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일 이야기로 끝까지 가겠구나 싶어질 즈음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난다. 대화가 길어지고 음식이 떨어질 무렵, 이미 애피타이저에 메인, 후식에 2차 후식까지 먹었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을 때가 바로 내가 나서는 시간이다. 라면을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 P129

"진짜 신기해. 윤이나가 끓이면 라면 국물에서고기 맛이 나."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는 친구들의 반응에 나는 만족한다. 그리고 괜히 오늘의 주제와 라면을 연결지으며 떠들기 시작한다.
또 "이건 일하는 거랑 같은 이치라고. 결국 기본이야. 기본을 잘해야 돼. 라면을 끓이고, 끓이면서 반성하는 거야. 이번에는 물이 적었다든가, 불을 끄는 타이밍이 늦었다든가, 라면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지않았다든가 하는 것을 돌이켜보는 거야." - P132

어느 날 엄마에게 엄마가 반죽하던 과정이 생각나서 어쩐지 호떡을 밖에서 사 먹기 좀 어색하다는 말을 했더니, 엄마가 별소리를 다 한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요새 반죽을 집에서 하는 사람이 어딨어? 요새는 다 공장에서 반죽해서 나와."
딸이 추억인지 아련함인지 고마움인지 모를 감정에 괜히 질척거리며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동안 엄마는 이미 예전에, 산뜻하게 호떡을 보내준 것이었다. - P142

목표는 라면을 계속 먹는 삶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라면 이외의 식단을 신경 써야만 한다. 라면을 먹는 날 다른 한 끼는 무조건 소금이 덜들어간 음식으로 준비하고, 야채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따로 챙길 것이다. 물론 단백질 섭취도 잊지말아야 한다. 평소에 물도 많이 마셔야 하고, 나트륨이 많이 들어간 과자를 간식으로 먹는 것도 자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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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6-02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 호떡집에서는 호떡
구우시는 분이 직접 반죽을 치
대고 떼어내서 기름에 튀기시
더라구요. 아 호떡 먹고 잡다.

저는 갠적으로 삼양라면이 쵝
오라고 생각합니다만.

햇살과함께 2022-06-02 21:08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먼저 읽고 호떡 먹고 싶다고 해서 라면 아니고? 했는데 저도 다 읽고 나니 호떡 먹고 싶더라고요.
저는 너구리파 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사를 꼼꼼히 읽고 내용을 잘 기억해두었다.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기억이 됐다. 그건 한 편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슬픔은 이야기로 만들면 견딜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야기가 된 모든 것은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이다. - P12

기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장 안에서의 삶도, 공장 바깥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기한을두고 어딘가에 머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건 임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뎌지지 않는 현실이 거기에도 있었다. 그렇게 끓지는 않을 만큼 미지근하게 익어가다가, 먹어버리면 끝나는 순간들이었다. - P50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언제나 한결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고, 깊게 오래 바라보고 적응해간다면 시골살이나 바다에 가까운 삶도 꿈만은 아닐 테지만, 아직은 이 복잡하고 정신없으며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는 도시가 좋다. 세계인이 함께 통과하고 있는 이 예상치 못한 팬데믹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에, 그때까지는 서울에 머물러 있고 싶다. 아주 오래된 것과 오늘 새롭게 생겨난 것이 뒤섞인 서울이 나는 여전히 재미있다. 싫은 것도 많지만 좋은 것도 가득한, 매콤달콤새콤한 나의 도시. 어쩔 수 없는 나의 베이스캠프. - P93

미안하지만 애초에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부터가 문제다. 면식이 밥에 버금가는 주식이었던 우리집과는 달리 라면을 먹는 걸 금기시하고 먹게 되는순간을 가능한 한 늦추는 집들을 나는 자주 보아왔다. 어떻게 봐도 건강식으로 보기 어려운 음식이니이런 엄마들의 마음이야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바로 이 마음 때문에 라면을 잘 끓이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엄마들은 라면을 끓이면서 이왕이면 단백질도 섭취했으면 하는 마음에 달걀도 깨서 넣고, 파나 양파를 무작정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 P95

