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로드 <암 수기>
몸의 회고록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생태의학
울리히 벡 <위험사회>
질라 아이젠스타인 <인간리 만든 유방암>
샌드라 스테인그래버 <흐름에 따라 살기> <믿음을 갖기>
수잔 안토네타 <중독된 몸>
알 권리와 당신 자신을 보호하기

4장 몸의 회고록_과학, 자서전, 그리고 물질적 자아

놀랍게도 로드의 암 수기』는 암을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그리고 환경정의 이슈로 상정하는 몸과 환경 사이의 상호연결들이강조되는 상황을 예견한다. - P211

그녀는 "우리는 이윤 경제에 살고 있고, 암 예방에는 어떤 이윤도 없으며, 오로지 암 치료에서만 이윤이 생긴다"고 지적하면서 암 예방이 아니라 치료에만 초점을 맞추는 미국암협회와 격론을 벌인다. - P212

비판의 한 양태로서 몸의 회고록은 인정받지 못함을 감수하는 자기-질문하기를 수행한다. 하지만 이 자아들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드는것은 그것들이 규범과 원칙, 계보학에 대한 조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물질성, 빈번하게 과학 지식을 경유하여 이해해야만 하는 물질성에 대한조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몸의 회고록의 자아, 환경, 횡단신체적인 것, 그리고 포스트휴머니즘과 함께 존재하는 자아는 울리히 벡이말한 ‘위험사회‘에서 행하였던 환경보건운동을 과학적이고 대중적인운동으로 체현하는 자아이다. - P220

근대적 몸의 관념에 의해 쫓겨났던 생태적 몸은 20세기 중반에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글을 묶어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판한 1962년 이전, 1950년대 후반에 "기타 질문들에 대한 답변에서‘라는 텍스트를 보면 멕시코계 미국인농장노동자들은 살충제가 그들을 병들게 한다고 인터뷰에서 답했다. 내시가 말했듯이 노동자들은 "몸의 한계와 질병을 통해서 땅의 건강을측정하는 일종의 도구로서 자신의 몸을 살피며, 따라서 그들의 지식은 공적 담론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에서 출현한다. - P222

지속되는 논란은 종종 불완전한 지식의 자연스런 결과가 아니라 충돌하는 이해관계와 구조적 무관심의 정치적 결과이다. 논란이 설계될수도 있고, 무지와 불확실성이 제조되고 유지되며 확산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우리의 제품이다"라고 한 담배회사가 사석에서 말했듯이 말이다.) - P224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서 녹색 살림은 단지 또 다른 소비 선택이 된다. 개인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위협에 대해 책임을 짊어지게 되기때문이다(예를 들면 가정용 공기청정기는 미세 먼지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위험한 오존 수치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다른 한쪽 끝에서는 인간의 건강이 환경 건강에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전지구적 환경정의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조반나 디 치로가 주장하듯이, "전세계풀뿌리 여성 환경운동가들은 "인간과 환경의 ‘건강‘은 깊이 연결되어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환경보건운동과 환경정의운동은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또한 위험사회를 비판적으로 변화시키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울리히 벡은 "위험"을 "근대화 자체가 유발하고 발 - P228

생시킨 위험요인과 불안정성을 다스리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정의한다. 과거의 위험danger과는 대립되는 것으로서 위험risk은 근대화의 위협적인힘, 그리고 의심의 전지구화와 연관된 결과물이다" 후기 근대의 위험은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한다.

방사능은 물론이고 공기·물·음식에 있는 독성물질과 오염물질은 식물·동물·인간에게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장·단기적 영향을 발휘한다.
그것들은 체계적이고 종종 불가역적인irreversible 손상을 유발하고,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 인과관계적 해석에 기반하고, 따라서 최초에는 오로지 그것에 대한 과학적 또는 반과학적 지식 속에서만 존재가 드러난다. - P229

