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원 [책으로 말 걸기]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이화영 [페인트] - 읽은 책
최영희 [너만 모르는 엔딩]
다부사 에이코 [욱하는 나를 멈추고 싶다]
손흥민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 집에 있는 책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 읽은 책 👍
한재훈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소복이 [소년의 마음]
박상기 [옥수수 뺑소니]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우리학교 [슬기로운 미디어생활]
이종철 [까대기] - 읽은 책 👍
정세랑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공선옥 [라면은 멋있다] - 읽은 책

소년원 아이들이 독서동아리는 해서 뭐 하냐고?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할 수준이 되냐고?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15년 이상 아이들과 책을 읽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이 있다. 아이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일이 쉬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 심하게는 사람의 영혼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 마음을 연다. 서로를 향해 무장해제한다. 주변의 일들에 함께 물음표를 꽂아본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장애인이 그런 대우 받는 게 정당한 거야? 여자와 남자에 대한 차별 괜찮은 거야? 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삶과 세상에 대해 점점 더 나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 P66

수업이 끝날 무렵, 자격증 반으로 옮긴 도운이가 교실문을 빼꼼 연다. 나에게 편지를 주고 얼른 간다. 소년원에서는 자신이 수업 듣는 교실 외의 곳을 드나들면 안 되어서, 편지만 주고 후다닥 사라진 것이다. 도운이는 헤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수업으로 옮겼는데 국어수업이 너무 그립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잠깐 인사하러 들르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어주셔서 기분이 좋아요.
선생님은 왠지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다른 반 학생인데도, 간식을 챙겨놓았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늘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P68

도운이가 ‘환대’라는 말을 정확하게 쓴 것을 보고, 팔뚝에 약하게 소름이 끼쳤다. 특정한 말을 공유한다는 것은 말에 붙어서 오는 마음도 함께한다는 뜻이다. 도운이는 환대라는 말을 배웠다. 사람이 사람을 반갑게 맞고 정성껏 대하는 마음을 배웠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영혼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지않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살지 못할 것이다. - P69

"그럼! 너희는 무척 훌륭한 독자야! 서로 책을 읽어주면서 꼼꼼하게 작품을 읽고 많은 질문과 감상을 막 쏟아내잖아. 작가님이 자기 작품에 대한 이렇게 왕성한 반응을 보면, 아마 많이 기뻐할 거야."
"선생님, 그러면 알퐁스 도데 작가님도 모셔올 수 있으세요?"
"어…. 이분은 19세기 후반의 소설가야. 1897년에 돌아가셨다고 책날개에 나오네."
"아,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안 돌아가셨어도 모셔오기 힘들어. 프랑스 사람이야. 만약 모셔온다고 하더라도 돈도 많이 들고, 말도 안 통하고……"
생존해 있는 외국 작가의 작품은 수업시간에 되도록 읽지말아야겠다.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외국 작가님을 모셔오라고 하면 난감하니까.
아이들은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했다. - P80

"너무 고마워. 너희들 짱이다! 전국 소년원에서 독서동아리 최초야, 최초! 이렇게 열심히 써 오다니! 뭘 해도 잘할 놈들이야!"
동아리 일지를 가져온 강준이와 근철이에게 이런 칭찬을 막 날렸다. 수업이 끝나고 소년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독서동아리 일지를 얼른 꺼내 봤다. 궁금했다.

"자동차는 고장나면 고칠 수 있잖아. 나도 내 인생을 고쳐 보고 싶어."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아."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도 있어." - P84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

마음이 저릿하다. 몇 글자 안 되는 분량의 활자에…. 독서는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 읽는 행위다. 이를 사무치게 느낀다. 이 문장들에 한동안 머물렀을 마음. 나야 그 삶의 맥락을 알 도리가 없는 타인이지만, 책의 어떤 손길이 소년의 마음 쓰다듬고 지나갔으리라. - P85

