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와 관련된 10편의 이야기. 외모라는 주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10편 중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8장과 7장이었다.



8장 박정호의 [얼굴을 잃지 않는 대화]는 좀 더 알고 싶은 장이다. ‘대화란 서로 얼굴을 주고 받으며얼굴을 말에 실어 나르며, 증여의 사이클을 따라간다는 문장이 코로나로 절실하게 와 닿는다모두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하면서 얼굴을 주고 받지 못하여 대화의 단절거리감을 느끼고, ‘증여의 리듬을 타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상대방의 주저함과 모호함과 망설임 같은 표정 언어를눈빛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하는 얼굴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표정 언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험또 나의 표정 언어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대화가 뻗어가지 못하고 가라앉는 듯한 경험 말이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마르셀 모스의 사회학을 공부했고현대 사회의 선물과 희생 제의에 관한 문화적 담론과 실천을 연구하면서증여와 선물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고 하는데, ‘선물과 증여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저자의 책은 없고 지만지 천출읽기 시리즈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과 커뮤니케이션북 이론총서 시리즈의 류정아 저자의 <마르셀 모스증여론>이 있다사회학 책은 거의 읽지 않아서 어렵겠지만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이니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언제?). 9장 김현주 [비누거품 아래죄와 부채]도 예술의 선물과 증여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8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얼굴을 보호하려면 선물을 주고받듯이 대화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얼굴은 사고 팔거나 훔치고 빼앗는 물건이 아니다. 얼굴은 선물처럼 건네받고 답례해야 할 자아상이며, 대화는 얼굴을 말에 실어 나르는 수레바퀴를 굴리는 일이다. 대화 속에서 말은 증여의 사이클을 따라간다. 사업상의 거래든 일상의 사교 관계든 아니면 길거리에서 낯선 이와의 마주침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이제 당신이 말할 차례입니다‘라는 소리 없는 암시, 발언권을 서로에게 부드럽게 넘겨주는 선물의 정신은 우리 모두를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초대장이다. 이렇듯 경직된 근육을 풀어 주듯이 대화가 오가려면 주의 깊게 마련된 증여의 리듬 규칙이 필요하다. 리듬 규칙은 대화 당사자들에게 동조 압력을 행사한다. 나와 상대 모두 이 압력을 인식하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자연스럽게 장단을 맞추는 말을 구사할 수 있다.

대면 상호작용 의례로서 대화는 메시지의 즉각적 교환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마르셀 모스가 말했듯 무언가를 주는 것은 나 자신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줌으로써 나를, 나의 얼굴을, 그리고 얼굴로 표현되는 신성한 자아를 준다. 아무리 사소한 대화라고 해도 상대방은 내 말에 실려 오는 나의 얼굴을 받고, 이어서 자신의 얼굴도 내게 내놓는다. – P152~153






















7장 정희원의 [지속가능한 몸 만들기]은 내용도 관심 가지만, 저자가 아산병원 노년내과전문의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내과세부과목 중 노년내과라는 게 생겼구나.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소아청소년과가 아니라 노년과가 생겨야 한다는 말이 이제 더 이상 우스개소리가 아니구나. ‘바프 만들기를 위한 몸이 아닌 죽기 전까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몸 만들기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저자의 <지속가능한 나이듦>이라는 책도 찾아봐야겠다.


그때의 심증을 지지하는 사회적 현상은 여전히 도처에 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뼈 빼고 다 빼 드립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본 일이 있다. 퍼스널 트레이닝업체의 광고였다. 이런 괴기스럽고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문구로 쓰인다. 더 아연실색할 일은, 마른 몸매를 추구하는 사람 중 종아리 근육을 위축시키는 종아리 퇴축술 같은 시술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보행에 필요한 종아리근육은 매끈한 ‘일자 다리‘가 중요한 여성에게 부기를 가라앉히고 없애야 할 ‘종아리 알‘로 인식된다. 이는 외모에 대한 그릇된 신념 체계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자기만족을 향후 50년 이상 지속될 근골격계의 불균형과 교환하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거래가 아닐 수 없다. - P130























10장은 보수적인 대구 지역에서 여성 퀴어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는 청소년(청년?) 활동가의 외모 통증 생존기이다. 외모 꾸미기에 관심 없는 나조차도(유일한 꾸미기는 흰머리 감추기용 뿌염?) 평생 가장 열심히 외모를 가꾸던 사춘기 중학교 시절이 떠오르며, 그때보다 더 외모 꾸미기에, 꾸밈 노동에, 관심과 압박을 받고 있을 오늘의 청소년, 청년 세대의 이야기다.


