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 편집자님 아니 작가님 첫 소설집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해서 받았다. <나주에 대하여>는 작년 신춘문예 당선시 기사로 읽었고 또 읽는다. 민음사 TV 말줄임표 애청했는데 요즘 뜸했네..

나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어떻게든 완성이 되는 형태여야 하겠지만, 완성처럼 보이는 미완성이어야 하겠지만.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이어지지 않은 것들은 끊어지지도 않으니까. 완성보다 미완성이 더 오래 지속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종결되지 않은 것들이 내 주변을 행성처럼 돌고 있는 편이 더 행복하다고. 하루의 끝에 이불을 덮고 누워 오늘은 어떤 이름이 붙은 미완의 행성을 떠올려볼까…… 그런 고민을 하고 누운 자리에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과거의 사람들을 곱씹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에 살까 상상하는 일이 좋았다. 여러 생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사는 생활과 그리는 만화는 비슷했다. 나는 짝사랑이 좋았고 완성하지 않은 여러 짝사랑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짝사랑하는 만화를 그렸다. 매듭지어지지 않는 사랑 키스하지 않는 주인공. 댓글은 아우성이었으나 나는 연재한 지 일 년쯤 지나서는 댓글도 잘 보지 않았다. - P12

그런 것들은 너무 많다. 이를테면 천희는 언제나 조금 느렸고 세상물정에 서툴러서 해맑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그 서툶이라는 것이 편의점 신상품을 오래오래 신기해한다든지 그런 걸 꼭 들어올려 360도로 돌려가며 구경하다 꼭 하나씩 떨어뜨려 주변의 걱정을 사곤 하는 것, 우유에 꽂을 빨대 대신 나무젓가락을 챙겨온다든지 커피 하나를 사면서 터무니없이 큰돈을 내거나 거스름돈을 잘못 챙겨도 모르는 수준의 서툶이었다.

- 새 이야기 - P31

그러나 규희는 내내 착각하고 있었다. 말투가 조심스럽다고 파괴력을 지니지 않은 건 아니다. 너만큼 모든 걸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하필 자신의 애인을 향해 약간, 이해가 안 돼, 라고 말한다는건・・・・ 그리고 내가 그 말뜻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나에 대한 기만이다. 너를 사랑하고 너를 관찰해온 나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기만. - P54

나는 네가 뒤라스의 『연인』은 리스트에 넣고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넣지 않아서 너를 좋아했다. 나는 너의 취향을 대부분 신뢰했다. 종종 너무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만으로 일상을 구성하고 편집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의도하는 의도하지 않았든) 스스로의 약한 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상처받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는 스스로를 전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네가 가진 다른 부분에서 느낀 호감이 그 작은 부분들을 상쇄시켰다. - P58

나는 생애 전반에 걸쳐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원망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성향을 가진, 내향 인간들을 항상 좋아하면서도 서운했다. 나는 매번 제안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천천히알아가고 조심스럽게 가까워지고 싶다는 사람들의 팔을 붙들고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흔드는 쪽은 백이면 백 나였다. 그런 나도 좀 병적인가. 어느 모임에서나 그런 유의 사람들을 좋아해 서촌으로 커피 마시러 갈래요? 광화문으로 생선구이 먹으러 갈래요? 하고 물으면 그들은 언제나 사려 깊은 표정으로 아, 네, 좋아요, 언제든 단이씨 편하신 시간에…… 라고 대답해왔다. 거절이 아닌것만으로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늘 속이 꼬였다. 너희들은 좋겠다. 우아하게 컨펌할 수 있어서 좋겠어. 누군가가 물어보면 음・・・・・・ 하고 고민하고 마침내 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서 좋겠다. 나도 그런 역할 좀 맡아보고 싶네. - P63

나는 머쓱하다는 표정을 지어내며 너의 말을 듣는다.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론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하다. 나도 너처럼 우아하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고 싶거든. 괜히 아무도 부추기지 않았는데 혼자 침묵에 불안해져 까불지 않고. 나도 누가 웃겨주면 웃고만 있고 싶다고. 내향 인간을 마주하고 속이 꼬인 사람처럼 또 그렇게 혼자 속으로 툴툴거렸다.