몸의 회고록은 위험사회 환경보건의 횡단-신체적 상황과 ‘일상의 전문가들‘의 지식 실천으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몸의 위험사회의 삶을 체화하고, 불확실하다고 해서 완화되지 않는 인식론적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일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수행하려는 결의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몸의 회고록은 위험문화와 대중역학, 일상의 전문가에 의한 연구를 보완해 준다. 그것은 자아의 구성물질을 완벽하게 측량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방대한 생물학·경제·산업 시스템과 뗄 수 없이 엮여 있다는 인식을 통해서 자아의식이 얼마나 크게 바뀌는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수전 스콰이어가 경계에 선 삶들』에서 논의하는 문학처럼, "지식과 무지 사이에 있는 몸의 회고록은 "전문 담론에 대한 대안"이라기보다는 과학 지식을 어느 정도 활용하는 새로운 전문지식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P233

대항-기억은 "중요한 윤리적 실천이다. 하나의 이유는 그것을 통해 공인된 진리의 새장에서 탈출할 수 있고, 원점으로부터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의미의 대안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재료로서 권력과 지식의 대안적 모체를 구성하는 바로 그 물질이기 때문이다". - P234

스테인그래버는 우리가 위험물질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싸워야 하는 일상의 전문가가 되도록 자극한다. 이와 유사하게 경계 위의 카나리아 서부에서 바람을따라 살기』라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저자 칩 워드는 "자기 집 뒤뜰에 있는 위험요인들을 조사하고, 허약한 건강과 환경파괴의 연관성을 잘 보여 주는 수백만의 생태탐정을 제시한다". - P242

더 열악하게는, 스테인그래버는 이러한 "유전자와 유전에 대한 집착은 환경발암물질에 대한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고 주장한다. - P259

해러웨이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사회생물학sociobiology에서는 "살아 있는 살은 2차적인 것이고, 유전자가 삶 그 자체의 세속적 구원 드라마의시작과 끝이다. 이것은 거의 세속적인 기독교적 플라톤주의에 가깝다"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 P260

요약하면, 횡단-신체적 상호교환들의 위험을 인정하는 것은 개인들을 세계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일련의 심리적·정치적·물질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실천들을 자극한다. 다른 한편으로, 몸의 회고록이 그러하듯이, 세계와 자아가 함께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경계선들보다는 연결들을 만들고, 전지구적 시스템들과 교환들, 흐름들 내부로부터 윤리적 행동들을 수행하는 횡단-신체적이고 포스트휴먼적인 환경주의운동을 고취할 수 있다. - P273

배러드의 "내부작용"inter-action 이론은 인간주체를 "앎"과 "윤리성"의 장소로 대체하고, "의식적 의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물질성이 수반하는 다양한 존재론적 얽힘들을 통해서, 우리 (하지만 오로지 ‘우리 인간들‘은 아닌 우리)는 우리가 얽혀 있는 인간비인간 타자들에 대해 언제나이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리 관계에 앞서 제한되거나정의될 수 없는 존재론적 얽힘과 생동하는 관계성들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통념적인 자연 개념을 재형상화하는 다소 가공할 만한 윤리적/인식론적 기획이다. 문자 그대로 창발적인 물질세계의 일부분이 되는 몸의 회고록들의 화자들이 아는 것이 무엇인지,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같은 문제와 씨름할 때, 그러한윤리는 몸의 회고록에서 언뜻 나타난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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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부은 발’
디케 정의의 여신

오이디푸스

크레온 좋은 것입니다. 괴로운 일이라 해도 좋은 결말을 얻으면, 모든 면에서 잘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오이디푸스 대체 어떤 말씀이오? 지금 그 말로는 내가 용기도, 두려움도 얻지 못하였으니 말이오. - P19

테이레시아스 하지만 내가 온 까닭을 말하고서 가겠소, 그대의 낯은 두렵지 않소. 그대가 나를 멸할 길은 없으니.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그대가 진작부터 라이오스의 살해자라 선언하고 위협하며 찾는
그 사람이 바로 여기에있소.
그는 명목상으로는 이방 출신의 거주자이지만, 나중에는
태생부터 테바이 사람임이 드러날 테고, 그 행운에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눈 뜬 자에서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이국 땅을 향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가게 될 것이오.
또 그는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 P43

