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종, 계급> 1장에 나오는 해리엇 터브먼에 관한 그림책

해리엇은 주님의 말씀과 믿음을 따라 필라델피아로 힘겹게 도망치고, 다시 19번이나 남쪽으로 내려가 300명의 노예를 탈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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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09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뭐죠. 저도 이 책 봐야겠어요.

햇살과함께 2023-02-09 09:24   좋아요 0 | URL
해리엇 터브먼에 관한 그림책랑 어린이책(위인전?)이 있길래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다른 책은 아직 못읽었네요. 이 책은 단발머리님이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주님과의 충만한 대화가 가득합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 P7

사회주의자로서의 아버지는 제법 근사할 때도 있었으나 농부로서의 아버지는 젬병이었다. 사회주의자답게 의식만 앞선 농부였다. 아버지는 일삼아 『새농민』을 탐독했고 『새농민』의 정보에 따라 파종을 하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농사를 ‘문자농사‘라 일축했다. - P8

아버지의 눈빛은, 누군가 사진으로 그 찰나를 포착했다면,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나 학살당한 동지의 시신을 목도한 혁명가라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다못해 비장했다. 내가 풋, 웃음을 터뜨리려는 찰나, 어머니가 꽁무니를 내리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열일곱의 나는, 방물장수하룻밤 재우는 일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아버지나 그 말에냉큼 꼬리를 내리는, 꼬리를 내리다 못해 죄의식에 얼굴을 붉히는 어머니나, 그때 읽고 있던 까뮈의 『이방인』보다 더 낯설었다.
그날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평소 된장찌개와 김치밖에 내놓지 않던 어머니는, 찬장에 고이 모셔둔 새 접시까지 총동원하여 당신으로서는 최대한의 극진한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했다. 민중에게.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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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노예제의 유산: 새로운 여성성의 기준

흑인 여성 경험에 대한 오해, 왜곡
평등한 억압, 역설적 평등
해리엇 터브먼, 지하철도 활동
해리엇 비처 스토,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한계

하지만 여성들은 성폭력과 그 외 여성에게만 가해질 수있는 야만적인 학대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도 고통받았다. 노예 소유주는 손익계산에 따라 여성 노예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남자처럼 착취하는 게 이익일 때는 사실상 이들을 무성적인 존재로 간주했지만, 오직 여성에게만 합당한 방식으로 착취하고 체벌하고 억압할 수 있을 때는 배타적으로 여성만이수행하는 역할에 이들을 가뒀다. - P34

국제 노예무역이 폐지되면서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든목화 재배 산업의 확대가 위태로워지자 노예 소유 계급은 국내 노예 인구를 보충하고 증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어쩔 수 없이 자연적인 재생산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므로 노예여성의 출산 능력에 가산점이 붙었다. 남북전쟁 이전 몇십 년간 흑인 여성들은 점점 출산 능력(또는 그 능력의 부재)에 따라 평가받게 되었다. 잠재적으로 열, 열둘, 열넷 또는 그 이상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여성은 실제로 탐나는 보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으로서의 흑인 여성들이 노동자로서 누렸던 것보다 더 나은 지위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모성에대한 이데올로기적 칭송은 19세기에 한참 인기를 누렸음에도 노예에게까지 확장되지는 않았다. 사실 노예 소유주의 눈에 비친 노예 여성은 전혀 어머니가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노 - P34

예 노동력의 증대를 보장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이들은 그 수를 불리는 능력에 따라 정확하게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번식용 동물‘이었다. - P35

이 보고서의 논지에 따르면 억압의 근원은 실업과 부실한 주택, 부족한 교육과 수준 미달의 의료서비스를 양산한 인종차별보다 더 근본적이었다. 억압의 뿌리는 흑인들 사이에남성 권위자가 부재해서 빚어진 ‘뒤얽힌 병리 상태‘로 묘사되었다! 모이니핸 보고서의 논란 많은 대미는 흑인 가정, 그리고 흑인 사회 일반에 남성 권위자를 세워야 한다는 요구로 장식되었다. (물론 이는 남성우월주의를 의미한다!)

어이 없다❎❎❎ - P43

어머니의 역할은 노예 아이에게 아버지의 역할보다 훨씬 크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노예 가정에 남겨진 몇 안 되는 활동-살림 돌보기, 음식 준비, 자녀 양육-을 통제했다.