- 나주에 대하여 - P65

수언은 늘 솔지의 목소리가 복잡하다고 느꼈다. 고민을 털어놓고 이런저런 의견이나 감상을 말할 때의 목소리에 레이어가 있다고, 곁이 있었다. 수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솔지를 풍부해 보이도록 하는 매력적인 곁이 아니라 쓸데없는 겹이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스스로 처세를 잘한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의식하는 (그렇지만 자신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믿는) 자의식이 도드라지는 사람의 겹이었다.

- 꿈과 요리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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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2-07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등단작 기사로 읽고 민음사유투브에서 본 작가님인데 글맛이 있더라고요~

햇살과함께 2022-12-08 08:57   좋아요 1 | URL
겉으로 말하지 못하는 내밀한 생각, 갈등을 묘사하는 글이 좋네요~
주말엔 민음사 TV도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그러나 당신은 찬사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인용문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지요. 분명 침울한 당신의 표정으로 보아, 전문직 생활의 특징에 관한 이 인용문들은 당신에게서 어떤 우울한 결론을 이끌어낸 게 분명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즉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악마와 심해(深海) 사이에 놓여 있다고 당신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우리 등 뒤에는 가부장제가 있습니다. 무의미하고 비도덕적이며 위선적이고 굴욕적인 사적 가정이 있지요. 우리 앞에는 공적 세계가 있습니다. 소유욕이 강하고 시기심이 많으며 호전적이고 탐욕적인 전문직의 세계이지요. 전자는 우리를 하렘의 노예처럼 감금합니다. 후자는우리에게 벌레처럼 머리부터 꼬리까지 오디나무, 그 신성한 자산의 나무를 맴돌도록 강요합니다. 그것은 해악들 중의 선택입니다.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나쁘지요. 차라리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들어 그 게임을 끝내고, 인간의 삶 자체가 착오라고 선언하며 끝장을 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 P293

이번에는 19세기 남성의 생애가 아니라 여성, 직업을 가진 여성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하지만 당신의 서고에는 빈 곳이 있어 보이는군요, 부인, 전문직에 종사한 19세기 여성들의 전기는 한 권도 없습니다. 톰린슨, F.R.S. (영국 학술원 회원), F.C.S. (화학 협회 회원)이라는 어떤 사람의 부인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젊은 숙녀들의 보 - P294

육직 취업을 권고하려고‘ 책을 쓴 이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정교사로 일자리를 얻는 것 외에 미혼 여성이 생계비를 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성격적으로나 교육으로 인해서 또는 교육의 결핍 때문에 여성이 그일에 부적합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글이 쓰인 것은 1859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채 백 년도 되지 않은 과거이지요. 이것이 당신 서고의 빈 곳을 설명해 줍니다. 가정교사를 제외하고는 전문직을 가진 여성들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생애를 기록한 책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사의 전기 즉 기록된 생애는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가정교사의 생애를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전문직 여성의 삶에 관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다행히 오래된 상자들이 옛 비밀들을 꺼내놓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1811년경에 쓰인 그러한 문서 하나가 기어 나왔지요. 무명의 위턴 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다른 무엇보다도 직업 생활에 대한 자기 생각을 휘갈겨 쓰곤 했지요. 그런 생각들 가운데 한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아, 라틴어,프랑스어, 예술, 과학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종종걸음 치듯 바느질하고 가르치고 베껴 쓰고 설거지하는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든 왜 여성은 물리학, 신학, 천문학 등등과 그에 따른 화학, 식물학,논리학, 수학 등을 모두 배울 수 없는 것일까?‘ 가정교사의 생애에 대한이 논평,가정교사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 질문은 암흑으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 P295

