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유인원큐브릭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의 조상으로 제시한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유인원의 모습은, 그가 영화를 만든 1960년대 당시 고인류학계의 정설이었던 ‘킬러 유인원 가설 Killer ApeHypothesis‘에서 그려진 모습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킬러 유인원 가설은더 이상 주류 학설이 아니지만, 이 가설에서 그려내는 고인류의 모습은고인류학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곳곳에 그 영향이 남아 있습니다. - P107
침팬지와 인류가 가깝기 때문에 침팬지가 보이는 폭력성과 공격성이 인류에게 나타난다면, 보노보가 가지고 있는 특징 역시 인류에게 나타난다고 볼 수있습니다.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폭력성, 살인 등은 침팬지에게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교감을 위한 섹스, 혈연을 넘어선 사회성 등은 보노보에게서 보입니다. 킬러유인원 가설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조상을 제시했다면, 평화롭고 사회적인 조상을 인류의 기원으로 보는 가설도 가능할까요? 브라이언 헤어 Brian Hare와 버네스 우즈Vanessa Woods는 공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2020)에서 보노보 연구를 바탕으로 인류 진 - P116
화의 동력을 자기 가축화와 사회적 협력에서 찾습니다.물론 침팬지도 보노보도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닙니다. 인류가500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있는 만큼 침팬지와 보노보역시 그들의 역사를 지나 지금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도, 평화적인 모습도 모두 인류 안에 있는 모습입니다. - P117
머리가 작아도 돼죽은 자에 대한 특별한 행위인 매장은 호모 사피엔스 크기의 두뇌를가지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능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독특한 행위로 여겨져 왔습니다. 겨우 500cc 용량의 머리를 가지고 있던 호모 날레디가 호모 에렉투스의 2분의 1가량, 호모 사피엔스의 3분의 1가량 크기의 두뇌로 깊은 동굴까지 주검을 가지고 가서 매장했다는 주장을 학계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작은 몸집과 작은 머리의 고인류는 우리가 여태껏 생각해 왔던 인류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합니다. 작은 머리로 석기를 만들어쓰고, 죽은 사람을 매장하고, 벽화를 그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20세기의 답은 결단코 ‘아니요‘였습니다. 고인류학계 대부분이 받아들인 정설에 따르면 벽화와 같이 고도의 인지 능력이 있어야 하는 행위는호모 사피엔스의 특유하고 독특한 행위였기 때문에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급의 몸과 머리‘를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 P137
들어가며: 흐르는 강물처럼20세기 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계단식 진화, 20세기 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나무식 진화, 이 둘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는 은유였습니다.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뻗어가는 모습도 아닙니다. 차라리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많은 물줄기를 이루었던 인류 계통의 다양성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작은 물줄기에서 큰 물줄기로 모여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우리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기원이 만들어 낸 모습입니다. - P10
장비발이 중요해두뇌 용량이450cc 남짓한 침팬지가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알고 그 방법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서 전승한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또한 그렇게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사람만이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틀렸음이 밝혀졌습니다. 사람만이 도구 제작 및 사용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고 다음 세대로 전승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 역시 틀렸음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다른 동물과 양적,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진화 역사 속에서도 사람이 속한호모속은 그 이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양적, 질적으로 다르다고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류와 다른 동물 사이에 놓인 벽, 호모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사이에 놓인 벽은 의외로 두껍지 않았습니다. - P50
고기 말고이 최근의 연구 성과들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두 발 걷기, 두뇌용량, 사냥도구의 제작과 사용이 패키지를 이룬 ‘사냥 가설‘은 그자체로 뛰어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것처럼 보였으며 20세기까지 주류가설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두 발 걷기‘가 떨어져나가고 이제는 두뇌 용량과 사냥, 도구 제작 간의 연결고리조차 끊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고기를 얻을 수 있는 큰 짐승을 사냥할 수밖에 없다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게 되면서또 다른 시각이 생기고 있습니다.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서 사냥이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은 채집을 통해 식물성 먹거리를확보했다는 경제 분업 가설이 와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물성 먹거리의 확보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이러한 분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곤충 등 다양한 동물성 먹거리와 씨앗, 구근류, 해산물 등으로 고칼로리 고단백질의 먹거리 섭취가 가능해지면서 두뇌는 점차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호모 에렉투스만이 아니라 약 200만 년 전에 살았던 모든 고인류가 공통적으로 겪은 진화입니다. 어른 침팬지보다 큰 머리를 가지고 있는 고인류가 서로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따라 했을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 P83
아이보리 스노우 처럼 하얀 피부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아기라는 매력적인 대상을 미혼모에게서 빼앗아 ’결혼한 정상가족‘에게 보낸 강제 입양 시대. 이런 폭력적인 시대가 머지 않던 과거에 존재했다니.10대 미혼모는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문제 여자애로 낙인 찍고. 그런데 미혼부는 어디에?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존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기를 빼앗긴 미혼모는 평생 고통과 죄책감 속에 살았을텐데. 미혼부는 기억이나 할까?책이 반복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되풀이에서 미혼 입양 당사자로서 저자의 울분과 분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권희정 번역가의 <미혼모의 탄생>도 읽어보고 싶다.
