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다시 접이의자에 앉아 멍하니 커피를 저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남자는 꼼짝 않고 앉아서, 사방에서 도시가 깨어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시는 내키지 않는 듯 우물쭈물 깨어났다. - P20

"아이의 이름은 에바입니다. 누가 가서………… 당신이 가보는게 좋겠습니다. 당장. 아이 엄마가 불쾌한 방식으로 이 사실을알기 전에 말입니다."
"이대로도 충분히 불쾌한 일입니다." 콜베리는 한숨을 쉬었다.
경감은 진지하게 콜베리를 응시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좌우간 이건 그쪽 구역 일 아닙니까." 콜베리는 투덜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내가 가겠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콜베리는 문간에서 몸을 돌려 한마디 덧붙였다.
"경찰에 일손이 달리는 건 놀랄 일이 아닙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경찰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 P61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이것은 어린아이의 일이다 보니 어느 때보다 고된 시련이었다. 마르틴이 있으면 좋을 텐데, 콜베리는 생각했다. 마르틴은 이런 일을 나보다 훨씬 잘한단 말이야. 그러다가 마르틴 베크가 이런 상황에서 늘 한없이 침울해 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 누가 떠맡든 이건 힘겨운 일인가 보군. - P62

콜베리는 바나디스 공원으로 걸어 돌아가면서 땀에 흠뻑 젖었다. 가파른 경사 탓도, 비온 뒤 습한 열기 탓도 아니었다. 비만에 가까운 몸매 탓도 아니었다. 그 탓이 없지는 않겠지만, 온전히 그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콜베리는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범행의 역겨움을 생각했다. 아무런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치명상을 입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는 과거에도 이런 것을 모두 겪어보았다. 정확하게 몇 번이나 겪었는지 바로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겪었다. 그렇기에 이 수사가 더없이 끔찍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았다. 더없이 까다로울 수 있다는 것도. - P68

"안 내보내시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모도 있겠죠. 부모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아이도 많고요."
"안타깝게도 그렇지요."
두 사람은 한마디 말 없이 승강기로 내려왔다. 한마디 말 없이 차를 몰아 시내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무력함과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 P127

여자는 일어나서 걸어갔다. 그러나 문간에서 멈추더니 차갑고 냉정한 눈으로 군발드 라르손과 마르틴 베크를 응시했다. 보나마나 두 사람은 여자의 환심을 얻는 데 실패한 것 같았다. 우리는 기본적인 심리 교육을 잘못 받은 게 분명해, 마르틴 베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 P138

평범한 상상력에 평범한 유머 감각을 지닌 평범한 경찰관 뢴은 범죄 수사 역사상 최초로 재채기를 통해 자백을 끌어내는 수사관이 될 가능성에 대해 잠시 고려했지만, 참기로 했다. - P153

그는 군발드 라르손을 좋아하지 않았고 뢴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기 자신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콜베리는 마르틴 베크가 겁을 먹었다고 지적했다. 함마르는 초조해 보였다. 다들 몹시 피곤했다. 뢴은 감기까지 걸렸다. 도보로든 경찰차로든 순찰을 도는 제복 경관들은 다들 초과근무를 하고 있었고, 다들 고단했다. 그중 겁을 먹은 사람도 있을 테고, 감기에 걸린 사람도 뢴 하나만은 아닐 것이었다. - P159

하지만 어쨌든 일제 검거는 예정되어 있었고,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11시쯤 작전이 개시되자 범죄자들의 은신처와 마약 소굴로 소문이 들불처럼 번졌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도둑, 장물아비, 포주, 창녀는 다들 납작 숨었고, 중독자들마저 대부분 그랬다. 불시 단속은 시간이 흘러도 처음의 기세를 잃지 않고 줄곧 강경하게 진행되었다. 경찰은 도둑 하나를 현장에서 검거했고, 자기 보존 본능이 부족했던지 지하로 숨지 않은 장물아비 하나를 잡았다. 경찰은 사회의 찌꺼기 구성원들을 휘저어놓는 데 성공한 것뿐이었다. 노숙자, 알코올의존자, 마약중독자, 모든 희망을 다 잃은 사람들, 자기들의 복지국가가 돌멩이를 일일이 들추듯 뒤지는데도 기어서 도망칠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 - P236