나는 서울로, 수도권으로 ‘망명‘을 가지 않고 대구에 남아 청소년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 나는 계속해서 지금 여기의 여성 퀴어 청소년으로서 자유를 찾아 나설 것이고, 그와 함께 나와 내 친구들은 아마 영영 외모를 가지고 아파할 것 같다. "제일 외모 통증이 덜한 때는 언제야?"라는 나의 질문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라고 답한 친구가 기억난다. 그 친구를 잘 알기 때문에, 그의 사후 묘비에나마 ‘이제 외모에 관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고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다들 지금 편안하길 바란다. 다들 자기 살을 잘 붙이고 덜렁덜렁 터덜터덜 삐질빼질 쿵쾅쿵쾅 다니길 바란다. 동네에서 뻥 뚫린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간간이 외모 통증을 언어화하며 살아가길. 이상할 만큼 정말로 괜찮은 어떤 날에 우리는 모두 덩어리진 생명일 뿐이었으니까. - P197




2장 김애라의 [메타버스 아바타의 상태]는 메타버스라는 곳도 오프라인의 연장선상에서 과시욕과 꾸미기를 분출하는 공간으로서, 철저히, 더욱더 자본주의적 성격의 공간임을, ‘물리적 세계를 초월하지 못한 공간임을 확인한 페이퍼라고나 할까.


메타버스 공간에서 정체성은 물리적 세계에 얽매인 이미지로 구현된다제페토에서 형성되고 있는 인플루언서 문화와 각종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아바타 패션과 현실의 아이돌 이름을 딴 ‘월드‘의 존재는 우리가 아직 초월적 세계보다는 물리적 세계 안에 존재하도록 강제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 P48



4장 임소연의 [K-성형수술의 과학]는, 민음사에서 올해 출간한 강렬한 빨강의 탐구 시리즈 중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의 저자라서 기대하고 읽었으나, 내용에 다소 동의되지 않았다. 나의 고정관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적인 얼굴의 비율을 상세하게 정의하는 인체계측학의 작업은 성형수술의 발전에 날개를 달았다. 인종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는 성형 기술이 외모 개선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아시아인은 백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아름다워지고 싶을 뿐‘이라는 간단명료한 설명은 성형수술이 사회병리적 현상이거나 인종주의의 도구라는 혐의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다. 이른바 인종’과학’의 출현이다. - P78



다음 편은 "대학"이네. 이 또한 할 말 많을 흥미로운 주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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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0-18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민음사에서 이런 잡지를 내고 있군요?
외모, 이거 참 심각한 문제 같습니다. 10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들이 자기 허벅지 굵어서 싫다고 한다는 얘기에 너무 슬펐어요 ㅠㅠ ˝이상할 만큼 정말로 괜찮은 어떤 날에 우리는 모두 덩어리진 생명일 뿐이었으니까˝라는 문장이 좋네요. 햇살님 잘 읽고 갑니다^^

수이 2022-10-18 13:33   좋아요 3 | URL
마흔여섯살이 된 아줌마도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며 어우 넘 뚱뚱한데 하지만 그래도 튼실한 게 좋은 거리고 위안을 스스로 하지요. 십대때 하던 허벅지 걱정을 굳이 이 나이까지 해야 하는가 미니 스커트 안 입어도 잘 사는데 이런 생각이 또 드는군요 으흠

햇살과함께 2022-10-18 17:44   좋아요 2 | URL
괭님, 4개월 마다 발행되는 잡지예요^^
매번 한 가지 주제로 10편의 글이 실리고요.
마지막 문장 너무 좋으면서도 씁쓸하네요.
너무 어린 아이들이 어른처럼 꾸미고 살 찔까 걱정하는 거..너무 슬프죠..
어른들, 미디어 따라 배우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걱정되네요..