3부 23장 채찍과 돌멩이상황이 이러하니 그 수많은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한 것이이상한 일이겠는가? 이들에게는 환자, 부적응자, 미성숙, 신경증, 죄지은 오염된 범죄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런 환경에서보호받지 못하고, 취약하며, 무방비 상태인 엄마가 아이를 감히키울 수 있었을까? 사례관리의 목표는 아기를 키우고 싶다는자연스러운 욕구를 좌절시키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들은 다음과 같은 정신분석학자 헬렌 도이치‘의 말을 믿으며 전문심리학자들의 말을 추종했다.미혼모 중 가장 성숙하지 못한 미혼모들이 아이를 기르겠다고 싸운다. … 대부분의 미혼모들을 위한 최선의 해결책은 아이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 아이 입양에 대한 미혼모의저항은 ‘방어 및 증상 형성의 역학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Carp 1998: 116 재인용) - P235
사회복지사들인 우리는... 사회적 수치sociological shame란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 사회복지 사례관리자들은 거의 모두 여성들인데, 특히 미혼모 문제를 다루는 영역에서는더 그렇다. 그들은 ‘혼외‘, ‘적법하지 않은‘, ‘사생아‘, ‘문란‘, ‘창녀‘, ‘죄악‘과 같은 단어들이 연상시키는 사회적 관념에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반응한다. 그런데자세히 보면, 이 단어들은 남성이 대표성을 갖는 사회에서 만들어진 ‘착한‘ 여성이라는 문화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고통스럽고도 비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수태의 순간 참여한 행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들은 같은사회에 사는 ‘좋은‘ 남자들의 사회적 지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Bye 1959.1.1.) - P238
3부 24장 과거라는 거울사회복지사들에게 미혼모의 아이 포기 ‘선택‘은 유일한 해결책인 입양 쪽으로 미혼모를 몰고 가기 위해 그들이 사용한 기술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혼모 당사자인 메리 존스는 과거 아기 포기의 경험을 회고하며 ‘선택‘이란 단어의 사용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선택‘을 했다고? 아니, 선택은 없었다. 선택이란 단어를 아기를 포기해야 하는 엄마에게 쓸 수 없다. 사실 이 단어는 친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다. 즉, 미혼모는 냉정하고 무정한 쓰레기 같은 존재라 아이 없는 삶이 더 재미있고, 경제적으로 덜 부담되며, 더 편하려고 아이 포기를 선택했다는 의미가내포되어 있다. 말도 안 된다. 세상에 어떤 인간도 동물도 아기를 키우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상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만약 취약한 상태에 있다면아기 포기를 선택할 것이다. 무력한 상태에 있을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Jones 1993:11-12) - P247
박탈된 슬픔
2부 13장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들처럼하지만 미혼모는 남편이 없기에 아이를 키울 경우 상당한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전통적 역할은 여성이 아동을 양육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여성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남편이 있다는 가정하에서였다. 대부분의 미혼모는 여러 면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성인 중심 사회에서 미혼모들의 대부분은 나이도 어렸다. 또한, 남성에게 유리한 소득구조와 싸워야 했다. 남성의 보호 없이, 미혼모의 도덕적 위상은 불안정했고, 미혼모와 그 자녀는 사실상 사회적 정체성이 없었다.누군가의 아내가 되지 못하고 홀로 엄마가 된 그녀는 좁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넓게는 사회로부터도 경제적 지원을 받기힘들다. 왜냐하면, 여성은 유급 노동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자식과 자식의 아버지(여성의 남편)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란 믿음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Inglis 1984) - P148
2부 15장 회전문과 컨베이어 밸트시설이 개인들을 통제하에 둠으로써 비인격화하기는 쉬웠다. 일탈에 대해 연구한 사회학자 슈어에 따르면, 대상화의 가장 극적인 예는 "모든 제도" 안에 들어온 새로운 수용자들이 의례화된 "굴욕" 또는 "정체성의 박탈"을 경험하는 것이다. 개인소지품과 옷을 빼앗고 외모조차 평범해 보이지 않게 만든다면그 사람은 바로 "죄수", "정신병동 환자", 또는 "신병"이 되는 것이다(Schur 1983:31). - P162
2부 20장 조각내기게다가 아기와 헤어진 어머니가 슬퍼할 경우, 만약 그 어머니가 미혼모이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미혼모는 임신하고 출산하는 다른 여성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와 같았다. 그러나 로렌스가 지적하듯 미혼모의 슬픔은 실재하는 것이다.미혼모는 달라야 했다. 즉 일탈적이어야 했다. 만약 다른 엄마들과 똑같은 정도로 아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입양의 선함은 친생모의 비극에 압도당할 것이다. … 사회도, 입양한 아기를 안고 있는 입양모도, 아기를 품에서 놓아 버린 친모의 고통과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고통은 실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잃어버린 아이와의 재회를 통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Lawrence 1979.5.4.) - P204
반복하지만, 아기를 포기한 엄마의 슬픔은 사실이다.박탈된 슬픔disenfranchised grief이란 공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모두에게 애도 받지 못하는 슬픔이다.‘ ... 미혼모는 마땅히 애도할 자격이 있는어머니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아기를 잃었다는 사실은 실제일어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어떤 엄마들은 임신으로 보상을 받고 어떤 엄마들은 처벌을 받는 사회에서 미혼모는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실망하고, 자신도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사회는 어떤 엄마에게 임신은 잘한 일이고, 어떤엄마에게 임신은 잘못한 일이라고 한다. 어떤 엄마에게는 슬퍼하라 하고, 어떤 엄마에게는 슬퍼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행동이라고 한다. 어떤 엄마에게는 자신보다 아기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하고, 어떤 엄마에는 아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녀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경험에서 고립되어있다. 그녀가 느끼는 슬픔은 해결될 수 없다. 홀로 어떻게든그것과 함께 살아야 한다. (Roland 2000:9-10) -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