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미로, 기억 궁전, 신곡

5장 미로와 캐딜락: 상징으로 걸어 들어가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은 그곳의 풍경을 지나는 가장 좋은 방법에 - P116

대한 앞사람의 해석이다.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의 해석을받아들인다는 것, 학자나 탐정이나 순례자처럼 먼저 간 사람의 뒤를 밟는다는 것이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을 같은 방식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하는 방법, 같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행동을 흉내내는 연기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영혼을 닮기 위한 노력이다. 순례가 다른 모든 보행과 다른 점은 이렇게 반복과 모방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신을 닮기란 불가능하지만, 신이 걸어간길을 똑같이 걸어가는 일은 가능하다. 예수가 인류의 실족(Fall)을 대속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 발을 헛디디고 진땀을 흘리고 상처입고 세 번 넘어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14처에서다. 하지만 이 14처가 어느 성당에서나, 아니, 아무 데서나 볼 수있는 일련의 그림이 되면서, 신도들이 따라가는 것은 이제 수난의 장소가 아니라 수난 이야기가 되었다. 성당에 그려진 14처는 신도들이 예루살렘으로 걸어 들어가는 통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속으로들어가는 통로이다. - P117

미로가 기독교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언제나 모종의 여정을 상징한다. 통과의례의 여정 또는 죽음과 부활의 여정을 상징할 때도 있고, 구원의 여정 또는 구혼의 여정을 상징할 때도 있다. 그저 여정의 복잡함(길을 찾아가는 어려움, 길을 깨닫기까지의 어려움)을 상징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는 미로가 많이 등장한다. 크레타 섬에 미노타우로스가 갇혀 있었다는 전설의 미로가 존재했던 적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쓰는 동전에는 크레타 미로의 형상이 찍혀 있다. 실제로 발견 - P120

된 미로들도 있다. 사르데냐에는 바위 미로가 있고, 애리조나 남부와 캘리포니아에는 돌사막 미로가 있다. 로마인들의 모자이크 미로도 발견되었다. 스칸디나비아에는 땅에 돌을 놓아 만든 유명한 미로가 500개가량 있다.(20세기까지 어부들이 출항하기 전에 미로를 걸으면 고기가 많이 잡히고 순풍이 분다는 믿음이 있었다.) 잉글랜드에는 잔디 미로가 있다. 미로는 젊은이들이 에로틱한 놀이를 즐기는 장소였다. (예컨대 여자가 중앙에 가 있으면 남자가 여자를 향해서 달렸다. 미로의 굽이굽이 도는 길은 구애의 복잡함을 상징했다.) 잉글랜드에서 훨씬 더 유명한 미로로는 르네상스 정원의 미로를 후대에 귀족적 형태로 변형한 산울타리 미로가 있다. 미로에 대한 글을 쓴 많은 저자들은 미궁(maze)과 미로(labyrinth)를 구별하면서 대부분의 정원 미로를 미궁(maze)에 넣는다.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혼란스럽게 만드는것이 미궁의 목적인 반면에, 미로(labyrinth)의 길은 하나뿐이라서, 누구든 계속 걷다 보면 중앙의 낙원에 도달할 수 있고, 돌아서서 걷다 보면 들어갔던 곳으로 나올 수 있다. 미궁이 분명한 목적지가 없는 자유의지의 혼란스러움을 뜻하는 반면에 미로는 구원으로 가는 확고한 여정을 뜻한다는 것도 미로와 미궁의 차이다. - P121

이제는 책이 기억 궁전 대신 정보 저장소가 되었지만, 아직 책에는기억 궁전의 몇 가지 패턴이 간직돼 있다. 길이 책을 닮을 수 있듯, 책도 길을 닮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길을 닮은 책은 걷기라는 ‘읽기‘를 통해 세계를 그려나간다. 단테의 신곡은 그 최고의 예다. 영혼이 죽어서 가게 되 - P130