아버지로서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을 낳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씨 뿌린 자이자 그의 살해자임이 드러날 것이오. 그러니 들어가서
이것을 따져 보시오. 그대가 만일 내 말이 거짓임을 밝혀낸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 예언술도 모른다고 떠들어 대시오.
(테이레시아스 퇴장) - P44

크레온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 따져 본 것을
그대도 따져 보신다면.
먼저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두려워 떨 일 없이 잠드는 것보다 두려움에 떨며통치하기를
택하리라고 보시는지. 똑같은 권력을 가진다면 말입나다. - P51

저는 성격상, 왕권을 행사하기보다
직접 왕이 되는 것을 더 바라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는 모든 것을 두려움 없이 그대에게서 얻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통치한다면 원치 않는 일까지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왕권을 갖는 것이, 고통 없는 통치권과 권력을 갖는 것보다 저에게 더 달콤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결코, 이득이 있으면서 위신도 서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바랄 만큼 그렇게 마음이 흘려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저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으며 잘 지내고,
지금 모두가 저를 반가이 맞이하며,
지금 그대에게 바라는 게 있는 사람들이 저를 불러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걸 얻을 길은 모두 저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한데 어떻게 제가 이것을 내버리고 저것을 취하겠습니까?
제대로 생각하는 동안에는 어떤 정신도 사악해질수 없는 법입니다. - P52

저는 천성이, 그런 생각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게 행동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는 게 그 일에 대한 증명이 될 터이니,
우선 퓌토에 가서
신탁을 알아보십시오, 제가 당신께 맞게 전했는지.
다음으로, 만일 제가 이적(異蹟)을 살피는 저 예언자와 함께
무엇인가 꾸며 냈음을 발견하신다면, 저를 한 표에의해서가 아니라,
두 표, 그대와 나의 표에 따라 잡아 죽이십시오.
그렇지만 단지 분명치 않은 추측만으로 저를 비난하지는 마십시오.
사악한 자를 공연히 유익한 자로 여기는 것도,
유익한 자를 사악하게 여기는 것도 모두 정당치 않으니까요.
저는, 고귀한 친구를 내치는 것은, 사람이 자기 것 중에서
가장 아끼는 생명을 내치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사람들은 그것을 확실히 알게 - P53

될 것입니다,
시간만이 정의로운 자를 드러내니 말입니다.
반면에 사악한 자는 그대가 하루 만에도 알아보실수 있을 것입니다. - P54

크로스 오, 조국 테바이의 거주자들이여, 보라, 이 사람이 오이디푸스로다.
그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를 알았고, 가장 강한 자였으니
시민들 중 그의 행운을 부러움으로 바라보지 않은 자 누구였던가?
하지만 보라, 그가 무서운 재난의 얼마나 큰 파도 속으로 쓸려 들어갔는지.
그러니 필멸의 인간은 저 마지막 날을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할 수 없도다,
아무 고통도 겪지 않고서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에는.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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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벌 에버렛 <분수령> <그랜드 캐니언 주식회사> <상처받은 자들>
환경 인종주의

