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정말로 중요한 일_김정현

노골적인 군사적 침략이라는 모습을 한 식민주의시대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구조조정과 조건부 차관, 불평등한 무역협정이 식민주의의 도구가아니라면 무엇일까. 선진국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난민문제도 따지고 보면 (테러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실은 바로 그들 자신, 북반구 주민들의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이 초래한 수많은 비극 중의 하나인 것이다. 고 권정생 선생은 이라크전쟁 때 우리가 파병을 안할 수 있으려면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단지 우리 경제가 석유에 깊이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은강대국들의 부(富)가 약소민족들의 피눈물과, 자연의 파괴와 약탈로써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내가 타고 가는 승용차 기름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평화의 길은 멀지 않을것"이라는 말 속에는, 식민지-제국주의-군국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석유문명,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서 평화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근원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 P5

오늘날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예를 들어서,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그러나 지구 저편에 있는 숲이 벌목될 때가슴이 미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기억(직접경험)에서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그 비슷한 울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예를 들어서,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해온 뒷동산의 은행나무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감수성의 한계를 가진 인간은 자신이 친숙하게 알고있는 장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유추하여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세계의 도시화율이 55%라는 사실은 (2050년이 되면 70%에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전 세계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더이상 어떤 장소에도 귀속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실에 경제논리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 더해지면, 망실되는 목숨붙이들이 얼마가 되든지 개발의 가차 없는 행군을 막아설 장애물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현재 정부수입의 3분의 1이 석유에서 나오고 있는데도불구하고 에콰도르 국민 60%가 개발보다 보존을 선택했다는 사실은다른 무엇보다도 이 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장소를 내밀하게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관찰자로 머물러서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적극적으로 아끼고 보살피고, 스스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일이며, 무엇이정말 필요한 일인지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 P9

더 좋은 경쟁논리 대신 반전의 시대정신을_조형근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에 나선 것이 2001년이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싸우고 또 싸웠다. 그 처절한 싸움의 결과 2022년 1월, 드디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장애인들이기뻐했다. 그런데 살펴보니 예산 편성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실행 의지가 진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들이 분노한 이유다. 물론 장애인이분노한다고 해서 시민이 겪는 불편이 당연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장 - P35

애인이 겪어온 평생의 불편도 당연하지 않다. 당연하지 않은 사실들에대해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민의 불편과 장애인의 불편이 원래 대립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장애인 예산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에 그친다. 평균만큼만 써도세상이 달라지고 좋아진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평생 시설에 갇히지않아도 되고, 세상을 다니며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한국은 못하는 게 아니다. 안하는 것이다. - P36

비용절감, 효율화의 욕망에서 두 진영의 엘리트와 핵심 지지층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핵심 지지층은 능력주의경쟁을 이겨낸 자신감 넘치는 고학력 상위 중산층으로 점차 채워졌다. 자기 진영이 보수진영보다 더 유능하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운영할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엘리트들이 효율화를 외치며 노동시장의이중구조화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심화시켰다. 우리 시대 노동의 비극은 일부 재벌, 보수세력이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낸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우리도 효율적으로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고 이편에서 목청을 높인 이들, 그들에게 박수를 친 우리의 욕망이 있었다. 우리 안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서 이 모욕적인 신분제를 극복할 수없다. - P40

이윽고 영국의 좌파사상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소개한다. "사다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다. 당신은 사다리를 혼자 올라간다. 그 결과 노동계급과 공동체의 연대감은 약화되고, 위계라는 독을 달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의 강화 탓에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겼으니 그 사다리를다시 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소위 진보 개혁진영의 상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사다리의 논리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능력에 따른 개인의 사회적 이동가능성이라는 문제로 대체한다. 사다리를 타고 오를 기회가 잘 제공되기만 한다면 불평등 자체는 아무리 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누가 그 기회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모두 경쟁의 논리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이 바로거기서 숨 쉬고 있다. 함께 돕고 기대자는 연대의 정신은 거기 없다. - P41

뉴미디어 시대의 언론과 정치권력_전홍기혜

증오를 극복하는 증오는 없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대중은 어리석은 우중이 아니다. 한상원 충북대 교수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원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왜 진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탈 - P49