"다음 소설에 우리가 소년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써주실수 있어요?"
"현수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도 이 소설을 읽었나요?"
"동주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이 있나요? 그럴 리가 없어요. 너무 비현실적인 캐릭터예요. 키는 180에, 웃음은 해맑고,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바람에 날리고, 빛이 나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 P89

소년원의 아이들은, 찬현이처럼 가슴에 얼음덩이를 하나씩 안고 있다. 소년원에 있을 때야 위축된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바깥세상에 나가면 얼음덩이 같은 마음은 수시로 고개를 들 것이다. 내가 어디 다녀왔는지 아는 거 아닌가. 내가 어디 다녀왔다고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가. 나를 경계하는건가. 나를 배제하나. 이런 마음들. 성실한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문제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 P100

"이야기 어떠니?"
"어우, 소설에 욕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와요?"
"욕이 많이 나와서 어땠어? 좋았어?"
"아뇨! 좋을 리가 없죠. 싫어요."
푸하하. 나는 정말 이렇게 소리 내서 웃었다. 평소 자신들이 하는 욕의 총량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일 텐데, 이 정도 분량의 욕에 분개하다니…… 웃음이 났다. 그래도 ‘욕설’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마음이라니 얼마나 다행이야. - P108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욱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의 ‘마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적은 인상 깊은 문장은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 한복판에 별안간 서게 된 듯하다. 학교에서 전교생의 독서토론 수업을 이끌고, 몇백 명을 독서동아리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도 미처 몰랐다. 인상 깊은 문장을 쓰는 것이 마음을 들키는 결정적인 방법이라는 것말이다. 마음의 맨살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몇 글자 안 되는 문장에 가슴이 뻐근하다. - P112

요상하기도 하지. 나의 ‘미친 신남’이 멈칫거릴 때, 마음의 온도가 미지근해질 때, 그래서 시무룩해지려는 찰나, 이런 녀석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유성이는 오늘 내 마음이 미지근해질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마음의 애愛 위에 증僧이 스멀스멀 덮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것도 ‘쎈’ 약. 처방전에 쓰여진 말은 이렇다.

"당신 애쓰는 거 우리가 알고 있으니, 좀 더 힘내서 해봐요." - P128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저자는 고정관념(편견)은 사고의 범주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서 ‘소년원-불량 학생-폭력-험상궂은 인상-안 좋은 가정환경’과 같은 생각이 범주화되면서, 우리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년원에서 이 범주를 벗어나는 아이를 만나면 머릿속에 저절로 물음표가 생긴다. 인상이 좋으면 이렇게 인상 좋은 애가 무슨 범죄를? 말투가 착하고 순진해도이렇게 착한 애가 무슨 잘못을? 책을 열심히 읽어도 이렇게 책을 잘 읽는 애가 어떻게 범죄를? 이런 나의 의문은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P137

"개아리 빨면 가만 안 둔다.", 곱지 않은 말에 감동받았다. 살아가면서 이 말에 또 마음 움직일 일 있을까. - P141

일전에 한재훈 선생님의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을 읽으면서 머릿속이 단정해졌다. 일곱 명 이내를 유지하는 우리 공부의 규모, 획일적인 진도 없이 개별화 수업을 하는 특성, 배우고 외워서 개인별로 검사를 받는 공부 순서,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방법, 이런 것들이 어설프게나마 서당과 비슷하다고 여겨진 까닭이다. 학생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그날로 사라졌다. 서당의 훈장은 학생 수가 적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어울린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즐겁고 성실하게 배워서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어울린다. 소년원 서당 학생 수가 가장 적었을 때는 한 명이었다. 한 명이라도 있으니, 앞서 배운 아이가 신입생에게 시를 외우고 책을 읽는 본本을 보여줬다. 먼저 배운 학생이 육성으로 이 수업이 괜찮다는 홍보를 해주었다. 새로 들어온 아이도 자연스럽게 국어수업의 전통(?)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들쭉날쭉한 것도 이런 좋은 점이 있다. - P143

