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서 신청한 책. 연체하지 말고 빨리 읽고 반납하자.

이날부터 세 자매는 서로를 봄 여름 가을이라고 불러주었다. 가끔은 매화 난초 국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름을 향한 불만이 커질수록 자매의 결속력도 단단해졌다. 물론 심사가 틀어지면 이 장소팔 고춘자야, 못생긴 추녀야, 소리가 주먹질과 함께 오가기도 했다. 가끔은 이름이비교적 평범한 둘째도 하지감자야, 하녀나부랭이야, 소리를 면치 못했다.
- 오늘의 할 일 - P11

네모가 후루룩 면발 빨아올리는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신다. 네모와 함께하는 커피 타임은 규가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였다. 이번 미션에 합류해 처음 네모를 만났을때 그는 규의 눈으론 누가 누군지 구별이 잘 안 되는 이국의 청년일 뿐이었다. 네모라는 이름이 독특하다는 규의 말에 어렴풋이 짐작한 대답이 돌아왔다. 국적도 뭣도 거부한 채 노틸러스호를 타고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해저이만리』의 네모 선장. 네모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를 제 이름으로 삼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니. 수십년째 내전으로 곪아가는 이 나라의 네모는 무엇을 거부하고 싶어서 스스로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하지만 규의 의문이 무색할 정도로 눈앞의 네모는 도무지 긴장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눈부시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헤벌쭉 웃기만 하는 태평한 젊은이였다. - P45

칠순이 훌쩍 넘은 노인네가 볼살이고 눈꺼풀이고 떨리는 거야 지극히 당연한 순리라고 규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규에게 어느 귀퉁이에 붙었는지도 모를 땅덩어리 사람들을 위한 답시고 제 피와 살을 만들어준 병든 어미의 고통은 모른척하는 천하의 싸가지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몸이 납덩어리를 매단 듯 천근만근이다, 눈밑이 칼바람에 속절없이 떨리는 문풍지처럼 파르르 떤다, 풀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눈앞이 뿌옇다, 어머니가 열거하는 고통은 가깝고도 구체적이었지만 규의 마음은 멀고 먼 추상의 고통을 향해 내달렸다. 그런 규를 향해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남편과 달리 어머니는 온갖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끝내 마지막 말만은 접어두었다. 규로선 언제고 들을 각오가 되어있는 그 말. 그래서 간혹 이곳의 낭자한 고통이 마음을 짓눌러올 때면 규는 어머니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스스로 읊조려보곤 했다. 제 자식 잡아먹은 년이 무슨 염치로 남의 자식을 살리겠다고…………
- 아무도 없는 집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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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1-16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지감자야 하녀나부랭이야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11-17 10:55   좋아요 1 | URL
‘하’자 이름을 놀릴 수 있는 신박한 별명이요 ㅋㅋㅋ
 

벌써 일본의 극우세력은 이 상황을 군침을 흘리며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군대의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평화헌법‘의 폐기를 단단히 벼르고 있는 자민당 정권은 곧 다가올 참의원 선거에서의 압승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핵무장 국가 북조선‘의 등장은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지금 북한 핵무장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일본 국민들이지 지배층은 아닐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들의 호전적 목적 달성이더 쉬워진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 P281

실제로 ‘자유무역‘의 ‘자유‘가 뜻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자유로운‘ 강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확실하다. - P283

서구 자본주의국가들에서의 사회복지시스템이 소비에트사회주의체제 존속 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건재해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또한 대처와 레이건 정부에 의해 주도된 신자유주의 논리세계 전역을 휩쓴 시기가 어째서 소비에트사회주의 몰락 이후였는지 그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신자유주의란 자본주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형태의 약육강식 논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가 거침없는 폭주를 하게 된 것은 역시 소비에트사회주의라는 경쟁 체제가 소멸됨으로써 자본주의가 더이상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진 현실과 따로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 P283

일찍이 철학자 푸코는 복지국가를 정의하여, 그것은 국가가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을 낙인(烙印)찍고, 통제하는 방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푸코의 이 말은 복지국가체제가 내포한 어두운 진실을 어느정도 정확히 건드리고 있는 진술이라는 것은 쉽게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보면, 누군가의 말처럼, 복지국가(welfarestate)란 기실 전쟁국가(warfare state)와 모태가 같은 쌍둥이 형제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P287

