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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여성참정권 운동 내부의 인종주의

5장. 흑인 여성에게 해방의 의미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장이다.

해방이 흑인들을 백인 여성과 ‘동등하게’ 만들었으므로 투표권이 주어지면 흑인 남성이 더 우월해진다고 믿는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그 외 여성들은 흑인 남성의 참정권에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만으로는 흑인의 경제적 억압이 철폐되지 않고, 그러므로 흑인에게는 정치권력이 특히 긴박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 이들도 있었다. - P125

물론 공화당은 북부군이 승리를 거머쥐고 난 뒤 여성참정권을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남성이라서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당시의 지배적인 경제적 이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경합이 남부의 노예 소유계급을 전복시키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이는 기본적으로 북부의 부르주아지, 그러니까 공화당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발견한 젊고 열정 가득한 산업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수행된 전쟁이었다. 북부의 자본가들은 국가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경제적 통제력을 손에 넣고자 했다. 그러므로 남부의 노예정치를 상대로 이들이 벌인 투쟁은 흑인 남성이나 여성의 해방을 인간으로서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 P127

수정헌법 제14조와 제15조에 대한 여성 권익 운동 지도자들의 비난이 정당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백인 중간계급 여성으로서의 자기 이익에 대한 방어―자기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때가 많은—는 남북전쟁 이후 흑인 평등 운동과 이들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위태롭고 피상적이었음을 드러냈다. - P130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생각하기에 노예제 폐지는 명목상으로만 완수되었다. 남부에 사는 흑인의 일상에는 여전히노예제의 악취가 진동했다. 그래서 더글러스는 남부 흑인들이 새로 손에 넣은 ‘자유로운’ 지위를 단단하고 확실하게 굳힐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주장했다. "흑인 남성들이 투표권을 갖기 전까지 노예제는 철폐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더글러스가 그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여성 투표권 투쟁보다 흑인 투표권 투쟁을 전략적 우위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참정권을 노예제 청산을 위한 미완의 과정을 완수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무기로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여성참정권이 흑인남성의 참정권보다 덜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칠 때 더글러스는 흑인 남성의 우월성을 엄호한 게 전혀 아니었다. - P131

옛 노예 소유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던 민주당은 남부에서 흑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을 방법을 강구했다. 그래서 많은 민주당 지도자들이 공화당의 적수들에게 맞서는 계산된 조치로 여성참정권을 엄호했다. - P135

평등권협회의 해체로 막강한 힘이 잠재되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보잘것없었던 흑인해방과 여성해방의 동맹이 막을 내렸다. - P140

수정헌법 제14조와 제15조를 둘러싼 논란에서의 행동으로 어떤 진지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더글러스가 흑인 남성 참정권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공화당 안에서의 투표권의 힘을 너무 의심 없이 신봉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 P141

남부에서 가사서비스의 가장 굴욕적인 측면 중 하나ㅡ가사서비스와 노예제의 친연을 확인해주는 또 다른 측면—는흑인 하인이 백인과 같이 있는 한 짐크로법*을 일시적으로유예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백인 아이들과 전차나 기차를 타러가곤 했고 (…) 앞자리든 뒷자리든 내가 원하는 데는 어디든 앉을 수 있었다. 백적인 남자가 다른 백인 남자에게 "저 검둥이가 여기서 뭐하는거죠?" 하고 물었는데 "아, 저 여자는 그 앞에 있는 백인 아이들의 보모예요"라는 대답이 나오면 순식간에 평화의 침묵이 찾아왔다. 내가 하인-노예-으로서 백인 남자의 객차에 오르거나 전차의 백인 남자 구역에 있는 한 만사형통이지만 옆에 백인 아이가 없어서 내가 하녀임을 증명할 수 없으면 단박에 ‘검둥이‘ 자리나 ‘유색인종 객차’를 할당받곤 한다. - P148