아나 카스티요 <신으로부터 그토록 멀리>
비가시적 물질들을 포착하기
위험사회

사이먼 오티즈 외 <비와 바람에 실려온 기억>
우라늄 채광 사건
인종과 계급

3장 비가시적 물질들_환경정의의 과학

환경정의운동은 본질주의적이지도 않고 유전적 결정론이 아니며 경계로 구획되지 않은 몸, 그리고 사회적 권력과 물질적/지리적 작용능력이 내부-작용하는intra-act 지점으로서 몸의 개념, 즉 횡단-신체적 물질성의 완벽한 전형이다. 로즈가 주장하듯, "생물학적 시민의 권리"가
"경험 ·정치·자본주의의 장에 과학을 재위치한다면, 그러한 일부 재위치화는 횡단신체성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는 동시에 그것의 의미를 확대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적 구성요소가 폭넓은 환경에 필연적으로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과학적 설명과 대중과학적 설명은 이러저러한 정치적인 이유를 위해 종종 하나를 희생하는대가로 다른 하나를 강조하면서 몸과 장소를 가로질러 오고 간다. 새로운 모델이 출현할 때, 그것은 (인종화된) 몸과 특정한 공간들 사이의 관계들을 포착하고 논쟁하고 재형상화하는 과학, 행동주의, 소비자운동,
문학 텍스트, 그리고 사진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퍼시벌 에버렛의 환경정의 서부극인 『분수령』은 역사, 정치, 그리고 특정 장소의 물질들이 충돌하는 가운데 과학적 행동주의가 어떤 의미에서는 주인공의 피에 존재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아나 카스티요의 마술적 사실주의소설 『신으로부터 그토록 멀리』의 한 등장인물, 사이먼 오티즈의 몇몇시의 화자, 그리고 나바호Navaho 인디언 우라늄 광부의 구전 역사와 사진 프로젝트인 『비와 바람에 실려온 기억]을 위해 인터뷰에 응했던 디네족Diné 사람들은 황폐해진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 - P159

는 위험들을 지각하고, 또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환경부정의 environmental injustice를 탐지하고 싸우려는 환경정의 활동가들이 생화학물질 오염감시와 같은 새로운 기술에 의지하듯이, 바로 그 기술이 또한 인종과 장소 사이의 변화하는 상호관계들에 관해 도발적인질문을 던지면서 취약한 사람들의 범주들을 다시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 P160

이 소설은 포스트모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플롯의 전개가 화학 분자식, 의학 서적, 낚시 미끼 설명서, 수문학 보고서, 편지, 북미 인디언 관련 협정문, 기타 법률 문서와 같은 파편적 담론에 방해를 받기때문이다. 그것은 독자가 단서를 찾아서 파편을 해독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미스터리 플롯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서사의 포스트모던한 구조는 주인공이 집착하는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구닥다리 이데올로기와 충돌한다. 주인공이 지지하는 객관적 과학의 중립적 문체는 포스트모던한 서사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유희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 수문학과 같은 물질적 실천으로부터 격리된 채로 그것의 담론적인 우주에 머문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일까. 소설이 탈근대적 회의주의에 대해 회의를 표하고 또 과학적 진리를 향한 정치적 탐구를 분명히 표명하는 대목에서, 소설은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 P169

호크스의 과학적 실천이 개인적·정치적·역사적 서사들과 분리될 수 없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과학적 탐구의 인식론이 역사적·정치적 힘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지식의 주체가 선 입장을강조하는 샌드라 하딩의 ‘강한 객관성‘이나 다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호크스가 자신을 초연한 관찰자로 상상할 때에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이 장소에 푹 잠겨 있다고 깨닫는다.
『분수령]이 환경정의 미스터리, 또는 서부극의 최종 결투 장면으로 바뀌면서, 작가는 갈등이 없지는 않지만 환경정의의 파괴를 기록하려는 주인공의 결의를 서술하는 대목에서 이전의 냉소적이며 초연한 유희적 태도를 더 이상 견지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벡처럼 자문할 수 있다.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정말 가능한가? 우리는 그것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적 거리를포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경멸이나 냉소, 무관심, 환희의 태도로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는 것이 허용이 될까?" 『분수령』은 경멸 또는냉소로 끝을 맺지 않는다. 총을 장전한 채 손에는 필름 깡통을 쥐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수문학자가 (환경) 정의를 추구하는 북미 인디언 부족과 연대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 P171

몇몇 현대 미국 문학작품은 몸과 자연을가로질러 이동하는 비가시적인 위험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나 카스티요의 작품 『신으로부터 그토록 멀리』와 사이먼 오티즈의 시는 사람들이 위험사회의 비가시적 위험과 직면할 때 발생하는 존재-인식론적 파열을 극적으로 보인다. - P183