"일을 하든 아니하든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할 것을 제안하는 것은 이러한 노동윤리 · 생활윤리와 정면에서 배치되는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은 근본적으로 ‘근대적인 노동윤리 · 생활윤리에 토대를 둔 가치, 신념, 관습, 제도를 뛰어넘어 새로운(그러나 실은 오래된) 지평, 즉 탈근대적 혹은 비근대적 세계를 안내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 P288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란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약육강식의 이데올로기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지만, 원자력 기술은 이 이데올로기의가장 과격한 체현물임이 분명하다. 즉, 원자력시스템은 끊임없이 약자들을 제물로 삼지 않고는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 ‘희생의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자력시스템이존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원전 인근 지역에서 늘 불안과 위험 속에 살아야 하는 시골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고, 둘째, 원전의 방사능 구역에서 온갖 궂은 작업을 수행하며 살아야 하는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며, 셋째, 처치 불가능한 핵폐기물을 떠안고 살아야 할 미래세대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자력은 안전하고 값싸고 깨끗하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 끊임없이 유포되는 상황에서 늘 진실이 희생되고, 진실에 기반을 둔 건전한 사회적 이성과 상식이늘 희생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P295

이렇게 보면, 오래전부터 원전을 도쿄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온 반핵운동가 히로세 다카시의 논리는 정곡을 찌르는 바가 있다. - P296

2015년 3월 말에 퇴임하는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키는 무척 홍미로운 인간이다. 지난 5년간 대통령 재임 중, 그는 오늘날 세계의 정치엘리트들과는 전혀 딴판의 언행과 자세를 보여주었고, 그럼으로써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언론의 끊임없는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이색적인 언행 중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은, 대통령 관저를 노숙인들의 거처로 내주고 자신과 아내는 수도 근교의 작은 농가 오두막에서 거주한다는 것, 대통령으로서 받는 봉급의 대부분을 시민단체나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나머지 얼마 안되는 돈(한국돈으로 월 약 170만 원)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점 등등이다. - P298

정말로 가난한 이는 물질이 부족한게 아니라 탐욕 때문에 ‘자유‘를 잃은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 P298

그는 엘리트 정치가들이 결여한 능력, 즉 풀뿌리 민중의 생활현실의 심부(深部)를 들여다보는 본능적 능력과 체질의 소유자이다. 예를 들어, 빈민가 가정을 방문할 때, 무히카 대통령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그 집 아이들이 자기만의 매트리스를 갖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루과이의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히카는 자신들의 생활 내면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지도자로서 계속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던것이다. - P300

고대 아테네인들은 인간이란 누구나 자기통치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의 유혹에 끝까지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그 바탕 위에서 역사상 최량의 정치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제비뽑기민주주의를 우여곡절 끝에 구축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문화적·예술적 활동도 그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궁극적 목적에 겨냥되어 있었고(아테네 제1 시민페리클레스의 말을 빌리면, 아테네 도시국가 전체가 민주주의의 학교였다), 그 결과 200년 이상 고도의 문명적인 시민생활을 향유했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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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잴 수 없는 것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1
에밀리 디킨슨 지음, 강은교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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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허무와 죽음과 소멸에 대한 시. 길 위의 돌멩이의 삶을 부러워하는 시인. 그녀 시의 그많은 대시(-)는 어떤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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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2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예요. 어찌나 대시가 많은지.... ㅎㅎ 그래서 뭔가 에밀리가 누군가에게 하는 얘기처럼 읽히기도 하더라구요.

햇살과함께 2022-11-12 22:37   좋아요 1 | URL
저는 뭔가 할 말이 더 있는데 생략하는 듯? 말줄임표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5장 제인 오스틴의 겉 이야기(와 비밀 요원들)
4장에 이어 오스틴 <노생거 사원> <이성과 감성> <에마> <맨스필드 파크> <설득>

<맨스필드 파크>의 민폐 캐릭터인 노리스 이모에 대한 상당히 긍정적(?)인 해석이 새롭다. 백설공주의 계모에 대한 재해석과 맥을 같이 한다.

