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강릉 고래책방

강릉 여행 책방 검색하다 아침 8시부터 한다고 해서 고래책방 & 고래빵집에 가기로~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건물 전체를 사용한다! 책방 주인장께서 건물주가 아니면 각이 안 나올 규모다. 1층은 베이커리와 문학 및 신간, 굿즈 위주, 2층은 인문 과학 어린이책 위주, 지하 1층은 강원도 및 강릉 관련 책이나 강릉이 사랑하는 작가 책 전시, 3-4층은 세미나실이나 행사에 사용하는 장소인 듯.

책 사고 시그니처 음료인 고래에이드(귀여운 고래 젤리가 2개 들어있다)와 바다라떼와 아아, 시그니처 쿠키인 고래쿠키 2종 주문. 음료가 색이 너무 이쁘다(그러나 바다라떼 섞으면 갑자기 녹조라떼로 변한다…) 음료 잔도 너무 탐난다. 책 사니 선물로 귀여운 고양이 뒷모습 마우스패드와 엽서도 주시고~

우영우 드라마 인기로 고래책방의 고래 음료 및 굿즈 인기 많았을 듯하다.

경포호 한 바퀴 산책하고 점심은 초당버거^^ 초당두부마을 오랫만에 갔는데 완전 핫플레이스로 바뀌었다. 예전엔 두부전문식당만 있었는데, 지금은 핫한 카페와 식당에 사람들의 줄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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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03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버거💗사릉합니다
오늘 연휴 마지막날 푸드 릴레이😋
햇살님 저 버거
단 두✌입에
순삭😋하셨을것 같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3 22:30   좋아요 2 | URL
버거 너무 맛있었어요~ 아침도 든든히 먹고 간식도 먹어서 배가 많이 안고파서 기본 초당버거만 시켰는데 3패티 타노스버거 시킬 걸 하고 후회 ㅎㅎ

바람돌이 2022-10-03 2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강릉 가게 되면 고래책방도 꼭 가보는 것으로.... 요즘 이런 핫한 서점들이 곳곳에 생겨서 정말 좋네요. ^^ 좋은 사진과 책방 소개도 감사합니다. ^^ 저기 음료잔들 너무 예뻐요. ^^

햇살과함께 2022-10-03 22:35   좋아요 1 | URL
강릉에 독립서점 많이 생겼더라고요~ 일정상 오전에 가느라 고래책방으로^^ 지난 주에 유리잔 굿즈를 하나 사서,, 음료잔 굿즈로 파는지 확인 안했는데 너무 탐나는 잔이에요^^

그레이스 2022-10-03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뤠?하고 개그로 받게 되는 책방 이름!^^
저도 가보고 싶어요.~~

햇살과함께 2022-10-03 22:3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개그 ㅋㅋㅋ 강릉 여행 강추입니다. 이번주 주말엔 강릉커피축제라고 하네요~

페넬로페 2022-10-03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래책방 좋은데요.
찜해 놓을께요.
마침 우영우 드라마 인기있어서 더 핫 플레이스가 될 것 같아요^^

햇살과함께 2022-10-04 14:25   좋아요 1 | URL
저는 우영우를 보지 않았지만 드라마 보신 분들은 고래굿즈 하나씩 샀을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10-04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래 책방 음료와 쿠키 버거...먹을 것이 가장 많고 예쁜 곳이군요?
고래 책방 고래 고래~✍️✍️
독립서점도 햇살님 덕분에 너무 갈 곳이 많아졌어요~^^ 언제 다 가볼 수 있을지??ㅋㅋㅋ
고래 에이드와 바다 라떼는 색감이 예술입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4 14:28   좋아요 1 | URL
부산에도 예쁜 책방 많으니 가까운 곳부터 방문해 보세요^^
색감 이쁘죠? 그런데 바다라떼는 섞으면 탁한 쑥색으로 변신..
주로 아메리카노 먹는 저에겐 좀 달았어요!