어쩌면 막연한 추적이라고 불러야 옳을지도 모른다. 경찰에게 수사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작업할 단서가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인데, 그들이 확보했던 한줌의 사실들은 진작 수사 조직에 의해 철저하게 뼛속까지 검토된 뒤에 가루처럼 바스러져 사라졌기 때문이다. - P244

끔찍한 월요일이었다. ‘위대한 탐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중은 일요일에는 덜 설쳤다. 주말을 맞아 교외로 나간 시민이 많기도 하거니와 신문과 텔레비전이 계속 안심시키는 기사를 내보내서 그렇기도 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월요일을 맞아 다시금 본격적인 활약에 나섰다. 수사본부는 제보 전화에 파묻혔다. 자신이 뭔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범행을 자백하겠다는 - P283

미치광이, 장난삼아 전화했다가 욕설만 듣고 마는 건달. 공원과 숲에는 사복 경관이 넘쳐났다. 백 명을 두고 넘쳐난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일들에 더해 안데르손 부인을 찾는 업무도 있었다. - P284

크비스트는 뒷짐을 지고 기다렸다. 갓 구운 빵 냄새를 들이마시며, 갈수록 이런 작은 빵집을 보기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동네 빵집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비닐로 포장된 대량생산 빵을 살 수밖에 없고, 온 국민이 똑같은 빵과 롤과 마자랭 케이크를 먹게 될 것이다. 크비스트 경관은 이런 생각을 하며 서 있었다.
고작 스물두 살인데도 크비스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이미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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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7-24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잡지 멜로우가 고양이에 대한 잡지였네요!ㅎㅎ

고양이는 정신과 의사, 강아지지는 외과 의사
고개 끄덕 끄덕 ^^

인간은 이들의 집사
o͡͡͡͡͡͡͡͡͡͡͡͡͡͡╮(^ ਊ ^)╭o͡͡͡͡͡͡͡͡͡͡͡͡͡͡

햇살과함께 2022-07-25 08:08   좋아요 1 | URL
고양이랑 강아지 2가지 버전으로 나오더라고요~ 여름호는 둘 다 제주에 사는 아이들!
 

톨과 결은 본디 하나이나 그것은 두 힘 ‘함’과 ‘됨’이 엮이고 풀리는 마디(응집력)에서 생기므로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인 한 쌍으로 볼 수 있다. 힘으로 뭉뚱그리면 하나이지만, 함과 됨의 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갈라서 보자면 둘이다. 음과 양, 원자와 공간, 유와 무, 전자와 양성자, 형상과 질료, 숨과 몸…… 무엇이라 부르든 아랑곳없이, 이것저것을 갈라서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의식에 비치는 누리의 모습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 P181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 무늬가 다르다. 무늬는 톨에 새겨진 결이다. 사람의 손가락 끝마디에 새겨진 지문이 저마다 다르듯이, 피나 머리칼에 새겨진 유전정보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듯이, 저마다 달리 생겨 먹은 산이들은 그 다름으로 말미암아 살 때와 데가 어느울타리 안에서만 주어진다.
‘함‘의 힘이 ‘됨‘의 힘보다 넘치는 곳에서는 결 고른 삶을 바라기 힘들다. 힘이 들어오면 거기에 맞서야 하고 맞서기 어려우면(힘겨우면) 고른 결이 흐트러진다. ‘힘이 든다‘는 말은 깊이 되새겨 보아야한다. - P182

"원자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할 때 광자라고 부르는 빛의 입자를 방출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광자가 원래 원자 속에 들어 있다가 방출되는 것이냐?"
"아니요, 광자가 원래 있다가 방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광자는 어디에서 온 거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이냐?"
나는 광자의 수는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운동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아버지께 설명드리려고 애썼지만 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것은 제가 지금 내고 있는 소리와 비슷합니다. 소리가 제 몸 속에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는 그런 점에서 나를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남이냐 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만 글, 홍승우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에서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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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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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결심 때문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 도서관에서 2권 빌렸다.

헤어질 결심 때문에 CD도 사고, 각본집도 사고, 마르틴 베크도 읽고.


영화 처음 볼 때는 해준의 책상에 책이 몇 권 있다는 것만 봤고, 두 번 째 볼 때 마르틴 베크 시리즈 7권의 책탑을 발견했다(깨알 숨은 그림 찾기^^).