진실(post-truth)‘을 선택하는가? 반지성주의를 탓하고 비난하고 이에대한 반증을 들이밀기 전에 이들에게 사실, 현실은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필터버블‘이나 ‘확증편향‘은 진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부족이나 부재에 있지 않다.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을 차단하고 토론을 거부하는 이런 선택적 또는적극적 반지성주의는 "공론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 등 기존 사회에 확산한 차별적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한 교수는 지적한다(<한겨레>, 2023년 10월 23일).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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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아웃사이더 딕테 시리즈 1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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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며, 아들/딸을 키운 어머니이자 백인 여성 배우자와 함께 산, 시인이며 교육자, 연설가, 활동가인 영원한 아웃사이더. 어느 누가 그녀만큼 차이와 분노와 교차성과 관계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성, 인종, 계급, 나이에 의한 차이의 복합성을 흡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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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1-08 0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요….!!! 😲 👍👍👍

햇살과함께 2024-01-08 18:01   좋아요 0 | URL
이거 한 번 잡으면 술술 잘 읽혀요!!
오드리 로드 멋진 시스터입니당!!

다락방 2024-01-08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엄청 열심히 독서하시네요, 햇살과함께 님. 제가 자극받고 갑니다!! 부릉부릉-

햇살과함께 2024-01-08 18:02   좋아요 0 | URL
제가 이번 주말부터는 주말에 시간이 없을 예정이라,,,
공포의 권력 어쩌죠 ㅎㅎ 화..화이팅!!

은오 2024-01-09 0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100자평이 올라오다니요?! 전 어제 시작했습니다. 뒤따라갈게요 햇살님!!!!! 😍
햇살님 100자평 읽으니까 기대가 더 커집니다. >.<

햇살과함께 2024-01-09 18:33   좋아요 2 | URL
은오님 빨리 읽어주세요 리뷰 기다려요!!
 

혐오와 분노의 차이
로드의 페미니즘 존재론과 시학, 교차성 이론과 차이의 이론, 관계론

1960년대로부터 배울 점

또 서로가 아닌 적을 정확히 겨냥해 우리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게 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 P241

여러분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그게뭐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정확히 누구인가? 맬컴이 강조했던 대로, 우리가 억압받는 게 우리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잘못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겐 배운 게 있고, 우리가 물려받은 것들 중에는 유용한 것들이 있다. 우리에겐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이들이 준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태양도 있고,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맬컴 엑스는 우리가 읽는 그의 메마른 텍스트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맬컴은 우리가 그와 공유하는 비전을 따라 행동할 때 내뿜는 에너지 속에살아 있다. 우리는 현재의 거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단단히 뭉쳐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역사의 일부가된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 P255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_흑인 여성, 혐오, 그리고 분노

흑인 여성으로서 내가 가진 분노는 내 존재의 심장부에 응어리진 늪이자 내가 가장 치열하게 지켜 온 비밀이다. 그 누구보다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나는 내 삶이 얼마나 이런 분노의 그물로 뒤엉켜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분노는 내가 그려 넣은 내 삶의본질들이 새겨져 있는 감정의 태피스트리를 구성하는 실이며, 들불처럼 솟아올라 내 의식 밖으로 솟구치는, 폭발하기 직전의 펄펄끓는 뜨거운 샘물이다. 이 분노를 부인하기보다 정확히 어떻게 단련할 것인가가 내 삶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 P281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몸소 내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셨다. 그녀의 침묵에서 나는 고독과 분노, 불신과 자기 거부, 그리고 슬픔을 배웠다. 나의 생존은 어머니가 내게 준 무기들을 사용하는 법과 내 안에 존재하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것들에맞서 싸우는 법을 익히는 데 달려 있었다. - P290

분노: 과도하거나 오도된 것일 수 있을지언정 반드시 유해한것만은 아닌 불쾌의 정념. 혐오: 아주 싫어하는 감정이 적의와 결합된 감정적 습관 혹은 마음의 태도. 분노는 잘 활용하면 파괴적이지 않지만, 혐오는 파괴적이다. - P294

나만 아는 언어로 당신에게 다가가려 한 것은 아닌가? 당신은 당신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언어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우리 사이의 차이를 가로질러 당신의 말을 경청하려 든다면, 당신도 나의 말을 경청하게 될까? - P317

우리는 서로의 창조적인 측면을 인정하고 키워 줘야 한다. 이는 무엇이 창조될지를 알고서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서로를 좀 더 소중히여긴다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의 눈동자에 어린 인정해 주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게 되며, 자기 자신과 서로를 바라보는 비전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게 될 것이다. 돌보기 Mothering.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정하는것, 그리고 이 힘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사람마다 다를 수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오로지 이 힘을 활용함으로써만 우리가효과적으로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아는 것. 돌본다는 것은약하고 겁먹고 손상된 것의 잔여물을 전혀 경멸하지 않고ㅡ보듬어 주는 것을 뜻하며, 생존과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사용할수 있는 것을 지켜 내고 응원함을 뜻하며, 차이를 서로 함께 탐색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을 뜻한다. - P334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에 앞서,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에 앞서,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기에 앞서 우리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자. - P336