이게 통제인가? ❎❎❎ - P46

실제로 가정생활은 노예의 사회생활에서 지나칠 정도로큰 의미를 가졌다. 노예들에게 스스로를 인간으로 경험할 수있는 유일한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그리고 흑인 여성들은 남성과 진배없는 노동자였기 때문에ㅡ흑인 여성들은 백인 여성들처럼 가정 내에서의 역할 때문에 폄하되지 않았다. 백인 여성들과는 달리 이들은 절대 단순한 ‘주부’로 치부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결과흑인 여성들이 흑인 남성들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예생활의 실상을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 P47

노예 거주 구역의 가정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성평등이다. 노예들이 주인의 권력 강화가 아니라 스스로를위해 수행했던 노동은 평등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흑인들은 자신의 가정과 공동체생활의 울타리 안에서 찬란한 위업을 힘들게 달성할 수 있었다. 이들은 노예로서 겪는 동등한억압에서 파생된 소극적인 평등을 능동적인 특징으로 바꿔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사회관계를 특징짓는 평등주의이다. - P49

저항은 봉기나 도망, 사보타주보다 더 미세한 형태를 띨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저항 중에는 읽고 쓰는 능력을 은밀하게 습득하기, 그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기 같은 것도 있었다. - P55

‘지하철도’를 통해 300여 명의 탈출을 도운 안내자 해리엇 터브먼에게 헌사를 바치지 않고서는, 노예제 저항 운동에서 여성들이 했던 역할에 대한 그 어떤 논의도 완벽해지지할 것이다. 터브먼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의 여자 노예들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메릴랜드에서 농장 일꾼으로 일했던 터브먼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잠재력이 여느 남자들과 똑같다는 점을 깨치게 되었다. - P55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들과 동등한 억압을 받았고, 노예 공동체 안에서 남성들과 사회적으로 동등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들은 남성과 동등한 열정을 품고 노예제에 저항했다. 이는 노예 시스템의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였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야만적인 착취에,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착취에 여자들을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흑인 여성들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평등을 부르짖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저항 행위를 통해 표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 P56

노예제 시기에 진행된 제도화된 강간의 패턴을 백인 남성의 성적 충동의 표현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마치 순결한 백인의 여성성이라는 허상이 그것을 잠재울 수 있었으리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강간은 지배의 무기, 억압의 무기였고, 그 내밀한 목표는 노예 여성의 저항 의지를 억누르고, 그 과정에서 노예 남성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었다. 베트남전 기간에 관찰된 이런 유의 강간의 역할은 노예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 P57

노예제 폐지 운동 계열의 문학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이었다. - P61

하지만 스토의 책이 막대한 영향력을 구가하긴 했어도 그걸로 노예의 삶을 완전히 왜곡한 실책을 덮을 수는 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핵심적인 여성 인물은 백인 사회에서부터 노예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문화적 프로파간다가 예찬하는 어머니상을 순진하게 옮겨놓은 어설픈 흑인 여성이다. 엘리자는 검은 얼굴을 한 백인 모성의 화신이다. 아니 그보다 흑인의 피가 4분의 1 섞인 흑백혼혈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 덜 하얀 얼굴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 P62

그보다 핵심은 스토가 19세기의 대대적인 모성 숭배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노예제에 저항한 흑인 여성들의 실상과 진실을 포착하는 데 처절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예 어머니들이 수행한 셀 수 없이 많은 영웅적인 행동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여성들은 엘리자와는 달리 노예제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원동력 삼아 자기 자식들을 지켰다. 이 어머니들의 강인함의 원천은 모성에 부착된 어떤 신비로운 힘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구체적인 경험이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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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누가 여성인가?: 여성주의 이론의 고전 - 정희진

나의 위치성을 자각하고 저자의 생각을 상대화, 재의미화(mapping)하는 공부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의 목표는, 개별적인 인간인 여성(female)을 남성 공동체를 위한 성역할 노동자 집단으로 환원시킨 성차별 체제에 대한 도전이자 여성의 개인화와 인간화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억압받는 - P12

존재라는 자각과 함께, 여성이라는 범주(category)를 만들어낸 권력을 해체하자는 주장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여성의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주장한다. - P13

여성이라는 범주, 즉 특정 사회에서 누가 여성으로 간주되며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는 영원한 질문이다. 페미니즘은그 자체로 모순적인 사상이다. 그러나 이는 페미니즘의 한계가 아니라 어느 사상보다도 복잡하고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여성주의만의 자원이다. 여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유동적이기에 페미니즘은 언제나 ‘복합적 젠더(multiple gender)‘를 의미OYS한다. 페미니즘이 다루는 젠더는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개념을 규정하는 권력을 질문하고 추적한다. - P15

여성들 간의 차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언제 - P15

나, 영원히 지속되는 논쟁거리다. 이 차이에 대한 페미니즘의 고민은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 등 현대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주의 사상은 현대철학에서 ‘차이’가 인식론의 키워드가 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 P16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상상한 근대국가의 기준에서 볼 때도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가장 ‘비정상적인 국가다. 이는 ‘정상(正常, 頂上) 국가’로 여겨지는 미국 건국사의 특징 때문이다. 미국은 조직적으로 다른 대륙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대량으로 데려온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가이다. 미국 사회는 중산층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흑인 남성, 백인 여성을 지배해왔다. 이 같은 인종과 젠더의 역할은 페미니즘 이론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미국의 사회과학, 사회의 기본 분석 단위는 좌우를 떠나 계급(class), 인종(race), 젠더(gender)가 된다. - P19

