자란 무엇인가?‘를 철학적 물음으로 제기하면서, 사회적 성별로서의 젠더를 제안한다. 뤼스 이리가레와 아드리아나 카바레로는 길고 긴 철학의 역사 뒤편에 숨겨진 여성의 자취를 파헤치면서, 철학사를 여성적인것으로 독해하기도 했다. - P8

플라톤에게 결국 철학은 영혼의 감옥에 불과한 야만적 육체에서 벗어나 고결하고도 추상적인 정신과 관련을 맺기 위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야만적짐승이 아닌, 신성한 이성으로 육체를 통제하면서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존재다. 플라톤에게 피 흘리고 임신하고 출산하는 여성은 자연에 보다 더 가깝다. 가부장적 편견에 휩싸인 아리스토텔레스도 역시 여성을 사회적 존재인 비오스(bios)가 아니라 동물과 노예와함께하는 영역인 조에(Zoe)로 몰아넣었다. - P9

타자와 괴물을 몰아낸 기반에 뿌리 내린 철학에서, 여성은 타자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자신의 입말이 아니라, 자기를 탄압하고 옥죄는 언어로 사유와 철학을 시작한다. 여성을 타자로 규정한 철학 안에서 철학적사유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어붙고 어두운 시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공간에서 온 힘을 다해 힘겹게 머무는 일이다. - P10

그럼에도 여성들은 철학을 포기할 수 없다. 여성 역시 지혜를 욕망한다. 지혜를 향한 사랑인 철학은 성찰, 비판, 창발의 측면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를 억압한 말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여성들은압제자의 언어에서 새로운 말과 사유를 고민하면서, 당연히 여겨져온 말과 생각을 의심하고 길을 잃는 아포리아(aporia)적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기존의 사고와 기준, 가치를 철학이라는 망치로 부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다. - P11

실상 탈맥락적 보편이란 말은 허구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에서, 말하고 사고하고 행위한다. 철학적 사유는 자신이 거주하는 시간과 공간을 표시하고 말해야 한다. 예전에 만들어진 개념은 당연하게도 새로운 개념과 이론에 의해 비판되며 수정되고 새로쓰인다. 개념은 그 흔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철학이 배제한 타자인 여성은 철학 개념들과 이론들에 명시적으로 또 암시적으로 배어 있는 여성 평가 절하의논리를 추적하고 비판하면서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수목(樹木) 철학의 죽은 뿌리를 거두고 리좀(rhizome)의 망으로 어디든 살아낸다. - P12

존재하려는 열정이 그녀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가 서로를 발견할 때까진, 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
- 에이드리언 리치 - P13

아렌트는 사유하면서 자기와 맞닿은 부조리를 통과하고, 우리가 더불어 사는 이 세계에 윤리적으로 개입하고 정치적으로 활동했다. 이제야 비로소 한나 아렌트의 초상이 그려진다. 한나 아렌트, 단독자로 사유하지만, 함께 사는 세계에서 행위하고 살아갔던, 문젯거리로서의 자기 자신을 마주한 철학자. - P19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남다른 악마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을 결여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사유를 그저 원래부터 주어진 것으로 여기거나 계산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에게 사유는 다른 이와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며, 비판의 능력이다. 아렌트는 이러한 사유에 의지해 사실을 탐구하면서 진실을 바로 보고자했다. - P31

아렌트가 이 책에서 밝힌 악의 평범성(Banality)은 악이 ‘별것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다. 악행이 자행되는 것은 누군가가 대단한 악인이라서가 아니며, 우리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 역시 어떤 조건에서는 상상도할 수 없던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 재판에서 드러난 악의 평범성은 관료제와 전체주의 속에서 누구든지 아이히만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며 파시즘의 민낯을 폭로한다.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아렌트의 통찰은 이후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스탠퍼드 교도소에서 실시한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통해서 입증된다. - P32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사고의 무능성과 그에 따른 행동의 무능함이 도처에 자행되는 악을 야기한다고 결론짓는다. 악은 비범한 형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인식하고 생각할수 있는 능력을 제거하는 체제가 사람들을 순응하게 만든다. 이러한 통제의 체계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종 학살과 같은 범죄에 가담하게 하고 학살에 무관심하게 한다. 인간 사유의 무기력에 기댄파시즘은 인간의 사고를 체계 순응적으로 길들이고, 최종적으로 사람을 억압적 체계에 동참하게 하면서 악의 실행자로 만든다. - P33

