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킴 닐슨 <장애의 역사>
고든 올포트 <편견>
피우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 저희 이야기, 그러니까 전 안 괜찮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다들 몰라요. 모르는 게 맞아요.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다 포장해놨으니까. 취직할 때도 괜찮은 척할 수밖에 없어. 괜찮은 척 되게 잘하게 되는 거야. 제가 천안함 생존자라고 하면 이젠 괜찮냐고 이야기해요. 괜찮다고 대답해요. 그럼 대단하다고, 실은 괜찮은 척하는 거야. 다들 똑같을 거야. 다들. (생존장병 C) - P8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다가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았습니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 후, 밤늦은 시간 이렇게 4월 16일을 보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다가 갑자기 어떤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4월 세월호 생존학생과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형제자매가 증언을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때 참사로 오빠를 잃은 한 여학생이 소극장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저희 오빠가 죽은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 P13

저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저는 천안함 사건이라는 렌즈로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의 취약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쉽게 답할 수 없지만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해줍니다. 저는 우리가 그 예민한 질문들을 직시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P16

당시 언론보도에서 생존장병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습니다. 관련 기사가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병원과 군대에 격리되어 있던 생존장병을 기자들이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병원을 찾아가 생존장병을 취재하려고 했던 기자들도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서 생존장병을 생각했을 뿐 사건 이후 그들이 생존자이자 피해자로서 겪어야 하는 트라우마와 상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 P24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천안함 생존장병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수와 함미가 갈라져 가라앉은 배와 ‘천안함 46 용사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 침몰하는 배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그 이후의 시간을 계속 살아가야 했던 생존자의 고통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생존장병에게 2010년 3월 26일은 폭침으로 자신들에게 생활관이자 근무지였던 천안함이 무너지고, 함께 생활하고 근무했던 전우들을 잃은 날이었습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이었지요. 생존장병은 사건 이후 군대에서는 조직 차원의 작전 · 정보 실패를 현장 장병들의 경계 실패로 돌리며 만들어진 패잔병 낙인으로 고통받았고, 전역 후에는 자신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음모론과 악성 댓글에 노출되어 살아가야 했습니다. - P25

PTSD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정신과 질환입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같이 생명이 위협받는 극심한 외상을 경험한 이후 생겨날 수 있는 불안장애 중 하나이지요. PTSD 환자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트라우마 사건이 생각나서 계속 정신적으로 재경험하게 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회상의 경험을 피하려 트라우마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회피하게 되고, 그런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자율신경계가 과도하게 각성되어 잠을 자지 못하고 쉽게 놀라는 것과 같은 불안 상태가 계속되지요. - P37

PTSD의 역사를 논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생존자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경험하는 폭력들은 ‘사생활‘이라는 이름하에 묻혀 그 경험이 공적인 세상에 드러날 수 없었습니다. 강간, 가정폭력,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말하기 위해서는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사회가 부여한 낙인과 싸워야 했으니까요. 이러한 싸움은 1970년대부터 활발히 진행된 여성해방운동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던 여성주의 의학자들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성폭력 생존자의 상태를 ‘강간 외상 중후군‘이라고 정의하고 관찰했고, 그 심리적 증상이 참전 군인에게 나타나는 PTSD 증상과 같다는 점을 밝혀냅니다. - P41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주디스 허먼은 역작 『트라우마]에서 말합니다. "강간과 구타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성폭력과 가정 폭력은 여성의 삶에서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의 범주 바깥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요. PTSD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모든 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던 것입니다. - P42

연구를 하면서 처음에 당황스러웠던 지점 중 하나는 장병들 중에서 천안함 청소를 하겠다고 자원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동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긴 그 배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는 천안함이라는 배가 생존장병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 P47

천안함 직후 최원일 함장은 한 장군으로부터 "너희 때문에 우리 부서가 매일 야근한다. (제2연평해전 때) 참수리 357함은 (생존장병에게) 배 청소도 시켰다. 너희는 다행인 줄 알아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제2연평해전의 한 생존장병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배를 청소했던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침몰된 지 53일 만에 참수리 357호정에 다른 생존장병 10명과 함께 투입되어 배 구석구석을 물로 씻어내는 작업을 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썩은 흙 때문에 피부병이 생길 정도였지만 희생 동료의 유품과 마주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 P49

폭침을 경험한 생존장병 중 40.9%(9명/22명)는 함수와 함미가 폭파로 나뉜 상태에서 인양된 천안함으로 다시 들어가 유품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 폭침 시신을 감별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생존장병 역시 27.3%(6명/22명)에 달했습니다. 생존장병들이 사망한 장병들과 함께 천안함에서 생활했던 만큼, 배의 구조도 잘 알고 유품에 대해서도 잘 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사건 직후의 이런 명령이 생존장병을 처벌하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진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군 지휘부 입장에서는 이게 유품을 찾기 위한 가장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단순하게 사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P50

