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 성취의 8할은 운

태어나면서 첫 번째로 만나는 운은 ‘어디서 태어났는가‘입니다. 세계은행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ć는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태어난 나라의 평균 소득과 불평등지수만으로 성인기 소득의 최소 50%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나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성공할가능성이 낮습니다. 고등교육을 받기 어렵고 대학을 졸업해도좋은 직장을 얻기 어렵습니다.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자본도 부족하지만 부패와 법집행의 자의성, 불합리한 규제, 인프라 부족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높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위 20%안에 들어가는 운 좋은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만나는 운은 ‘부모‘입니다. 사람의 성취와 행동에서 유전 요소와 환경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를 ‘본성과 양육‘ 논쟁이라고 합니다. 유전 요소가 중요하다면 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환경 요소가 중요하다면 아이의 운명을 바꿀 여지가 더 많을 것입니다. - P27

성취의 또 다른 척도인 ‘건강‘도 운이 중요합니다. 우선 태어난 나라가 기대수명을 크게 좌우합니다. 그 나라의 소득 수준과 의료 시스템 등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주지요.
2017년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팀은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18가지 주요 암의 발생 요인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크게 유전, 환경, 세포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가 암 발생 요인입니다.
연구 결과, 암 발생의 50% 이상이 우연에 기인했습니다. 게다가 부모가 물려준 유전도 운이지요. 사람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결국사람의 건강도 운이 8할을 좌우합니다.
그럼 나머지 20%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가요? - P29

그런데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힘조차도 사실 상당 부분 타고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 성취의 대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아닙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도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룬 분들일 것입니다. 어렵게 살고 계신분들은 한가하게 독서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인생 성공의 8할이 운이래. 우리 가족의 성취도 사실 대부분 운이야. 우리의 힘으로만 이룬 게 아니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해. 그리고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좌절하지 말자. 운이 좀나빴던 것뿐이야. 또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살자꾸나. 혹시 스스로 성취한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러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렴.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니까." - P30

차갑고 닫힌 마음, 능력주의 믿음의 부작용
저의 코넬대학교 동료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교수는2016년에 낸 책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에서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경향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 부작용이 큽니다. 자기 성취가 스스로 이룬 것이라 믿을수록 세금 납부에 더 적대적입니다. 정부와 사회가 도와준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실패한 사람을 운이 나쁘기보다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므로, 이들을 돕는일에도 소극적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의 성취에 미치는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런 믿음이 타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내가 될 수 있던 것은 8할 이상이 공동체와 다른 사람 덕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샌델MichaelSandel 교수가 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제시한 제비뽑기에 의한 대학 입시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35

2. 배 속 10개월이 평생을 좌우한다.

지현 씨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직장은 중요한 환경 요인입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가운데 업무 환경이 가혹한 편이지요. 노동시간이 길고, 출퇴근이 고단하며, 불필요한 회식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업무량과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덜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임신 기간에 노동시간 단축은 임신 12주 이내 또는36주 이후만 가능하고, 하루 2시간뿐입니다. 그조차 눈치가 보이지요. 이런 것도임신부는 모든 임신 기간에 휴가를 유연하게 쓸 수 있어야합니다. 최근 육아휴직을 임신 기간에도 쓸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합니다. 긍정적 변화입니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육아휴직 기간을 출산 뒤 1년이아닌, 임신 뒤 2년으로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사회보장제도를 표현하는 상징적 구호인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 무덤까지‘로 다시 쓰여야 합니다. - P51

5. 아빠에게도 육아 교육이 필요하다

육아의 다른 무게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17년 1만2,042명이었습니다. 당시 전체 육아휴직자 9만100명의 13.4%만 남성이었습니다. 3년이 지난 2020년 통계를 볼까요? 남성육아휴직자 수가 2만7,423명으로 늘었습니다. 전체 육아휴직자 11만2,040명의 24.5%입니다.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이 남성입니다.
자녀 돌봄에 대한 남녀 역할 인식도 꽤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4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년 양성평등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돌봄의일차적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인식이 2016년 53.8%에서2021년 17.4%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합니다. 여러 변화가 나타났지만, 아직은 자녀 돌봄에서 엄마가 감당하는 무게가 여전히 큰편입니다. 가령 자녀의 숙제 · 공부 지도 혹은 등하교 동행을거의 매일 담당하는 엄마는 50~60%에 이르지만, 그런 아빠는20% 정도에 불과합니다. - P77