소년이 인형 토토를 들고 "레이저 발사!"라고 한 말을 철민이가 읽었을 때 우리는 웃음보가 터졌다. 요즘 한껏 무게 잡는 철민이가 ‘레이저 발사’라는 어린아이 같은 말을, 목소리 잔뜩 내리깔고 읽으니 안 웃을 수가 없다. 할머니가 죽었을 때 소년은 "할머니를 땅에 심고 왔어."라고 한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어린아이의 표현에 또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은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긴다. 시시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피식 웃으면서 책장을 넘긴다. 나쁜 자식들. 내가 책 선택을 잘못했나. 소년이 바다 한가운데서 "보고 싶은 사람은 할머니예요."라고 했을 때, 철민이가 껄렁거리는 목소리로 이런다.
"설마 할머니가 바다를 헤엄쳐서 오는 건 아니겠지?"
"철민아, 궁금한가 보구나! 책장을 넘겨봐!"
책장을 넘겼다. 할머니가 두툼한 허리에 허리보다 더 두툼한 튜브를 끼고 헤엄쳐서 오고 있었다. - P148

박상기 작가의 짧은 책 『옥수수 뺑소니』를 준비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이고, 글밥도 성기고 그림도 종종 나오는 얇은 책이다. 민우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도 없이 혼자인데,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을 5초 정도 했다. 그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자. 2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중간에 재채기가 한 번 나고 목이 잠길 때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실감나게 읽어주었다. ‘선글라스 개새끼‘와 같은 말은더 실감나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중간쯤 읽다가 물어보았다.
"민우야? 샘이 읽어주니까 좋아? 이야기 재미있어?"
"예, 좋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내가 소설 끝까지 읽어줄까?"
"아니에요. 저도 조금 읽을게요."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 자기도 읽겠단다. 떠듬떠듬 읽기는 했지만 4페이지 정도, 민우가 읽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끝까지 다 읽었다. - P153

고정관념의 뿌리는 깊고 집요하다. 그 뿌리가 내 몸의 신경 어디쯤까지 닿아 있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아이들이 시를 잘 외울 때, 책을 잘 읽을 때, 나에게 정성 들인 편지를 건넬 때, 나의 마음은 많이 흔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흔들림은 감동보다는 충격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지닌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데서 생긴 충격 말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는 나의 편견과 마주쳤고, 그렇게 흔들려온 봄, 여름, 가을이었다. - P179

"시간 남았는데, 철민이 시 열 편 외운 기념으로 시 외우는 거 음성 녹음할까?"
"아니요. 싫어요."
철민이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왜? 너 목소리 멋있잖아. 나중에 집에 가면 녹음 파일 보내줄게."
"싫어요, 샘. 이런 데서 살았다는 흔적, 어디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 P187

일이란 돈과 시간이다.
일이란 노동이다.
일이란 동전의 양면이다.

아이들이 만든 한 줄 명언이다. 십대 후반이라는 싱그러운 나이를 생각하면, 일은 꿈을 이루고 자아를 실현하고 성취감을… 뭐 이런 말들이 나올 법하지 않나. 내 앞의 소년에게 일은 그저 힘든 노동일 뿐이다. 시간을 들여 몸을 쓰면 돈을 받는 것이다. 일은 밥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제법 살아본 자, 더이상 젊지 않은 자의 목소리 같다.
아, 삶의 신산함을 이미 알아버린 소년이여. - P191

"비 오는 날이면, 작은 상자는 품 안에, 큰 상자는 비닐로 싸서 옮기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는 택배 배달하는 이". 아무 이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며 누군가가 기다리는 ‘무엇‘을 전달하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일하는 손이다. 그리고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마디와 마디로 분절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이들이 땀 흘린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고있는지. 일의 위험으로부터 온전한 보호를 받고 있는지. 기계가 아닌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몸도 마음도 파손" 직전의 지경에 처한 것은 아닌지. 혹 "몇 번 쓰고 버릴 거니까. 그냥 쓰라고?!"라는 목소리가 세상에 쩌렁쩌렁한 건 아닌지. 미심쩍다. 수상스럽다. - P197

