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도 배웅도 없이 창비시선 516
박준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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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시보다 많이 짧아졌다. 제목부터. 첫 시 <지각>이 가장 좋다. 뭐랄까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보던 시 같아 익숙하달까. 뒤편에 붙은 산문의, 작가가 거쳐 간 여러 도시들에 대한 단상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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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

콘텍스트에 대한 무한 존중을 넘어 그것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그것을 교정하는 패턴을 디자인하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조경작업인 셈이다. 물론 자신의 패턴이 콘텍스트에 도전해야 함을 말한다기보다는 "콘텍스트와 패턴 사이"의 접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다음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설계는 더하는작업이 아니라 빼는 작업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면 설계안은 복잡해진다. 복잡한 설계 - P143

안이 좋은 공간으로 진화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때로는 ‘패턴‘이 ‘콘텍스트‘를 존중하고 스스로 몸 낮추기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다. 형태뿐만이 아니다. 재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모든 조형적요소들은 최적의 순간까지만 적극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10) 박승진의작품에 미니멀리즘을 대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워커힐 아카디아호텔 옥상(2007년), 풀무원 폐수처리장 물의 정원(2009년), 아모레퍼시픽 뷰티 캠퍼스(2012년) 등과 같은 그의 작업에서는 자연의 바탕을 마련하고 자연의 시간성과 물성을 살리는 "보살핌"의 조경이 미니멀한 형태와 재료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난다. - P144

퍼트리샤 조핸슨

저는 이 원리를 수년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수처리 습지를 조성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만난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개발업자들과 의기투합해서 돈을 벌고 있었어요. 한편으로 습지를 파괴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편에서 그로 인한 폐단을 줄이는 사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습지 복원 전문가들이 나서서 습지를 새로 조성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될까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심어놓은 식물들은 항상 죽어버려요. 제가 여기서 배운 건 자연이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자연을 거역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습지 위에 건설된 주차장이 있다고 한다면 그 땅에는 결국 습지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습지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그곳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본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억지로 배치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자연의 결정을 우리가 대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작은 부분이 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간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 P163

그런데 실제로 다 사라졌거든요. 이렇게 된 것이었어요. 왜 샌프란시스코만에서 굴 등이 종적을 감추었는지 과학이 밝혀냈는데, 그 이유는사람들에 의해서 수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어요! (갯벌이 공유지로 남아 있어서) 주민들이 굴을 조금씩 채취해서 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자주 개펄에 드나들면서 진흙탕을 계속해서 휘저었던것이죠. 그러면서 무거운 흙이 조개들의 서식지 위에 켜켜이 쌓여서 숨쉴 통로가 막히는 일을 방지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관에서 원주민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해안에 접근할 수 없게 했으니 어떻게 됐겠습니까. 굴 같은 동물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규명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조상 대대로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종래의 과학이라는 것은부분적인 진실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가 확장됨에 따라서) 계속해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사실이라고 생각한 것이내일 틀렸다고 밝혀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 P165

100% 공감합니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람이 만든 작품에서는완벽한 균형미 같은 것은 볼 수 있어도 다른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호두 같은 것을 들여다보면 그 형상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물체가 본래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등 기능적, 구조적인 고려를 모두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의 어떤 부분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그 구조가 얼마나 완벽한지 알 수 있습니다. 형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말입니다. 생존의 측면에서도, 이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 자신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속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더이상 적합할 수 없는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각각의 요소들이 모여서 대단히다면적인 하나의 전체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캔버스 위의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색깔들도 멋있고 우리에게 미학적 기쁨을 주지요. 그러나 자연의 어떤 부분이라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다층적인 의미는 갖고 있지못합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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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산 책 안올렸구나. 오늘 마지막 날이니 올려야지.

5월 여성주의책 <재생산 유토피아>. 진정 마지막인가요.

<이집트 미술> 남편이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한길아트 이 시리즈가 재정가 도서로 정가가 단돈 15,000원이라길래 구매했다.