또한 PTSD 치료에서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한 직후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당사자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삶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경험이기에, 그 회복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 P51

이 조사가 생존장병에게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조사에 임해야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천안함 사건 즉시 최원일 함장은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고 보고를 올렸지만 해군작전사령부를 거치며 이 내용은 삭제되었고 청와대에는 ‘선체 파공으로 침몰‘로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당시 조사단은 생존장병들을 의심하고 있었고 피의자처럼 다루기도 했습니다. - P56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 생존자마다 다른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뒤 그 치료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안정입니다. 폭력과 죽음을 직접 맞닥뜨리고 생명이 위협받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에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고 또 느끼게해주는 것이지요. 삶의 통제권을 빼앗겼던 경험을 한 생존자에게 더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안정의 단계는 치유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 이후에야 비 - P60

로소 다음 단계인 트라우마의 기억을 다시 탐색하고, 최종적으로 그기억을 현재 삶 속으로 통합시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 P61

많은 장병에게 군대는 자기 고통을 편히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모두가 고생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데, 자신만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특히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어려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수전 손택은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생존장병 중 71.4%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군의관이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말했으며, 76.2%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동료가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병들 중 68.2%는 ‘정신과에 가면 관심병사로 찍힐 것 같아서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 P63

자신이 세운 계획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단원고에 처음 들어갈 때 이 정도 팀이면 6개월에 20명은 완치될 것이라 생각했다. 순전히 일방적인 내 계획이었고 오판이었다. 많은 사람이 아직 치료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사회 상황이 당사자들을 힘들게 했다. 의사가 원한다고 환자가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같은 관점에서 피해자 기록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존학생 가운데 몇 명이 우울증인지, 몇명이 PTSD인지 알려달라는 언론과 정부기관의 요구를 많이 받았다. 다른 기관에서 아이들 기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 P77

천안함 사건 이후 두 생존장병이 배 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한 상사가 지나가듯 말했습니다. "너네는 둘이 붙어서 이야기하지 마. 배 또 가라앉는다"라고요. 표5에서 보듯, 생존장병 중 59.1%가 ‘생존자라는 이유로 함께 있기 께름칙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패잔병이라는 낙인으로 생존장병의 몸을 함께 전장에서 싸우기에 불안하고 위험한 ‘재수없는‘ 몸으로 만들었습니다. - P90

앞의 표에서 보듯 연구에 참여한 생존장병 모두가 ‘폭침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으며, 그중 95.5%가 군에서 ‘패잔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가 사망한 46명의 장병들은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영웅적으로 산화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 시간 같은 배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다가 살아남은 58명의 장병은 낙인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 P93

첫번째 질문은 "당시 천안함의 장비로 적(敵) 잠수정과 어뢰 탐지가 가능했는가?" 입니다. 천안함은 해상 경비를 주목적으로 하는 배수량이 1,200톤인 초계함이었습니다. 초계함은 배수량을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 고속정을 제외하고는 수상 전투함 중 가장 작은 크기의 함정입니다. 천안함은 적군의 잠수함을 탐지하고 대응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두 달 뒤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사회자가 "전문가들은 잠수정은 몰라도 어뢰는 탐지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천안함이 경계에 실패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지요. 이에 방송에 출연한 국방부 대 - P94

변인은 80년대에 만들어진 천안함이 보유한 소나는 직주어뢰를 탐지하기에 적합한지라 그 주파수가 9~13kHz에 청음을 하게 되어있고, 지금 현재 북한이 쓰는 "유도어뢰는 어뢰 주파수가 3~8kHz"여서 어뢰를 인지할 수 없었다고 답합니다. 즉 천안함 장병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경계를 섰더라도 장비의 한계로 어뢰 탐지는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 P95

그렇다면 이제 다시 논의해보지요. 서해는 두 차례의 연평해전(1999, 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을 비롯한 군사적 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났던 지역입니다. 천안함이 가진 장비로는 잠수정과 어뢰를 포착하는 게 불가능했고 장병들이 아무리 철저히 경계를 선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이 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사건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군 지휘부는 사건 전에는 기무사령관의 ‘수중 침투‘ 사전 징후 보고를 무시했고, 사건 후에는 현장 함장이 직접 지시해 보고한 ‘어뢰 공격‘ 내용을 누락시켰습니다. 최원함장이 천안함 이후 군의 대응을 두고 "정보와 작전의 실패를 천안함의 경계 실패로 몰아갔다고 말하며 "우리 승조원들은 패잔병이 아니라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과정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 P97

사회적 고립을 겪을 때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와 동일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이 연구 결과는 어느 조직보다 집단적 성격이 강한 군대에서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비난받으며 심리적 적대감을 경험한 시간들이 생존장병의 몸에 남긴 상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P103