"샘도 저희 때문에 배우거나 성장한 거 있으세요?"
"그럼. 너희 때문에 깨달은 것도, 반성하고 배운 것도 많지."
"하긴. 제가 몇 개 가르쳐드렸죠."
"뭘 가르쳐줬더라?"
"일단 ‘개아리 빨다’라는 말을 가르쳐드렸죠."
"아하!"
"문신을 하려면 등 중앙에 호랑이 문신을 크게 하시라는 것(수영장에 가면 사람들이 길을 내준다나 뭐라나), 그리고 욕하실 때 목소리를 깔고 크지 않은 소리로 말하면, 상대방이 겁먹을 거라는 거?" - P199

아이들이 먼저 교실에서 나가고, 내가 맨 나중에 나왔다. 나오니 철민이는 벌써 사라졌다. 나만 서운했다. 내가 느낀 서운함이 싫지는 않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내 역할의 최대치와 한계를 이미 여러 번에 걸쳐서 학습한 까닭이다. 대신 마음의 악수를 한다.
철민아, 지난 여름에 너를 만났을 때 네가 처음으로 외운 시가 ‘풀꽃’이었잖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심드렁하게 읽더니 네가 그랬어. 저는 한 번만 봐도 예쁜 사람이라고. 그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는 귀엽고 예뻤어. 세상에 나가서 네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도 너를 그런 존재로 여겼으면 좋겠다. 한 번만 봐도 예쁜 존재. 그래서 또 만나고 싶고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
혼자 걷지 말고, 서로를 어여삐 여기는 사람들과 많이 웃고, 자주 손 잡아주며 살기를 기도할게. 함께 공부한 세 계절,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철민이와 함께여서 많이 웃었다. 문신하게 되면 꼭 등 중앙에 호랑이 그림으로 할게. 욕할 일이 있으면 목소리는 반드시 낮게 깔게. 안녕.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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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회색 인간]
박찬일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탁경은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퇴근후 도서관 예약도서 찾으러 들렀다가 박찬일 작가 책이랑 탁경은 작가 책도 빌려옴. 회색 인간은 이미 읽었고. 박찬일 작가 책은 애들 읽으라고 해야지. 탁경은 작가 책은 애들 취향이 아니라 내가 읽어야겠다.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샤라랑~한 표지. 예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책이 있는 만남, 책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는 만남, 이런 만남의 힘이 무르지 않다는 것을, 단단하다는 것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이 기록의 한계는 한계대로 남겨둔다. 빈 곳은 억지로 메우지 않고 구멍으로 비워둔다. 한계와 빈틈을 비집고 나오는 물음표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나의 미미한 변화를 알아준다면, 사회에 물음표 하나 던져준다면 기쁘겠다. - P14

시를 외우며 소년이 나와 눈을 맞췄을 때 나는 조금 두려웠다. 소년의 눈빛에서 어둠을 읽어내면 어쩌나. 차가움, 무관심, 무기력을 보면 어쩌나. 이런 두려움이었다.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추고 시를 외운 아이는 강준이였다. 눈을 들여다본 순간 놀랐다. 눈이 아직 아이였다. 어른 아닌 소년의 눈빛이었다. 강준이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다른 이의 눈을 보는 것이 어색한 걸까. 아니면 시를 외우다가 틀릴까봐 긴장한 걸까. - P22

"이 구절이 왜 인상 깊어?"
"지금이 저에게 그런 시간이에요. 바닥까지 추락한 시간."
아이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관점에서 책을 읽는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은 이별 이야기에 유난히 목이 멘다. 이별을 다룬 세상의 모든 노래 가사는 내 마음을 알고 쓴 것만 같다. 갇힌 사람에게는 자유의 이야기가 절절하다. 소년원에 갇힌 아이는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라고 여긴 것이다. - P24