새파랑 2022-10-0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릉에도 저런 멋진 책방이 있군요! 강릉 가본지 오래됐는데 가게된다면 저긴 꼭 가봐야 할거 같아요 ㅋ
책도 다섯권이나 사셨군요 ^^

햇살과함께 2022-10-04 14:31   좋아요 1 | URL
강릉은 몇 번 갔는데, 저도 정작 책방은 처음 갔네요^^
강릉 너무 핫해져서 오히려 안 가게 되는 곳 같아요.
책은 각 한 권씩, 저는 두 권^^
 

엘리자베스 비숍,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한번은 너무 답답해 통번역대학원 동기 K에게 하소연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언니가 텍스트를 너무 사랑하나봐. 원래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잖아" 하는 말을, 배꼽을 잡고 깔깔 웃는 토끼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왔습니다. 사랑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K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만 넘길 수도 없었습니다. 텍스트를 너무 사랑해서 번역이 갈팡질팡하는 역자. 너무 잘하고 싶어서 자꾸만 꼬이는 해석. 저는 K의 말을 혼자만의 변명으로 삼으며 기나긴 겨울을 한권의 책과 함께 동굴에서 보냈습니다. 어느새 마감일이 왔고 2000매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월이었습니다. - P9

그러다가 앞의 문단을 만났고 이상한 환기를 경험했습니다. 단호하고 냉철하고 때로는 신랄한 문장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적이고 솔직한 고백을 담고 있었으니까요. 저자가 드물게 내비친 사담을 향해 저속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걸까요?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하기엔 그 문단이 가시처럼 뇌리에 박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목표랑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불면과 싸울 때면 간혹 가본 적도 없는 그 고속도로 언저리를 더듬었습니다. 혼자 상상하고 짐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어떤 식으로 서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는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습니다. - P15

두 사람의 대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에이드리언리치는 ‘자기 이야기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처럼‘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밝히지 않았죠. 실제로 리치는 그 어느 허구보다 극적이었던 그 ‘사건‘에 대해, 그후 세 아들과 함께 그 경험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거라곤 모든 것이 시작되는 3월 봄밤에 두 여성 시인이 돌이키기 싫었을 지난날의 상실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뿐입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자살로 잃고 그 일로 세간의 비난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했던 공통의 경험이 두 사람 사이의 어떤 차이를 훌쩍뛰어넘게 했겠지요. - P17

싱숭생숭하고 불안한 이 마음의 근원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오늘 하루 8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일까 헤아려보기도 했습니다. 시간인 줄 알았는데 시간만은 아니었고, 안도감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시간을 고스란히 계단참에 흘려보내고 있었고, 안도감은커녕 막연한 불안감으로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습니다. - P47

"어르신, 죽으려거든 날 좋을 때 죽어요. 이런 염천에는 죽지 말아요. 이런 날 죽으면 자식들 고생합니다. 부디 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날 죽어요. 그래야 자식들이 덜 서럽습니다. 알았지요? 꼭 좋은 날에 죽어요. 우리 어머니처럼 염천에 죽어 자식 가슴에 한을 심지 말아요." - P77

양쪽 집에 이런 우리 부부의 뜻을 분명히 전달했는데도 제 부모는 여전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충고했고, 시아버지는 아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저와 세진의 눈치를 봤습니다. 제 부모의 폭력적인 방식은 화가 났고, 시아버지의 수동적인 방식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시아버지를 만났다가 아이 말이 나오면 집에 돌아와 꼭 세진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아이 이야기는 지치지도 않고 나왔습니다. 친척 누가, 혹은 이웃의 누가 손주를 봤다더라, 돌잔치를 한다더라. 출산율이 곤두박질친다더니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끝없이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시아버지의 방식은 좀 치사한 데가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아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갑자기 제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용서를 받는 더러운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 P91