무엇보다 생존장병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천안함 사건을 함께 경험한 다른 생존장병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그들을 다독이며 오늘날까지 버텨온 사람은 최원일 함장이었습니다. 인터 - P109

뷰에 응한 생존장병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함장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달라. 그분은 부하를 잃고 자기만 살아서 나온 사람이 아니다. 57명을 살려서 데리고 나온 지휘관이다"라고요.
자신이 죽지 않는 이유를 말하며 한 장병은 이야기합니다. "전우 유가족분들을 만났기에 자식을 잃은 부모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 그리고 함장님을 생각하면 죽을 수가 없었다. 그 양반은 위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모욕을 다 감당하면서도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냐"라고요.
2021년 5월 저는 당시 국방부 앞에서 시위중인 최원일 함장을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한 군인이어도 누가 욕하고 때리면 아픈 인간일 텐데, 도대체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틴 거냐"라고요. 생존장병들이 발령지에서 상사로부터 "함장이 죽었어야 니들이 보상금을 받는데, 걔가 살아 있어서 니들이 못 받는 거다" 같은 말을 듣는 그 모욕적인 상황을 어떻게 견뎠는지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최원일 함장이 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배와 함께 죽지 않아 다행이다. 앞뒤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내가 죽었다면 아마 사고 처리를 해버렸을 것 같다. 그럼 우리 생존장병들은 얼마나 억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겠나. 살아남았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P110

무엇보다 피우진은 여군을 장식물처럼 취급하는 폭력적인 군 문화에 가장 치열하게 맞서 싸운 사람입니다. 피우진이 군대 내 성희롱과 성차별에 맞서 싸운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이야기는 1988년의 사건입니다. 당시 대위였던 피우진은 여군 부사관을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사령관의 술자리에 내보내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피우진은 그 사령관이 여군 부사관을 술자리에 불러내는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여군이 아프다는 이유를 댄 뒤 외출 승인을 내주지 않았고, 그러자 사령관 참모가 전화로 욕을 하며 "빨리 보내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피우진은 그 여군에게 전투복을 입힌 채 나가도록 합니다. 그 여군은 곧바로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피우진은 이 일로 꼬투리가 잡혀 보직에서 해임됩니다. - P115

변희수 하사의 등장은 제 시야의 협소함을 확인하는 동시에 연구자가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 P123

변희수하는 자신의 문제를 소속부대의 상사인 군단장, 여단장과 상의합니다. 그 일로 국군수도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되고 치료목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권유받습니다. 변희수 하사는 소속 부대와 상의 후 수술을 위한 국외 휴가 승인을 얻어 태국으로 갔고 그곳에 도착한 이후에도 소속부대 지휘관과 긴밀하게 소통합니다. - P124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브라질을 포함한 20여 개국 이상에서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변희수 하사같이 복무중인 군인이 성전환을 원할 경우 군대에서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1년 현재 캐나다에서는 복무중인 군인이 성전환을 원한다면 수술과 호르몬 치료 비용 일체를 군대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는 수술과 호르몬 치료 비용뿐만 아니라 성형 수술 비용까지 지원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존엄한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삶에서 성전환이 얼마나 필수적이고 절실한지를 이해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 P127

피우진과 변희수는 모두 군인으로서 삶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자긍심을 가진 이들이었고 군대를 마음 깊이 사랑한 이들이었습니다. 유방암 수술을 받아 유방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성전환 수술을 받으며 고환과 음경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실제 업무 수행 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군인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둘은 모두 군대에서 규정한 성별이분법에 뿌리박은 남성 중심적인 ‘능력 있는 몸‘에서 일탈한 존재로 취급받았고, 심신 장애로 강제 전역을 통보받았습니다. - P128

피우진의 소송으로 2007년 군인사법의 시행규칙이 개정됩니다. 그 이전에는 직업군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장애 1~7급을 받으면 무조건 전역해야 했지만 당사자가 계속 근무를 원할 경우에는 전역심사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근무가 가능한 상태인지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판단하도록 한 것이지요. 당시 한 신문은 피우진의 고통스러운 싸움으로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2020년 전역심사회원회는 심사를 통해 변희수 하사의 성전환 수술을 ‘고의적인 신체 훼손‘으로 규정하며 강제 전역을 결정했으니까요. - P129

물론 세월호와 천안함은 사건 원인도 사회적 대응도 달랐던 별개의 사건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둘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양극단에 놓여 있습니다. 2010년의 천안함 사건을 두고서는 보수 진영이 목소리를 높였고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두고서는 진보 진영이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함께했지요. 지금까지도 전자는 보수, 후자는 진보의 사안으로 여겨지며 한국 사회에서 이 두 사건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 정치인을 구분하는 리트머스지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 P137