베널리처럼, 프랭크는 그들의 가축에 끼친 우라늄의 영향을 목격함으로써 획득한 경험 지식을 증언한다. 그렇지만 아는 자를 알려진 자로부터 분리하는 과학적 객관성의 모델들과는 반대로, 그의 설명은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가 이 위험한 지역의 한가운데, 그것도 이 위험한실험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전문가들의 실험 대상이라는 사실을강조한다. 벡이 주장하듯이, 광범위한 전지구적 자연에서는 "위험에 대한 어떠한 전문가도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일반시민은 자신들의 일상 삶에 대해 수많은 ‘과학적‘ 결정을 뒤죽박죽으로 내리지만, 원주민영토의 우라늄 채광 역사는 이러한 위험사회의 명제가 특정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즉 그 명제가 피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와 기관이 원주민의 죽음을 방치한, 이 엄청난 범죄의 실상을은폐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 원주민은지적 주권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강탈당했다. - P200

원주민들은 갑자기 달라진 자연 환경에서 자신의 전통적 지식과문화적 실천을 그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생각을 괴롭히는관점들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전문지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라늄과 꽃가루의 차이를 육안이나 사진술로도 구분할 수 없다. 그렇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의 실상은 어떤 식으로든 기록되어야 한다. 이작품에 실린 사진은, 사진 자체가 보여 줄 수 없는 방사능이라는 비가시적인 위험에 대한 불안의 증거를 담고 있다. 인간과 가축, 집, 땅을 찍은 사진을 인터뷰와 함께 상호텍스트적으로 읽는 것은, 아무튼 위험 문화에 특유한 그 무시무시한 비가시성을 주목하라는 요청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P201

의학 모델들은 개인의 몸에만 주목하는 반면에, 환경정의활동가들은 장소와 공동체 사이의 물질적 연결을 중시한다.
인종과 계급이 잠재적인 환경피해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인자로 지목되었던 반면에, 거대한 규모의 생화학물질 오염감시 프로젝트들은 인종과 계급이 아닌 다른 범주를 결정인자로 지목할 수도 있다. 이 장에서 나는 환경정의 투쟁에 참여한 활동가와 문학적 재현을분석하기 위해 울리히 벡의 이론을 크게 참조하였는데, 벡이 제시한 역설의 하나로 이 장을 매듭지어야 하겠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위험사회에 거주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 위험을 똑같이 짊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P205

나는 다음의 두 장에서 신체 부하검사가 함축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인종과 계급이 위험사회의 지리-사회적 자연을 가로질러 예측 불가능한 방식들로 물질화되는 방식도 고려의 대상이다. 식민지주의 역사의 뒤에는 화학물질 침투라는 은유가 숨어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장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미국 인디언들에게 침투의 이비가시적 형식은 식민지주의의 기나긴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나타난 폭력의 양태이다.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문화적·정치적 주권을 유지하고 되찾으려는 수많은 투쟁들을 감안하면, 위험사회 전체에 퍼진 지적 주권의 상실은 원주민의 문화적 풍경에서 특히 비극적 울림을 갖는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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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사포
헤타이라
아스파시아
안티고네
리시스트라테
프락사고하
에우리피테스 <메데이아>
히파르카아
마거릿 애트우드 <페넬로피아드>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헤로도토스 <역사>
에마뉘엘 레비나스
메난드로스
플래너리 오코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현자들의 위대한 독창성은 과거에 대한 사랑에 있지 않다. 그들을 선각자로 만든 것은 잉크와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따라서 망각의 위협에 놓인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메데이아가 수 세기에 걸쳐 여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야기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의 손에 이를 때까지. 그리하여 우리의 저항을 일으키고, 때로 어떤 진실은 고통스러울 수있음을 일깨우고, 우리의 가장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우리가 진보의자녀라는 지위에 너무 오만해질 때마다 찬물을 끼얹어줄 수 있도록, 그 이야기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미래의 권리, 즉 우리의 권리를 숙고한 사람들이었다. - P200

그리스 문학 정전에 포함된 여성은 딱 한 명이다. 바로 그리스 시인 사포이다. 이 두드러진 불균형이 고대 그리스 여성이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책을 읽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많은 여성이 시대적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소수 여성 작가들의 시가부분적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남아 있다. 다음과 같은 작가들이다. 코리나, 텔레실라, 미르티스, 프락실라, 클레오불리나로 불리던 에우메티스, 보이오, 에린나, 노시스, 모이로, 아니테, 모스키나, 헤딜레, 필리나, 멜린노, 카아킬리아 트레불라, 율리아 발빌라, 다모, 테오세비아. - P205

