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운동 부족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데 그 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문제, 사무실의 디자인, 아니면 단순히 게으름으로 인한 정적인 생활에서 찾을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인간의 뇌와 신체는 걷기 - P8
를 통해 더욱 나아질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의 감정, 생각의 명료함, 창의성, 사회·도시·자연과의 연계성 등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걷기는 모두에게 필요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정기적으로 걷는 행위는 개인과 사회 전반에 많은 이득을 제공하고, 또 이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 책은 걷기의 과학과 산책을 할 때 느끼게 되는 진정한 즐거움 두 가지 모두에대한 예찬이다. 단순한 행동의 변화가 신체적·정신적인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싶다. 걷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이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다. 우리의 두뇌와 신체는 일상생활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에서의 움직임을 위해 고안되었다. 규칙적인 움직임과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사고, 감정 그리고 창의성을 개선시키고 동시에 건강을 증진시켜줄 것이다.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인간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해 걷기를 시작하자. - P9
그들은 세 번의 실험을 통해 실험 참가자가 앉아 있을 때보다 일어서 있을 때 과제의 결과를 더 빠르게 도출해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지 서 있기만 하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인지와 신경계가 더 활성화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걷기가 뇌 혈류를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장시간 크게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저 규칙적인 간격으로 일어서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인지적 활성화를 일으켜 보다 많은 신경인지적 자원을 활성화해 뇌의 상태에 변화를 가져온다.걷기가 인지 조절 향상 외에도 다른 많은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걷기가 심장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심장 말고도 몸 전체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걷기는 스트레스와 손상을 입은 신체의 기관들을 보호하고 기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음식물의 장 통과를 도와 소화기능에 순기능을 발휘한다. 정기적인 걷기 활동은 노화에 제동을 걸고 더 나아가 역노화라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 P18
걷기는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하고, 내면을 자신과 차단시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역시 운전을 하고, 항상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그러나 걷 - P19
기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이동수단이다. 걷기로 많은 것을 해소할 수 있다. 걷기는 정신을 맑게 해 꼼꼼히 생각하고 사고할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몸과 뇌의 경험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다른 종류의 움직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자전거, 기차, 버스와 같은 이동 수단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주변 환경과 단절시킨다. 기계적으로 전진하고, 때로는 유리 가림막 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며, 충돌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 잡히고 새로운 노래를 찾아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거기엔 매우 특이한 수동성이 있다. 바로 앉아 있는데도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걷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걷기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발이 다른 발보다 앞서 나가고 자신의 동력을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이고 우리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P20
내가 호주머니 속 개인 연구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한가? 스마트폰 워킹앱은 걷기를 실천에 옮기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만보계는 나의 죄책감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나는 하루에 최소 9,500보를 걸으려고 노력하고 가능한 매일 1만2천 보 이상 걷기를 바라며, 1만 4천보 이상 달성한다면 아주 만족한다. 현재 나는 9,500 보라는 일일 목표는 거의 매일 달성하고 있고 한 달 기준 18일 정도는 1만 2천 보를, 10일 - P36