는 세 장소를 여행하면서 베르길리우스라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일종의 저승 여행기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단테는 여행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멋진 장면과 흥미로운 인물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간다. 예이츠는이 걸작이 실은 기억 궁전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실제로 이 책은 지형지물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곡의 여러 판본에 저승의 지도가 포함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곡을 여행기(『신곡보다 먼저 나오거나 늦게 나온 무수한글들을 포함하는 방대한 장르)로 볼 수도 있다. 등장인물이 걸어가는 길이 곧이야기의 길이 되는 것은 『신곡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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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농업은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농업은 산업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는 농업에 산업의 논리를 강요해왔고, 바로 그런 연유로 제3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에서도 농업의 생산기반이 꾸준하게 약화돼온 것이다. 물론 선진국 대부분은 놀랍게도 표리부동하게 자유무역에서 농업을 예외로 두고 식량자급률 100%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농업이 경제의 토대이고 주권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일부를 제외한) 서방세계의 농민들까지 오늘날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초국적기업들이 호시탐탐 농업의 기반을 훼손하면서 독점적 이익을 누리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후안무치는 끝이 없다. 3년 가까이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특수를 누린 것은 방위산업만이 아니었다. 초국적 농기업들은 전시상황을 이용하여 우크라이나신자유주의 정부로부터 옥토 중의 옥토, 우크라이나 농토에 대한 장악력을 상당하게 넘겨받는 데 성공했다.
농업이 끝내 사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이 자명한 사실을 현대 도시인들만 모르는 것 같은데-인간은 먹지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실험실에서 햄버거를 만들어내면서 연금술의 비밀을 알아낸 것처럼 우쭐대지만, 대체육처럼극단적으로 가공이 된 ‘식품‘이라고 해도 그 원재료는 땅에서 나온다. 농업은 인류가 결코 손을 놓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초국적 자본도 마지막까지 지배욕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 P8

농업에서는 최대화가 아니라 최적화가 기본원칙이다. 농부들은 무턱대고 수확량을 늘리려고 하지 않는다. 농업의 목표는 지속성의 확보이고, 그것은 최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투입물도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고 산출물도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비료가 적정 수준을 넘어가면 작물은 허약해지고 지력은 훼손되며 이듬해의 수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삭에 낟알이 지나치게 들어찬벼는 가을 태풍에 취약하다. 순환의 원리, 지속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두고, 착취나 추출로 인해 근본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 합리적인 농사방식이다. 수십 년에 걸친 녹색혁명 이데올로기 공세와 자유 - P9

무역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70% 이상의 인구를 소농들이먹여 살리고 있고, 또한 가장 생산성이 높고 땅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영농은 가족농의 방식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P10

백승종

알다시피 동학은 1860년(철종 11년)에 탄생했다. 그러고는 한 세대가지난 1894년(고종 31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소농들이 들고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유지되어온 ‘사회적 합의‘가깨졌기 때문이다. - P13

박맹수

수운이 천명한 동학의 핵심 사상은 시천주, 그 가운데에서도 ‘시‘ 한 글자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 한 글자는 곧 인간생명의 주체인 영)의 유기적 표현으로서 인간과 우주의 자연적 통일,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통일, 인간과 사회의 혁명적 통일이 ‘시‘ 한 글자에다 통일되어 있다. 시(侍) 안에는 최수운 선생의 인간과 우주의 자연적 통일로서의 시천(天)사상뿐만 아니라, 뒷날 최해월 선생의 인간과인간의 사회적 통일로서의 양천(天)사상, 나아가 동학혁명 민중 전체와 전봉준 선생, 3·1운동 민족 전체와 손병희 선생 등의 인간과 사회의혁명적 통일로서의 체천(天)사상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김지하, <인간의 사회적 성화-수운사상 묵상>, <남녘땅 뱃노래>, 두레, 1985, 112쪽). - P26

김용휘

또한 해월의 철학은 "모든 만유가 무궁한 우주생명을 내면에 모시고있다"는 근본적 생명원리와 "한울이 한울을 먹고 산다"는 이천식천(天食天)의 생명원리를 제시했다. 이천식천은 만물의 상호의존성을 알고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모시고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먹는 것의 신성함과 공생의 삶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천식천은 적자생존의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몸을 언젠가는 기꺼이내놓아야 한다는 자기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개체 생명에 한정된 의식을 벗고 우주의 전체 생명이라는 보다 초월적 시각에서 생과 사를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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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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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 투쟁임을. 누군가에겐 출근길 10분의 지체가, 다른 누군가에겐 20년의 외면된 기다림임을. 겨우(!) 이동권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노동권 거주권 평범하게 살 권리를 말하는, 보이는 존재가 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헌법 제10조를 다시 읽어보자.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국가는, 우리는 그들의 헌법적 권리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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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1-07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유아차 밀고 다니면서 이동권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ㅜㅜ 정말 얼마나 불편한지! 적극 개선해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대법원에서 국가배상 인정한 것이 고무적이네요!