그래, 나와 눈을 맞추고 시 스무 편을 외우게 될 늦봄 어느 날, 너와 헤어지면 좋겠다. 그 시들은 네가 살아가게 될 무수한 시간 어디쯤에서 한 번쯤은 살아나겠지. 네 입에서 살아날 시가 너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너의 사랑도 더 깊게 해주고, 삶의 고단함을 매만져주면 좋겠구나.
이별이 빨리 찾아오는 것이 기쁘고 다행스러운 관계도 있다. - P29

평상시에는 수업 시작할 때 간식을 조금 내놓으면 아이들은 별 격식 없이 잘 먹는다. 조금 전에 아침밥을 먹었을 텐데. 아침을 굶었나. 너무 잘 먹어서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의아함에 이해의 약을 서둘러 뿌렸다. 그래, 입이 수시로 궁금할 때지. 더 커야 하니까. 더구나 여기에선 몸도 마음도 아쉽고 허전하니 그렇겠지. - P34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시기가 제각각이다. 되도록 빨리 이별하는 것이 ‘경사로운 일‘인 희한한 관계다. "너와 더 오래 국어공부 하고 싶어."라는 말은 악담이 되어버리는 별난 곳이다. 현식이와 은섭이가 다음 주에 집에 간다. 두 녀석은 오늘사회 복귀 수업에 가야 하는데, 나와의 마지막 수업이라서 일부러 왔단다. 더구나 사회 복귀 수업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하고 왔단다. 피자 대신 택한 국어수업이라니…… - P37

"제가 이전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게 제일 겁나요. 여기 들어오기 전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될까봐……"
이 순간, 나의 안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겨를 없이 무너진다. 무너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벽 아니었을까. 그 벽의 한 귀퉁이가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틈으로 이 녀석의 존재가 현실의 무게로 묵직하게 전해져온다. 이 녀석이 나에게 아무 끈도 닿아 있지 않은 타인이 아니게 되었다는 신호다. - P46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의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방문객> - P46

"나는 쥬제뻬를 믿었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를 읽고 명구의 마음에 남은 문장이다. 명구는 부럽다고 한다.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했다. 최근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마음을 들키는 좋은(?) 방법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단 한 줄의 인상 깊은 문장을 쓰면, 저자의 마음이 아닌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 P48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환대의 준비를 했다. 이 시간의 함께 읽기 경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젠가 아이들이 알게 될까? 환대로 사람을 맞이하는 경험, 자신이 주체로 활동하는 경험은, 나도 타인도 소외시키지 않는 연습이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연습이다. 이런 연습이 쌓이면 삶에서 적어도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막 살지 않을 것 같다. 길 밖으로 떨어지더라도 자신을 돌보며 다시 삶의 길 위에 올라서게 되지 않을까. 두 다리에 힘 주고 걸어가게 되지 않을까. - P50

"사진의 레스토랑 예쁘지? 저기가 쥬제뻬가 운영하는 시칠리아 식당의 정원이야.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 먹으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중에 좋아하는사람과 저기에 가게 되면, 내가 소개해서 왔다고 쥬제뻬에게 꼭 말해. 아마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거야."
의도를 지닌 이야기였다. 그렇게 짐작되었다. 소년의 마음에 ‘하고 싶은 일’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무작정 방치하지 않는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모으든 공부를 하든, 어떤 노력이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길 안의 삶‘을 살게 된다. 박찬일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슬쩍, 작은 일 하나 보여주고 "이거 하고 싶지 않니?"라는 말을 가만히 건넨다. 그 일 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이 소년들에게 맑은 물로 스미고 있었다. - P54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특히 이 구절을 좋아했다.
"이 구절을 왜 좋아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잖아요. 저도 지금 겨울인 것 같은데, 제 인생에도 봄이 오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아요."
아이들에게 지금은, 자기 인생의 겨울이다. 지금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다. 스스로도 긍정할 수 없고, 대부분의 타인도 소년의 존재를 좀처럼 긍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 - P61

을 영영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내내 부정당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소년의 마음이 시에 닿게 된 것일까. 물론 소년의 처지는 윤동주 시인의 삶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면 좀 어떠랴. 사람은 다 제각각 자신만의 사연과 맥락에서 삶의 봄도, 겨울도 만나는 것이 아닌가.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서 백 명의 독자를 만나면 백 가지 의미를 지닌다. 백 개의 작품이 된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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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인 베드. 수전 손택의 최초의 유일한 희곡이란다.