북유럽 소설 몇 권 읽었는데, 아직 내 취향에 맞는 소설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책도 뭐랄까. 슴슴한 물냉면 같달까. 셜록 홈즈나 푸아로 같은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이 비빔냉면이라면. 나는 아직 비빔냉면파다.


마르틴 베크라는 경찰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마지막에 모두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설명해주마 하는 천재 탐정과는 달리, 직장인이며 생활인인 평범한 경찰이 주인공이다. 마르틴 베크만이 아니라 그의 동료들 모두가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다. 이 책은 특히 사건 장소가 헝가리여서 헝가리 경찰과도 공조한다. 반전도 짜잔! 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순리대로 조용히 나온다. 경찰에게 사건이란 일상일 뿐이라는 듯.


잘 짜여진 소설로서의 매력도 있고, 헤매는 경찰의 수사 과정을 계속 따라가는 지루한 면도 있다. 셜록이나 푸아로는 그들의 사건 해결 방식이 너무나 천재적이어서, 뭔가 중간 생략의 아쉬움도 있지만, 통쾌한 재미가 있다면 말이다. 경찰과 탐정의 차이인가.


크리스티 소설과 다른 결의 매력이 있어, 조금 더 읽어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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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7-22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처음 번역됐을 때 1권 읽고 재미없어서 더 안읽었거든요. 그런데 헤어질 결심 보니까 책상에 이 책 시리즈가 있더라고요? 흐음... 저도 1권 다시 읽어볼까요? 해준.. 왜 이거 읽을까요?

잠자냥 2022-07-22 16:35   좋아요 1 | URL
ㅋ 이 책은 해준보다는 박찬욱 감독 취향인 거 같아요.
근데 저도 1도 관심 없던 책인데 읽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다락방 2022-07-22 17:00   좋아요 1 | URL
저 1권 읽고 재미없어서 포기한건데 누군가가 이 시리즈는 1권이 제일 재미없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흐음... 그러면 2권에 도전해볼까요?

햇살과함께 2022-07-22 18:02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4권 웃는 경관이 대표작인 것 같던데 이걸로 읽어보세요. 저도 3권, 4권 정도 읽어보려고요.
이 책에서 반듯한 경찰 이미지를 떠올렸다고요. 해준 캐릭터 창조의 출발점^^

청아 2022-07-22 1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비빔냉면파예요ㅋㅋㅋㅋ두번째 볼 때 쌓아놓은 책이 보여 궁금했는데 마르틴 베크 시리즈군요? 북유럽 미스터리,추리는 좀 다르더라구요. 호흡도 길고... 요 네스뵈의 소설 영화화한 스노우맨도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햇살과함께 2022-07-22 18:06   좋아요 3 | URL
맞아요 영미추리소설에 익숙해서인지 그전에 읽은 북유럽 소설은 좀 재미가 없더라고요. 반가운 비냉파!

scott 2022-07-2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빔 냉면 스타일이라면
스티그 라르손 표 밀레니엄 시리즈 아닐까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2-07-22 22:52   좋아요 0 | URL
아~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찾아봐야겠어요!
 

열기가 정말로 드센 날이라면, 오히려 태양이 졌을 때가 더 견디기 어렵다. 더위에 익숙한 사람은 누구나 이 공식을 알기 때문에 잘 때 창과 덧문을 닫고 커튼도 친다. 여느 스칸디나비아사람처럼, 마르틴 베크에게는 그런 본능이 부족했다. 그는 커튼과 창을 열어둔 채 어둠 속에 누워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기를 기다렸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곁탁자의 등을 켜고 책을 읽으려 해보았다. 이것도 신통치 않았다. - P180

"경찰은 직업이 아니지요. 사명도 절대로 아닙니다. 저주입니다."
슬루커는 잠시 후 몸을 돌려 계속 말했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결혼하셨습니까?"
"네."
"그러면 잘 알겠군요." - P195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는 아파트로 들어서자마자 사람이 변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그랬는데,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팽팽하게 긴장하고 초조하게 경계하던 태도가 사라졌고, 대신 몸에 익은 듯 차분하고 기계적이며 단호한 태도가 떠올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의 태도, 그리고 같은 일을 과거에도 겪어본 사람의 태도였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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