그런데 아빠 프로그램을 추가로 실시한 마을의 영·유아 영양소 섭취 다양성 점수는 3.5점으로, 3.9점보다 오히려 0.4점줄었습니다(그룹 B 대 그룹 A). 아빠 프로그램이 영·유아의 충분한 영양 섭취를 오히려 방해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논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빠 프로그램을 통해 아빠들은 일정 부분 육아 지식을 얻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수준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빠들이 엄마의 식품 구매 결정에 간섭하면서 엄마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적절한 식품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식품 바우처도 아빠의 간섭이 있는 그룹 B에서, 그렇지 않은 그룹 A에 비해 아이들이 주로 소비하는 우유·달걀같은 유제품 지출이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이런 아빠에 관한 이야기가 낯설지않습니다. 한국 청소년 대학 입시의 성공 요건이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죠. 이는 에티오피아에서 진행된 실험 연구의 결과와 일치합니다.
실제로 재력(식품 바우처)과 엄마의 정보력(엄마 교육 프로그램 참여)이 더해지니 아이들의 영양 섭취가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이 과정에 참여하면 목표 달성을 오히려 방해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 P84

7. 직장을 잃으면 건강해진다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근로 환경 조사에 의하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은 같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에 비해 훨씬더 큰 산업 위험에 시달립니다(7-3> 참조). 남자 제조업 노동자는 진동·소음·먼지 · 유해물질·과로 등 산업 위험에 과다노출되고 있습니다. 또한 음주를 겸한 회식도 남성 위주로 이뤄집니다.
워낙 심각한 산업 위험 요인에 노출된 직장을 다녔기에 실직 후 오히려 건강이 좋아지는 게 우리나라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실직하고 오히려 건강해진다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산업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관심과기업의 적극적 노력을 주문합니다.
한편, 여기서 살펴본 1980년대 미국과 덴마크, 2000년대 한국은 상대적으로 해고가 쉽지 않은(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은) 환경에서 실직의 효과를 측정한 연구입니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해고도 어렵고 신규 채용도 적습니다. 반면 유연한 노동시장은 실직도, 신규 채용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실직의 부정적영향은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극대화됩니다.
OECD와 유럽의 주요 선진국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이는 ‘유연 안정성‘ 제고를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전략을 택해야 합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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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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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걷는 동안 <정희진의 공부>를 들으며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희진 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즐거운 경험. 그렇지만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장 하나 하나가 다 걸린다. 물음표를 던진다. 아직 나의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다시, 다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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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죽어야 사는 여성들의 인권

기지촌 여성을 소재로 한 소설로는 안일순의 <뺏벌》(1995)이 있다. 안일순은 1992년윤금이 사건을 계기로 해 기지촌 여성의 삶에 관심을 쏟게 된 여성주의 작가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시, 소설 등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안일순은 기지촌 여성 운동가 김연자와 함께 군사주의와 여성, 군대와 매춘 관련 국제 세미나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교정은 한국같이 사회적 억압이 심한 사회에서는 시민 운동조차 민족 민주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 예로 윤금이 사건을 동두천시 시민운동과 같이 언급했다. 김현숙은 기지촌 여성 운동에서 기지촌 여성, 중산층 페미니스트, 남성 민족주의자의 정치학이 같지 않다고주장하면서 기지촌 여성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고 주장한다. - P274

포천, 동두천, 의정부의 뺏벌, 파주의 용주골, 문산의 선유리, 서울 용산의 미 8군 기지, 이태원, 후암동 등도 기지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뺏벌은 기지촌을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뱃벌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수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경기도 의정부시 스탠리 부대(Camp Stanley)주변의 기지촌 매매춘 집결지를 말한다. 뺏벌은 의정부 시내버스를타면 정거장 이름으로도 표지가 되어 있는, 이 지역에서도 공식화지명이다. 현재 지방의 옛 기지촌들은 단속이 심한 서울을 피해내려간 국내 매매춘 업주들이 정착하면서 국내 매매춘 집결지로 유명해졌다. 매매춘 업소가 한곳에 모여 있는 이유는 포주들이 매춘여성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쉽고 행정당국이 단속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매매춘 집결지는 다른 사회와 구분되어 매춘 여성들에 대사회적 낙인을 강화한다. - P279