햇살과함께 2022-10-18 17:43   좋아요 2 | URL
vita님, 외모 걱정은 그냥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아요;;;
그 강도와 부위(?)와 투여하는 시간과 돈의 정도가 다르겠지만요. ㅎㅎㅎ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어른이 된 지금도, 좋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저녁 초대를 거절하면서 죄책감을 느낄지 모른다. 아니면 음식점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서여유를 찾으려 할 때 옆 테이블 사람들의 딱하다는 듯한 시선은 더이상 받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흔히 조용하고 이지적인 사람들이 듣는 "너무 생각이 많아" 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또다른 단어도 있다. 사색가 - P25

내향성에 해당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내향성‘이라는 낱말은 은둔자나 인간 혐오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이 실제로 그럴수는 있지만, 대다수는 매우 친근하다. 영어에서 가장 인간적인 구문이라 할 수 있는 "오직 연결하라 only connect!"는 뚜렷하게 내향적이었던 E. M. 포스터가 어떻게 ‘지고의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낸 소설에 쓴 문구였다. - P33

왜 어떤 사람은 수다스러운데 어떤 사람은 말을 삼갈까? 왜 어떤 사람은 일에 파묻히는데 어떤 사람은 사무실 직원들과 생일파티를 준비할까? 왜 어떤 사람은 권한을 쓰는 데 익숙한데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되기도 싫고 끌려가기도 싫어할까? 내향적인 사람도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외향성을 선호하는 우리의 문화는 자연적인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인 것일까? 진화론의 관점에서, 내향성이 하나의 성격 특성으로서 살아남은 이유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이 내향적이라면, 자연스럽게 끌리는 활동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아니면 로라가 협상 테이블에서 했듯이 무리를 해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을 알면 놀랄지도 모른다. - P38

카네기가 농장 소년에서 판매원으로, 다시 대중 연설 아이콘으로 변신해가는 이야기는 ‘외향성 이상‘이 부상하는 이야기와 겹친다. 카네기의 여정에는 20세기로 전환하는 시기에 임계점에 달한, 문화적 진화의 과정이 나타나 있다. 이로써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사람에게 경탄하는지, 취업 면접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직원에게 어떤 자질을 찾을지, 짝에게는 어떻게 구애하고 아이는 어떻게 기를지 등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영향력 있는 문화역사가 워런 서스먼warren Susman에 따르면 미국은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전환했고, 결코 회복하지 못할 개인적 불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 P46

인격의 문화에서 이상적인 자아는 진지하고, 자제력 있고, 명예로운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가 아니라 홀로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였다. ‘성격‘이라는 단어는 18세기 이전에는 영어에 존재하지 않았고, ‘좋은 성격‘이라는 개념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퍼졌다.
하지만 ‘성격의 문화‘를 수용한 뒤로, 미국인들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담하고 재미있는 이들에게 매혹되었다. 서스먼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새로운 성격의 문화에서 가장 각광받는 역할은 연기자였다. 미국인은너나 할 것 없이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 P46

미국인들은 이제 이웃이 아니라 낯선 이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주민‘은 ‘직원‘으로 바뀌었고, 같은 주민으로서 혹은 가족으로서 인연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역사가 롤랜드 마천드Roland Marchand는 말한다. "누구는 승진을 하는데 누구는 따돌림 당해야 하는 까닭을 이제는 다년간 형성된 편애나 케케묵은 집안싸움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점점 더 모르는 타인과 사업하고 관계하게 되는 시대에, 사람들은 첫인상을 비롯한 모든 것이 중대한 차이를 만들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압박에 반응하여 자기 회사의 최신 장치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팔 수있는 판매원이 되려고 노력했다. - P47

하지만 자신감 있게 보여야 할 필요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한 것은 심리학에서 대두된 열등의식 inferiority complex이라는 개념이었다. 인기 언론에서 IC라는 이름으로도 통하던 열등의식은 1920년대에 빈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Alfred Adler가 부적응과 그 결과를 묘사하기 위해 쓴 표현이다. 아들러의 베스트셀러 『인간 본성 이해하기 Understanding Human Nature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신감이 없는가? 소심한가? 순종적인가?" 아들러는 유아와 아동이 너나 할 것 없이 열등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어른들과 형들 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치는 동안 아이들은 이런 감정을 승화하여 목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 P53

물론 ‘외향성 이상‘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외향성은 우리 유전자에 있다. 몇몇 심리학자는 이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 특성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덜 나타나고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더 나타나는데, 이들 대륙의 후손들은 상당 부분 이주민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여행하던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던 사람들보다 외향적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특성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점이 이치에 맞는다고 설명한다. 심리학자 케네스 올슨KennethOlson은 이렇게 말한다. "성격 특성이 유전적으로 전달되므로, 신대륙으로 이주민이 물결처럼 몰려들 때마다 구대륙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더 바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으로 바뀌게 된다." - P58

