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호정

미래는 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실체가 있는 모든 시간은 자신을 미래로부터 분리해 현재로 드러낸다. 그러나 결합이 있어야 분리도 있다. 물결치며 갈라지는 미래 사이로 굳어지는 현재에 발을 디딜 때, 사건들은 단단히 뭉쳐 나를 견딘다. 영혼이 몸에 발을 담그듯 저 삶들은 이 삶 속에 끊임없이 뛰어든다. 어쩌면 나는 결합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결합을 결정하는 쪽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도 아닌, 결합 자체일 뿐일지 모른다. 최소한 나는 그것을 통해 여기 있었다. 그리고 나를 있게 한 모든 결합은 불균형적이고 비대칭적이며 무엇보다도 비확정적이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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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7호 : 한국 인문 잡지 한편 17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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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 때 떠나고도 싶었지만, 한국인으로 한국에 산다는 기득권을 내가 영구히 포기할 수 있을까. K-민주주의부터 K-문학, K-푸드까지. 싫은 것과 부끄러운 것과 자부심인 것과 희망인 것의 뒤섞임. 한국 여성문학 선집 이야기가 가장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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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야 - 전예원세계문학선 309 셰익스피어 전집 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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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십이야>를 보기 전 읽었다. 헤어진 쌍둥이남매와 남장여자라는 설정으로 벌어지는 해프닝은 원작과 동일하며 시대적 배경만 조선시대 인천 농머리 해안으로 변경되었다. 터프한 구룡포 사투리가 남장여자라는 설정에 재미를 더하는 포인트. 재밌게 읽었고 신나게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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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6-30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전에 십이야 연극 공연 본 적 있는데 흥겨웠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이 달의 마지막 날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햇살과함께 2025-07-01 11:10   좋아요 1 | URL
오 그러시군요! 마당극 보는 듯 즐거웠습니다. 서곡님도 무더운 7월 잘 보내세요!
 

손창섭 <생활적>

김정인_아래위의 민주주의

비록 달성하려는 방법은 달랐지만, 모든 조선인들은오로지 두 가지를 열망하고 있었다.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을 원하는 것이었다. 자유. 자유라는 말은 자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금덩이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자유든 조선인들에게는 신성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일제의 압제로부터의 자유, 결혼과 연애의 자유,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자유, 자기 삶을스스로 규정할 자유를 원했다.[3] - P27

김지현_한국, 여성, 문학

"단점을 지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때도 발전 가능성을 찾아내서 닦아보여 주는 게 프로야."
진부하게만 느껴지던 셰익스피어 희곡을 한 학기내내 배우던 학교 수업 첫날, 선생님이 한 말이다. - P59

기존 문학적 형식에 대한 의심의 바탕에는 ‘문학사 탈구축 작업‘이 있다. 문학사 탈구축 작업은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적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문학사에깃든 국민국가, 남성·엘리트, 문학중심주의 등을 걷어 내고 여성과 소수자 문학을 문학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 P63

김익균_춘향의 그네 노래

무엇보다도 「추천사」는 해방의 노래다. ‘추천‘이그네를 뜻하는 한자말이고 ‘사(詞)‘는 노래라는 뜻이나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그네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시에는 ‘춘향의 말 일(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해방을 맞아 터져 나오는 ‘춘향의 첫 일성‘이라니 뭔가 힙하지 않은가? 춘향으로 대표되는 젊은 여성의 말이 절정의 노래로 울려 퍼진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이시의 원작을 다시 꺼내는 것은 해방의 기쁨에 들뜬 텍스트의 욕망에 물들고 싶어서인가 보다. - P81

오승희_대한민국의 인정 투쟁

한국의 존재가 지워진 시기가 있다. 120년 전인 1905년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강대국의 승인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같은 해 일본은 비밀리에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지배를 승인받고,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우월권을 인정받았다. 즉 일본은 강대국과의 협상을 통해 한반도 지배를 인정받았고, 한국정부는 "한국이 부강해졌음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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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의 밀당이 제인 오스틴 소설 만큼은 아니지만,

여주의 까칠함이 <제인 에어> 만큼은 아니지만,

부유하고 당당하고 할 말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여주를 만났다.

셜리가 셜리로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제어하는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숙부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셜리를 부유한 가문과 결혼시키려고 난리를 치지만,

셜리는 그런 숙부를 물리친다.

말싸움으로, 기싸움으로 절대 지지 않는다.

결혼으로 귀결되는 마지막 결말은 조금 실망스럽지만,

당시 현실을 고려하여 쓰고 싶은 결말보다 많이 절제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스터후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고.

 

첨예한 시대 상황, 국제 정세, 정치적 상황, 계급 갈등, 경제 문제 등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등장인물 각자의 다른 의견, 다른 시선, 갈등을 보여주며, 누구 하나가 영웅시 되지 않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생각과 행동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행동으로 직접 나서는 것은 남성일 수 밖에 없지만, 셜리를 통해 여성도 생각하고 행동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로맨스 소설적 재미는 <제인 에어>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여성 작가가 연애, 결혼, 가정 생활에 국한된 소설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셜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풍성한 해석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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