옮긴이 해제

대표적으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출간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다음 해 발표한 「나이, 인종, 계급, 성」, 그리고 (1980년 미국여성학회의 기조연설 초청을 구색 맞추기 정치라 보고 이를거부하고 인종차별을 의제로 삼을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마침내) 1981년대회에서* 기조연설로 발표한 「분노의 활용은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개량주의를 비판한다. 이 세 편의 글에서 로드는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자매애 정치는 유색인 여성과 퀴어 여성을 억압한다는 점을 폭로한다. 즉 로드는 자매애 운운하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이론과 정치가 개량주의적인 것임을 규명한다. 인종차별과계급 차별과 동성애 혐오를 인식하지 못하는 개량주의를 넘어 페미니즘 정치와 이론을 더욱 급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P344

특히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는 로드가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으로서 경험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다룬 글이자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가장 심오한 분석과 통찰을 담은 글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세 편의 글(「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 「시는 사치가 아니다」, 「성애의 활용」은 가장 억압된 것에서 가장 강한 힘의 원천을 찾아내는 페미니즘 존재론을 제시한다. 페미니즘 존재론은 여성을 주체로 정의한다. - P347

둘째, 로드는 흑인 여성의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분석한다. 이런 분석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교차적 관점과 접근틀이다. 실로 로드는 여섯 편의 글- 「표면에 흠집내기」, 「성차별주의」, 「메리 데일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나이, 인종, 계급, 성」, 「분노의 활용」에서 교차성을 선구적으로 이론화한다. 이 글들에서 로드는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가 인종차별, 나이 차별, 계급 차별 등과 맞물려 작동하면서 서로를 강화하는 권력 구조를 분석한다. - P348

페미니즘 존재론과 시학, 교차성 이론과 차이의 이론에 이어 이 책을 구성하는 세 번째 부분은 관계론이다. 「분노의 활용」, 1960년대로부터 배울 점」,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우리가 따로 또 함께 사회를 바꾸려 노력하면서 부딪히는 심리적 난관을 살펴보는 글들이다. 로드의 시학은 여성임을 긍정하는 존재론이고, 로드의 교차성 이론은 이 시학을 가동하는 정치학이다. 시학과 정치는 여성 개인의 힘과 집단의 힘을 길러 준다. 그런데 우리도 경험한 대로, 자기 변화는 곧장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며, 사회 변화가 나의 변화를 촉발하지 않을 때도 많다. 로드의 관계론은 감정 연구를 통해 자기 변화와 사회 변화를 연결한다. - P350

미국 사회를 떠받치는 심리적 구조로서의 흑인 여성 혐오는 흑인 여성 개개인의 마음속에 자기혐오로 자리 잡는다. 흑인 여성의자기혐오는 흑인 여성들끼리의 다정한 관계에 대한 갈망을 키우지만 이 갈망은 결코 채워지지 못한다. 이 갈망의 뿌리는 자기혐오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 자기혐오는 흑인 여성들 사이에서 "학습된 잔인함" (320), 거리 두기, 분노로 표출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자신을 부정하는 자기혐오는 흑인 여성 혐오를 내 안에 내면화한 것이기에 흑인 여성들 사이의 유대 관계도 가로막는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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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젝시옹, 아브젝트, 공포

‘이 모호함의 답답함·고통·현기증’이라니 딱 이 책을 읽는 나의 상태 아닌가! 😰
아브젝시옹이란 무엇인가, 아브젝시옹은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 <악령>
프루스트 <소돔과 고모라-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조이스 <피네건의 경야>
보르헤스 <알레프>

역자 서문

대략 1973년부터 정신분석적인 관점에 지배당하기 시작하는 크리스테바의 이론적 작업은, 언어 주체 이론과 의미 작용의 과정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한다. 이같은 관심의 결실로 1974년에 출간된 국가 박사 학위 논문인 《시적 언어의 혁명》은, 크리스테바의 언어에 대한 이론적 작업의 사실상의 결실이라고 할 만한 대작이다. - P12

1980년에 쓴《공포의 권력》이 공포와 비열함에 대한 이야기라면, 1983년의 《사랑의 역사》에서는 동서고금의 문학·역사·종교 - P12

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를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에게 공포와 비열함/성스러움과 사랑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므로, 전자와 후자는 동전의 앞뒤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 P13