영옥씨처럼 이 건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만아는 은밀한 통로를 지나온 모양이었습니다. 영옥씨가 저를 난간 옆 불룩하게 튀어나온 턱에 앉혔습니다. 옥상 공기는 텁텁하고 습했습니다. 영옥씨가 실외기 더미를 덮은작은 지붕 구조물 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담뱃갑을 하나꺼냈습니다. 그리고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여 제게 내밀고 연달아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담배 한대를 피웠습니다. 어느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고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을터뜨렸습니다. 저는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로 웃었습니다. 절대로 웃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그렇게 웃고 나니 조금 힘이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옥상에서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 P105

소변기를 침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놓고 시아버지의 바지춤을 제자리로 올렸습니다. 이제 시아버지는 모든걸 체념한 사람처럼 제게 완전히 몸을 기대고 있었습니다. 저는 행여 시아버지를 놓칠세라 한껏 힘을 주며 버텼습니다. 그때 제 귀에 들려온 소리는 분명 착각도 환청도아니었습니다.
죽어라…… 죽어……… 콱………
이 이야기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세진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겐 그 무참함을 표현할 언어가 없습니다. - P113

시아버지는 그해 겨울에 죽었습니다. 어떤 죽음이었는지는 여기에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 죽음이 세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제게도 깨끗이 지우는게 불가능한 어떤 감정을 안겨주었다고만 말하겠습니다. - P115

우체국으로 들어가 국제우편을 보낼 수 있는 우표를 샀습니다. 그날 산 엽서 중 가장 예쁜 엽서를 한장 꺼냈습니다. 기억 속의 라일락색 명함에 적혀 있던 간병인 파견업체 이름을 휴대폰으로 검색해 찾은 주소를 수신인란에 썼습니다. 엽서가 영옥씨에게 전달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지만 어쩌면 그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벌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신인란에는 제 이름을 적었지만 사실 영옥씨에게 제 이름을 알려준 기억도 없습니다. 유리병에 쪽지를 넣어 태평양에 던지는 것만큼이나 치기 어린 행위였지만, 제 마음만은절대로 우습지 않았습니다. 내용 칸에 볼펜을 대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일단 영옥씨,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또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문장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한 문장을 쓰고 밖으로 나와 우체통에 엽서를 집어넣었습니다.
"영옥씨, 아침에 잘 일어나고 있나요?"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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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선물로 온 책

내 선물은 아니고 둘째에게 온 선물. 10대를 위한 책 2권.

알랭 드 보통의 책 오랜만이다. 10년도 더 전에 보통 글 너무 잘 쓴다 하며 몰아 읽고 질려서 그 이후 한권도 안읽었네. 그때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김제동님이 추천해서 알게 된 것 같다.

‘ㅇㅇ 쫌 아는 10대 시리즈’는 집에도 한두 권 있나?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 읽은 풀빛에서 나온 시리즈다. 과학, 사회 쫌 아는 시리즈 말고 진로, 철학도 시리즈 나오고 있네. 챙겨봐야지.

‘뭐가 되고 싶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법’ 제목 보니 첫째의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이 생각난다. 명절 때나 제사 때 뵈면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시고 ‘농부요’라고 답하면 당황? 황당? 해 하시던 표정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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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01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던필‘의 ‘조동필‘화처럼
알랭 드 보통은
˝보통 글 너무 잘 쓴다.˝ 한국어 문장에 아주 잘 어우러지네요^^

˝10대에게 권하는˝ 등등의 시리즈들이 의외로 어른 수준인 경우가 많아서 저도 종종 챙겨봐요

그런데 ‘농부‘를 꿈꿨던 햇살과함께 첫째 자녀분의 꿈은 이제 어떠할까요?^^ 무엇이든 간에 응원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1 23:21   좋아요 2 | URL
보통~ 이름 재밌죠~
청소년 시리즈들 제 수준에도 잘맞는 책들이에요~~
음.. 한동안 수의사였다가 지금은 과학? 공학? 쪽인 듯요. 역사 사회보다 과학이 좋다네요. 저는 과학 싫어 문과 간 사람이라 신기 ㅎㅎ 뭘하든 제 밥벌이, 제 앞가림 하면 되겠죠!