한 지식인은 1921년에 이렇게 썼다. "개개인의 성격을 존중하는 태도는 이제 바닥을 쳤고, 우리처럼 성격에 관해 이토록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국가가어디에도 없다는 점은 유쾌할 정도로 아이러니하다. 우리에겐 실제로 ‘자기표현‘과 ‘자기계발‘을 위한 학교도 있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는 성공적인 부동산업자 같은 성격을 개발하고 표현한다는 것인 듯하다." 또 다른 평론가는 미국인들이 연예인들에게 노예처럼 관심을 갖다바치기 시작한 상황을 개탄했다. "요즘 잡지들이 무대 위, 그리고 그에 연관된 것들에 얼마나 주목하고 있는지 보면 놀랄 정도다. 고작 20년 전에는 (그러니까 인격의 시대에) 그런 주제를 다루면 상스럽다고 간주되었다. 이제는 그것들이 "사교생활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계층을 막론하고 대화의 주제가 되고 말았다." - P60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사의 한 고위간부는 대니얼 골먼DanielGoleman에게 말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환상적인 회귀분석에 흥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결과를 중역들에게 발표할 생각에 불쾌해진다면 말이다." (발표한다는 생각에 들뜬다면 회귀분석을 한다는 생각에 불쾌해지는 것은 괜찮은 모양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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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람들은 안다.
어느 날 이 시스템이 붕괴될 것임을
- 존 버거 - P222

인간은 누구든지 국가나 자본 혹은 복지체제에 이바지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발언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다분히 도구시하고, 그럼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무례함과 몰이해를 드러내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인생까지도 비하(下)하는 기묘한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 P223

국가란 본래 풀뿌리 민중의 삶에 대하여 진정으로 친화적일 수도, 우호적일 수도 없는 권력기구이다. 국가는 징세(稅)와 공공사업과 복지서비스라는 형태를 통해서 재분배라는 기능을 행사하지만, 그 재분배란근본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민중에 대한 수탈을 지속하기 위한 방책일 뿐인지도 모른다.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국가라는 괴물은 자기확대의 욕망 때문에 쉽사리 자본과 손을잡으면서, 풀뿌리 민중의 요구는 간단히 무시하거나 외면해버린다. 이것은 국가의 체질화된 뿌리 깊은 습성이다. - P227

그러니까 바람직한 것은 개인의 이익추구가 그대로 공동체의 전체적이익과 조화 내지는 양립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민주주의를 논하면서 토크빌이 언급한 "올바르게 이해된 자기이익"이라는 개념이다. 1830년대에 미국을 방문했던 이 프랑스 지식인의 눈에비친 미국사회의 괄목할 만한 특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가 특히 주목했던 게 미국에서는 구대륙과는 달리 "이익을 떠난 희생이라는 관념이 희박하다는 사실이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는일반적으로 덕행은 숭고하거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으로이해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미국 사람들은 동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그런 희생이 결국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위대한 것은 무사무욕(無私無慾)이 아니라, 올바르게 이해된 자기이익"이다(《미국의 민주주의》, 제2권, 1840). - P229

그리하여 지구생태계의 전면적인 붕괴가 임박한 시점에서도 국가는 기껏해야 ‘녹색성장‘을 운위할 수 있을 뿐이다. 녹색이란 무엇보다 인간생존의 자연적 한계를 예민하게 의식하는 토대 위에서 비폭력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가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절대로 성장논리와 양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P231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은 것은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를 단순히 현재의 연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구히 산업국가의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 이외의 삶의 방식을 상상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산업국가는 뿌리로부터극복해야 할 시대착오적인 유제(制)이다. 산업국가의 틀은 그것이 아무리 복지체제를 갖춘다 하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에게는 근원적인 질곡일 뿐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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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여왕의 거울

괴짜에다 유명하진 않았지만, 홉킨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남성으로서 핵심 개념을 말하고 있다. 물론 신이 세상을 만든 아버지이듯 작가는 자기 텍스트의 ‘아버지‘라는 가부장적 사고는 서구 문학 세계 전반에 퍼져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듯이 이 은유는 작가, 신, 가부장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저자‘라는 단어에 내재되어 있다. ‘저자‘라는 단어에 대한 사이드의 세심한 고찰은 이 논의와 관련해 상당히 많은 내용을 요약하고 있기에 여기에 전부 인용할 가치가 있다. - P74