역사적으로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백인 여성들은 가사 노동자들의 투쟁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이들은 가사서비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시시포스적 과업에 관여한 적이 거의 없었다. 작금의 ‘중간계급‘ 페미니스트 프로그램에서 가사 노동자 문제가 편의적으로 누락된 것은, 그들이 부리는 가정부에 대한 착취적인 처사를―최소한 부유층 여성들의 입장에서-감추고 정당화하는 방편인 것으로 드러날 때가 심심찮게 있었다. 1902년 ‘가사 노동자의 하루 9시간 노동(ANine-Hour Day for Domestic Servants)’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저자는 고용주에게 여성 점원을 위한 의자를 비치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한 페미니스트 친구와의 대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친구가 말했다. "가게 점원들은 하루에 열 시간씩은 서 있어야 하잖아. 그 아가씨들 지친 얼굴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존스 부인." 내가 말했다. "네 가정부는 하루에 몇 시간 서 있지?" - P155

"왜? 모르겠는데." 친구가 놀라며 말했다. "대여섯 시간 정도 아닐까?"
"가정부가 몇 시에 일어나?"
"여섯 시."
"그리고 밤 몇 시에 일을 마무리하니?"
"아, 여덟 시 정도, 일 거야, 보통."
"그럼 열네 시간이잖아.…."
"… 우리 가정부는 앉아서 일할 때도 많아."
"무슨 일을 할 때? 빨래? 다림질? 걸레질? 침대 정돈? 요리? 설거지? (…) 아마 너희 집 가정부는 밥 먹을 때랑 채소 다듬을 때 두 시간 정도 앉아 있을 거야. 그리고 한 주에 나흘은 오후에 한 시간 휴게 시간도 있겠지. 그러면 너희 가정부는 하루에 최소한 열한 시간을 서 있고 그동안 계단도 숱하게 오르내려야 하지. 내가 보기엔 너희 집 가정부가 그가게 점원보다 더 딱한 거 같은데."
나를 찾아온 친구는 눈이 번들대고 뺨이 붉어져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집 가정부는 일요일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맨날 쉰다고." 친구가 말했다.
"그래, 그치만 점원은 일요일엔 종일 쉬잖니. 제발 내가 서명하기 전엔 떠나지 마. 점원들이 앉을 수 있게 되는 걸 나보다 더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 페미니스트 운동가는 자신이 반대하는 억압의 수명을 자기 손으로 연장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여성의 모순적인 - P156

행동과 지나친 둔감함에는 이유가 있다. 하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겔(Hegel)에 따르면 주인-하인(또는 주인마님-가정부) 관계의 역학 속에는 하인의 의식을 지워버리려는 부단한 노력이 내재한다. 이 대화에서 언급된 점원은 임금노동자, 즉 최소한 자신의 고용주와 자신의 노동에서 일말의 독립성을 보유한 인간이었다. 반면 하인은 오직 주인마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노동했다. 어쩌면 그 페미니스트는 자기 하녀를 자기 자아의 단순한 연장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억압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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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 지어 선 차를 지나쳐 산길로 들어섰다. 초입인데도 숲이 울창했다. 우리 일행들 외에는 오가는 사람도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곳에 묻히고 싶을까? 아무도 없이 적적하게 깊은 산속에 홀로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된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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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한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마침내 그 시원으로 돌아갔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유머러스하게. 물론 본인은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 P16

"고 선상님을 잘 알그마요."
그제야 어머니의 눈빛에서 경계가 사라졌다. 사회주의자답지 않게 어머니는 낯선 사람, 낯선 것에 대해 경계가심하다. 어머니에게는 익숙한 것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이다. 그중 가장 익숙하고 좋은 것이 사회주의이고 동지들일 뿐이다. 어머니는 몇시간 전 세상 떠난 아버지가 북한을 비판하면 파르르 날을 세우던, 누가보면 천생 사회주의자였다. 그런데 기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도 그 정도는 해준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사회주의란그저 지나간 첫 남자가, 지나갔음으로 가장 그리운, 뭐 그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넓게 울던 어머니는 눈 촉촉이 젖은 황사장을 그 이상의 촉촉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아직은 약간의 경계를 품고. - P21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딴 이름 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나는 아리라는 이름 따위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딱 벌어진 어깨에 소도 때려 - P29

잡을 듯 강건한 육체를 지닌, 그러니까 혁명전사의 딸에참으로 걸맞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흔한 경숙이혜숙이 같은 이름이었다면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당황과 모멸의 순간을, 나는 당신들의 청춘을 기념하고자 했던 부모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하며 살아왔고, 살아내는 중이었다. - P30