mini74 2022-10-02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희 아이 5살쯤. 어릴적엔 뭐가 되고싶냐니 고래. ㅠㅠㅠ 라고 해서 웃었던 기억납니다. 농부 ㅎㅎ넘 귀엽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2 22:41   좋아요 1 | URL
고래!! 너무 귀여운 꿈이네요^^ 지금은 징글징글?! ㅎㅎ
 

연대 초기, 난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었다. 몇 달 주기로 유서를 고쳐 고정된 장소에 두고 다닐 정도로 ‘끝‘을 생각하며 살았다. 출소한 가해자와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복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해도 수사기관은 "당하면 오라"고 했다. 혼자서 나를 지켜야 했고, 혼자서 죽음을 대비해야 했다. 언제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삶이 끝날 수도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찾지도 못하는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그저 외부 요인으로 삶이 끊기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활동했다. ‘성범죄자알림e‘에 올라와 있는 가해자의 출소 후 주소지는 서울 강남이었는데, 본업도 연대도 초기에는 모두 서울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이동할 때 언제나 예민한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등 피해 회복의 과정을 밟지 않은 채 바로 일을 시작하고 연대 활동을 이어나갔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던 거다. - P312

한국은 판사의 재량에 대한 인정 범위가 매우 넓다. 그러니 판사의 판단에 대한 외부 평가도 그만큼 감수할 필요가 있다. 책임은 외부로 돌리면서 권위는 유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법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우선 판사들부터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말하기를 해야 한다. 청중을 고려하지 않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시민들도 정보 공개의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판사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경청하면서 해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법감시운동으로서 방청연대, 재판 모니터링과 연계해 판결문 분석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도 잘 듣기 위한 것에 있다. - P366

활동가들의 번아웃(소진) 현상은 기존의 반성폭력 활동에서도 지적되어왔다. 전업 활동가의 경우 불완전한 고용 상태와 낮은 임금, 공사 구분이 불명확한 일처리 등에서 오는 여러 문제뿐 아니라,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심리적인 문제, 외부 공격에 대응하면서 발생하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연대든 신념만으로,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 P379

연대 초기에는 ‘잊히기 위해‘ 연대한다고 했다. 물론 이는 내가 연대한 피해자들이 나와의 연대마저 잊고 일상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연대 활동의 중단을 염두에 둔 발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대자로서 내가 수행해야 할 공적 활동과 책임을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다. 피해자가 편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그리고 시스템 감시와 변화를 위해 연대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내가 없어도 이런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연대자로서의 나는 잊혀도, 내가 한 활동이 피해자를 위해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 가능한 연대자가 되기를 원한다. - P384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자신들은 의뢰인의 요구에 따랐을 뿐이며,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피해자가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인다. 윤리와 공적 책임을 팽개치는 것이다. 천씨의 변호인 역시 그런 ‘나쁜 변호사‘로 평가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결심 공판에서 사람들에게 왜 나쁜 사람을 변호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며 고뇌하는 척했다. 피해자의 정보유출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관련이 없다. 사람들은 실수와 고의를 구분할 수 있다. 욕먹을 짓을 해놓고 욕먹는 것을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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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대자로서 내 욕망을 직시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일’에 이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 거다. ‘할 수 있는 일’의범위를 확장하기, 내 자신을 드러내고 그만큼 커진 사회적 책임을 수용하기, 일을 크게 만들고 그 크기만큼 내 그릇도 넓혀가기, 내 역량이 미치지 못할 경우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조력을 받기. 그렇게 내 자신의 가능성에 제약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기획했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졌고, 결국 다양한 간접 연대를 해내고 있다. 없으면 만들고,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덜어내면 된다. - P316

