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언어
김겨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첫 구독과 좋아요와 알람 설정을 위해 귀차니즘을 뚫고 지메일을 만들도록 한, 유튜브의 세계를 열어준 김겨울. 그의 재미없음이 좋다. 그의 진지함이 좋다(그래서 이 책의 앞 부분이 더 좋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책 이야기가 좋다. 그의 시집을 기다리고 철학책을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몇 달 전 어딘(김현아)의 <활활발발>을 읽다가 알게 된 고정희 시인.

여성해방을 노래한 페미니스트로 <여성신문> 주간 등 여성문제를 최초로 폭넓게 탐구한 여성주의 시인이자 민중시인이며 서정시인이라고 한다.


구매를 벼르다 드디어 위트앤시니컬에서 구매했다.


시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아벨'로 표상되는 떠나간 자들(민중, 동지, 아우 등)에 대한 속죄의 마음, 부끄러움, 그리움, 슬픔의 시들이다.


첫 마주침이 중요한 건가. 사람의 마음이 비슷한 건가. 시집을 구매하기 전에 블로그 등에서 본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닿던 시가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나서도 가장 좋았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서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을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판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서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이딘 버크 해리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임레 케르테스 『운명」

자기계발서는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성취할 것을 주문한 - P74

다. 이곳은 변하지 않는 너의 세계라고 확신시킨다. 바로이곳에서 살아남아 적응할 것.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 땅을 바꿀생각을 하기 전에 나무를 크게 키워낼 것. 그러나 그러한요구는 때로 다음과 같은 말들로 들리기도 한다. 노래하지말것. 부정하지말것.속삭이지 말것. 땅에 붙은 것들을 무시하고, 뛸 수 있을 때 걷지 말 것. - P75

네이딘 버크 해리스의 책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아동기에 겪은 불행과 성인기 건강 사이의관계에 대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행은 단순히 ‘나쁜 일‘이 아니라 아동에게 벌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들을 말한다. ‘ACE‘, 그러니까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는 직역하면 ‘아동의 역경 경험‘ 정도 된다. 아동기에 겪은 ‘유독성 스트레스‘, 즉 회복 가능한 수준의스트레스가 아닌 신체적 반응을 반복적으로 마비시키는강력한 스트레스 경험을 말한다. - P89

서른 살에 쓴 「고백」이라는 글에 나는 이렇게 썼다. "이제는 삶을 끌어안고 분투하느라 보낸 이십 대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보내려 합니다. 이십 대가 자신의 소임을 다 한 덕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어린 시절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을 테지요. 침대맡에도 주머니 속에도 달라붙어 있겠지요. 끈질기게 저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이란 없고 언제나 예전의 삶을 계속 이어갈 뿐

* 임레 케르테스, 박종대, 모명숙 옮김, 『운명」, 다른우리, 2002. - P92

이므로, ‘무엇이든 무마할 시간이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됩니다. 계속 무마해보겠습니다." 무마의 약속은 곧 도전의약속이다.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에게만 무마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와 무마의순환 속에서 항해는 이어진다. - P93

북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 전문가인 유지원 작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김상욱 교수와 함께 쓴 책인 뉴턴의 아틀리에」를 직접 디자인하면서 어떤 점들을 고민했는지 이야기했다. 물리학자와 함께 내는 책이므로 물성이 고려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은 거짓말을 하는 물건이 되니까요." 정신과 몸이,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기를 바라는 마음. - P186

정말로 나도, 기적처럼 이 모든 것을 바꿔줄 기술이 마법처럼 나타났으면 좋겠다. 나도 스마트폰을, 커피를, 딸기를, 사람들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저녁 식사를, 국가 간의 안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마음껏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고 싶고(밝히건대 나는 자연파와 도시파 중 철저한 도시파 여행자다), 이런 험악한 글 대신 우아한 글을 쓰고 싶다. 소비로 인한 자기비난도 그만하고 싶다. 하지만늘 기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오늘 쓴 텀블러를 세척하 - P242

고 재활용품을 분류하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한숨을 쉴지언정 그런 의식이 큰 문제에 있어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도와주는 작은 계기임을 상기한다. 계속해서생각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기는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질문이 자라나는 곳에서 시간이 멈추듯, 질문이 멈춘 곳에서 관성이 자라난다. -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수아 누델만 <철학자의 거짓말>

3년 전, 프랑수아 누델만의 책 『철학자의 거짓말』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글을 쓰면서는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글로 구현된 ‘나‘는 이미 내가 아니라 나로부터 기원한, 나보다 조금 더 낫기를 바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짓말들을 우리의 상으로 삼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철학자들처럼, 모두 거짓말을 향해 나아가는 진실한 인간들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가 상으로 삼은 나의 어떤 측면이다. 전부가 나는 아니지만, 그 어느 곳을 떼어놓더라도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디 내가 부족한 만큼은 책이 부족하지 않기를 공들여 비는 수밖에 없다. - P9

사람들이 서로를 움켜쥐는 것이 좋았고, 따뜻한 실내에 들어온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이 좋았고, 연말의 흥성한 분위기가 좋았고, 크리스마스의 예쁜 장식이 좋았고, 눈을 밟는 소리가 좋았고, 모두들 할 일을 내년으로 미루며 반쯤은 너그러운 마음이 되는 것이, 그렇게 맞이한 새해도 그다지 부지런하지는 못한 것이 좋았다. 그 따뜻한 분위기가 내 것이 아니더라도 좋았다. 겨울에 가장 외로워하면서도 가장 사람들 속에서 산다고 느꼈다. 앙상한나무에조차 짚으로 된 옷을 둘러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린 발을 녹여가며 겨우 잠이 들 때엔 누군가가 나에게 위로를 둘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그가 겨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 P16

그러고 나면 깨닫게 된다. 악몽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어야만 삶은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 P29

이것은 배를 곯을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완전한 불안이 아니기에 어느정도 기만적이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걱정없이 편안하게 선택할 만한 정도의것도 아니다. 진은영의 시 「대학 시절」을 닳도록 읽으며지긋지긋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불안은 익숙한 나의 집,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 P37

이것은 나쁘기만 한 변화였을까. 수전 손택의 그 유명한 말대로 사진을 찍는shoot 일은 총을 쏘는shoot 일과 같고,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범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피사체가 된 그 사람이 자신에게서 전혀본 적이 없는 모습을 보며, 자신에 대해 절대 가질 수 없는 - P56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즉 사진은 피사체가 된 사람을 상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사물로 만들어버린다. 카메라가총의 승화이듯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살인의승화이다. 그것도 슬프고 두려운 이 세상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살인. 어떤 의미에서 나는 타인의 삶을 내 마음대로 사각형의 모습으로 재단하는 일을 멈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내 삶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세상을 나의 시선으로 담아두고 싶다는큰 욕망보다 내 삶만을 복기하겠다는 소박한 욕망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상한 타인의 삶은 어디까지나 나의 소망이 반영된 것은 아니었던가? - P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