흑인 저널리스트 이저벨 윌커슨(Isabel Wilkerson)은 "아프리카에는 흑인이 없다. 우리가 흑인이 된 것은 미국에 도착한 날, 그때부터다"라고 썼다. - P19

예를 들어 본디 모성은 여성과 자녀와의 관계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에 의하면 전자를 경험으로서의 모성, 후자를 제도로서의 모성이라고 한다. 자녀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나 모두 개별적인 특성에 따른 것이고, - P20

모성은 학습해야 할 과제이지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근친 성폭력 가해자나 아동 학대를 이해할 수 없다. - P21

페미니즘뿐 아니라 중산층의 경험은 모든 지식의 기반이다. 삶이 지나치게 고달픈 이들이나 부자들은 언어를 생산할 여력이나 이유가 없다. 모든 언어, 지식은 중산층의 삶의 경험에 기반한다(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모두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서구 페미니즘을 상대화하고, 내가 선 자리, 로컬에 맞는 지속적인 재해석과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 P21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백인 남성이 유색인종 남성을 ‘동물과 인간‘ 중간의 존재로, 여성을 ‘자연과 인간‘ 중간의 존재로 대상화해왔다고 말했다. 이것이 문명의 원동력이다. 근대 서구 문화는 자신들이 ‘데려온’ 흑인 남성을 동물로 여겼고, 오리엔탈리즘의 젠더화에 의해 동양인 남성은 여성화시켰다. 성욕을 주체할 수없는 동물의 이미지를 흑인 남성에게 뒤집어씌웠다. - P25

이 책처럼 고전은 경전(canon)이 아니다. ‘먼저 투쟁한 이들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공부가 필수적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배운다. 어떻게? 시공간이 다른 로컬에서 나의 위치성을 자각하고 저자의 생각을 상대화, 재의미화(mapping)하는 공부여야 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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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한 바에 따르면, 곰표 맥주는 단품으로 마셔도 좋지만 ‘체이서(Chaser)‘로서 아주 훌륭하다. 체이서란 위스키나 데킬라, 혹은 보드카와 같은 독주를 샷으로 마시고 나서 입안에 남는 쓴맛을 가시기 위해 바로 따라 마시는 비교적 도수가 낮은 술이다.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다양한 체이서가 존재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워터 백 - P102

(Water back)‘이라고 해서 물을 마시기도 한다. 물론 나는 권장하지않는다. 맛있는 술을 마시고 있는데 맛없는(無味) 물로 술맛을 가시는 것은 산통을 깨는 일이 아니겠는가. 독주와 어울리는 가장 흔한 체이서는 맥주다. 맥주로 체이서를 마실 때 ‘비어 백(Beer back)‘이라고도 한다. 곰표 맥주는 쓴맛이 없고 탄산이 적당하며 향긋해서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나 쓴맛이 도드라지는 데킬라의 체이서로 아주 훌륭하다. 독특한 향으로 즐기는 술일수록 안주를 피하는 것이 좋은데(향이 부딪힐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체이서는 안주 역할을 훌륭히 대신하기도 한다. 술을 안주로 마시는 발상은 도대체 누가 처음에 한 것일까? 무지막지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나는 정통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탈리스커(위스키)와 맥주 체이서, 그리고 패트론(데킬라)과 맥주 체이서다. 흔히들 섞어 마시는 술은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이는 절대적인낭설이다. 섞어 마시는 술이 유독 좋지 않았다면(더 빨리 취한다거나, 숙취가 더 심하다거나) 수백 가지가 넘는 맥주 베이스 칵테일, 예를 들어 아이리쉬 밤(기네스 흑맥주+베일리스 샷), 보일러 메이커(맥주+위스케 샷) 등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 P103

첫날은 늦게 도착한 터라 호텔방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일본 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편의점 쇼핑이 아닌가. 이것저것 간식과 ‘아사히 수퍼 드라이‘ 세 캔을 사서 침대 위에 펼쳐놓고 만찬의 구색을 맞췄다. 사실 일본 맥주를 마실 때 기린이든 아사히든 에비수든 딱히 가려 마시지는 않는다. 일본 맥주는 대부분 라거라서 라거의 팬이 아닌 나로서는 어떤 맥주를 마셔도 맛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왠지 아사히가 더 ‘본토‘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 여행을 오면 망설임 없이 아사히 수퍼 드라이를 집어든다. 아사히 수퍼 드라이의 특징은 튀지 않는 고소함이다. - P112