아렌트에게 사유하기란 세상을 이해하기와 동의어다. 특히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사유능력으로서의 판단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아렌트에게 사유하기를 통해 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적인 태도만은 아니다. 사유는 변화할 수 없어 보이는사태를 움직여보기 위해 붙들고 협상하려는 시도이고, 그 사태와 화해하면서 다른 사건으로 나아가는 끊임없는 활동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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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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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를 통해 알게 된 차학경, 테레사 차의 비극적인 죽음과 재판, 그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 테레사의 오빠 존 차 작가가 쓴 동생 테레사를 온전하게 보내기 위한, 지극한 애정과 애도가 담긴 책이다. 천재 예술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하며. 그녀의 ‘딕테‘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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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1-18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복을 빕니다...

햇살과함께 2022-11-18 17:47   좋아요 1 | URL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에요…
 

비 오는 날의 인사

중략

"여기는 윤동주 선배님의 조용한 안식처입니다. 담배 꽁초를 버리지 맙시다."
오늘은 비가 지독하고
팻말은 풀숲 속에 쓰러진 채 비에 젖어 있었지만
후배들은 여기서 담배 따위는 피우고 있지 않아요
여기 올 때마다 조그마한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시인이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라고 일본의 한 뛰어난 여성 시인이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에 대해서입니다.

중략 - P13

서울

사람이 어깨만이 돼서 거리에 넘친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돼서 우리를 싣고 달린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돼서 타박타박 걸어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으로 남아 서 있다.

사람들이 어깨만이 돼서 부딪쳐 간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돼서 우리를 버리려 달려간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돼서 넘어져 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 남아 짖는다.
어깨 너머 잊힌 달이 헐떡거린다.

이 어깨에는 그림자가 없다. - P28

등심(燈心)

촛불에 있어서 등심이 그렇듯
소중한 것은 아주 가녀리다.
꼭 있어야만 할 것은 참 가녀리다.
그것 없이 아예 존재 못할 때

그리고 아예 존재함에는 형체가 없다.
촛불 하나가 방 안을 밝힐 때
빛에 형체가 없듯
어떤 모양이든 방 안을
구석구석까지 다 밝힐 때 - P53

눈보라

2
수업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애랑 내기하며 놀았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하는 내기이다. 먼저 창문 밖에서 풀풀 나는 눈송이 속에서 각자가 눈송이를 하나씩 뽑는다. 건너편 교실 저 창문 언저리에서 운명적으로 뽑힌 그 눈송이 하나만을 눈으로 줄곧 따라간다. 먼저 눈송이가 땅에 착지해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정했어." 내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나도"하고 그애도 말한다. 그 애가 뽑은 눈송이가 어느 것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지만 하여튼 제 것을 따라간다. 잠시 후 어느 쪽인가 말한다. "떨어졌어." "내가 이겼네." 또 하나가 말한다. 거짓말해도 절대로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 야단 맞을 때까지 열중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 P65

손톱

달동네 한복판에
어깨처럼 완만한
언덕 중턱에
눈이 남아 있다.
집들이 철거된 그 자리에

거기에만 땅이
남았으니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다.
몽땅 가져갔고,
땅만 남았으니

달동네 한복판에
도장으로 찍을 만한
조그마한 하얀 표가 있다.
"인정 안 해"라고
하얀 인주로 찍을
도장처럼 - P66

서울에서 내가 한 것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무언가를 보는 일, 그것뿐이었다. - P95

것이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만큼 많은 시가 "나왔"고, 또 그러기 위해서 어떤 힘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일은 일생에한번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당시 한국의 공기 중에 뭔가 시를 유발하는 성분이 포함된 것 같았다. 사실 그후 2011년의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를 제외하고 나는 한번도 시를 쓰지 않았다. (이 책의 말미에 그것들도 수록했다.) - P95

내 한국어 실력은 높지 않았다. 만약 한국말이 유창했더라면 오히려 시를 안 썼을 것이다. 눈으로 본 것, 마음에 떠오른 것을 말하고 싶어도 제대로 못했던 답답함이 시를 쓰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외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시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논문이나 신문기사를 써보라 하면 할 수 없었을 테니까.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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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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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 유일하게 챙겨 읽는 수상작품집이다. 개인적으로 작년보다 좋았다. 김병운 작가의 게이 정체성 화자가 에이섹슈얼 친구에게 갖는 편견 이야기는 시스젠더 헤테로에게 신선한 해방감(?)을 준다. 요즘 뜨는 김지연 작가의 진한 현실감도 좋고, 마지막 서이제 작가의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실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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