이 단어에는 또한 저자authour, 즉 무엇을 생겨나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사람, 낳는 사람, 개시자, 아버지 또는 조상, 문서화된 성명서를 발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 P75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양한 목적에서 문학적 부권 은유를 사용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문학작품은 문자 그대로 언어의 표현일 뿐 아니라 육체로 신비롭게 구현된 권력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따라서 가부장적 서구 문화에서 텍스트의 저자는 아버지이자 창시자이며 낳는 자, 펜을 음경처럼 생산의 도구로 쓰는 미학적 가장이다. - P78

마지막으로, ‘소유권‘이나 소유 개념이 부권 은유 안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이 복잡한 은유의 또 다른 의미를 밝혀준다. 저자/아버지가 작품과 독자의 관심을 소유한 자라면, 그는 (자기 머리에서 나온 자식들, 종이에 잉크로 구체화시키고 천과 가죽으로 ‘장정한‘) 작품의 백성이라고 할 인물, 장면, 사건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문인‘은 저자이기에, 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이자 주인 또는 지배자이며 소유자다. 서구 사회가 그 용어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르자면 그는 정신적 유형의 가부장이다. - P79

‘펜을 드는 여자’는 건방지고 ‘주제넘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구제 불능인 존재다. 어떤 미덕도 그녀의 건방진 ‘결함‘을 메울 수 없다. 그녀는 자연이 내리그은 경계선을 괴물처럼 횡단해버렸기 때문이다. - P80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문학 권력과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사상가 오토 바이닝어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은 문학 권력이 없기에 ‘존재론적 실재를 [남성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 P81

앤 핀치는 자신의 시집 『서시』의 결론에서 여자들은 ‘멍청해지라고 요구받고 그렇게 키워진다‘고 말하면서 그런 기대를 물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신랄하게 빈정대는 투로 자기 자신에게 멍청해지라고 충고한다. - P84

그러니 나의 뮤즈여 조심스럽게 물러나라.
칭찬받으려다 경멸받지 말고.
욕망을 의식할지언정, 앞으로도 쭉 날개를 움츠린 채
몇몇 친구에게, 그리고 너의 슬픔에게 노래하라.
그대는 태생상 결코 로렐의 숲에 어울리지 않으며,
그대의 그늘은 충분히 어두우니, 그대는 거기 만족하라.

생성의 에너지와 동떨어진 채 어두운 겨울 세계에 있는 핀치는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통찰력을 상실한 과부‘로 정의하고 있는 것만 같다. - P85

동시에 남성의 텍스트는 계속해서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를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여성의 미덕은 남성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발자크의 애매모호한 말을 내내 옹호했다. - P88

여성은 남성의 ‘펜‘에 의한 창조물로서 ‘감금되었다.‘ 여성은 남성이 내뱉은 ‘문장‘으로 (사형이든 징역형이든) 형을 선고받았다.‘ 남성은 여성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기소했다.‘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고에 따라 남성의 텍스트, 그림, 그래픽 속에 ‘갇혀‘ 있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우주론 속에서(죄 많은 결함투성이로) ‘날조되었다.‘ - P89

시몬 드 보부아르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남성의 ‘초월성‘은 사냥하고 죽이는 능력으로 상징된다. 여성의 자연 동일시, 그리고 내재성을 상징하는 역할은 인간 종을 영속시키는 무의식적 출산 과정과 핵심적으로 엮여 표현된다. 인간의 우월성 혹은 권위는 ‘생명을 낳는 성이 아니라 죽이는 성이 소유해왔다.’ D. H. 로런스의 말을 빌리자면 ‘생명의 주인이 죽음의 주인이다.‘ 그러니까 가부장적 시학은 가부장이 바로 예술의 주인임을 암시한다. - P90