냉장고도 비울 겸 냉동만두 같은 것까지 넣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나트륨 과다 섭취를 걱정하면서 수프는 반만 넣는다. 이런 라면은 맛이 있을 가능성도 없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라면도 아니다. 라면 수프의 맛을 국물 베이스로 쓰고 면을 탄수화물 추가용도로만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요리일 뿐이다. - P93

그리고 또 하나. 거의 모든 라면 봉지 뒷면의 조리법에는 ‘나트륨(식염) 섭취를 조절하기 위해서 분말수프는 식성에 따라 적당량 첨가’하라는 주의가 따라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프를 덜 넣는 만큼 맛도 덜어진다는 것이 나의 단호한 입장이다. 나트륨은 다른 끼니에서 조절하면 된다. 수프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라면 요리는, 내 기준에서 보건대 오직 라면땅 정도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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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평화의 왕‘이라고 부른 이유는 구약의 야훼가 전쟁의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야훼가 다스렸던 유대왕국은 전쟁과 살상이 끊이지 않았다. 이사야서 11장 앞부분만 빼고는 거의 모든 구약성서는 전쟁으로 되어 있다. 나는 시편을 싫어했는데 그 이유를 요즘 와서 알게 되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 왕의 노래는 거의 매편마다 원수를 갚아달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것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권력과영화를 지키기 위해 도전해오는 원수를 아주 무참히 없애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야훼는 그들의 기도대로 쳐서 죽이고 빼앗고 부수고 씨를 말리는 잔인한 폭군이었다. - P59

이 세상에서 진정 공생(共生)의 길을 찾고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일하는사람은 모두가 참된 하느님을 찾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그 누구나 그 무엇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다. 우리의 모습이 본래부터 하느님이었는데 새삼스레 하느님이 되려고 하는 노력은 가장 우둔한 짓이다. 가장 사람다운 삶과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이다. - P60

인간을 사랑함이 곧 하느님을 사랑함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이웃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길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자연을 자연답게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는 개의 모습대로, 닭은 닭의 모습대로, 모든 동물과 식물이 그들대로의 섭생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정말 아름답다. - P60

결국 우리는 평화라는 환상을 어떻게든 현실에서 이루어보려 하지만안된다.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한 이후 결코 한번도 평화는 없었다. - P62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 동안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평화롭지 못했다. 아기 베개에다 좁쌀을 넣는 것은 난리가 나서 급할 때 가지고 가는 임시 식량이라고 했다. - P64

스페인의 화가 피카소가 그린 전쟁 그림 <게르니카>에선 사람만이는 것이 아니었다. 소나 말 같은 짐승들도 무참히 죽어갔다. 그림의 한가운데 커다란 말 한 마리가 목을 길게 치켜들고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모습은, 인간의 죄악상을 짐승이 대신 고발하는 듯이 보인다. 참으로 비참하다. - P70

원래 농민들은 농사일 외에는 다른 데 마음쓸 여가가 없다. 농민들이 순박하고 인심이 좋은 것은 바로 이렇게 머리를 쓰는 일보다 몸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맑고 푸른 자연 속에서 곡식을 가꾸며 살아가는 것은 비록 땀 흘리는 힘든 일이지만 충분히 보상되기 때문이다. 농촌은 그래야 된다. 농민이 농사일 외에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낮에는 들에서 일하고 밤에는 식구들과 오손도손 얘기 나누다 편히 잠들 수있는 평화로운 농촌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바람이며 행복이다. 그 어떤 교육도 종교도 이 이상의 삶을 보장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 P84