9월에 연극 보기로 해서 미리 책을 보려고 하였으나,,,


알라딘 검색 결과 - 절판

알라딘 우주점, 중고매장 - 없다.

개인판매자가 올린 책이 딱 한 권, 정가 9,500원인데 35,000원에 판매한다.

우리 구 도서관 검색 - 없다.

회사 구 도서관 검색 - 없다.

그래서,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자료종합목록 검색 - 전국 82개 도서관 소장

서울에 몇 군데 있다. 대부분 서울교육청 산하 도서관인 듯.

지하철로 젤 가기 편한 곳으로 가서 드디어 대출~!

(서울교육청 통합도서관 회원 가입은 되어 있었으나(언제인지 가물가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아이디/패스워드 확인과 개인정보 인증 등으로 사서 선생님을 몇 번 귀찮게 한 후에야;;)

















실존 인물 앨리스 제임스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얻은 희곡.
역시 난해하다. 기사를 읽어보니 연극은 더 난해할 듯 하네.
하지만 어떻게 해석하고 연출했을지 궁금.

국립극단, 수전 손택 '앨리스 인 베드' 내달 무대 올려 - 2

[관련 기사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20725136500005?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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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 완벽한 페미니즘이라는 환상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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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흔적과 과정을 숨겨야 마땅한 존재이기에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여자'에 대한 혐오가 표출되기도 한다. "여성들 '길거리 화장' 자제하길"이라는 기사까지 나올 지영이다. 냄새를 비롯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요소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단속하려는 태도는 단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 아니다. 가리고 수줍어하는 것이 '여자다움'에 맞는 행동이므로 화장하는 과정을 공공장소에서 뻔뻔스럽게 노출하는 여성을 거북하게 바라본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여자의 태도에 당혹스러워한다. - P105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여자' 이야기에 뜨끔하다. 나도 아침 출근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불편하고 민망하다. 왜 불편할까? 왜 민망할까? 여자들이 꾸밈에 너무 신경쓰는 게 맘에 들지 않아서? 밖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이 천박해 보여서? 이건 에티켓의 문제라서? 저렇게까지 화장이라는 걸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이건 내가 화장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설령 내가 화장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절대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 화장하는 과정을 노출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지하철에서는 심지어 전화도 잘 받지 못한다. 급한 일이면 지하철에서 잠시 내려 전화를 받고 다시 탄다. 업무 통화이든 개인적인 통화이든 남들이 내 통화를 듣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도, 내가 화장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보다는 화장하는 여자들을 더 잘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지만 이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렵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느끼는 것의 차이가 또 생긴다. 더 많이 봐서 익숙해지면 괜찮을까. 그래, 그럴지도, 10년 전에는 강아지를 아기처럼 유아차에 태우고 다는 것도 뜨악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아주 익숙하고 귀엽게 바라보기까지 한다. 그건 내가 강아지를 무서움, 두려움, 인간 아님의 대상에서 반려, 애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깨어져야 하겠다.


이 책에는 처녀막, 자궁, 월경, 성폭행, 강간, 낙태 등 도발적인 이야기들이 마구 나온다. 다 공감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 당장 도발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도발하는 이야기들을 계속 읽고 도발하는 마음을 키워야지. 그럼 현실에서도 언제가 도발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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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그녀의 비극적인 건강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가 안고 살았던 삶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비극적인 건강이 평등, 상호성 등에 대한 한탄을 가라앉히는 한 말이지." - P49

에리스 탈진……..
"길고 길었던 노력과 긴장은 모든 소망을 날려 버렸다. 오직 안식을 향한 소망만 남겨 놓고! 창조의 시기는 다 지나고, 이제 한계상황에 굴복하고 거기에 자기를 꿰맞추는 시기가 왔도다." - P55

해리 지금 날 위로하는 거니?