전기에서는 완곡하게 간접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여지없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바, 이 교사들은 가난, 순결, 조롱이었고, 그리고ㅡ하지만 ‘권리와 특권의 결핍‘ 을 함축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그 구태의연한 단어, ‘자유‘에 압력을 가해 확장시켜 다시 한 번 사용할까요? 그렇다면, ‘비실재적 충성심으로부터의 자유‘가 그들의 네 번째 교사였습니다. - P299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교육과 교육이 낳은 결과를 비판한 그 유명한 단락을 다시 한 번 인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그녀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느끼며 크림 전쟁을 환호한 것도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다른 원전들(유감스럽게도 그 원전들은 무수히 많지요.)에 제시된 양성의 생애에서 아주 풍부하게 입증되듯이, 그 교육이 만들어낸 공허 - P300

함, 치졸함,원한, 폭정, 위선, 비도덕성을 예시할 필요 역시 없을 것입니다. 어떻든 그 교육이 한 성에 가혹했음을보여주는 마지막 증거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전쟁‘ 에 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의 병원, 수확기의 들판, 군수공장에는 대체로 그 교육에 대한 끔찍한 공포에서 달아나 비교적 마음에 맞는 곳으로 피신한 여성들이 몰려들었지요. - P301

되풀이하여 요약하자면 성, 계급 혹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전문직에 들어가도록 돕는다는 조건으로 당신은 1기니를 받게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신이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가난,순결,조롱, 비실재적 충성심으로부터의 자유와 결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지요. - P302

그 밖에 비록 조건이 많아 보이고 기니는 유감스럽게도한 닢밖에 없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그 조건들을 달성하기란 대부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첫번째 조건―생계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을 제외하면, 다른 조건들은 영국의 법률에 의해서 - P305

대체로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영국의 법은 여성이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영국의은 우리에게 국적이라는 정식 낙인을 찍지 않았으며, 바라건대 앞으로도 오랫동안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허영심과 자만, 과대망상증이라는 현대의 커다란 죄악을방지하는 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것, 정신의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 말하자면 조롱과 질책, 경멸ㅡ을 우리의 남자 형제들이 지난 몇 세기 동안 그러했듯이앞으로도 몇백 년 동안 우리에게 제공하리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영국 국교회가 여성을 고용하기를 거부하는 한―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를 배제하기를!ㅡ그리고 유서 깊은 학교와 대학교들이 그 기금과특권의 한몫을 우리에게 허용해 주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편에서 조금의 노력도 들이지 않고 그러한 기금과 특권의 소산인 특정한 충성심과 신의의 맹세에서 면제될 것입니다. 더욱이 사적인 가정의 전통 즉 현재의 이면에 놓인 대대로 내려온 기억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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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 녹색평론 서문집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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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5월에 시작한 게으른 읽기가 12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고 김종철 선생님의 녹색평론 서문집으로, 창간사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농업, 생태, 기후위기, 민주주의, 탈성장 등에 대한 한결같은 걱정, 우려, 비판과 대안적 목소리를 담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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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주목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다. "남북이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지난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행한 발언이라고 보도되었는데, 우리는이 말에서 너무나 닳고 닳은 직업정치인들의 상투적인 말을 들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이 말은 어떠한 가식적인 꾸밈도, 거창한 개념적인 어휘도 없이 매우 알아듣기 쉬운 소박한 일상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쉬운 표현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과 실감에 매우 충실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여기서 우리는 남북연합이니 연방제니 1국가 2체제니 하는 남북 간의 관계설정에 관련해서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이 흔히 쓰는 공식적인 어휘들을 접할 때와는 전혀 다른 ‘진정성‘과 ‘절실한 마음‘을 확연히 느낄 수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의 수구언론의 눈에는 대통령의 이 - P349

말이 ‘반헌법적‘ 발언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이 말이 "대통령은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적혀 있는 헌법66조 3항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실로 기발한 주장을 하고 있다(<조선일보> 온라인판, 2018년 3월 21일).) - P350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에게는 아무런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상, 신조도 없다는 점이다. 종잡을 수 없는 경박함과 무례함, 퇴영적인 언행으로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면서도, 그가 여전히 상당한 대중적 지지 속에서 대통령직 수행을 계속하는 것은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과 그 자신이 기성의 엘리트층에 대한 극심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결코 우연적으로 등장한 인물이 아니 - P350