어찌 됐든 잘되면 자기 덕, 못되면 아버지 탓. 작은아버지가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전화기 너머로 흐르는 정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아버지는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였다. 그 고삐가 풀렸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작은아버지는 지금쯤 빈속에 깡소주를 들이붓고 있을 것이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마주친 형 없는 세상, 탓할 사람 없 - P41

는 세상이 두려워서 두려움을 이기고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줄까. 설령 오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는,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동생의 모진 말을 묵묵히견뎌내던 아버지는, 이번에도 타는 속을 소주로 달래며, 나는 모르는 씁쓸한 인생의 무언가를 되새기지 않으려나, 하면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았는데, 아버지는 당연히그거사 니 사정이제, 모르쇠로, 나는 어딘지 모를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 작은아버지가 미국의 유명 아나운서 처벅이 죽은 그날처럼 취해서 차라리 대자로 널브러지기를, 그래서 올 수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 P42

별것 아닌 기억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 혁명가가 아닌 순간의 아버지, 거기서 어린내가 발견한 것은 뻔한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뻔한 행동이었다. 나이 든 뒤에도 나는 하동집을 지날때마다 고개를 외로 꼰 채 굳이 외면했다. 내가 외면한 것은 하동댁이아니라 위대한 혁명가의 외피 속에 감춰져 있을지 모르는뻔한 남성의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감옥에있었고, 나는 아버지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위대한 혁명가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래야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 P66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 P68

진정한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싸우지 않는다. 똑똑한 아버지가 그건 몰랐다. 그래서 아버지는 분이 머리끝까지 차 싸움에 임하는 사람을 절대 이기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가 총을 들고 백운산과 지리산을 누빈 역전의 용사라는 게 나는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총을 메고 산이나 뛰어다녔겠거니, 발은 빠르니까,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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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노예제 반대 운동과 여성 권익의 탄생

3장. 초기 여성 권익 운동에서의 계급과 인종

프루던스 크랜들
루크리셔 모트
사라 & 안젤리나 그림케 자매
앨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소저너 트루스
프레데릭 더글러스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이 멋진 여성들과 남성들!

그녀들의 이야기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아이러니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에 가장 인기있던 노예제 반대 소설은, 노예제와의 전투가 치러지던 정치영역에서 여성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성차별주의적 관념과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인종주의적 사고를 고착화시켰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보수적인 내용과 진보적인 호소력 간의 확연한 모순은 저자 개인의 관점에 있는 결함 때문이라기보다는 19세기 여성의 지위에 내재한 모순적인 성질이 반영된 것이었다. - P69

실제로 산업화의 영향으로 가정에서의 여성의 의무가 줄어들수록, ‘여성의 자리는 집’이라는 주장이 더 강경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여성의 자리는 언제나 집이었지만, 산업화 이전 시기에는 경제 그 자체가 가정과 그 주변 농토 위주로 꾸려졌다. - P69

그러나 생필품의 제조가 집에서 공장으로 옮겨가면서 여성성 이데올로기가 아내와 어머니를 이상형으로 떠받들기 시작했다. 노동자로서의 여성은 최소한 경제적 평등을 만끽했지만, 아내로서의 여성은 남성의 부속물, 남편의 시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인간을 보충하기 위한 수동적인 도구로 규정되었다. 백인 주부의 상황은 모순으로 가득했다.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P70

노예제 반대 운동은 중간계급 여성들에게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과는 무관한 기준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할 기회를 선사했다. 이런 의미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은 여성들이자신의 구체적인 일(works)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였다. 실제로 노예제 폐지를 위한 전투에서 여성들의정치 참여가 그만큼 강렬하고 열정적이고 전면적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가정생활의 짜릿한 대안을 경험하고 있었기때문일 수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겪는 억압과 어느 정도 닮은데가 있는 억압에 저항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노예제 반대 운동에서 남성우월주의에 맞서는 법을 배웠다. 여성들은 정치 투쟁의 영역에서는, 결혼생활 내부에서는 꿈쩍도 하지않을 것 같았던 성차별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싸움을 걸 수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백인 여성들은 흑인해방투쟁을 하려면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열렬히 지켜야 한다는인식에 눈을 뜨게 된다.
여성운동에 관한 엘리너 플렉스너(Eleanor Flexner)의 출중한 연구가 보여주듯, 여성들은 노예제 폐지 운동을 통해 값진 정치적 경험을 축적했고, 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10여 년뒤 여성 권익 운동을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79