1. 아브젝시옹에 대한 방법론

아브젝시옹이 나를 점령할 때, 이 정서로 이루어진 덩어리는 사실 어떤 정의된 대상(objet) 자체가 아니다. 아브젝트(abject)는 내가 명명하고 상상할 수 있는, 내 앞에 있는 대상(ob-jet)이 아니다. - P21

음식물에 대한 혐오는 아마도 가장 오래 되고 기본적인 형태의아브젝시옹일 것이다. 우유의 표면에 손톱 부스러기처럼 보기 흉아이우우하고 잎담배를 마는 종이처럼 얇은 막이 생겼을 때, 그것이 눈에 아띄거나 혹은 입술에 닿았을 때, 목구멍을 지나 좀더 아래로 위장과 배로 내려가 모든 내장은 경련을 일으키고 눈물과 담즙이 분비되고 가슴이 방망이질치며, 이마와 양손에는 땀이 맺힌다. 시선을들끓게 하는 현기증과 함께 이 유지방을 향한 구토로 몸이 휘는데, 이때 나는 유지방을 내게 내민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분리된다. 이 음식, 즉 우유는 그들의 욕망일 뿐 나는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아서 ‘내‘ 속에서 그것을 몰아낸다. 그러나 부모의 욕망 속에만 존재하는 ‘자아‘에게 이 음식은 ‘타자‘가 아니므로, 결국 ‘내‘가 놓여진 자리를 가능케 하는 움직임으로 나는 몰아내고 침뱉고 버린다. 이 하찮고 무의미한 것, 그러나 그들이 바라고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게 부과한 사소한 것은 내 창자를 꼬이게 하고, 나를 마치뒤집힌 장갑처럼 만들어 놓는다. - P23

이처럼 시체는 삶 속에 죽음이 들끓게 한다. 대상에 대해서처럼, 우리는 아브젝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분리될수도 없다. 상상적 이질성인 동시에 현실의 위협인 아브젝트는 우리를 부르고, 결국에 가서는 삼켜 버린다. - P25

아브젝트에 점령당한 사람은, 스스로를 인식하거나 욕망하거나 어딘가에 속한다기보다는 밀려나고 분리되고 방황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 P30

왜냐하면 아브젝트가 희열을 느끼는 곳은 배제된 영역에서의 길잃음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분열시키는 아브젝트는 필경 부단히 회상되는 운명을 가진 망각의 땅일 것이다. - P31

아브젝트는 주체와도, 대상과도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가 타자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기 위해 자신의 영상을 무너뜨린깨어진 거울 속에서 완전히, 또 욕망의 ‘a‘ 라는 대상이 폭발하는희열 속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것은 그저 변형된 자아가 된 ‘타자‘가 ‘내‘가 그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전락한 존재, 승화된 정신착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추락하도록 놓아두는 혐오스런 선물이요, 단지 경계일 뿐이다. 희열 속에 주체는 삼켜지지만, 반대로 타자는 혐오스러워짐으로써 자신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온순하게 순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왜 그토록많은 아브젝트의 희생자들이 매혹당한 희생자인가를 이해할 수있다.
경계선임에 틀림없는 아브젝시옹은 경계선 중에서도 모호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방해를 제거하면서 주체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주체를 분리시키는 대신, 반대로 주체에게 끊임없는 위험을 고백할 뿐이기 때문이다. - P32

나는 내게 있어 더 이상은 동화될 수 없는 세상에서 기호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순수한 상실 속에서 그것을 펼쳐 보인다. 명확히 하면 나는 다른 누구일 뿐이다. 자아의, 대상들의, 기호들의 출현에 있어서의 모방의 논리. 그러나 내가 ‘나‘를 찾으려 하거나 잃어버리거나 혹은 유희할 때 나는 이질적이 된다. 이 모호함의 답답함·고통·현기증은 반항의 폭력으로 그곳에서부터 대상과 기호들이 떠오르는 공간을 한계짓는다. 그것을 나의 영토라고 말해도 좋을 뒤틀리고 얽혀 있는 양가성(兩價性)을 지닌 이질성의 흐름은 변형된 자아로서, 내 속에 살고 있던 ‘타자‘가 혐오감으로 그렇게 지시하기 때문이다. - P33

