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어떻게 알겠느냐마는, 인간은 오직 먼발치에서만 그 건물을 좋아할 뿐, 가까이서는 절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건물을 짓는 것만 좋아할 뿐, 그 안에서 사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그걸 aux animauxdomestiques(가축들에게), 그러니까 개미나 양이나 뭐 그런 것들에게 줘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 P65

나는 물론 나의 관청 동료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증오하고 또 경멸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을 좀 무서워했던 것 같다. 갑자기 그들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 무렵엔 그들을 경멸하다가도 어쩐지 갑자기 그들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지적으로 성숙했고 점잖은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무한히 까다롭지 않고서는, 또 어떤 순간엔 자기 자신을 증오할 만큼 경멸하지 않고서는 허영심에도 사로잡힐 수 없다. 하지만 남을 경멸하든지 아니면 남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지 간에 마주치는 누구에게나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심지어 나에게로 쏟아지는 아무개의 시선을 참아 낼 수 있는지실험까지 해 봤지만, 늘 내 쪽에서 먼저 눈을 내리깔았다. 이것이 나를 미칠 정도로 괴롭혔다. 또 나는 웃긴 놈이 될까 봐 병이 날 정도로 무서웠던 나머지, 외적인 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노예처럼 인습을 숭배했다. 기꺼이 일반적인 통념을 따랐으며 온 마음으로 내 내면의 온갖 기괴함을 저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끝까지 견뎌 낼 수 있었겠는가? 우리 시대의 지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응당 그렇듯, 나는 병적으로 성숙해 있었다. 반면 그들은 모두 둔한 데다가 한 무리 속의 숫양들처럼 서로서로 닮았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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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은 체계와 추상적인 결론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오직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의로 진리를 왜곡하고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못할 준비가 돼 있다. - P48

다름 아니라,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절대 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꼭 그래야만 한다.(하여간 내 생각으론 그렇다.) 자기 자신의 의지적이고 자유로운 욕망, 아무리 거친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변덕, 이따금씩 미쳐 버릴 만큼 짜증스러운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환상, 이 모든 것이 바로 저 누락된 이익, 즉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체계와 이론을 끊임없이 산산조각 내 버리는 가장 유리한 이익인 것이다. - P52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독립적인 욕망 하나뿐이다, 이 독립성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든,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간에. 거참, 대체 욕망이라는 게 뭔지……. - P53

내 생각으론 심지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는 두 발로 걷는 배은망덕한 존재라는 것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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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니, 이 음탕함의 온갖 섬세한 뉘앙스를 이해하려면 지적으로 심오한 성숙의 경지에 이르고 의식의 극단까지 가야 할 것 같군요! 비웃는 거요? 그렇다면 몹시 기쁘군, 나의 농담은, 여러분, 물론 품격도 떨어지고 변덕스럽고 앞뒤도 안 맞는 데다가 자기 불신감마저 가미되어 있소. 하지만 실상 이건 내가 나 자신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오. 도무지 의식이 발달한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겠소? - P35

그저 팔짱을 낀 채 멍하니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증오하든지, 사랑하든지 해 보라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모레면, 뻔히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경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결과적으론, 비누 거품과 관성뿐이다. 오, 여러분, 내가 스스로를 현명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직 평생 동안 뭐 하나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수다쟁이라고 한들, 우리가 죄다 그렇지만, 설령 백해무익하고 짜증나는 수다쟁이라고 한들 어떤가. 어차피 모든 현명한 인간의 그야말로 유일한 사명이 수다, 즉 머리를 굴려 공소한 잡담을 늘어놓는 데 있다면, 어쩌란 말인가.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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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노인장들, 이 모든 존경받는 노인장들, 백발이 성성하고 향기가 폴폴 나는 모든 노인장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 말을 해 줄 것이다! 온 세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할 테다! 나는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다, 왜냐면 나도 예순 살까지 살 테니까. 일흔 살까지 살고야 말겠다! 여든살까지도 살겠다……! 잠깐! 잠깐 숨 좀 돌리자…….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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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쩌면 엄지손가락을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는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엄지손가락은 오직 그 본성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 있어. 엄지손가락이 네 손에서 뛰어올라 온 방 안을 만지고 다닐 수는 없어. 너도 역시 전체 속에서 네 자리가 있는 거란다. 너는 소피지만, 신의 몸에 달린 손가락이기도 하지. - P128

스피노자는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철저히 ‘자기 스스로의 원인’으로 완전한 자유 속에서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어. 신이나 자연만이 이렇게 자유롭고 필연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사람은 외부의 강제 없이 살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유의지‘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우리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해. 우리의 육체는 연장(물체)이라는 속성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선택‘ 하지 못해.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이 없는 존재야. 영혼은 기계적인 육체 안에 갇혀 있지. - P131

그래. 가장 중요한 경험주의자 혹은 경험철학자는 로크와 버클리, 흄이야. 모두 영국인이지. 17세기의 주도적인 합리주의자들은 프랑스의 데카르트, 네덜란드의 스피노자, 독일의 라이프니츠였어. 그래서 흔히 영국의 경험주의, 대륙의 합리주의로 구분한단다. - P141

‘생성된 모든 존재는 소멸하게 마련이다‘ 흄도 아마 똑같이 말했을 거야. 또 데모크리토스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 어쨌든 우리가 알기로 흄은 영혼 불멸이나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를 거부했어. 이 말은 흄이 이 두 가지를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아니라, 종교적 신앙을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합리주의로 위장한 거짓이라는 거야. 흄은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철저한무신론자도 아니었어. 그는 우리가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라고 부르는그런 사람이었지. - P157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뒤따라 생기는 사건들 사이에 꼭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야.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이야. 특히 성급한 결론은여러 가지 미신을 유발하지. - P164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그건 실존적 불안이라고 하는 건데, 새로운 인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일 뿐이야." - P207

"가장 먼저 계몽주의자들은 민중이 ‘계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것은 더 나은 사회의 절대적인 근본 조건이라는 거지. 하지만 민중 사이에는 무지와 미신이 팽배했어. 따라서 교육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지. 교육학이 계몽주의 시대에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도 우연이 아니야." - P216

구주, 마리 올랭프(Gouges, Marie Olympe, 1748~1793), 프랑스의 여성 작가. 프랑스 혁명 중에 특히 사회문제에 관한 수많은 책과 일련의 극작품들을 통해 매우 적극적으로 혁명에 참여함. 몇 안 되는 여권 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여성도남성과 같은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791년에 여성 권리 선언을 발표했음. 루이 16세를 옹호하고 로베스피에르를 비판했다는 죄목으로1793년에 처형당함. (라쿠르(L. Lacour), 『현대 여성 운동의 기원』(1900)에서)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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