그렇게 한나절 동안 종이냄새를 맡고 나니 진한 커피가 간절해졌다. 칸다의 고서점 거리에는 오래된 킷사텐[喫茶店]이 즐비하다. 킷사텐은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신식 카페가 아닌, 드립커피 위주의 전통적인 커피숍을 말한다. 내가 킷사텐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은 커피도 커피지만 오래된 경양식집 스타일의 촌스러움과 음식 메뉴 때문이다. 대부분의 킷사텐은 샌드위치나 하이라이스 같은 간단한 음식과 주류를 갖추고 있다. 공수한 책을 들여다보고 싶기도 해서 가까운 킷사텐에 들어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마를렌 디트리히의 영화 속 의상을 모은 사진집을 구했는데 얼마나 포장을 예쁘고 정성스럽게 해줬는지 당장 포장지를 뜯어서 열어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서 책을 보는 것은 포기하고 이른 저녁이나 먹자 싶어서 커피와 맥주, 그리고 하이라이스를 주문했다. - P114

극히 일상적이지만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빼곡하다. 가령 드라마의 1화에서 아키라는 회사에서 상사에게 갖은 수모를 겪고 파이브 탭으로 향한다. 힘들었던 일을 맥줏집 사장 사이토에게 이야기하자, 사이토는 "맥주를 따라주는 것밖에 해줄수없어서 미안해"라며 아키라를 위로한다. 아키라는 맥주를 건네받으며 말한다. "그 맥주가 어지러운 마음에 스며든다니까요."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맥주가 어지러운 마음에 스며든다‘는 표현처럼 우아하고 적확한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 아키라의 말처럼 좋은 맥주나 꼭 필요한 순간에 마시는 맥주는 간이 아니라 마음에 스미는 법이다. 암, 그렇고말고. 이 대목에서 아키라에게 ‘선택받은 맥주는 ‘레어드‘의 페일에일이다. 페일에일 특유의 향긋함과 쌉싸름함이 분명 아키라의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였을 것이다.
<짐승이 될 수 없는 우리> - P127

영화는 개봉 당시 총 980만이 넘는 관객을 기록해서 화제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기록에 n차관람이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입소문을 타면서 극장마다 특징(사운드나 스크린 사이즈)이 다른 특별관을 순회하며 영화에서 재현되는 공연(특히 클라이맥스인 라이브에이드 공연을 색다르게 경험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나 또한 메이저 극장 3사(CGV, 롯데, 메가박스)의 특별관(스타리움, 스크린 X, MX, 수퍼플렉스G 등)을 누비며 퀸의 그루피(Groopie, 극성팬) 노릇을 했다. 그렇게 총 5번의 관람을했지만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관람은 관객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시그니처인 흰색 난닝구를 입고 떼로 들어와서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약속을 하고 오는 건지…) 노래가 나오는 장면마다 싱어롱(Sing along, 따라 부르기)을 한 회차였다. 그 밖에 4회의 관람에서도 싱어롱이 이루어졌는데 아무래도 떼창이 기본인 영화다보니 대부분 극장 매점에서 맥주를 싣고(?) 들어와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빈번했다. - P132

사실 방송을 하는 동안 즐거웠던 시간보다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더 많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후회스러웠거나, 더 경쾌하지 못했던 것에 죄책감이 들었거나. 고꼬로오뎅은 늘 패잔병이 되어 돌아오는 내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곳이다. - P156

최근에 둑분이와 함께 공드리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맥주 라인업도 안주 메뉴도 바뀌었지만 아직도 맥주를 마시며 한낮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는 나른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영화 이벤트 포스터가 가득한 벽면은 여전했다. 이날도 꽤 많은 양의 맥주를 마시고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시내에서 어중간한시간에 미팅이 끝난 날, 공드리에 들러 라자냐와 함께 필스너를 마셨다. 그리고 한참 동안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새로 생긴 가게들의 간판을 훑어보며 흘러나오는 팝송의 가사를 해석하는 쓸데없는 짓으로 몇 시간을 보냈다. 공드리는 아직도 그런 걸 할 수 있게 하는 하고 싶게 만드는 마력으로 충만한 곳이다. - P160

한 시간 일하고 와서 이렇게 호사스러운 점심을 할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지만, 여기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늘 지출이 (그날의) 수입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일을 시작한 이래로 우드앤브릭을 들르지 않은 날은 없었으므로 나의 수입의 대부분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면 이곳에 오기 위해서 연합뉴스를 들렀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뭐, 아무려면 어떤가. 미국의 소설가, 제이미 아텐버그가 말했다. "북클럽을 뭐하러 하나 브라우니와 와인을 먹지 않을 거라면.(What‘s the point of having a bookclub if you don‘t get to eat brownies and drink wine?)" 주말에 일을 뭐하러 하나, 빵도, 맥주도 먹지 않을 거라면.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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