앨리스 난 여자거든. 남자들을 위로하고, 남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여자의 임무지. 심지어 침대에서, 병상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출산의 자리에서도 일어나서, 남자가 까치발로 왔건, 방문차 왔건, 위로차 왔건 간에 말이지. 안그래? - P59

에밀리 마가렛. 일어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
마가렛 우리가 너무 이른가?
에밀리 다정한 마음씨는 언제라도 늦거나 빠른 법이 없지

마가렛 난 너무 일찍 온 거 같아.
넌 제시간에 왔는데 말이야.
에밀리 기다림이란 긴 인사야. - P65

앨리스 미안해. 그렇게 서슴지 않고 너한테 상기시키려고 한 건 아니었어. 난 죽음에 대해서 참 열심히 생각하곤 해. 그러다 보니 죽음이란 게 너무 익숙한 생각이 되고 위로가 되어 버렸지. 덕분에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게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잊어버리곤 해. (잠깐 쉬었다가) 난 너무 가볍게 살고 있어. 누군가 날 좀 자제시켜야 해. - P70

마가렛 사람이 살아가는 데 천재성 같은 건 필요 없는 거같아.
앨리스 (여전히 흥분하여) 나는 나 자신을 속이고 있어.
마가렛 (무미건조하게) 두 사람으로 사는 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무섭지만, 바로 이럴 때 진실이 사라질 수 있는 거야. - P74

마가렛 내 생각은 이런 거야. 넌 원해야 해. 네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요구해야 해.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깨끗해지는 거야. 그런 삶을 지향하면서 사는 거지.
앨리스 인생은 용기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
마가렛 아니야, 그래.
에밀리 (앨리스에게) 난 네가 상당히 용감하다고 생각해.
미르타 너, 어떻게 그 속에서 참을 수 있니? 한 방에서. - P90

튼튼한 대나무 말 같은 두 다리로 자유롭게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거야. 강물은 아주 부드럽게 흘러. 다리 위에 서서 석양 속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낮게 나는 검은 새를 바라보니, 천사는 천사의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네. 나는어떤 날씨에나 잘 어울리는 차림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겨. 사람이란 자주 시험대에 서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 자신이 작아졌다고 느끼지는 않아. 왜냐하면 정신은 자기 나름으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데 어느 누가 어떤 게 옳은 크기라고 말할 수 있겠어? 또 몇 살 정도가 옳은 나다, 하는 사람은 또 누구겠냐고. 내 나이가 몇이더라? 내가 몇 살인지 말하고 싶지 않아. 로마는 아주 나이를 많은 먹은 걸로 유명하지. 난 어떤 것이 얼마나 큰지 혹은 얼마나 작은지 말하지 않을 테야. 내 정신은 어떤 크기도 가지고 있지 않아. 하나의 크기는 모든 것에 다맞다고. - P111

앨리스 세상에는 끔찍하고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요. 그리고 난 끈질긴 자아 속에 갇혀 있죠. 나로 하여금 고통 받게 하고 날 둘러싸고, 날 왜소하게 느끼게 만드는 이 자신 속에.
젊은 남자 내가 사는 곳에서라면 당신은 아마 하루도 못견딜 거예요.

앨리스 내가 제일 많이 하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거예요. 난 이번에도 그렇게 할 거예요. 당신은 여기에 없었어. (웃는다.) 그리고 이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당신은 나같이 단순한 희생자를 다시는 못 볼 거예요. 나처럼 사후의 삶에 그렇게 욕심이 많고, 그렇게참을성 많고, 또 그렇게 호기심 많은 사람 말이에요. - P132

앨리스 난 전에는 진짜 존재, 어쩌면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그럴려고 했다고요. 난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간호사 내가 잡아 줄게요.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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