이러한 상황에서 실태조사에 응했던 한 생존장병의 말을 빌리면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습니다. 보수 언론은 매년 3월이면 생존장병을 찾았지만 그 목적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천안함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부각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3월이 지난 이후에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 P140

경남도민일보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8일이 지난 4월 24일 ‘한국 언론의 밑바닥을 보여준 세월호 보도‘라는 제목의 표를 게시했습니다. 그중 4월 16일 참사 당일만 살펴보도록 하지요. 그날 문제가 된 기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는 ‘승객 전원 구조‘라는 오보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날 TV조선과 MBC는 각기 사망보험금과 인명 피해 배상금을 계산해 보여주었고, SBS는 세월호에서 홀로 살아남은 6세 아이를 인터뷰했으며, JTBC는 생존학생에게 ‘친구 사망을 알고 있냐‘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잔혹한 보도뿐 아니라 수많은 오보와 루머를 생산해냈습니다. 그 속에서 피해 유가족은 물론이고 생존자들은 더욱 고립되고 세상에 신뢰를 잃어갔습니다. - P142

생존자와 사망자에 대한 차등적 인식 및 지원은 세월호보다 천안함 사건에서 더 심각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과 그 가족은 사망자 유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러운 사람‘ 혹은 피해자로서 인정을 받기에는 자격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지만 천안함 사건의 사망자와 생존자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 P149

이러한 상대 진영에 대한 모욕과 혐오는 그 감정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하는 확증편향과 함께 진행됩니다. 확증편향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결론이 있을 때 그 결론을 지지하는 정보를 선별적으로구하고 그런 정보를 더 타당하다고 평가하고 해석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의견 차이를 한층 심화시키며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 P158

하지만 저는 피해자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열한 비난을 하는 사람 자체는 소수였을지 몰라도, 우리 편의 고통만을 선택적으로 공감하고 우리 편에 유리한 근거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하는 성향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사람들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두가지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 첫째는 여러 입장의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이해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그 정보들을 접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직관이나 감각에 의존하지 말고 그 정보의 가치와 타당성을 충분한 사고과정을 거쳐 판단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과연 이 두 원칙을 지키면 우리는 진영 논리를 넘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 P168

데이터 분석 결과 놀랍게도 인지숙고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일수록 이데올로기적 양극화에 기여하는 확증편향이 가장 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상대 진영의 사람들을 보며 종종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 연구 결과는 뛰어난 인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오히려 확증편향에 더 능하고 정치적 양극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인지 능력이 자신의 진영이 지지하는 결론이 실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활용하여 자신의 진영이 다툼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P171

저는 자신이 이러한 성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는 이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입장은 더 타당한 근거가 등장하면 바뀔 수 있는 임시적인 가설이 아니라 어떤 역경에도 바뀌어서는 안 되는 단단한 신념이 됩니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배웠던 교훈 중 하나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단지 사건만이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속에 있다"라는 격언이었습니다. - P172

비참함이 피해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폭력을 대할 때 가해자의 행동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해자의 말과 행동이 동정하기 적당한 모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곤 했지요. 세월호 유가족시 ‘불쌍한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진상 규명을 외치자 비난받기 시작했습니다. - P187

천안함은 산업재해 사건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군인들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고 다친 일이니까요. 행정적으로 공무원인 군인의 산업재해는 공무상 순직이나 공무상 재해라는 별개의 용어로 부르지만, 일하다 발생한 사건 - P194

으로 노동자가 고통받게 되었다는 본질은 같습니다. 천안함을 산업재해 사건이라고 부르게 되면 우리는 그 피해를 입은 당사자 군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 P195

공공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일에 종사하다 다치게 되었을 때 조직이 나의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을 관심사병 취급하며 패잔병이라고 부르던 군대의 모습은일하다 다친 소방공무원을 두고서 ‘조금 더 조심하지, 왜 일하다 다치고 그러느냐‘라고 개인을 탓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친 소방공무원들이 공상 신청하는 법을 몰라 신청 자체를 포기하거나 혹은 조직에 공상 신청 담당 직원이 부재해 개인이 인터넷을 검색하며 서류를 준비하던 것 역시 천안함 생존장병이 국가유공자 신청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유사합니다. - P228

"얼핏 보기에 무재해 운동은 노동자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는바람직한 사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2018년 이 무재해 운동을 39년 만에 폐기하기로 결정합니다. 무재해운동이 재해 발생 자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해 발생 보고를 줄이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 산업재해 규모는압도적으로 축소 보고되고 제대로 된 통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정책은 실행되기 어려웠습니다. - P230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생존장병의 국가유공자 인정과 관련해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8년 7월 저희 연구팀의 실태조사가 발표된 이후 2021년 7월까지 7명의 생존장병이 추가로 PTSD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직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생존장병들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지만 이 중요한 변화에 저희 연구도 작게나마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는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또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로써 향후 군인들이 PTSD를 비롯한 정신 질환으로 국가유공자를 받는 길이 조금 더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P233