햇살과함께 2025-01-07 22: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아이들 어릴 때 유아차로 지하철 탈 때마다 엘베 찾느라 헤매고 못찾으면 그냥 계단으로 들고 올라가고요.. 이런 시설이 장애인들의 권리투쟁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꿈에도 몰랐네요 ㅠㅠ

파란놀 2025-01-08 0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골에는 낮은버스(저상버스)가 하나도 없고, 90살 할머니도 버스삯을 내고서 탑니다. 어느덧 우리나라 모든 시골은 공휴일에 시골버스를 거의 멈추었고, 바뀌는 버스시간표를 군청에서 알리지도 않는데, 군청 공무원과 군의원 가운데 시골버스를 타고서 출퇴근을 하는 이는 1/100은커녕 1/1000조차 안 되기 때문입니다.

˝출근길 지하철˝은 틀림없이 뜻깊기는 하지만, 저처럼 면허증조차 일부러 따지 않고서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지내는 여느 사람들은 ‘이동권‘은커녕 ‘기본생활권‘조차 없다고 할 만합니다.

도시는 그나마 아기수레를 밀 만한 길이 조금 있지만, 시골에는 어디에서도 아기수레를 밀 수 없는데, 저는 포대기로 두 아이를 업고서 다녔지만, 시골에서 아기를 낳으려는 이웃님은 다들 죽을 노릇이더군요. 그래서 울며겨자먹기로 뒤늦게 면허를 따서 자가용을 장만하시는데, 이제는 ˝출근길 지하철 이동권˝을 넘어서 ˝대중교통 기본생활권˝이라는 틀로 이야기를 넓혀가야 할 때를 한참 지나도 너무 많이 지났다고 느낍니다.

새해에는 시골에서 면허증부터 없이, 아기를 포대기로 안고서, 군수한테 한 마디를 할 수 있는 이웃이 늘기를 빌 뿐입니다.

그래도 <너무도 정치적인 시골살이>라는 책이 지난해 가을에 나와서 깜짝 놀라서 반갑게 읽기도 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5-01-08 09: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지방 도시나 시골은 특히 자가용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의 제약이 많죠. 정부나 지자체에서 경제성 논리만을 들이밀면서요. 저도 한 때 은퇴 후 시골살이의 낭만을 꿈꿨던 때가 있지만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장롱면허를 꺼내지 않으면 불편하게 살아야 할 곳이라는 것을요. 이 책과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로 상징되지만 ˝출근길 지하철˝을 넘어선 다양한 주제와 보편적인 권리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알려주신 책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치마요 성지순례

4장 은총을 찾아가는 오르막길: 성지순례

성지순례는 성스러운 것에도 물질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 땅에 영(靈)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이야기를 강조하면서 이야기의 배경 또한 강조함으로써 영과육 사이의 미묘한 길을 걷는다고 할까. 목적지는 영혼이지만, 목적지로 가는 길은 극히 물질적인 디테일(예컨대 부처가 태어난 곳, 예수가 죽은 곳, 성물이 보관돼 있는 곳, 성수가 흘러나오는 곳)로 이루어져 - P89