정도는 14,500보를 달성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만보기 기능이 없다면 매일 몇 보를 걷는지, 정확하게 오랫동안 기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앱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기록한다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이러한 지루한 작업은 주머니 속 작은 로봇에 맡기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 P37
엘리엇이 "가자, 당신과 나"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걷기라는 놀라운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과학, 역사, 골격과 근육 그리고 신경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매우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넘어지고, 느긋하게 걷고 어슬렁거리고, 가끔은 헤매고 터벅터벅 걷고, 유유히 걷고, 저벅저벅 걷고, 성큼성큼 걷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떼며 걸어가자. 우리의 여행은 고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움직임의 역학 그리고 두뇌의 가장 깊은 곳으로 떠나 세계 여행을 하게 되고, 또 목적을 가지고 함께 걸으며 세상을 바꾸는 여정을 그릴 것이다. - P39
제7장 공포의 쌍둥이메리 셸리의 괴물 이브<미들 마치> <프랑켄슈타인>
마지막 요점을 먼저 말하자면, 밀턴이 딸들에게 자신의 말을 받아쓰게 하는 장면은 18세기 말과 19세기에 걸쳐 매우 인기있는 장면이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거처로 이사 간 키츠가 처음 한 일은 책 짐을 풀고 ‘헤이든이 그린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딸들과 함께 있는 밀턴을 나란히‘ 핀으로 꽂은 것이었다. 강력한 아버지에게 천사처럼 봉사하는 착하고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이 그림은 서구 문화가 가장 애호하는 환상의 본질을 거울로 비추어주는 것 같다. 동시에 (『미들마치』의 문단이 암시하고 있듯)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봉사를 받는 아버지라는 밀턴의이미지는 절대적인 권력을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그가 여자 자손들에게 의존하는 상태라는 점을 암시할 뿐이다. 눈이 먼 신과같은 시인은 비서의 도움뿐만 아니라 차와 동정도 필요하다. 따라서 적어도 약간의 신성을 상실하고 인간화된다. 그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자면) 삼손화되었다. 그리하여 눈이 먼 로체스터를 시골의 영지로 이끌고 다니는 제인 에어가 자신을 유용하고도 동등한 존재로 만드는 델릴라적인 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샬럿 브론테가 암시하듯, 조지 엘리엇도 똑같은 도상적 전통속에서 낭만주의적으로 허약해진 캐저반과 동등해지고 싶은 도러시아의 은밀한 욕망을 암시한다. ‘그녀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알고 싶어한 것은 전적으로 미래의 남편에게 헌신하고 싶어 - P404
서만은 아니었다.[……] 도러시아는 아직까지 현명한 남편을 둔것에만 만족할 정도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련한 아이 같은 그녀는 현명해지고 싶었다. - P405
만일 도러시아의 열정적인 본성이 밀턴의 딸들이 처한 부정적인 역사를 논평하고 있다면, 캐저반의 둔감한 본성은 밀턴의역사적 이미지를 더 강력하게 말한다. 모든 신화를 여는 열쇠의주조자인 캐저반은 숭고함을 장엄하게 정당화하는 밀턴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독선적이며 현학적이고 재미없는 그는 『미들마치』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천상의 학자에서 성가시고 지루한 학자로, 무덤에서도 도러시아를억압하는 외고집의 시체로 쪼그라든다. 신중하게 표현한 그의소멸을 보건대, 그는 밀턴이라기보다 바이런적으로 매력이 없는 밀턴의 사탄과 더 유사해 보인다. 죄 많은 육체에 대한 거부, 도러시아의 여성성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포악함, 독단주의로인해 캐저반은 밀턴적인 여성 혐오주의자를 풍자하는 그림자처럼 보이며, (동시에)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기념비적인 책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육체적 열등성』을 쓴 붉은 얼굴의 격노한X 교수‘의 초판본이 되고 만다. 그런 남자와 쉽지 않은 결혼을한 야심적인 도러시아는 불가피하게 비참한 여성의 원형으로(블레이크는 이를 가리켜 밀턴의 세 아내와 세 딸들이 합해져슬퍼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밀턴의 울부짖는 ‘여섯 겹의 에머네 - P409
이션‘이라 불렀다) 변해간다. 그녀 자신이 밀턴 딸들의 전형을좀 더 희망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이 엘리엇이완벽하게 의도했던 아이러니다. - P410