자연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되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자연의 모습은 그 어떤 것도 추하게 보이지 않고 아름답다. 얼굴을 붉히면서 그림을 그려가면서 성교육을 시키는 인간은 과연 고차원적인 우등생이 되는 걸까? 고층빌딩을 짓고 아파트니 빌라니 콘도니 하는 화려한집안에서 과연 우리는 깨끗하게 살고 있다는 건가? 진공소제기로 청소를하고 수세식 화장실은 우리가 배설해놓은 똥오줌을 눈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씻어준다. 온갖 세척제와 화장품으로 씻고 바르고 하니까 우리인간은 이 지구 위에서 가장 깨끗한 동물이라 자랑해도 될까? 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곳은 과연 어딜까? 그런 냄새는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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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을 앓은 것은 열아홉살 때부터였다. 처음엔 숨이 차고 몹시 피곤했지만 그런대로 두해를 더 버티다가 결국 1957년 고향으로 돌아와버렸다. 마을에는 객지에 갔다가 결핵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나말고도 십여명이나 되었다. 식모살이갔던 성애와 철도기관사 조수로 일하던 태호, 산판에서 일하던 청수, 기덕이, 옥이, 성란이 우리는 이따금 나오는 항생제를 배급받기 위해 읍내 보건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허탕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약이 필요한 만큼 공급되지 않아서였다. - P19

이곳 교회 문간방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은 1967년이었다. 전에 살던 집은 소작하던 농막이어서 비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한평생 당신들의 집이 없었다. 가엾은 분들이다. - P20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 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 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버려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서 황금덩이보다 강아지똥이 더 귀한 것을 알았고 외롭지 않게 되었다. - P20

예배당 문간방에서 16년 살다가 지금은 이곳 산밑에 그 문간방과 비슷한 흙담집에서 산다. 사는 거야 어디서 살든 그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 P20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과 굶주림, 그 속에서도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을까. 앞서간다는 선진국은 한층 더하다. 그들은 침략과 약탈과 파괴와 살인을 한 대가로 얻은 풍요를 누리는, 천사처럼 보이는 악마일 따름이다. - P21

누가 이렇게 물었다.
"장가는 못 가봤는가요?"
"예, 못 가봤습니다."
"그럼, 연애도 못 해봤나요?"
"연애는 수없이 했지요. 할아버지 할머니하고도 아이들하고도 강아지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하고도..…" - P21

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옷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 P22

다만 내가 예배당 문간방에 살면서 새벽종을 울리던 때가 진짜 하느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 P23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하면서 흐느끼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이렇게 욕심 없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군데군데 마룻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 - P23

이와 같이 기독교가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있고, 교회에 가서 울부짖는다고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가 있든 없든,
교회가 있든 없든, 하느님은 헤일 수 없는 아득한 세월 동안 우주를 다스려왔다. 선교사가 하느님을 전파하면 하느님이 거기 따라다니며 머물고같이 사는 게 아니라,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하느님은 어디서나 온세계 만물을 보살펴오셨다. 하느님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다. 종교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려는 의지이지, 종교가 요구하는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바꾸는 게아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바로 자연의 섭리가 된다. 하느님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 했다. 그러니 하느님이 곧 자연인 것이다. - P27

가끔 가다가 아이들이 묻는다.
"집사님, 밤에 혼자서 무섭지 않나요?"
그러면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한다.
"무섭지 않다. 혼자가 아니고 내가 가운데 누우면 오른쪽엔 하느님이눕고 왼쪽엔 예수님이 누워서 꼭 붙어서 잔단다."
아이들은 눈이 땡그랗게 되어 다시 묻는다.
"진짜예요?"
"그럼, 진짜지."
"그럼 자고 나서 하느님하고 예수님은 어디로 가요?"
"하느님은 콩 팔러 가시고, 예수님은 산으로 들로 다녀오신단다."
이쯤되면 아이들은 갈피를 못 잡고 더이상 질문도 못 한다. 외롭다고 쩨쩨하게 밖으로 푯대내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혼자서 꾹꾹 숨겨놓고 태연스레 살 뿐이다. 하느님이 계속 침묵하시듯 우리도 입 다물고 견디는 것뿐이다. - P46

그러나 이런 인과응보의 신앙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식의 교훈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수백번, 수천번 부흥회를 해도 한국교회의 삶이, 우리 기독교인의 삶이 언제나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는 까닭이 바로 이런 축복신앙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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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정의를 향한 여정 - RBG가 되기까지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6
데비 레비 지음, 휘트니 가드너 그림, 지민 옮김 / 북극곰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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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는 차별 속에서도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차분히 전략을 짜고,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선택하고, 여러 사건을 연계하여 한 단계씩 큰 그림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연방대법관이 되고, RBG는 진보의 보통명사가 된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나왔지만 어른들에게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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