있다. 순례길에 오르는 것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영혼의 믿음과 소망을표현하는 일이라면, 순례란 정신과 물질을 화해시키는 일이 아닐까. 순례가 믿음과 행동의 결합, 생각과 실천의 결합이라는 생각은 성스러운 것이물질적 현존, 물질적 자리를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모든 신교도와일부 불교도, 유대교도가 성지순례를 우상 숭배의 일종으로 보고 반대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영혼의 구원을 찾을 곳은 바깥세계가 아니라 전적으로 비물질적인 내면세계라는 것이 그런 반대자들의 주장이었다. - P90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이 점을 포착하고 있다. 마리아 공주는 자기 집 앞으로 지나가는 무수한 러시아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을내주면서 모종의 열망을 느낀다. "그녀는 순례자들에게 이야기를 청해들을 때가 많았다. 그들의 소박한 말투, 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깊은 의미로 가득한 것처럼 들리는 그 말투에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동했던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길을 나설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 이미 그녀는 누더기를 걸친 차림으로 보따리와 지팡이를 들고 흙먼지 자욱한 길을 걸어가는 자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곳의 목적지를 향해 명료하고 검소하고 강렬하게 나아가는 고상한 은둔자의 삶을 상상한다. 순례자의 발걸음은 단순 명료함의 표현이자 목적의식의 표현이다. 낸시 프레이(Nancy Frey)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의 긴 순례길에 대해 이렇게말한다. "순례자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를 느끼는 방식 몇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는데, 그 변화는 여정 내내 이어진다. 시간 감각이 바뀌고, 오감이 예민해지고, 자기 몸과 자기 몸을 둘러싼 자연경관에 대한 새로운인식이 생긴다. [...] 그것을 한 독일 청년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걷는 경험 속에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란 불가능하다." - P91

아직 길을 잃은 상태냐고 누가 물어올 때마다 그레그는 대답했다. "길을 가고 있으니까 길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Wherever you go, there youare.)" - P93

SCLC 창립 6년 후, 마틴 루서 킹은 비폭력 저항 그 자체로는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남부의 인종분리주의자들이 흑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가능한 한 널리 공론화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킹은 압제 세력에게요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로 했다. 이것이 흑인 민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을 버밍햄 투쟁의 전략이었다. 최초의 행진은 1962년 성금요일에 시작되었고, 그 후로 무수한 행진이 이어졌다. 이 버밍햄 투쟁에서 대단히 유명한 사진들이 쏟아졌다. 고압 소방호스로 물 폭탄을 맞는 사람들, 경찰견에게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찍힌 사진이 전 세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킹을 비롯한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버밍햄을 걸었다는 이유로 체포당했다. 거리로 나오는 어른들이 없어지자 고등학생들이 가담했고, 어린 동생들까지 따라나서서 자유를 향해 행진하면서 개선가를 합창했다. 그해 5월 2일 900명의 아이들이 체포당했다. 공격당할 위험, 부상당할 위험, 체포당할 위험, - P103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가는 일은 특별한 결의를 요하는 일이었다. 기독교적 순교를 연상시키는 사진들 못지않게 남부 침례교도의 뜨거운 신심도 그들에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킹의 전기 작가 한 명에 따르면, 버밍햄 행진이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서 진행된 "한 기도 순례에서 찰스빌럽스 목사를 비롯한 버밍햄의 목사들은 3000명이 넘는 청년들을 이끌고 버밍햄 감옥을 향해 행진하며 「주가 나와 동행하기를 바라네(I WantJesus to Walk with Me)」를 불렀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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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동이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생각을 해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건 결국 자기를 둘러싼 관계를 계속 변화시키는 과정이죠. 권리중심공공일자리노동자들은 이 일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분명히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기 확인이란 건 곧 이 사회가 중증장애인이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죠. 그 사람의 존재부터 해가지고, 이 사회의 - P180

조건에 대해서까지 다시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거야. - P181

그런데도 진짜 목소리조차 못 내는 사람들을 위한 거리의 정치를 하려면 그 어려운 상황이란 거를 잘 빼텨낼 수 있어야 돼요. 활동가한테 삐틴다는 거는 그만큼 중요한 덕목인 거야. 그렇게 빼텨야지만,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거리에 그런 장소가 만들어지는거에서부터 전사들이 조직되기 시작하는 거니까. 조직하려면 결국엔 그 방법밖에 없어요. - P216