하나의 선택은 남성의 신화에 표면적으로 온순하게 순종하며, ‘아버지에게 봉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또 다른 선택은 동등성을 획득하기 위해 몰래 공부하는 것이다. - P411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쓰기를 선택한 여성 작가는 비록 자신의 분노를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남성이 만든 장르나 인습 안에서 여성의 비밀을 은폐하며 양피지에 덧쓰거나 암호화된 예술 작품을 생산했다. 『폭풍의 언덕』을 비롯해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도깨비 시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 실비아 플라스의 『에어리얼』같은 좀 더 최근의여성 (페미니즘적이기까지 한) 신화들은 바로 이런 방법을 선택한 여자들의 작품이다. 물론 『실낙원』에 대한 다시 쓰기와 다시 쓰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가부장적 시학의 관계는 20세기 들어 (20세기의 여성들은 밀턴의 언어를 몰래 공부해 그들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여성의 전통을 유례 없이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점점 상징적이 된다. 『실낙원』에 대한 불안을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여성적 상상력을 볼 수 있는 곳은 초기의 좀더 고립된 『프랑켄슈타인』이나 『폭풍의 언덕』같은 소설이다. 특히 『프랑켄슈타인』은 여성에게 「실낙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 P413
메리 셸리의 유명한 일기가 주로 자신과 퍼시 셸리의 독서 목록 일람표라는 사실이 그녀의 이례적인 과묵함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일화는 메리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대다수 작가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적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빈번하게 감정적인 행위였음을 강조한다. - P417
『프랑켄슈타인』 서문에서 고백하듯, 메 리셸리도 어린 시절 문학의 ‘백일몽‘ 속에서 살았다. 나중에 메리셸리와 시인인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스스로 ‘[그녀의] 부모의 이름에 어울리는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고 ‘[그녀 스스로] 명성의 목록에 오르기를‘[서문] 바랐다. 어떤 의미에서 월턴의 시적 실패가 밀턴적 맥락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메리 셸리는 월턴의 서사를 통해 불안한 환상을 은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판타지 중 하나는 예술, 말, 자율성이 가득한 잃어버린 낙원에서 섹슈얼리티, 침묵, 더러운 육체성이 (‘죽음의 우주, 그것은 신이 저주로 창조한 악, 다만 악을 위한 선, / 거기에서 모든 생은 죽고, 죽음은 살며, 자연은 만들어낸다, / 심술궂고 모든 괴물 같은 것, 모든 기괴한 것들을‘ [2622~625행]) 상징하는 지옥으로 추락하는 여성의 공포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다. - P423
동시에 이 모든 인물들 사이의 유사성(소외감, 죄의식, 고아와 거지 신세 등)은 교묘하게 놓인 거울들 사이의 유아론적 관계처럼 그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관계를 암시한다. 이 소설에서묘사되는 다수의 결혼과 로맨스의 핵심에 들어 있는 거의 숨김없는 근친상간은 이 지옥 같은 유아론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강화시켜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여동생 이상인’ 엘리자베스 라벤자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 빅토르는 엘리자베스를 항상 ‘자신의 소유‘로[1장] 간주했다고 고백 - P425
한다. 월턴이 쓰는 편지의 수신자로서 베일에 싸여 있는 사빌부인도 겉으로는 어떤 의미에서 월턴의 ‘누나 이상‘이다. 그것은마치 카롤린 보포르가 아버지의 친구인 알퐁소 프랑켄슈타인에게 분명 아내 ‘이상‘이고, 사실상 딸과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무 관계 없는 저스틴조차 은유적으로는 프랑켄슈타인 집안과근친상간적 관계를 맺은 것처럼 나타난다. 그들의 하녀로서 저스틴은 그들의 소유물이자 여동생 이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빅토르가 스코틀랜드에서 반쯤 만든 여자 괴물은 그 괴물의 짝이면서 여동생 이상의 상대가 될 것이다. 둘 다 똑같은 부모/창조자를 두었기 때문이다. - P426
따라서 밀턴과 밀턴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메리 셸리에게 근친상간은 매슈 아널드가 훗날 ‘자신과의 마음의 대화‘라고 불렀던 자기 인식에 대한 유아론적 열광 때문에 나타난, 피할 수 없는 은유였다. - P427
이처럼 자신이 여자이고, 따라서 타락했고 부적절하다는 여자아이의 무서운 발견은 프로이트의 개념, 즉 잔인하지만 은유적으로는 정확한 남근 선망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리라. 분명 빅토르프랑켄슈타인이 (그리고 메리 셸리가) 이브, 아담, ‘죄‘, 사탄과맺는 다양한 관계에 거의 기이할 만큼 불안한 자아 분석이 함축되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남근 선망을 암시할 것이다. - P435
프랑켄슈타인을 미친 과학자의 원형으로만 강조하는 비평가들과 영화 제작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지만, 괴물의 쓰라린 자기 현시가 메리 셸리의 가장 인상적이고 독창적인 성취인 것처럼, 이름 없는 괴물의 독백이 드러내는 과감한 시점의 이동은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뛰어나고 기술적인 묘기일 것이다. - P437
여성의 나르시시즘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괴물성은 많은 여성이 자기 육체의 특징이라고 배워온 글자 그대로의 괴물성과 비교해보면 포착하기 힘든 ‘기형성‘이다. ‘괴물의 모습을 한 여자/여자의 모습을 한 괴물‘이라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20세기식 묘사는 단지 여자들이 자신을 괴물로 정의하는 긴 역사의 도정 중 가장 최근에 속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주나 반스의 『혐오스러운 여자들에 관한 책』에 나오는 무서운 이미지들이나, ‘땀 흘리는 하얀 황소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나니 / 우리의 성기는 추하다’는 데니즈 레버토프의 말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석고상 안에서」의 ‘늙고 노란‘ 자아는 전부 유구한 역사의 한자락이다. - P445