다. 트럼프의 등장은 오늘날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계의 민주주의-정확히 말하면 선거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상징하는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 다수는 그동안 상류층 엘리트들이 온갖 논리로미화해온 자유민주주의가 실은 대중을 배제한 엘리트들만의 민주주의임을 온몸으로 체득해왔고, 그 과정에서 쌓인 분노를 어느 모로 보나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트럼프라는 인물에게 표를 던지는 것으로써 표출한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에서는 전체 유권자들 중 절반 이상이자신들의 생활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든 독재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니까 트럼프가 결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패퇴를 표상하는 인물이라면, 그에게서 민주주의의 재생도, 좋은 정치를 기대하는 것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인물이기에 트럼프는 지금 해묵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미국의 엘리트정치가, 외교관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북핵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351

아마도 그런 까닭에 최근 영국의 <가디언>은 세계 전역에서 곤충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일반 보도기사가 아니라 사설社說)로다루었는지도 모른다. <가디언>(2018년 10월 19일)에 의하면, 자연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온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인 푸에르토리코의우림(雨林)에서 지난 40년 동안 곤충의 수효가 약 60분의 1로 줄어들었 - P357

고, 그 결과 곤충을 먹고 사는 새와 도마뱀 등도 3분의 1 내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심히 불길한 느낌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독일에서도 같은 기간에 무려 75퍼센트나 곤충의 수효가 줄어들고, 영국에서도 나비와 벌을 비롯하여 수많은 곤충들이 사라졌다.
더욱이 이런 현상을 확인한 조사·연구의 대상 지역이 도시나 도시 근처의 오염 지역이 아니라 ‘인간의 간섭 범위‘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연보호 지역들이라는 점은 더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살충제나 대기와 물의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은 지금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렇게 곤충이 사라지는 데는 기후변화라는 요인도 크게 가세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 P358

지난 10월 초 인천에서 열린 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 참석한 과학자 전문가들은 세계를 향하여 또다시 다급한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요지는 산업혁명 직전의 지구 평균기온보다1.5도를 더 초과한다면 지구사회가 대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적어도 2030년까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보다 40~50퍼센트까지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의 이 회의의 결론이 주목을 받는 것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내지 2.0도 이내로 억제할 것을 목표로 했던2015년의 파리기후협약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은 장차 닥칠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한 대응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새로운 과학적 평가에 따라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 P359

위에서 언급한 <가디언>의 사설은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라는 엄중한사태에 직면하여 우리가 개인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손쉬운 일로서 <캉디드>의 작가 볼테르의 권유대로 우리가 각기 나름대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부연 설명이 생략된 갑작스러운 결론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적절한 제안도 없을 듯하다. - P362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근한 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어떤 경작방식에 의한 것인지, 어떤 경로로 식탁에 도달했는지 등등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최대한 육류와 낙농제품을 줄이고 가까운 논밭에서 수확한 유기농산물 중심의 식단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난화 가스의 주된 원천으로 흔히 지목되는 것은화석연료에 기댄 전력생산 시스템, 개인자동차 중심의 교통수송체계,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세계의 농지에 광범하게 적용되어온 대규모 산업농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 시스템을 최대한 신속히 확대하는 것과 석유 의존 수송수단을 대폭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혁명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긴급한 과제이지만, 산업농시스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길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농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업화된 대규모 단작농사를 의미하지만, 과학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생태계 파괴의 원흉이자 동물학대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대규모 축산산업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도 실제로 엄청난 것이다. - P363