(*) 334-335페이지 연결 문장에서, 토마스 경이 노리스 이모의 제부인데 형부라고 잘못 나옴. 번역 오류인지?
—> 내가 읽은 민음사판은 노리스 이모가 첫째로 나오는데, 미리보기 가능한 현대문화센터 버전은 둘째로 나오네. 번역본마다 해석이 다른가요.

데이와 에지워스 같은 청중을 위해 쓴 『여성 작가를 위한 편지』를 통해 우리는 왜 마리아 에지워스가 자신을 여성 문인, 아버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인물, 아버지의 통제를 당연하게도 갈망하고 두려워했던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작가가 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무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로부터 나를 건져주었다‘라고 마리아 에지워스는 속을 태운다. 이 걱정은 조지 엘리엇과 또 다른 책임감 강한 딸-작가가 표현했던 두려움의 섬뜩한 전조다. - P299

마리아 에지워스는 분명 그녀의 저자(아버지)가 없다면 자신은 존재할 수도 창작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라고 불렀던 그 문제를 자신이 아버지의 펜인 것처럼 글을 씀으로써 해결했다. 마리아의 많은 계승자들(개스켈부인, 제럴딘 주스버리, 조지 엘리엇, 올리브 슈라이너)처럼 그녀도 두통에 시달렸는데, 아마도 이런 해결 방법이 수반하는 긴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리아는 아버지의 편집 기술, 비평, 창의성만이 자신이 쉽사리 빠져드는 마음의 동요와 불안을 덜어주어 글을 쓰도록 이끌어준다고 확신했다. 이 점에서 마리아 에지워스는 『미들마치』의 도러시아 브룩을 닮았다. - P304

우리는 오스틴이 『노생거 사원』 이후 암묵적이고 반항적인 시각과 겉으로 드러낸 예의 바른 형식을 결합시키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스틴은 마리아 에지워스를 본보기 삼아 자신을 위해 글을 쓰면서, 다른 여성들이 짊어진 가정적인 의무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책임감을 고무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이 감히 펜을 든 것을 정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스틴이 죽은 이후 그녀의 친척들은 마리아의 아버지인 에지워스와 똑같은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오스틴은 (여성은 항상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거부할 필요가 있다는) 자기 이야기가 품고 있는 억압 덕분에 역설적으로 자신이 여자 주인공의 운명으로 규정하고 옹호한 감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에밀리 디킨슨처럼 오스틴 자신도 마침내 나는 ‘가능성 속에 살고 있다- / 산문보다 더 아름다운 집에서-‘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P307

동시에 우리는 오스틴 자신이 이 겉 이야기 아래에서 ‘모든 것을 수행하는 모습을 본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오스틴은 자신의 모든 ‘오류 없는 분별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독자들을 자극하여 ‘그곳에 없는 것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말괄량이 길들이기‘ 유의 성차별주의적인 이야기는 오스틴 자신의 자아분열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압지‘나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덮개를 제공해준다. 의심할 바 없이 여자는 남성적 가치에 숙녀답게 순종하고 동의해야 한다고 인정하는 이런 유용한 플롯을 통해 오스틴은 여성의 주장과 표현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상기 - P309

시키고, 이 불안은 여자인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오스틴의 의심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오스틴은 자신의 딜레마에서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점하는 지위와 여성으로서 짊어진 임무 사이의 모순에 붙잡힌 채 분열을 경험하는 모든 여성의 딜레마를 묘사한다. - P310

여성의 창의성이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오스틴의 문제의식으로 처음 등장하는 작품은 「레이디 수전이다. - P310

왜냐하면 레이디 수전과 프레더리카의 관계는 교활한 여왕과 천사 같은 의붓딸 백설 공주의 관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디 수전은 거의 편집증적으로 딸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혀 있다. 딸은 자아의 확장이자, 사회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파괴하거나 초월하려고 애쓴, 피할수 없는 여성성의 투사물이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에서 레이디 수전은 불가피하게 사회적으로 추방당한다. 어머니와 딸이라는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좀 더 후기의 소설에서 자매로 변형되어 다시 나타난다. 이는 오스틴이 어떻게 두 사람이 가능한(어떤 면에서 똑같이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상호 배타적인) 선택 중 하나를 구현했는지 고려해보고자 했기 때문이며, 때로는 분리된 자아의 두 가지 면이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 P311