그런데요, 혐오가 어떤 의미로까지 쓰일 수 있는 건지 다 해석이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장애인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 하거나기껏해야 그냥 동정받아야 하는 사람, 시혜를 베풀어서 도와줘야하는 사람쯤으로만 보는 것도 어떤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거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도 모르게 장애인들을 자기들이랑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를 않으니까, 결국에는 비정상적인 사람쯤으로보고 무시하고 있으니까 저런 반응도 나오는 거잖아. 그런데 이사회엔 이미 이런 반응들이 넘쳐나고, 그럼 이미 이 사회에는 장애인 혐오가 넘쳐나는거 아닌가?
그런 건 혐오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 싸잡아서 ‘꼴 보기 싫다. 꺼림칙하다‘ 하는 거가 진짜 혐오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혐오 개념의 해석이 다 다를 수 있잖아. - P240

그런데 혐오를 그렇게만 봐도 여전히 문제거든요. 왜냐면 이런 관점에선 장애인들이 여태까지 ‘혐오를 당할 자격도 없었던 사람‘이었던 거니까. 혐오가 이런 거라면, 혐오를 받는다는 거도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건데요. 존재 자체가 생각도 안 되는 사람들, 아예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 받아온 사람들은 제대로 혐오를 당할 수도 없어요. 뭐 보이기라도 해야지 혐오라도 할 거 아냐. - P241

그런데요, 제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거는 직접행동 투쟁에서 언제나 성과가 제일 중요한 건 아니란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당연히 성과를 완전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은 직접행동에서는 그냥 눈앞에 보이는 어떤 성과들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을 분명하게 하고 싶어요. 너네들만의 영토에서배제된 사람들이 우리의 영토를 만든다는 것, 그 싸움의 진지를만들고 거기에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씩 조직된다는 거, 그렇게우리가 계속 싸워갈 수 있는 희망의 물리적 기반이 만들어진다는거, 단기적 성과보다도 그게 가장 중요한 거죠. - P264

연대와 관련해서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90년대 후반에 이 말 보고서 딱 꽂혀가지고, 지금은 노들야학 슬로건이 되기도 한 건데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1994년에 멕시코에서 빈곤이나 억압, 차별 등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던 치아파스 선주민이 어떤 사람이 연대를 오니깐 이렇게 말을 했대요.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 왔다면 그건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왔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 P298

아니, 내가 뭐 하러 희생을 하겠어. 나 딱 봐봐. 내가 성자처럼 보이나. 전혀 안 그렇잖아요. 난 절대로 성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이 제일 중요한 사람일 뿐이야. 그런데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은요, 나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마련이 되더라고요. 나는 부족하나마 현미경으로 세상을들여다보려고 노력을 하면서, 나랑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 세상에 ‘다른 속도‘라는 것이 있구나, 라는 거를 매일같이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어요. 그러고서 이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사람들을 조직해가지고 이 사회 전체랑 맞서 싸우는 데서 어마어 - P326

마한 희망을 느끼고 있지.
나한테는 이 과정만큼 세상에 대한 감각, 그러니께 네 내가살아 있다는 감각을 이렇게 강렬하게 주는 게 아직까진 없는 것같아. 내가 내 존재를 확인하려면 이 과정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거지. - P327

아마 그 장면이 어떤 사람들한테는 엄청 처절해 보이기만 했을 거예요. 우리 지지하는 사람들한테도 말이야. 굳이 저렇게 기어가야 하냐고. 저 투쟁 방식이 맞는 거냐고. 일단 장애인이 기면은 불쌍해 보일 수가 있는 거잖아. 그런데 장애인이 이렇게 직접행동하면서 싸우는 과정에서 바닥에 내려와서 긴다는 거는 그 자체로 사실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거예요. 사회가 가지고 있는 관점 자체를, 관계 자체를 완전히 뒤집는 거니까. 장애인이 긴다는건 그동안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자기 불쌍함을 부각해서 동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었죠. 실제로 장애인들이 먹고살려고 구걸을 할 때 그렇게 많이 하기도 했고. 그런데 긴다는 게 장애인들이싸우는 수단이 되는 순간, 이긴다는 행위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요. 구걸하는 거에서 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거로 바뀌고, 그거는 이제 더 이상 ‘불쌍해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불온‘해 보이는거야.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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