의과대학 졸업반이던 때였습니다. 밤늦은 시간 산업재해를 당한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분과 술잔을 기울이며, 제가 내년부터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 더이상 이런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저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지지 말아라. 그런 마음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빨리 지치고 떠나는 걸 계속 봤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 갑자기 누가 큰 돈을 이유 없이 주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냐 아니다. 그렇게 생겨난 돈은 오히려 삶을 망친다. 그나마 애쓰면서 살아오던 삶이 무너지는 거다. 미안해하지 말고 너는 너의 일을 하면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데, 그 말은 경제적 지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한 인간이 타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었지요. - P254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 P259

천안함 생존장병의 트라우마에 대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제게 다가왔지만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과 베트남 군인들이 영웅신화에 갇혀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했던 시간 동안 그 옆에서 실은 그보다 오래 침묵을 강요당했던 사람들, 한국 군인이 가해자였던 강간 생존자인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아직까지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군의 베트남 여성 성폭행은 한국의 군사법정 기록에도 남아 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 P261

한국에는 아직까지 군 내부의 성희롱, 성폭행과 관련해 제대로 된 통계 자료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면 생존자는 고립과 비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전우애를 망쳤다"라는 식으로 생존자를 비난하고 지휘 책임을 피하려 합의를 종용하지요. 특히 상사에 의한 성폭력을 신고하면 군사 경찰은 봐주기 수사를 하고 군대 조직은 가해자 처벌보다는 성폭력 생존자 비난에 열중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군대가 방치되는 동안, 2021년 5월과 8월 한국 사회는 성추행 피해 생존자인 2명의 여성 부사관을 잃었습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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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사는 법을 익힐 만큼 충분히 아프지는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는지 묻는 대신, 또 사회나 조직의 요구보다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고 있는지 묻는 대신, 이력서에서 무엇이 중요하냐에 따라 선택을 가늠한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환과 고통에 두려움을 느낀다. 다시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려울 뿐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까 봐 두렵다. 고통도 무섭지만 속도를 늦추는 것도 무섭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느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광기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속도가 늦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며, 이들은 조직이라는 생산 기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겁낸다. - P188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멀고 먼 별자리에선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하늘 한구석의 죽음이겠지"라고 폴 사이먼은 노래했다. 멀고 먼 별에서, 우리는 한 번 깜빡이고는 사라지는 빛처럼 보일 것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적敵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 P190

아픈 사람들의 책임이 낫는 일이 아니라면 그들의 진정한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경험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배우고자 해야 한다.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 이는 사회 안에서 양측 모두의 책임이다. - P195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이 무엇인지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다. 이는 결국 삶이 무엇인지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는 이중의 책임이 따른다. 살아 있는 이들은 인간이 공유하는 취약함에 책임이 있는 한편 인간이 창조하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인간이 취약하기에 창조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듣는 쌍방의 책임을 이해할 수 있다.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역설적이지만, 질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에게도 질병은 똑같이 고통스러워야 한다. - P202

사람들에게 내 존재는 두 가지 의미를 띠게 됐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암이 언제나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뜻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암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생존을 먼저 보고 위험은 작게 보며 또 어떤 이들은 위험만 본다. 나 자신도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생존이 더 크게 보이고 어떤 날은 위험이 더 크게 보인다. - P211

나는 다시 달린다. 전만큼 멀리, 전만큼 빨리 달리지는 않지만 더 큰 기쁨을 느끼며 달린다. 오래 달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흘러오듯 내게 온다. 어떤 날엔 내 죽음에 생각이 가닿기도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잘 살았다고 느끼기 위해선 어떻게 죽어야 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바뀌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편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P213

절반의 선택을 하는 절반의 희생자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회복사회remission society‘에 속한 동료 시민들이다. 내 질병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내가 회복사회, 즉 ‘계속 회복 중인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 P219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질병은 일상적인 것을 소중히 하며 사는 기회도 준다. 여기서 나는 다시 ‘덤으로 얻은 삶’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삶을 덤으로 받았다고 여길 때 우리는 건강이나 질병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질병에 대한 공포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건강만을 원하는 욕망 또한 넘어설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질병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질병이 가져오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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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앓던 사촌은 내게 편지를 보내 의사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의사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정도보다 내 사촌이 더 많이 질문하자, 의사는 그녀가 치료를 "통제하려 한다"고 비난했으며 "통제를 맡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드물지 않으며 남성 환자보다는 여성 환자에게 더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해야 할 질문은 누가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통제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다. 질병을 겪으며 배운 교훈 하나는, 통제의 주체가 나 자신이든 의사들이든 통제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릴 때 더 편하고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몸을 통제하고자 하기보다는 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인식하길, 나는 의료인과 아픈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 P96