끼워넣기는 쫀득하갱 팥데이. 과자 줄이려고 두부스낵 안사고 등산용 간식으로 구매.

연휴 잘 보내세요. 연휴 아닌 분도 있겠지만. 비가 온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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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5-01 0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식년을 갖는 걸로 할까요? 훗.

단발머리 2025-05-01 09:57   좋아요 3 | URL
네, 그래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5-05-01 21:29   좋아요 1 | URL
네~ 안식년을 갖고 돌아오시죠~ 기다리겠습니다!!

단발머리 2025-05-01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집트 미술에 눈이 가지만 ㅋㅋㅋㅋㅋ다음 구매는 무조건 쫀득양갱입니다. 소중하고 맛있는 정보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5-05-01 21:30   좋아요 0 | URL
요즘 과자를 줄이려다 보니 자주 사게 되는 아이템입니다 ㅋㅋ
 

지각

나의 슬픔은 나무 밑에 있고
나의 미안은 호숫가에 있고
나의 잘못은 비탈길에 있다

나는 나무 밑에서 미안해하고
나는 호숫가에서 뉘우치며
나는 비탈에서 슬퍼한다

이르게 찾아오는 것은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된다 - P10

설령

열까지 다 세고 나면
다시 하나둘 올라야 합니다

설령 높고 험하다 해도
딛고 있는 바닥부터 살펴야 합니다

낮고 천천히 숨을 고른 뒤
걸음을 옮깁니다

다만 이후의 시간에 관해서는
얼마간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어차피
나의 기억과 나의 망각이
사이좋게 나누어 가질 것들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채 닫지 못한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들만을 적기로 합니다 - P32

"우리의 목소리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닮아간다" "서리고 어리는 것들과 이마를 맞대며 오후를 보냈다" "흙과 종이와 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당장 하나의 글로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다가오는 계절의 밤은

세상에서 가장 길며
짙으며 높으며 넓습니다 - P33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일신병원 장례식장에 정차합니까 하고 물으며 버스에 탄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가 운전석으로 가서는 서울로 나가는 막차가 언제 있습니까 묻는다 자리로 돌아와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내일 첫차는 언제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 P66

블랙리스트

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희창, 양상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채정근 몇은 일가였고 다른 몇은 내가 얼굴만 알거나 성함만 들어본 분이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 때 나는 모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 P72

산문_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

제천. 이곳을 지나기 전에는 어디를 지나야 했을까. 나를지난날로 만드는 시간이 있었듯 너를 앞날로 만드는 시간도있다. 그렇다면 시간은 우리를 어디에 흘리고 온 것일까. 분명한 일은 사람에게 못할 짓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 도착하던 날의 바람은 어디 멀리 가지 않고 떠나는날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심을 마주하는 상대의손길과 그에게는 내가 진심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불길과좀처럼 투명해지지 않는 눈길. 산간 도로는 오늘도 열리지않았다.

벽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힘은 세다. 다시 장례를 치른다. 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 그간의 일을 삼일 만에 떠나보내고 세상을 끝낸 풍경의 상가. 조등 하나 걸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것들의 힘은 더 세다. 죽음이 이야기하는 삶은 한결같지만 삶이 이야기하는 죽음은 매번 다르다. - P83

대구. ‘빗소리가 요란하다‘라는 문장을 쓰면서 시작한다. 반쯤 걸쳐진 빛을 언제쯤 직시할 수 있을까. 비 오고 바람 부는데 나는 낯선 길에서 누군가와 눈인사나 하고 싶어한다.

서산. 저녁이 밤이 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만으로 하루가 충분해질 때가 있다. 시간은 가기도 잘도 간다. 정해진 방향이 없어 가끔 뒷걸음을 한다. 만약 그날을 기점으로다시 살아내야 한다면 지금과 꼭 같이 하지는 못할 것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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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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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주인공의 자의식 과잉 어쩔거야. 길지 않은 분량인데 금방 읽긴 했는데 넘쳐나는 주인공의 독백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카뮈 3권 밖에 안 읽었는데 페스트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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