이른바 ‘현장‘ 출신 여성 운동가이자,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기지촌 여성 운동가이다. 그동안 각종 여성 인권 대회, 학술 대회에서 자신의 삶을 증언했다. 그는 그동안 한 번도 가시화되지 않았던 기지촌 매매춘의 실태와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현재 알려진 대부분의 기지촌 여성 관련 증언과 생애사는 김연자의 증언과 두레방활동에서 채록된 상담 기록에 의한 것이다. 군위안부 최초의 증언자가 고(故) 김학순이었다면 ‘현대판 정신대‘라는 기지촌에 관해서는 김연자가 최초의 증언자이다.
그러나 김연자의 활동은 ‘증언자‘의 존재를 넘어선다. 그는 한국사회가 기지촌 여성을 다루는 다양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기지촌 여성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 동정하는 것, 반미의 상징으로이미지화하는 것, 제국주의 침략의 가장 큰 희생자로 보는 것에 모두 반대한다. 오히려 그는 한국 사회 내부의 가부장제와 계급 문제를 비판한다. 사회 운동권과 여성 운동 세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스스로 말하고자 하고 기지촌 여성도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주체화되기를 원한다. - P282

그녀(김연자)는 반미 주장에 기지촌 여성을 연결 짓는 사람들을 대할때 흥분한다. "미군은 나쁘고 양공주는 불쌍하다." 그러한 단세포적 시공녀로, 데이각으로 미군 범죄를 보면 논리의 비약을 가져온다.
신파이로, 닷지로, 아이코로, 티나로 여자들을 이민족에게 바치는 동안조선의 사대부들은 안방에서 처첩을 거느리고 아내를 때리지 않았는가? 자신들은 군대 가기 전에 딱지 뗀다고 사창가로 몰려가면서 첫날밤 신부의 처녀막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영계니, 회춘에 몸보신에 극성인 남자들, 딸이고 처제고 어린이고 가리지 않고 겁탈하는 그들의 정력……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태국으로 괌으로 국제 매춘의 대열에 선 남자들 기지촌을 배태시킨 구조적인 문제에 앞서, 케네스 마클(윤금이 살해범)에게 돌을 던지기에 앞서 나는 이 나라 남자들이 먼저 눈뜨기 바란다. - P303

하지만 전반적으로 윤금이 사건은 기지촌 여성의 인권 향상으로이어지기보다는 미군 범죄, 민족 자존심의 문제로 집중되었다. 윤금이 사건에 참여한 운동 주체들이 강조한 것은 매춘 여성 인권 유린 문제가 아니었다. 피해자의 인권 침해 사실보다는 가해자가 우리(민족)를 억압하는 미군이었다는 점이 이 사건에서 더 중요하게다뤄졌다. 그들이 강조한 것은 기지촌 여성의 존재와 그들이 그동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가가 아니라, 해방 이후 발생한 미군 범죄가 약 10만여 건이었다는 점, 미군 범죄에 대한 한국 정부의 1차 재판권 행사율이 0.7퍼센트에 불과(필리핀은 21퍼센트, 일본 32퍼센트, NATO는 52퍼센트)했다는 점이었다. 즉 이 사건은우리 민족이 미국의 식민지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되었다. - P321

학생 운동 출신이 생각하는 사회 운동의 일반적인 모델은 ‘일상적인 활동을 기반으로 삼아 자신들이 하는 일이 사회·정치적인 이슈가 되어, 문제가 해결되는 역동을 보이는 변화‘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까지 사회 운동론이 정의한 보편적인 사회 운동의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기지촌에 들어와서, 기지촌 여성 운동은 다른 사회 운동과 같은 경로를 밟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상을 조직해 나가는 것, 아니 일상을 견디는 것 자체가 힘겨운 운동임을 깨닫게 된다. 기지촌 여성 운동은 기존 사회 운동의 틀에서보았을 때는 운동이 되지 않을 것 같고, 운동이 아닌 것 같다. 다른운동처럼 운동을 계속하여 조직이 확대되고 ‘명망가‘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기본적인 급여와 활동 시간이 보장되지 않고(저임금 장시간 노동), 자기 충전이 안 되는 소모전과 과로, 무보상, 일상 노동의 지겨움은 ‘나‘(활동가)와 ‘언니들‘기지촌 여성)의 인권이 대립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갈등에 빠지게 한다.
다른 여성 운동은 운동의 주체와 대상이 일치한다. 나를 위한 여성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 운동은 활동가가 기지촌 매춘 여성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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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2-18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다 읽으시다니... 부지런하십니다!