우울함이 그 상황에서 아픈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의료진이든 가족이나 친구든 그런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울증에 걸리라고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순간들엔 꽤 깊은 우울증도 질병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 P105

병이 나면 아픈 사람은 의료진과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의존하는 모든 사람이 명랑한 태도를 높이 평가할 때 아픈 사람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명랑해 보이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자신은 부정하고 싶지 않거나 부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아픈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부정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고 느낀다. 아픈 사람 자신은 부정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부정할 때 거기에 맞춰주게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부정할 때 자신도 함께 부정하는 것이 아픈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거래처럼 보일 수 있다.
- P109

의료진이 정말로 도움을 주고자 했다면 우리가 편하게 응답할 수 있는 환경에서 물었을 것이다. 입원 환자 병실 안에 간호사들과 우리만 있었을 때 간호사들은 병력을 적는 서류에있는 질문만 했지 ‘심리사회적‘ 질문은 하나도 던지지 않았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병실 공간 안에서 아내와 내가 감정을 표현한다면 이때는 간호사들이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 P113

돌봄 제공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 특히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삼길 원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도움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아픈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돌아보면, 아팠을 때처럼 방어적이던 때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도 없었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그렇게 방어막을 두르고 있던 적도 없었다.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간절히 필요했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다치기 쉽고 가장 취약한 때이기도 했다. - P113

여기서도 다시, 내가 정답을 주지는 못한다. 줄 수 있는 것은 질문뿐이다. 아픈 사람은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 ‘거래‘를 하기 위해 얼마나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명랑한 겉모습을 보여주려다가 자기 질병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운가? 아픈 사람의 주변인이라면 이런 질문들을 해보라. 아픈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길 바라면서 신호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아픈 사람의 행동이 당신의 행동에 반응해서 나온 것은 아닌가? 실제로는 누가 부정하고 있으며 누가 부정을 필요로 하는가? - P114

두려움과 우울은 삶의 일부다. 아플 때 겪는 ‘부정적인 감정‘이 따로 있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경험들이 있을 뿐이다. 힘든 순간에 필요한 것은 부정이 아니라 인정이다. 아픈 사람의 고통은 치료될 수 있든 없든 인정되어야 한다. 가장 아팠던 시기에 내가 원한 반응은 "네, 우리는 당신의 고통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의 두려움을 받아들입니다"였다. - P114

커튼을 젖히고는 "맞아요, 그리고 바로 나처럼 보이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고픈 비틀린 마음이 들었다. 그 환자가 모든 세부 사항을 미리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뭔가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설명을 들을 권리는 있었다. 또 더 중요하게는, 앞으로 겪을 일이 사소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받을 권리가 있었다. - P117

질병을 겪으며 아픈 사람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삶이 너무도 급격하게 뒤바뀔 때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다. 그리고 화학요법 치료는 이 어려운 문제를 더 크고 뚜렷하게 만든다. 세 차례의 치료를 받으면서 내 삶은 파괴와 회복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괴상한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 되었다. 새로운 부작용에는 또 다른 약물이 필요했고, 어려운 일 하나가 지나가면 신경 써야 하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문제들 뒤에는 유일한 진짜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 P126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벌인 이야기는 내가 살아가는 데 함께하는 이야기가 되었고, 질병에 관한 나만의 신화 같은 것이 되었다. 야곱의 이야기는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아프다는 것은 길고 긴 밤 내내 다친 채로 씨름하는 것이며, 해가 뜰 때까지 지지 않는다면 축복을 받는 것이다. 야곱의 이야기를 거쳐서 질병은 모험이 됐다. - P130

암이 아닌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아픈 것이지만, 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암과 싸운다‘. 심장 문제가 있을 때는 아무도 내가 내심장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암을 두고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말은 "싸워야 합니다"였다. 부고란을 읽어보라. 암으로 죽는 사람들은 ‘용맹하게 전투를 벌인 후에’ 또는 ‘오랫동안 싸운 끝에 죽는다. 정부가 주도하는 암 연구 프로그램들은 암에 맞서는 ‘전쟁‘이다. 빈곤, 범죄, 약물중독을 ‘암’이라고 언급하는 신문기사들은 암을 무시무시한 타자로 여기는 사회의 태도를 반영한다. 이 타자를물리치기 위한 적절한 대응은 오직 전투뿐이다. 하지만 나는 질병을 전투를 치르듯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133

누군가의 표현처럼 ‘질병은 빌어먹을 일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연속되는 일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그렇기에 전시에 사는 것 같다는 말은 그 나름대로 적절했다. - P134