성폭력 피해로 생긴 부수적인 상실로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진 것,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기 힘들어진 것 등이있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타인을 신뢰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책임을 분담하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또한 감각과 감정을 인지하고조절하는 일 모두 엉망이 되었고, 문화와 예술 등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일상에 부재하거나 결핍되면서 삶이 상당히 단순해졌다. 모난 인간, 재미없는 일상, 사라지지 않는 상흔, 홀로 멈춘 것 같은 기분. 피해 이후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내 주변에는 누가 있었는지, 무엇에 흥미를 갖고 재미를 느꼈는지, 도통 모르는 것 일색이었다. - P334

전국 세미나는 2018년을 끝으로 그만두려고 했다. 시간과 비용등의 문제보다는 건강이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다. 2018년 말에는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 모니터링을 끝내고 이동하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독감도 겹치면서 휴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연이어 터지는 사건들 때문에 결국 2019년에도 휴식을 포기했고, 전국 세미나도이어갔다. 6월에는 서울에서 12시간짜리 <마녀의 필리버스터〉를, 8월에 <마녀의 매뉴얼>을, 12월에는 <마녀의 사법 시스템 가이드>를 기획했다. 전국 세미나는 다시 2019년을 마지막으로 그만두려고 했기에,
특히 마지막 세미나 <마녀의 사법시스템 가이드>는 한 달 동안 12차례 열면서 그동안 방문하지 못했던 강릉 등도 포함해 전국을 돌았다.
2020년은 정말 쉬려고 했다.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더 이상 버티듣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개인 활동의 한계를 절감했기에 한 해쉬면서 수사·재판 절차별 매뉴얼과 체크리스트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2019년 말, 현직 판사들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2020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나는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것도 연대자의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2019년 현직 판사들을 만나면서 이 기회를 살려보기로 결심했다. 내부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을 어렵게 만난 이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마녀‘라는 계정을 없애며 대대적으로작별인사를 해놓고, 2020년 다시 ‘연대자 D‘라는 계정을 만들어 연대활동을 지속했다. 계획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내 연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 P344

하지만 아무리 공개재판이고, 자신과 관련된 사건이더라도 피해자가 방청을 위해 평일에 매번 법원으로 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증인지원 절차가 따로 없는 공판 단계를 단순 방청하는 경우, 피고인과의 대면을 감수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대개 피해자는증인으로 출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법원에 찾아가지 않고, 피해자 변호사도 사선으로 선임된 것이 아닌 이상 재판에 출석하는 경우가 드물다. 비어 있는 방청석을 앞에 두고 ‘판사-검사-피고인 측‘이 재판을 진행하는 구도에서 피해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연대자의 재판 방청이다. 2010년의 내게 현재의 내가 연대자로 있었다면 방청은 내가 할 테니 좀 쉬면서 회복하라고 했을 것이다. 막연한 불안과 공포 속에 혼자 내던져졌던 나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연대를 이어나가는 이유이다. - P349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선고 전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본인의 예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침묵을 택하는 것, 담당 사건에 대해 설득력 있는 판결로 그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 판결문 외의 설명이나 부연은 무의미하다는 것, 판사는 외부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 등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법에 대한 해석들은 대개 법관의 독립과 재량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이를 시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려 한다.
나는 방청연대/재판 모니터링 교육을 할 때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라는 말을 꼭 언급하는데, 사법 시스템에 대한 감시·기록· 목격을 위해서는 판결문을 독해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 과정에 판결문을 검색하고 열람복사하는 방법,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판결서 열람제한을 신청하는 방법, 일반인의 입장에서 판결문을 분석하는 방법 등을 넣고 있다. 비전문가인일반인들이 분석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는 말도 듣지만, 최소한 형 - P356

량을 정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반영된 각종 양형이유에 대해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상식 수준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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