「레이디 수전」에서는 상상력이 마키아벨리적 악과 관련된다면, 『이성과 감성』에서 상상력은 자기파괴와 밀접하다. - P312

특히 『이성과 감성』은 읽기 매우 고통스러운 소설이다. 오스틴 자신이 메리앤의 성실성과 자율성에 이끌리면서도 엘리너의 예의바른 허위와 내성적이고 겸손한 침묵에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엘리너의 작품이 병풍의 그림으로 묘사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 P313

그러나 오스틴만큼 철저하게 에마를 벌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에마는 상상력이 풍부한 다른 소녀들을 닮았다. 모든 여자 주인공들은 굴욕감을 느끼고 창피당하며, 심지어 위협을 받음으로써 분별력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 P315

오스틴의 자아분열(상상력의 매혹과 그것이 비여성적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불안)은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경험하는 사춘기 이후에는 대상이라는 지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모든 여성에게 고유한 딜레마에 대한 의식을 드러낸다. 시몬 드 보부아르 - P319

는 오스틴의 모든 여자 주인공들이 묻는 질문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단지 타자로서만 성취를 이룰 수 있다면, 어떻게 나의 에고를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 에마처럼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은 사춘기적 에로티시즘, 상상적 육체적 활동을 여성다운 억제와 생존과 양립할 수 없는,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는 활력으로 보게 된다. ‘그녀가 얼마나 부적절하게 행동했는가. […] 그녀의 행위는 얼마나 사려 깊지 못하며, 얼마나 버릇없고,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얼마나 무정했는가! 어떤 맹목과 어떤 광기가 그녀를 그렇게 내몰았던가!‘ [3부 11장] 자신의 무력함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은 항상 굴욕적이다. 그것은 자신의 위치가 권위를 부여받지 못하고 그저 한 명의 인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재능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면서 말 없는 자신의분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치욕스럽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기주장, 상상력, 재치는 자기를 정의하는유혹적인 요소다. 이런 요소는 각각의 여자 주인공들로 하여금자신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거나 지배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지배당하는 운명을 감수해야 하는 여성에게 이것은 매우위험한 환상임이 증명되면, 여자 주인공은 겸손, 과묵, 인내의이점들을 배워나간다. - P320

동시에 오스틴은 여자 주인공들이 ‘광기‘라고 불렀던 주체성을 그들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이 생기발랄한 자매와 조용한 자매의 상보성은 여성의 상황에 대한 이 두가지 부적절한 대응이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 P321

모든 여성이 세상을 향해 자기주장을 하고 싶은 욕망과 가정이라는 안전한 곳으로 숨고 싶은 서로 대립되는 욕망(말과 침묵, 독립과 의존)으로 분열해 있을지라도, 오스틴은 이런 심리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 P321

오스틴이 가장 주의 깊게 이 이중성의 대가를 탐색한 『맨스필드 파크』(1814)에서 우리의 성숙한 작가는 여성에게 매우 흔한 심리적 분열이 재통합될 수 없을 때 어떻게 그것이 전면적인 파편화로 폭발할 수 있는지 극화한다. 오스틴의 소설 중 이소설만큼 자아와 타자의 갈등으로 개인이 정신분열을 일으켜 파편화될 가능성을 민감하게 묘사한 작품은없다. 오스틴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재능에 대해 가장 격심하게 갈등을 겪는 듯하다. - P323

여자 주인공들이 복종하는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틴은 소설에서 자신의 이중적인 인식, 즉 자기주장과 반항의 즐거움을 폭로하면서도 온순함과 자제를 주장하는 이중적인 인식을 성공적으로 견지한다. 실제로 오스틴 소설의 희극은 그녀의 예술적 자유와 인물들의 의존성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탐색한다. - P331

이 사나운 여자는 책의 끝에서도 길들여지지 않은 채 여전히 말하고 있는데 아마도 끝까지 결코 길들여질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찬양을 정당화하려는 듯, 오스틴은 노리스 이모에게 지속적인 추진력을 부여하는 플롯을 구성한다. - P336

노리스 이모는 비록 비난받는 인물이었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기쁘게도 오스틴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격찬하며 즐거워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노리스 이모는 『맨스필드 파크』에서 가 - P336