지금은 낡은 방식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물론 이것은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겨냥하는 방향전환이어야 한다는 것은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모든 국가정책도 이 기준에 따르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한심한 뉴스는 12월 18일 세계적 농민단체 ‘비아캄페시나‘가 작성한 <농민 및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 유엔총회에서 결의·선포될 때 한국이 ‘기권‘ 표를 던졌다는 소식이다. 이는 한국정부가 농민과 농촌, 농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이다. 한심한 것은 정부뿐만 아니다. 국회에서 통과된새해 국가예산 편성을 보면,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평균 9.7퍼센트가 증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중 농업 관계 예산 증액은 겨우 1.1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 P367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은 경제성장 시대가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다는 객관적인 세계경제 정세에한 명확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는 여러 논자들이 이미 많이 이야기해왔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30여년 동안 저성장 내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온 일본의 경우는 특기할만하다. 오늘날 일본의 지식사회에서는 ‘축소균형의 시대‘라는 개념이 별로 낯선 게 아니다. 일본에서는 꽤 여러 해 전부터 재야의 지식인은물론, 공직자들 중에도 성장시대는 더이상 재현되지 않는다는 생각에동의하는 사람들이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용어의 창시자는 시모무라 오사무(下村治)라는 저명한 경제학자였다. 그는 원래 1960년대에는 고위직 관료로서 소득배증론(所得倍增論)을 제창했던 성장론자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서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고 난 뒤에는‘축소균형‘이 다가오는 시대의 불가피한 추세가 될 것임을 누구보다 앞서서 내다보았던 선지자였다. - P372

그러나 특출한 인간의 존재를 상정하는 정치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란 원래 ‘인민의 자기통치‘를 뜻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민주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예외적인 인간이아니라,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와 생각이라는 것을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상호-주체적으로 행사하면서 공생공존의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정기적으로 습관처럼 치르는 선거가 과연 이에 합당한 제도냐 하는 것이다.
확실히 선거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의 문제는 그 점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실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 P388

‘엘리트들’이다. 그 엘리트들끼리의 경쟁을 우리가 선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시장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듯이, 선거판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선택하여 그에게 표를 준다. 즉,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논리와 하등 다를 게없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현대의 선거민주주의인 것이다. - P389

그렇다면 선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득권층 내부의 싸움, 즉사회적으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끼리의 권력쟁탈 게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층의 영구적 권력 향유를 보장하는 합법적 메커니즘‘인 것이다. 사실, 선거(election)라는 말 자체가 원래 엘리트(elite)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찍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선거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면, 선거는 벌써 오래전에 지배층에 의해) 불법화되었을 것이다." - P389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당시 중국 쪽에서 시작된 페스트균이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이동·확산함으로써 유럽 인구의 태반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사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대규모 인명소실로 유럽 중세 질서가 결정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큰 피해를 입은 농노와 하층민의 인구가 대폭 줄어들자 중세 질서의 하부구조, 즉 농노제의 지속적인 유지는 크나큰 난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불같은 열정으로 신대륙을 탐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지만, 이는기본적으로 꽉 막힌 폐색상황을 타개하려는 유럽인들의 필사적인 기도에서 비롯된 기획들이었다. - P398

역병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고대 아테네의 비극적 재난이다. 기원전 430년, 스파르타를 상대로 벌인 펠로폰네소스전쟁 2년째, 아테네는 돌연히 전염병의 창궐에 휩싸였고, 그때문에 결국 전인구의 거의 3분의 1일이 희생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정체불명의 괴질 앞에서는 건강한 젊은 병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영웅적인 지도자 페리클레스와 그 아들들도 괴질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쟁 중에 지도자를 잃고, 대규모의 병력을 잃은 아테네 군대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단지 대규모의 병력 손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괴질이 창궐하여 가족, 친지, 수많은 동료 시민들이 느닷없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자, 아테네인들의 인생관과 윤리관에 큰 동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절제의 기율을 팽개쳐버리고, 법을 우습게 여기고, 더이상 신을 섬기지도 않고, 찰나적인 향락에 빠져버리기 시작했다ㅡ라고, 그 자신 역병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당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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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rth of Jesus
The death of Jesus and resurrected
The end of the ancient Jewish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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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2-05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두 번째 사진, 울림이 있네요. 좋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좋아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2-12-05 23:12   좋아요 1 | URL
Jesus를 사랑하시는 단발머리님에겐 더 울림이 있군요~! 여기 나오는 다른 그림과는 느낌이 다르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