그러나 여성 입장에서 보면 ‘변덕‘은 고무적인 성격이자 덕성이다. (이중성을 수반하긴 해도) 변덕은 여성이 그 자신을 인격으로 창조할 능력, 더 나아가 거울/텍스트 반대쪽에 갇혀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능력까지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 P94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가 만들어놓은 ‘천사‘와 ‘괴물‘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를 특별히 더 읽어내고 적응하고 초월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자기를 ‘살해해‘ 예술에 가두어놓았던 미학적 이상을 죽여야 한다. 모든 여성 작가는 천사와 정반대쪽에 있는 대립쌍인 집 안의 ‘괴물‘도 죽여야 한다. 메두사의 얼굴을 한 이 괴물도 여성의 창조력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즘 비평가인 우리에게 천사와 괴물 둘 다 ‘죽이는’ 울프적인 행위의 시작은 이런 이미지의 기원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시학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살해하기 위해 우선 분석해야 한다. 특히 여성이 쓴 문학을 이해하려면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천사‘와 ‘괴물‘ 이미지는 남성이 쓴 문학 전반에 퍼져 있을 뿐 아니라, 두 이미지 중 어느 하나라도 확실하게 죽인 여성은 거의 없을 정도로 여성문학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상상력은 거울을 통해 그 이미지를 어렴풋이 인식했을 뿐이다. 최근까지 여성 작가는 자신을 (무의식적이지만)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가 말했던 ‘수정 유리 표면‘에 살고 있는 천사나 괴물, 또는 천사/괴물의 이미지 뒤에 거주하는 신비한 존재로 정의해야 했다. - P95

빅토리아 시대의 천사 같은 여자는 가정 안에 갇힌 채 남편의 ‘의미 있는 행위의 삶‘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피와 땀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신성한 안식처가 되어야 하며, ‘명상적인 순수함‘으로 신 같은 타자성을 상기시키는 살아 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106

이 모든 화신 (에러‘에서 ‘우둔함의 여신‘까지, 고너릴과 리건에서 클로이와 실리아까지) 중 여성 괴물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본보기다. 남성이 자신의 육체적 실존, 즉 자신의 출생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능감에 대한 모든 양가적인 감정을 바로 여성이 대변하도록 만들어왔다는 주장 말이다. 타자인 여자는 삶(파괴되도록 만들어진 삶)의 우발성을 나타낸다. ‘남자가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육체적 우발성에 대한 남성 자신의 공포‘라고 보부아르는 말한다. - P121

우리는 오로라 리나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 같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텍스트의 감옥에서 여성의 펜으로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그 출발점에서 자신을 ‘천사-여자‘와 ‘괴물-여자‘로 번갈아가며 정의하는 모습을 목도할 것이다. 우리는 또 백설 공주나 사악한 여왕처럼, 이들의 초기 욕망이 양가적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유리 관 속에서 숨 막히게 꼭 - P136

끼는 코르셋으로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조이거나, 거울밖으로 나와 불같은 죽음의 춤을 추어 스스로를 파괴하라고 유혹받는다. 그러나 천사와 괴물이라는 한 쌍의 이미지가 제시하는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었어도,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불모성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받았어도, 여성 작가들은 작품을 산출했다.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 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텍스트라는 유리 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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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촛불시위가 왜 시작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들 자신은 선거 때에 비해서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데, 시민들이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촛불이 한창일 때 대통령이사과 아닌 사과를 두 번이나 한 것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지, 촛불의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기회가 오자 즉시 전방위적인 탄압에 나섰고, 사실상 경찰국가체제의 수립에 열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정권은 더욱 고립을 자초하고, 고립 때문에 갈수록 더 포악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 P212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논리는 일본의 경제학자 나가타니 이와오(中谷巖)의 말이 아니더라도 심히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원래 하버드대를 나와 오랫동안 일본정부의 경제정책에 관한 조언자로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히 권장해온 나가타니는 작년가을 월스트리트의 금융파국을 보면서 이른바 ‘전향‘을 한 끝에 최근《자본주의는 왜 자멸했는가》(2009)라는 책을 써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사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개인단위로 세분화하여, 그 원자화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사상이기 때문에 안심, 안전, 신뢰, 평등, 연대 등 공동체적가치에는 아무런 무게도 두지 않는다. 즉, 인간끼리의 사회적 유대는이익추구라는 대의(大義) 앞에는 해체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위험사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 P214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는 도저히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비판세력 혹은 저항세력을 강권에 의해서 억압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이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하는 이상, 이 나라가 경찰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적(敵)은 민주주의인 것이다. - P215

아무리 생각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얘기이다. 부와 가난의 문제는 절대적 궁핍상태를 제외한다면 어디까지나 권력관계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본적으로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정치적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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