그것은 환희이자 동시에 상실이다. 인식과 단어의 안쪽이 아닌, 항상 그것과 더불어 그것을 횡단하는 숭고함은 우리를 부풀리고 넘쳐나게 하며, 던져진 주체인 동시에 타자이자 터뜨리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일탈이자 구획의 불가능이고 완전한 결핍, 즐거움 매혹이다. - P36

따라서 누군가가 되기 전의 ‘나‘는 이차적인 과정을 통해 획득된 내가 아닌 분리되고 버려지고 아브젝트한 무엇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의 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과 공존하는 동시에 영원히 그것을 약화시킨다. - P37

결국 아브젝시옹이란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위기이다. 즉 아브젝시옹만이 나르시시즘‘ 이라 불리는 이 상태의 덧없음을 증언하며, 신은 비난하는 질투로 그 사실에 침묵한다. 게다가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사물이나 개념에 대한)에 ‘외관‘을 부여한다. - P39

아브젝시옹은 죽음(자아의)을 거친 부활이다. 그것은 죽음의 충동을 삶과 새로운 의미 작용으로의 도약으로 변형시키는 연금술인 것이다. - P40

아브젝트는 도착성과 친척뻘이다. 아브젝트는 도착적인데, 내가 느끼는 아브젝시옹의 감정은 초자아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금지나 규칙 · 법을 무시하거나 파기하는 차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왜곡시키고 곡해하고 부패시킬 뿐이다. 즉 그것들을 더 잘 부인하기 위해 실컷 이용하는 것이다. - P40

자신의 초자아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주체에게 있어 이와같은 글쓰기는, 도착성과 성격이 같은 어중간한 중간자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도착성이 아브젝시옹을 야기시킬 차례이기 때문이다. 아브젝시옹의 텍스트는 초자아의 성격을 부드럽게 한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아브젝트를 상상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고, 언어의 유희라는 이동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관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브젝트와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1

서구의 근대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 성서에서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젝시옹은 원시 사회의 오물 같은 것들과 합쳐지기 위해 문화적으로는 원죄 이전, 시기적으로는좀더 고대적인 것에서 그 공명하는 바를 찾아낸다. 우리의 미학적인 노력, 즉 상징적인 구조의 기반을 향한 하강은 ‘타자‘가 붕괴된세상의, 말하는 주체의 허물어질 듯한 한계를 회상하려는 것이다. 말하는 주체의 기원에 더 가까이 간다면, 그 밑이 보이지 않는 ‘근원‘은 원초적인 억압일 것이다. ‘타자‘가 보유하는 예술적 경험 속에서 ‘주체‘와 ‘대상‘은 동화 가능하고 사유 가능한 것들의 한계에서 서로를 배척하고, 대항하며 붕괴되고는 다시 시작하고 오염되고 구형받는다. 그것이 아브젝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로트레아몽· 프루스트 아르토 · 카프카.셀린……… 이들의 위대한 근대 문학은 이러한 영역 위에 펼쳐져 있다. - P43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아브젝트는 《악령》의 ‘대상‘이다. 그에게서 아브젝트는 인간 존재의 목적이나 행위 동기가 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작품 속의 인물들은 절대적 한계인 신(도덕·사회 · 종교 · 가족 • 개인사)을 완전히 거절함으로써 정말로 타락하여 인간존재 자체의 의미는 붕괴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브젝시옹은, 모든 의미와 인간성이 마치 재 속의 화염처럼 타올라 소멸되는 상태와 자아가 자신의 ‘타자‘와 대상을 잃어버리면서자살로 치닫는 결정적인 순간, 아니면 약속된 땅과의 화음이 절정에 이르는 황홀경 사이에서 동요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살하는키릴로프 또한 살인자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만큼이나 아브젝트하다. - P44

분석적인 언표의 ‘시적인‘ 탈중심화는, 미망에서 깨어난 슬픔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한 순수성과 균형을 이루면서 아브젝시옹과의 근친 관계, 그것과의 공생 관계, 그리고 아브젝시옹에 대한 ‘앎‘을 증언한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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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08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언급된 책들중 아무것도 안읽었네요. 이럴 수가.. 그렇다면 공포의 권력 읽기 더 힘들겠죠 ㅠㅠ

햇살과함께 2024-01-08 18:00   좋아요 0 | URL
저걸 읽는다고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요..... ㅎㅎ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You know," he said, "one of the things you learn when you get old like me is that sometimes, a new situation will come along, and you‘ll have no idea what to do. There‘s no rule book that tells you how to act in every given situation in life, you know? So what I always say is that it‘s always better to err on the side of kindness. That‘s the secret. If you don‘t know what to do, just be kind. You can’t go wrong.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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