햇살과함께 2023-12-18 09:41   좋아요 1 | URL
열흘 동안 읽었어요;;; 물론 중간에 다른 책도 읽었지만..
아 역시 정희진 선생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네요... 북 토크 가기 전에 한 번 더 읽어야 하려나요...

건수하 2023-12-18 09:52   좋아요 1 | URL
책 나온지 얼마 안되었다 생각했는데...
저도 북토크 가려면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여전히 미쳐있는> 다 읽고 읽으려 했는데... @_@

근데 요즘 같아서는 북토크 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흑... 여튼 일단 읽기는 읽는 걸로.
 

"Via, it‘s okay. I know what I‘m doing. I‘ve made up my mind."
"But this is crazy, Auggie!" I said emphatically, pulling the new comic book away from him, too. "You have to go back to school. Everyone hates school sometimes. I hate school sometimes. I hate friends sometimes. That‘s just life, Auggie. You want to be treated normally, right? This is normal! We all have to go to school sometimes despite the fact that we have bad days, okay?"
"Do people go out of their way to avoid touching you, Via?" he answered, which left me momentarily without an answer. "Yeah, right. That‘s what I thought. So don‘t compare your bad days at school to mine, okay?"
"Okay, that‘s fair," I said. "But it‘s not a contest about whose days suck the most, Auggie. The point is we all have to put up with the bad days. Now, unless you want to be treated like a baby the rest ofyour life, or like a kid with special needs, you just have to suck it up and go."
He didn‘t say anything, but I think that last bit was getting to him.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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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성적 자기 결정권을 넘어서

미국 정신과 의사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의 현실 요법(Reality Therapy)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삼아 내담자의 요구를 고찰했다. 하지만 그 기법의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오지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모르거나 혼란스러워한다.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원하는 것(want)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 인간 행동을 설명할 때, "내가 원해서 한 행동"은 극히 일부분이다. 더 논쟁적인 지점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는 것은 실상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유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정체성(동일시)과 욕망의 산물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선택이라고 해서 모두 수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사회 정의와 충돌할 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일베‘ 같은 여성혐오 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라는뜻이다. 내가 내 몸의 ‘쓸모‘를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와 협상하는 삶을 의미한다. - P218

사회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이자 규범인 성 역할은 현행법으로는 불법인 성매매와 성격상 연속선(continuum)에서 작동한다. 성 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곧바로 여성 전체에 대한낙인이 되는 것도 이 구조 때문이다. 1) 성 역할 → 2) 성별화된 자원을 기반으로 한 이성애 → 3) 이성애 관계의 제도화(가족) → 4)성매매(거대한 성 산업→ 5 성폭력 → 6) 인신매매(강제 임신, 장기적출). 이 연속선에서 자유로운 주체, 인생, 사회는 없다. 성 역할이성애-결혼-성매매의 연속선 개념은 "신성한 결혼과 매춘을 동일시하다니!"라는 분란을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연속선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교환 법칙의 공통점 때문이다. 어느 관계에서나 남성의 자원은 돈, 지식, 지위 등 사회적인 것인 데 비해 여성의 자원은 외모와 성, 성역할 행동(애교, ‘여우짓‘, 성애화된 행동)이다. - P228

페미니스트 인류학자 게일 루빈은 이를 ‘여성의 교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선물 경제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개인으로서 서로의 자원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남성 사회에서 증여되고 순환되는 남성들 사이의 교환품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흔한 현상인 ‘성 상납‘에서 남성은 남성에게 여성을 상납하지 자기 몸을 상납하지 않는다. 여성 억압, 성매매의 기원은 생물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교환물로 삼는 사회 체계에 있다. 게일루빈은 여성이 처한 억압의 궁극적 위치는 상품의 매매보다 여성인신매매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P229