1838년에 완결된 사라 그림케의 「성평등에 대한 서한(Letters on the Equality of the Sexes)」에는 미국에서 여성이 저술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분석이 담겼다. 여성에 대한 마거릿 풀러(Margaret Fuller)의 유명한 논문이 출간되기 6년 전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사라는 성불평등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가정을 논박했다. - P83

이 두 출중한 자매의 글쓰기와 강의는 여성 노예제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다른 많은 여성들에게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 운동의 일부 지도층 남성들은 여성 권익이라는 주제가 노예제 타파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혼란과 소외를 초래할 거라고 주장했다. 앤젤리나 - P83

의 초기 대응은 여성의 권익과 노예제 폐지의 튼튼한 연결 고리에 대한 자매의 이해를 보여준다.

도로에서 걸림돌을 뽑아버리기 전에는 온 힘을 다해 노예제 폐지를 밀어붙일 수 없다.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도로를 우회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지금 당장. (…) 나의 친애하는형제들이여, 어째서 당신들은 강연자인 우리를 상대로 성직자들이 감쪽같이 꾸민 계략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우리가 올해 공개적으로 발언할 권리를 내려놓고 항복한다면내년에는 청원을 할 권리를, 그다음 해에는 글을 쓸 권리를 넘겨줘야 한다. 남성의 발밑에서 수치심 때문에 침묵하게를 되면 여성은 노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P84

그림케 자매는 흑인해방투쟁과 여성해방투쟁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깊게 인식했기 때문에 한쪽의 투쟁이 다른 한쪽보다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이데올로기적 함정에 결코 빠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 두 대의의 관계가 변증법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림케 자매는 노예제 반대 운동에 몸담았던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여성 권익 문제를 흑인 문제에 지속적으로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이들은 여성은 절대 흑인들과 별개로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앤젤리나는 1863년 남북전쟁을 지지하는 애국여성대회에서 "나는 니그로와 동일시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니그로가 자신의 권리를 얻기 전까지 여성은 결코 여성의 권리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2장 - P86

세니커폴스 선언은 19세기 중반에 여성의 권리를 분명하게 자각했다는 데 더없이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부르주 - P98

아 및 신흥중간계급 여성에게 모순과 좌절과 터무니없는 억압을 가하는 정치, 사회, 가정, 종교의 상황을 겨냥하여 수년간 엉성하게, 때로는 말없이 전개된 도전들이 누적되어 빚어낸 이론이었다. 하지만 백인 중간계급 여성의 딜레마에 대한자각으로 철두철미하게 응집된 세니커폴스 선언은 남부와 북부 모두에 있는 흑인 여성들의 처지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백인 노동계급 여성의 곤경 역시 거의 외면했다. 그러니까 세니커폴스 선언은 이 문서의 성안자들이 속한 사회계급 밖에 있는 여성들의 상황은 도외시한 채 여성들의 여건을 분석했던 것이다. - P99

샬럿 우드워드가 세니커폴스 선언에 서명하게 된 동기는더 잘사는 다른 여성들과는 달랐다. 우드워드가 그 대회에 참석했던 건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개선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구하기 위해서였다. 장갑제조공인 우드워드가 하고 있던 노동은 아직 산업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드워드는 집에서 일하며 가정 내 남성들이 합법적으로 통제하는 임금을 받았다. 자신의 노동조건을 설명하면서 우드워드는 자신을 세니커폴스에 오게 만든 반항심을 아래와 같이 드러냈다.