페넬로페에게 강요된 침묵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내내 반복된 명령의 시작일 뿐이다. 예컨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이자 전복적 사고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말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끔찍한 일이다."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고대에는 공식적인 발언이 남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정치,
웅변, 문학의 영역은 남성의 것이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여자와외국인과 노예 등 대부분의 주민을 배제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었다.
마치 1980년대 영국의 예스, 미니스터」라는 시트콤 주인공이 "성별에상관없이 그 일에 가장 적합한 남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 P209

여성에게 침묵이 강요되는 시대에 영리하고 기지가 뛰어났던 클레오불리나는 희화화되기도 했다. 아테네의 희극 작품 중에는그녀를 복수형으로 패러디한 클레오불리나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작품의 영향으로 몰리에르의 우스꽝스러운 재녀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창조되었으리라. 스스로는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보잘것없는, 말장난뿐인 현학에나 몰두하는 바보같은 젊은 여성들 말이다. 글을 쓰는 여성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들은 비밀을, 질문을, 수수께끼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스페인 작가 카를로스 가르시아 구알(CarlosGarcía Gual)이 언급하듯이 "그리스의 환경에서 수수께끼를 수단 삼아표현하는 건 말을 엮어내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 P211

그런데 아스파시아의 지성이 페리클레스의 정치력에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기록되지 않았다. 아스파시아가 미지의 인물이자 저주의대상이었기에 그녀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남겨진 자료에따르면 그녀는 진정한 웅변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과 그녀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곤 했다. 심지어 그녀를 ‘선생’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아스파시아가 남편을 위한 연설문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민주주의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글도 있다. 케네디나 오바마의 연설문을 쓰는 작가들이 아스파시아가 남긴 글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문학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은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의 손에들어갔다. - P217

고대 작가들은 글을 쓰는 가장 매혹적인 방법이 균열, 사각지대, 이야기의 파편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 P221

살아남은 비극들에는 폭력과 복잡한 논쟁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그 작품들에는 아름다운 말과 피 묻은 무기가 공존한다. 비극은 신비롭게도 잔인하면서도 섬세하다. 일반적으로 비극은 트로이 전쟁, 오이디푸스의 운명 같은, 기원전 5세기에도 그 반향이 지속된 전설적 과거의 신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으니, 실제 사건에 근거한비극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도록 보존된 극작품, 바로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에게 길을 열어주고 부지중에 역사소설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 P225

한 그리스인은 평생동안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는 여행과 증언에 대한 작품을 남기며 ‘Historiae(역사)‘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추적‘, ‘조사‘를 의미했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책에 붙인 ‘역사‘라는 용어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과더불어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분과학문이 태어났다. 『역사』의 저자는 지치지 않는 호기심을 지닌 모험가이자 유목민으로서세계적 차원에서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화의 선구자나 다름없었다. 그는 바로 헤로도토스다. - P228

정말 놀라운 사실은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인의 버전이 아니라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의 버전만 기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역사는 타자의 관점, 적의 관점, 미지의 관점에서 설명함으로써 탄생했다. 이는 25세기가 지난 지금도 매우 혁신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낮선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숙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정체성과 대조할 때라야 우리의 정체성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타자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사람이다. - P231

사실 에우로파 납치에 대한 전설은 일종의 상징이다. 납치된 공주의 이야기 뒤에는 아주 먼 역사적 기억이 숨 쉬고 있다. 바로 비옥한초승달 지대에서 서양으로 향하는 동양의 아름다움과 지식의 이동이다. 특히 페니키아 알파벳이 그리스에 도착한 것이 그렇다. 유럽은 문자, 책, 기억이 받아들여지며 태어났다. 그 존재 자체가 동양에서 납치된 지혜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야만인이었을 때가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 P234