수학자들에 의하면 수학에서 성별 능력 차이가 현격하게 발견되는 분야는 기하, 즉 공간지각인데, 이는 여성이 대체로 수동적으로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하이힐이나 전족(纏足) 같은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도 여성의 움직임에 대한 제재 전략과 관련이 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은 공간지각력을 상실하는경우가 많다. 고통(트라우마)의 생존자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 P239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의지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는 경험을 한다. 남성의 폭력을 기억하는 여성의 몸은주체의 의지대로 이동하지 못한다. 공간 지각 능력은 개인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의 능동성과 관련이 있다. 인간이 존재한다 혹은 살아 있다는 근거는, 인간의 몸이 공간의 어느 구체적인 장소에 실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이 공간을 인식하는 주체로부터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공간이 인식 주체의 몸을 기준으로 삼아서만 특정하게 인식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몸이 없다면 공간도 인식되지 않는다. 폭력으로 인해 몸의 주체성을 빼앗긴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자기의 관계, 즉 공간에서 자기몸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공간지각력 상실은 여성에 대한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고문 등 국가폭력의 피해자에게서도 공통적으로발견된다). - P240

여성의 몸이 남성에 의해 명명되어 왔기에 여성의 신체 기관에는 대부분 공간 명칭이 있다. 남아가 사는 곳인 ‘자궁(宮)‘, 여성의 질을 뜻하는 버자이너(vagina)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칼이머문다는 의미에서 ‘칼집‘이라는 뜻이다. 질의 한자 역시 방(室)이라는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중세 영주가 농노의 아내에 대해 초야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논리 중의 하나인, 여성의 질이 남성의 성기를 잘라 삼켜버린다는(vagina dentata) 삽입 섹스의 공포도 여성의 질에 대한 공간화에서 비롯되었다. 성교를 의미하는 ‘삽입(intercourse)‘이라는 말 역시 여성을 ‘들어가는‘ 영토로 전제하는논리다. 아내를 일컫는 ‘집‘사람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여성 비하적 언어로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하는 ‘아줌마‘라는 말은 여성을 ‘아기 주머니‘로 보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줌마가 ‘아기 주머니‘, ‘아주머니‘를 거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 P246

‘일상‘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성폭력이 여성에대한 남성의 폭력이 아니라, 피해 여성이 속하거나 피해 여성을 소유한 남성에 대한 폭력으로 환원되는 것도 여성 몸을 남성의 영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폭력의 발생 원인이자 성폭력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성폭력을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이 문제가 남성과 남성 사이의 정치로 환원된다는점에 있다. 이는 남성은 정치적 주체로 전제하고 여성은 남성 집단간 정치의 희생자로 전제하여, 남성과 남성의 갈등은 정치적 문제로, 남성과 여성의 갈등은 개인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폭력 해결 과정에서 피해 사실 자체보다는 가해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성폭력은 처벌되기도 하고, 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성폭력 가해자가 미군이나 경찰이면 정치적인 문제이지만 아는 사람이나 가족일경우는 사적인 문제가 된다. - P249

피해자 중심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객관성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했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의 경험이 객관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이러한 인식은 객관성이 사회적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마치 여성주의가 가부장제 세계관을 대체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성주의는 기존남성의 입장에서 구성된 객관성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남성의 객관성을 역사화하고 정치화함으로써 부분화하고 상대화하자는 것이다. 객관성은 권력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며, 권력관계에따라 변화하고 유동하고 이동하는 정치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모든 피해 여성이 동일한 경험을 하며 피해자의 경험이 그 자체로 객관적인 것 같은 오해를 준다. - P259

가부장제 사회에서 섹슈얼리티의 의미는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남성에게 섹스는 (당연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좋거나 싫은 것"이다."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른 차별적인 규범이 적용된다. 여성이 섹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잘하거나 못할 때, 그에게는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기다린다. 남성이 ‘더럽다‘고 평가받는 경우는 몸을 씻지 않아서거나 돈이나 권력 투쟁에서의 부정부패 때문이지 섹스로 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대개 성적인 측면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남성 권력의징표 중 하나는 성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그의 사회적 능력의 검증대로서 ‘다다익선‘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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