우리는 암이나 종양과 싸울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몸의 의지를 믿고 의학에서 최대한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이 전부다. 우리는 수년 동안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몸의 의지를형성하지만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나는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차 있다고 여전히 믿지만, 분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병이 났다고 죄책감을 느낄 만큼, 아니면건강하다고 자랑스러워할 만큼 나는 전능하지 않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오직,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 계속 모색하는 것뿐이다. - P141

눈에 잘 띄며 사람들이 가장 흔히 연상하는 암의 징후는 머리칼이 빠지는 것이다. 탈모증, 말하자면 대머리는 암 자체때문이 아니라 화학요법 치료 때문에 생긴다. 모낭, 장 내벽, 잇몸을 이루는 세포는 암세포와 마찬가지로 급속하게 분화하는데, 화학요법은 세포를 정밀하게 구분해서 죽이지 않고 이런 부위의 세포도 함께 파괴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난다.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화학요법 치료가 잘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라는 속설이 완전히 허튼소리는 아닌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칼이 빠질 때 환호할 수는 없었다. - P147

가장 튼튼했던 관계조차 힘들어졌다. 아픈 사람은 질병을 겪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바로 이렇게 경험한다. 미묘하게 부정당하고 어렵게 인정받는다. - P158

나아가 고통도 부정된다. 치료 제공자들은 표현해도 괜찮은 감정이 어떤 것인지 환자에게 암시를 주고, 환자들은 의료진에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암시를 받아들이곤 한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환자의 고통을 ‘훨씬 더 상태가 좋지 않은‘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비교할 때, 환자는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라는 신호를 받는다. 각 개인의 경험이 갖는 고유성은 부정된다. 상실, 몸 손상, 통증이 비교되면서 각 개인의 고통을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나타난다. ‘최악의 경우‘인 환자의 고통과 비교될 때 한 사람의 경험은 가치가 떨어진다. 이런 논리를 따라가면, 처음에는 병원 안에서 최악의 상황에 있는 사람과 비교되다가 나중에는 전 세계에서 최악의 상황에 있는사람과 비교될 수도 있을 것이고, 최악의 상황에 있는 이 한사람에게만 불편이라든지 불행, 공포, 아니면 기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자격이 있게 될 것이다. - P160

한 환자를 다른 환자와 비교하는 의료인들은, 자신이 신체적 고통을 줄여줄 수 없다면 전문가로서 실패한 것이라는 믿음 안에 갇혀 있다. 고통이 계속될 때 이들은 위협을 느끼며, 그래서 계속되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자신이 치료할 수 없는 무엇을 환자가 경험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더는 치료를 할 수 없는 때라도 여전히 돌볼 수는 있지만, 이 사실을 의사와 간호사들은 자주 잊는다. 고통이 치료될 수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돌봄이다. - P161

임신이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삶이 ‘커리어‘로 이해될 때 이력서는 몸이 연장된 것이 되고, 이력서상의 빈틈은 조직에서는 낙인과 같다. 사람들 대부분은 직장에 다녀야 하므로, 아픈 사람이 ‘생산성‘을 자신의 가치를 재는 척도로 받아들이지 않기란 어렵다. - P163

어느 친척은 아픈 동안 캐시와 나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몇몇 사람의 행동을 변호해주려고 했다. 그들이 "멀리서 조용히 걱정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암을 마주하길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 측에서 보면 ‘조용히 걱정’하는 일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 자체가 암이라는 질병을 다시 한 번 부정하는 일로 느껴진다. 내가 정말 위중한 상태가 된다면 의사들이 다르게 행동하길 바랐듯이,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금 더 많이 기대했다. 기대가 언제나 충족되지는 않았다. 관대했던 사람들은 더 너그러워졌지만 바빴던 사람들은 계속 너무 바빴다. - P165

돌보는 사람은 아픈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노고를 자진해서 떠맡는다. 사회는 돌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돌봄 제공자는 대부분 여성일 때가 많기 때문에, 돌봄은 여성들이 직업과 승진에서 불리해지는 핵심 요인이 된다. - P168

아팠던 사람은 병을 살아낸 경험에 관해 말할 수 있지만, 돌보는 사람이 살아낸 것을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돌봄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우리 사회에는 별로 없고, 그래서 돌봄은 인정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 P169

사회가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병들은 언제나 성격에 관련된 이론으로 설명됐다. 암을 주제로 한 책 중에서도 대단히 분별 있고 합리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러한 사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 나오는 예를 보자면, 중세 시대에는 행복한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중세 사람들이 전염병을 막을 수 없었듯이 우리도 암을 막을 수 없으며, 그들이 전염병을 두려워했던 만큼 우리도 암을 두려워한다. 중세 사람들은 행복이 보호책이라고 주장했고, 우리는 분노나 성, 혹은 유행 중인 다른 무엇을 억누르지 않아야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 P174