움베르토 에코가 상상한 살인자는 희극에 대한 저주를 이해하는단서를 제공한다. 고대의 유머는 엄청난 좌절을 겪었다. 웃음에 대한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모두 사라진 반면, 비극과 관련한 글은 절반이 문제없이 살아남았다. 그리스의 수많은 희극작가의 작품이 열광적으로 공연됐지만 오직 단 하나,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만 남아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카탈로그에 정리된 문학 장르(서사시, 비극, 역사, 설교, 철학)는 진지하고 엄숙한 장르였다. - P243

그리스의 웅변가 이소크라테스(Isocrates)는새로운 개념의 문화 시민권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인인 것은 같은 혈통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P2499

2011년 루이빌 출판사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톰 소여의 모험』을 출판하면서 깜둥이(nigger)라는 말을 조금 더 중립적인 ‘노예‘로 수정했다. 마크 트웨인에 정통한 어느 교수는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의 요청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허클베리 핀이 - P263

그림 형제나 안데르센이 어린아이에게 가할 수 있는 트라우마를걱정하는 부모들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꿋꿋한 주석 병정』이21세기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를(그리고 공포를) 불어넣을지 의구심을

미성년자 보호를 주장하는 그들은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가부장적인, 시대에 뒤떨어진 원작보다 디즈니의 각색을 선호한다. 그들 중 상당수가 과거의 전통 문학을 제거하지는 않더라도 포스트모던 시대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고 있다. - P264

물론 플라톤의 단언이 강력하고 과격하긴 하지만 그의 말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플라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런 구절을 발견하면 이리저리 재보면서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모든 서양 철학을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일축한 바 있을 정도다. 어쨌든 플라톤은 불같이 글을 썼으며 마치일요일 가족 식사 시간에 벌어지는 정치적 토론을 할 때처럼 극단적으로 굴었다고 한다. - P267

그는 안정을 원했고 어리석은 다수가 아니라 현명한 자의 통치를 원했다. 그 안정이 억압적인 정권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해도 어쩌겠는가. 철학자 카를 포퍼(Karl Popper)가열린 사회와 덕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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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델 르 쉬외르, 자연과 노동자, 관능, 에로티시즘
뮈리엘 뤼케이서, <망자의 서> 횡단-신체성, X선
울리히 벡

2장 에로스와 X선_몸, 계급, 그리고 ‘환경정의’

역사의 초기에 호랑이와 독사가 인간에게 그랬던 방식으로 인종주의는 우리의 부신과 다른 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요인이다. 노동과휴식의 패턴이 노동자 자신의 신진대사가 아니라 고용자의 경제적 결정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이 매매되는 상황이 개인의 포도당 순환glucose cycle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생태학은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자연과 맺는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 의해 유지되는 자기와는 다른 사회, 계급, 젠더, 나이, 직위, 인종과 맺는 관계에 대한 연구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의 췌장이나허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억지는 아니다. - P75

20세기 후반 환경정의 이론 틀은 노동자계급의 허파로 예시되는횡단-신체성에 접근하기 위한 강력한 길잡이이다. 환경정의는 특정한 몸과 장소, 특히 문자 그대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과 장소 사이에 있는 물질적 상호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환경정의 사회운동들과 분석의 방법은 인종과 계급(그리고 때로 젠더와 성정체성)이물질적 불평등, 간혹 장소와 뗄 수 없는 불평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추적함으로써 환경혜택과 환경피해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 P77

효율적 관리를 요하는 대상으로 노동자를 정밀조사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숙련 지식‘뿐만 아니라 그의 목소리와 견해, 행위능력agency을 박탈한다. 건강은 해러웨이의 용어로 상황적 지식이자 생물학적 상태를 말해 준다. 즉 노동자의 건강상태는 노동자 자신이 접근할 수 없는 특수하고 편파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확증될 수 있다. - P83

