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지구에서 9지구까지 계급화된 지구, 1지구 중에서도 최고 학교인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잡안 좋고 순수하고 착실하고 예의바르고 명철한 다윈 영. 루미 헌터에 의해 그의 알이 깨지며 그의 세계가 폭발한다. 설국열차 같기도 데미안 같기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보에서 산 한강 작가의 <흰>.
한편 16호 <유머> 및 봉투. 봉투 문구가 바뀌었네. <인생의 베일>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그리고 민음사 인생일력이 어플로 나와서 구매했다. 매일 필사 중. 오늘의 문장은 <순수의 시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즈는 단호함을 넘어서 냉정함이 느껴지는 다윈의 말에 내심 큰 충격을 받았지만 "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할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것으로 놀란 기색을 감추었다. 그러고는 곧 다윈은 느끼지 못하는 은밀한 시선으로 찬찬히 다윈을 살폈다. 머리칼에 그늘진 이마, 야윈 뺨, 이곳에 있으면서도 다른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눈동자...………. 버즈는 오늘에야 비로소 다큐멘터리 해설자에 맞는 다윈의 특성을 알아본 것이 어쩌면 이런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까지만 해도마냥 빛이 난 길로만 걷는 소년인줄 알았던 다윈이 겨울을 눈앞에 둔 지금은 그늘에 잠겨 잘 보이지 않게 된 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있는 세계를 둘러보는 관찰자가 돼 있었다. 몸은 여위고 눈빛은 아직 흔들렸지만 단호한 목소리에서만큼은기필코 아버지의 성안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졌다.
버즈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다윈은 지금 애써 어른이 되려 하는 것이다. 아무 씨앗도 날아들지 않는 정체된 하늘과 아직 충분히 영양이 차오르지 않은 마른 토질에서 어떻게 갑자기 그런 변화의 욕구를 싹 틔웠는지는 모르지만, 버즈는 다시 한 번 다윈이 프라임스쿨을 대변할 목소리의 적임자임을 확신했다. 홀로서기 위해 내면에서 조용히 분투를 치르는 소년은 자신이 구현해 내고자 하는 프라임스쿨의 이상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 P5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육대회 개회식에서 니스는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능은 갑자기 품속으로 날아온 한 마리의 새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빛깔로 기쁨을 주지만 언제 또 홀연히 품에서 날아가버릴지 모릅니다. 그 새를 진정한 자기 것으로 길들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하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새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높은 이상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길들인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승패를 떠나두기숙사는 모두 승리할 것입니다." - P279

"말도 안 되는 얘기야. 버즈 아저씨나 너에게서 할아버지의 흠결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게 이어진다고 할 수 있겠어?"
"하지만 흔히들 그러잖아.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것들은 아버지 세대가 이뤄 낸 영광 덕분이니까, 영광과 함께 흠결도 이어받아야하는게 정당한거라고."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영광과 흠결을 같은 방향에 두는 건 인간의 발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퇴보적인 관점이야.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전 세대의 영광은 이어지고 흠결은 사라진다고 하는 게 문명의 발달에도 부합되는 것 아니겠어? 모든 인간은 과거에서 유래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인간은 새로운 존재잖아."
이야기를 끝내는 순간 레오가 과장되게 박수를 쳤다.
"내가 프라임스쿨에서 들은 모든 얘기들 중에 제일 감탄이나오는 이야기야. 학생회 애들도 여기서 네 강의를 들었어야 하는건데."
"너무 그러니까 꼭 놀리는 것 같은데?" - P3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박지리 작가의 장편소설. 철저히 계급화되어 1지구부터 9지구까지 구획된 지구. 1지구 최고 학교인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다윈과 프리메라스쿨에 다니는 루미가 30년 전 죽은 루미 삼촌 제이의 죽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9지구를 찾아가는데…
설국열차가 생각나는 설정이다.

"할아버지랑 아버지도 가끔은 이렇게 안아 보세요. 그러면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예요. 전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스킨십하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러너는 자기 그림자 옆에 다정하게 붙은 그림자를 흐뭇하면서도 쓸쓸하게 바라보았다.
"별로가 아니라 아예 없을 거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죠? 그릇끼리 부딪치지않는데 어떻게 서로의 영혼을 느끼겠어요?"
러너는 웃으며 다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다윈은 시인이구나."라고
"바로 이거예요. 저한테 하듯이 아버지에게도 이렇게 해보세요."
러너는 다윈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손으로 다시 손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글쎄다, 상상이 안 되는구나. 이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나이도 지났고."
"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아들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잖아요. 저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인걸요."
"그게 말이다, 나도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아버지와 아들보다는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가 더 쉬운거라는 말이 있더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야." - P75

다윈은 프라임스쿨을 둘러싼 자연에서 위안을 얻었다. 자신 있게 제출한 리포트에서 기대보다 못한 결과를 얻어 낙담한 날이면 혼자기숙사 부근의 오솔길을 걷곤 했다. 흔들림 없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과 외부의 도움 없이도 나날이 무성해지는 풀, 땅에 떨어진 뭔가를 열심히 모으는 작은 곤충들을 지나치다 보면, 자연이라고 불리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운명에 맡겨진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만이 힘든 운명을 떠안은 게 아니었다. 혼자 애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자연의 그런 조화로움을 느끼고 나면 상심했던 마음도천천히 회복되어 갔다.
길은 걸음만이 아니라 생각도 함께 이끌었다. 걷고 걸어 길이 끝에 다다를 즈음이면 교수님이 지적한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것 같았고, "기대가 크기 때문에"라는 충고 속에 깃든 애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산책을 통해 얻은 또 다른 의미 있는 발견은 인류가 얻은 모든 진리가 결국엔 자연에서 온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어느 오후, 산책을 하던 다윈은 문득 과학과 수학, 철학, 문학, 종교, 예술에서 이루어진 근본적인 성취가 모두 이렇게 하늘과 땅과 나무를 바라보는 행위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학자도 화가도 어느 날 이렇게 똑같이 자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바라본 자연을 전혀 다른 기호로 역사에 남겼다. - P87

다윈의 지적은 물론 합당했다. 그러나 이미 수없이 자문해 본 낡은 질문이었다. 질문만 하고 답을 찾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미궁속을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루미는 사진들을 게임 카드처럼 손에 쥐며 말했다.
"맞아, 이건 성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패야. 확률만을 따진다면 당연히 실패할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래도 게임을 할 수 있는 패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거야. 존재와 비존재는 단순히 많고 적음의 차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 희박하지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가능성이 생길수있는거니까."
루미는 자신을 응시하는 다윈의 시선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다윈 너와 나도 어쩌면 이 사진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가능성으로 이곳에 온 거 아니야? 생각해 봐, 얼마 전까지 너랑 내가 9지구로 가는 기차를 함께 탈거라는 상상을 해본적 있는지. 하지만 우린 지금 그러고 있잖아. 왜냐면 우리가 추도식에서 말없이 스쳐 지나갔던 순간마다 오늘 이렇게 만날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은 늘 존재했으니까."
루미는 다윈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알 수 없었다. 어떤 남자애들은 단순히 여자의 의견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지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레오처럼 자존심 강한 프라임 보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다윈은 아무 말이 없었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