우리 여성들은 침실에 고립된 채로 비밀리에 일을 한다. 돈을 버는 것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며, 남성만이 가족을 부양한다는 이론 위에 온 사회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어떤 공동체든 얼마만큼의 여성은 반역의 날개를 퍼덕였다고 믿는다. 미천한 나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번도내 것일 수 없었던 비참한 푼돈을 위해 앉아서 장갑을 꿰맸던 그 모든 시간 동안 내 존재의 모든 섬유들이 침묵 속에서나마 반역에 가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노동하고 싶다. 하지만 내 일을 내가 선택하고 싶고, 내 임금을 내가 받고 싶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면서 내던져진 삶에 저항하는, 내 나름의 반역이었다. - P102

노예제 반대 운동에 가담하는 백인 여성이 북부에서 흑인 소녀에게 인종주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노예제 반대 운동에 내재한 큰 약점을 보여준다. 운동이 반인종주의 의식을 폭넓게 고취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림케 자매 등이 아주 분명하게 비판한 이 심각한 약점은 불행하게도 여성의 권익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 P106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Ain‘t I aWoman?)" —소저너 트루스가 1851년 오하이오 애크런에서 열린 여성대회에서 했던 연설의 후렴ㅡ는 19세기 여성운동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슬로건 중 하나다.
소저너 트루스는 분열을 조장하는 남성들이 쏟아내는 적개심 가득한 야유로부터 애크런의 여성 모임을 혈혈단신으로 구해냈다. 모임에 참석했던 여성 가운데 거친 선동가들의 남성우월주의적 주장에 공세적으로 대거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트루스뿐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강력한 연설능력의 보유자였던 소저너 트루스는 여성의 나약함과 참정권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논박 불가능한 논리로 타파했다. 선동가들의 앞잡이는 여자는 남자의 도움이 없으면 물웅덩이도 못 건너고 마차도 못 타는데 투표권을 바라다니 같잖다고 주장했다. 소저너 트루스는 빨려들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자신은 진창 웅덩이를 건너거나 마차에 탈 때 단 한 번도도움을 받아본 적 없다고 지적했다.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우르릉대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트루스는 말했다. "나를 보라고요! 내 팔뚝을 보라고요!" 그러고는 옷소매를 걷어올려 자기 팔뚝의 ‘엄청난 근력‘을 드러내 보였다. - P108

나는 쟁기질을 하고 심고 수확해서 헛간에 모아둬요. 어떤남자도 나보다 잘하지 못해요! 그럼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나는 남자만큼이나 많이 일하고 많이 먹을 수 있어요. 나한테 주기만 한다면 말이에요. 그리고 똑같이 채찍질도 견딜수 있죠! 그럼 나는 여자가 아니냐고요? 나는 자식을 열셋 낳았고 걔들이 거의 전부 노예로 팔려가는 걸 봤어요. 내가 어머니로서 비탄으로 울부짖을 때 예수님 말고는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못했죠! 그럼 난 여자가 아닌가요? - P109

도덕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근거로 노예제에 반대하던 가장 급진적인 백인 폐지론자들조차도 급성장중인 북부의 자본주의 역시 억압적인 시스템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노예제를 구태의연하게 정의를 거역한, 혐오스럽고 비인도적인제도로 여겼지만 북부의 백인 노동자들이 누리는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신분 역시 남부의 노예화된 ‘노동자’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 집단 모두 경제적 착취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처럼 전투적인 인물도 임금노동자의 조직결성권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리버레이터」 창간호에는 정당을 결성하려는 보스턴 노동자들을 규탄하는 기사가 실렸다. - P114

여성 권익 운동의 지도자들은 남부 흑인들의 노예화와, 북부 노동자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시스템을 통해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초기 여성운동에는 백인 노동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백인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조차도. 많은 여성들이 노예제 폐지 운동을 지지했지만 노예제 반대 의식을 여성 억압에대한 분석 속에 통합하지는 못했다. - P115

앤젤리나 그림케의 눈부신 「우리의 두 번째 혁명의 장병들을 향한 연설 (Address to the Soldiers of Our Second Rev-olution)」은 앤젤리나의 정치의식이 대다수 당대인보다 훨씬앞서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앤젤리나는 연설에서 노동자, 흑인, 여성을 품어 안는 동맹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급진 이론과실천을 제안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말처럼 "검은 피부의 노동자가 낙인이 찍혀 있는 한 흰 피부의 노동자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면, 앤젤리나 그림케의 명료한 주장처럼 이 시대의 민주적 투쟁―특히 여성 평등을 위한 투쟁-은 흑인해방투쟁과 손을 잡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을 것이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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