장 기억할 만한 목소리 중 하나다. 그녀는 백설 공주의 계모인 부산하고 교활한 여왕을 닮았을 뿐 아니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과도 닮았다. 오스틴 소설의 모든분노에 찬 귀족 과부들은 남성 신의 계몽적 이성을 위협하며, 남성 신은 결국 여성의 섹슈얼리티, 변덕, 수다의 힘을 추방함으로써만 여자 주인공을 얻는다. 밤의 여왕이 여전히 격렬한 저항의 노래를 열광적으로 부르면서 무대 뒤로 사라지는 <마술피리>처럼, 노리스 이모 같은 여자들은 결코 완전히 억압될 수 없다. 『이성과 감성』에서 멸시당하는 페라스 부인이 좋은 예다.
엘리너 대시우드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속여왔던 이기적인 남자가 벌 받기를 바라기만 하지만, 페라스 부인은 가차없이 징벌을 가한다. 가부장적 상속권에 간섭함으로써 페라스부인은 엘리너가 중시하는 형식이 임의적인 것임을 증명한다. 비록 『이성과 감성』은 메리앤과 엘리너 같은 젊은 여성들이 남성 보호자를 찾고 사회의 강력한 인습에 복종해야 한다는 명백한 메시지로 끝날지라도, 페라스 부인과 그녀의 피보호자인 교활한 루시 스틸은 여성들 자신이 억압의 대리인, 인습의 조정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 P337

자신의 플롯이 암시하는 의미를 재검토하려는 듯, 오스틴은 『설득』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과 삶의 이야기에 대한 포기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색한다. - P342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앤의 말은 ‘변덕‘에 대한 남자의 비난이 가부장적 문화가 부여한 이미지에 가둘 수 없는, 억압할 수없는 여성의 내면에 대한 공격임을 상기시킨다. 비록 앤은 차마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해‘ [2부 11장] 자의식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이들 이미지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고, 단지 『준남작 명부』를 『해군 목록』(여자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 책)으로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앤은 여전히 여성의 주체성에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본보기다. 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의 친구들이 만들어놓은 죽은 자아를 해체했을 뿐만 아니라 자아와 자신의 과거를 재검토하고 재평가한다. - P348

웬트워스가 첫 반응으로 펜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러고 나서 웬트워스는 조용하게 하빌 대위를 위해 일하는 척하며 앤에게 청혼서를 쓴다. 그는 방을 떠나기 전에 앤에게 말없이 청혼서를 건넨다. 반갑지 않은 방해를 받을까 봐 경계하면서 화이트하트 여관의 공용 응접실에서 편지를 쓰고, 진정한 의도를 감추기위해 다른 편지를 일종의 압지로 사용하는 웬트워스 대위의 모습은 오스틴 자신과 겹쳐진다. - P349

그들 모두 자신들이 여성적인 온순함을 회피하고 보류할 때, 한편으로는 몽유병으로 빠지지 않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멸하는 그들이 오염되어 비속함으로 빠지지 않게 해주는, 이중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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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2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얄미운 노리스부인! 그런데 생활력으로 따지면 뭐 최고겠더라구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2-11-12 22:41   좋아요 1 | URL
저도 너무 얄미워서! 제가 젤 싫어하는 인간 타입이라 ㅎㅎ 옆에 있음 엄청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요~

2022-11-1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3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3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과함께 2022-11-13 12:52   좋아요 0 | URL
제 댓글이 좀 헷갈리는 것 같아 수정했어요~
민음사판은 첫째 현대문화센터판은 둘째입니다^^

2022-11-13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3기니 다시 읽기

그러나 당신의 편지처럼 대단히 주목할 만한 편지를 답장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서신 교환 역사상 유례없는 편지였으니까요. 언제부터 교육받은 남성이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해야 할지 여성의 견해를 물어보았습니까? 그러니 그 답을 시도해 보기로 합시다. 비록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라하더라도 말이지요.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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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2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판에는 3기니가 자기만의 방과 같이 들어있군요. 저는 솔출판사걸로 가지고 있어서 각각 따로 2권입니다. ㅎㅎ

햇살과함께 2022-11-12 22:46   좋아요 1 | URL
저는 읽기전에 <자기만의 방>이 500페이지인 줄 알았어요. 근데 달랑 170페이지. 분량도 더 많은 3기니도 제목에 같이 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3기니는 민음사 북클럽 특별판으로 읽었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재독하고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