병원에서건 집에서건 아픈 사람이 분노 표현을 최상의 거래로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의존은 질병을 앓을 때 기본적인 상태며, 아픈 사람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거의 겁을 먹은 채로 행동한다. 잠시 후 끝이 뾰족한 기구를 들고 다가올 사람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일은 좋은 거래를 하기 위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또 기분을 상하게 하면 변기를 바로 가져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혹은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분노를 표현하는 환자는 보통 더는 잃을 게 없다고 믿는 사람일 때가 많다. 상황도 병도 이미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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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의료진에게는그저 매일같이 겪는 순간이 환자의 삶에서는 중대한 순간일때 이 비대칭성은 더욱 뚜렷하다. 이런 때 의료진이 환자만큼 강렬한 감정을 느끼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직업인으로서 유지하는 침착함을 환자도 똑같이 보여주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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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은 통증을 밤과 연결했다. 종양이 몸을 장악하면서 통증은 정신을 장악했다. 통증이 빚어낸 고립과 외로움은 어둠 속에서 더 커진다. 아픈 사람이 평화로이 몸을 눕힌 사람들에게서 분리되기 때문이다. 한밤중, 통증 속에 있는 사람의 세계는 더는 하나로 붙어 있지 못하고 조각나 떨어져 나온다. - P53

아픈 사람이 겪는 추방당하는 듯한 경험은 통증과 함께 시작한다. 조화롭게 통일되어 있다는 감각 안에서만 통증은 아픈 사람이 느끼는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수 있다. 이 감각을회복하기 위해 아픈 사람은 자신이 떨어져 나온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 P55

나아가 조화는 이야기되어야 한다. 표현되어야 한다. 형편없는 시구일지는 몰라도 나는 다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통증 속에서 아픈 사람은 고립되며, 입을 다물면서 추방되었다고 느낀다. 어떤 형태로 표현되든 일단 표현된 말은 다른 사람을 향한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라도 그렇다.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표현함으로써 아픈 사람은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온다. - P59

캐시와 내가 삶에 걸었던 순진한 기대도 사라졌다. 일을 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성취하고, 아이들을 낳아 자라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우리 부부가 함께 늙어가리라는 기대가 평범해 보이던 때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다. 무엇이 기대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인지, 캐시와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삶에 거는 순진한 기대를 잃었다는 것이 질병을 겪으며 얻은 수확으로 보일 날이 언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실로 느껴진다. - P66

아픈 사람이 그때껏 함께 살아온 자기 몸과 헤어질 때, 또 돌봄을 주던사람이 돌봄을 받던 사람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울 때 시간을 두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충분히 애도한 후에야 한 사람은 상실을 통과하여 다른 편에 있는 삶을 발견할 수 있다. - P69

아픈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돌봄 제공자가 "무엇이 필요하세요?"라고 묻는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으며, 일관된 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진단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삶은 이미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여러 면에서 바뀌었고, 위중한 질병을 앓는 동안 변화는 계속된다. 그리고 변화가 계속된다는 점이 ‘위중함‘의 일부이기도 해서, 심하게 아픈 사람은 변해가는 자기 자신의 필요조차 따라잡기 힘들어한다. 아픈 사람은 분명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 환자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전부 다 실수였다는 말, 이것 하나일지도 모른다. 환자분 검사 결과에 이름이 잘못 붙어 있었네요. 오, 전 괜찮습니다, 정말 로요. - P79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아픈 사람은 사실 거래할 거리도 없으며 거래할 상대도 없음을 깨닫는다. 또 외로움도 찾아오고, 그다음엔 자신이 누구고 자기 인생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찾아오고, 우울과 뒤섞인 희망이, 다른 사람들과 닿아 있고 싶다는 욕망과 뒤섞인 분노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마음과 뒤섞인 의존 상태가 찾아온다. - P82

나, 내 몸은 ‘필요한 조사‘를 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되었다. 유럽 탐험가들이 해안에 도착해서는 깃발을 꽂고, 야만인들에게 문명을 가져다줄 자신들의 군주를 대신해 이제 그곳이 자기네 땅이라고 선언했을 때 원주민들이 느꼈을 기분이 상상이 갔다. 의학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내 몸이라는 영토를 아직은 익명이었던 어떤 의사들이 조사하도록 양도해야 했다. 나는 식민지가 되어야 했다. - P85

갈수록 더 식민지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화학요법 치료 중에 한 간호사가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53호(내 병실번호) 정상피종* 환자‘라고 칭했다. 그때쯤엔 정확한 진단이 나왔던 것이지만, 이 진단명은 내 이름을 완전히 밀어냈다. 병원에서 만든 진단명이 내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다. 나는 정상피종이라는 질환이 되었다. 처음에는 조사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치료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이름도 잃어버린 내가 경험하는 주체가 되기란쉽지 않았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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