메리 셸리가 괴물의 육체적 ‘기형’으로 이브의 도덕적 ‘기형’을 상징하듯, 괴물의 육체적 추함은 사회적 위법성, 잡종성, 무명성을 나타낸다. - P446
이웃집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신비의 여인’ 에밀리.“그게 시예요?”내가 물었습니다.”아니, 시는 바로 너란다. 이건 시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 점에서 ‘베트남의 한국병사‘에 관한 저 에피소드는 심히 뼈아픈이야기이다. 식민지 백성으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뼈저리게 경험한 한국인이 다른 아시아 민족의 반 - P308
식민주의 투쟁을 저지하려는 제국주의 세력의 용병 노릇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그 민족을 돕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것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자기망각, 자기배반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과거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 파병문제에 관련해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반응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라는 거친 항변, 혹은"그게 역사적인 과오였다고 할지라도 베트남 파병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만큼 골치 아픈 이야기는 묻어두자"라는 매우 실용주의적 입장이다. 물론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과오 없는 역사가 있을수 없다. 그리고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슬기로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파병문제와 같은 것을 잊어버리자고 하는 것은, 이 나라를 윤리적황무지로 만들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 P309
어쨌든 검찰을 비롯하여 언론, 국회, 법원, 경찰 등등, 국가기구들이종래의 억압적 혹은 권위주의적 태도와 자세를 다소간 누그러뜨리고 국민 대다수의 요구에 보다 순응적으로 된 것은 촛불집회와 촛불시위의 위력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촛불이 겨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하나를 바꾸는 수준, 혹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촛불은 모름지기 권력과 민중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 모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좋은 사회‘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지, 그것을 근본적으로 묻고 거기에 대답하고 실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한 싸움, 즉 4·19와 5·18 그리고 6월항쟁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시민혁명을 수행하는과정 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 P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개표 직전까지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조사는 힐러리의 낙승을 장담하거나 점쳤다. 이것은 미국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을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들‘이 미국사회의 ‘밑바닥 심리‘를읽어내는 데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그것은 미국의 기득권층과 민중사회 사이의 괴리가 매우 심각하다는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지표가 된다고 할 수도 있다. - P320
실제로 《자본주의는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가》(2016)의 저자 볼프강 슈트렉을 비롯해서 적지 않은 경제학자, 지식인들이 이미 자본주의의 종언을 단언하기 시작했고, 그들 중 일부는 자본주의의 종식에 따른 대안 체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포함해서 자본주의와 성장시대의 종언을 말하는 지식인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더욱더 필요한 것은 보다 질 높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탈성장‘ 시대의 ‘좋은 삶’은 ‘공유경제‘, 즉 공동체 전체의 부를 구성원들이 고르게 나누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얼마나 발휘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부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확립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 P323
정지아 작가 인터뷰만 읽고, 다미여 7장 읽기<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읽어봐야겠네. 아. 시간이…세 분 어쩜 이리 닮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