메리델 르 쉬외르와 뮈리엘 뤼케이서는 노동자의 몸과 환경이 다양한 제도와 이해 그룹에 의해 정밀하게 감시당했던 사회적/물질적 상황에서 작품을 썼다. 그들의 작품은 자연과 자본주의, 노동자계급 사이의 관계를 폭로함으로써 그 용어가 생기기도 전에 미리 ‘환경정의‘라는개념을 명시적으로 보여 주었다. 뤼케이서가 물질을 기록하는 시를 쓰는 반면, 르 쉬외르는 노동자와 세계 사이의 에로틱한 접합을 지향하면서 노동자의 몸을 검사하고 측정하며 관리하는 관계 당국의 권력과 제도에 저항한다. 두 작가는 놀랍게도 몸과 자연 간의 손에 잡힐 듯한 상호관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연과 몸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은 인간과 분리된 세계로서 자연을 바라보았던 20세기 초반의 환경보호주의와 환경보존주의에 대립되는 환경의 의미를제시하였다. 작업장의 위험을 사람이 거주하는 방대한 자연으로까지확대하였던 뤼케이서는 오염에 대한 최근의 이론을 미리 예견하였던듯이 보인다. - P87

르쉬외르의 단편소설과 취재기사는 자연과 노동자가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위한 소모품으로 똑같이 전락하는 처지를 폭로하면서 자연과 노동자를 융합시킨다. 그렇다고 노동자의 몸이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아름다움, 가치, 에로스의 장소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엄격한 사회구성주의 관점으로는 이런 이중적 태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본주의 비판과 유토피아적 욕망, 그 어느 한쪽도 포기하길 원치 않는다. 그녀는 신체성이 자연 세계와 합류하는 대안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가치와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께 엮는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만큼 자연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이러한 느낌은 아름다운 사진으로자연을 바라보는 도회적이며 중·상류 계층적인 감상과 현저하게 대비된다. 예를 들면, 미국 버스」의 화자는 시골 여성에게 "시골 자연은 화보가 아니라, 감촉이고 배고픔이며, 일이고 사랑이다"라고 읊조린다. - P89

모성성과 노동계급의 활력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찬사가 (재생산하는) 여성의 몸을 자연의 끊임없는 생식력의 수렁으로 밀어넣는 일종의 본질주의를 내비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물질성, 살과 세계의 구성 요소에 대한 르 쉬외르의 감수성이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어떤지를 물을 수 있다. 그녀가 제시하는 야생적 물질wild matter이라는 독창적 개념은 우리가 담론에서 신체성으로, 이분법에서 나선형 중첩으로 나아가는 방법론적 전회를 행하도록 촉구한다고 하겠다. - P101

그녀는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제한된 정치참여는 너무나 탈신체화disembodied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회적 변화를 추동하지 못한다고생각했다. 때문에 그녀는 우리에게 신체성을 사회적인 텍스트의 일부로 읽을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증언하는 몸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과 겹쳐지는 방식의 한 예로 [여성은 아주 많은 것을 안다」를 들 수 있다. 거기서 르 쉬외르는 여성은 "뉴스를 그것의 출처, 즉 인간의 몸에서 습득하기 때문에 "뉴스를 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P104

르 쉬외르의 씨앗이라는 비유는, 씨앗에는 분리 불가능한 자연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이 체화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반다나 시바의 씨앗과 다르지 않다. 시바는 이렇게 말한다. "씨앗 속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생물학적 다양성과 통합한다. 생태적 이슈는 사회정의,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결합시킨다." 또 시바는 "초목과 마찬가지로 관념과삶의 양식도 씨앗에서 생겨났다. 지금 멸종 위기에 놓인 많은 씨앗들은 그 안에 사유의 또 다른 방식과 삶의 또 다른 방식의 씨앗을 간직하고있다"고 말한다. 시적 생물학사를 집필하는 르 쉬외르는 환경주의와 조화되는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의 비전을 상상한다. 앤드류 피커링이 표현하듯, 그것은 "인간 행위자가 여전히 거기에 있기는 하지만이제 비인간과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고, 더 이상 행동과 지배의 중심에 있지 않는 공간이다. "우리가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은 하나의동일한 과정에서 세계는 우리를 만든다." - P116

특정한 장치와 전문지식 없이도 몸에서 사회적 힘들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르쉬외르와 반대로, 뤼케이서는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이 없이는 올바로 해독할 수 없는 이 판독하기 어려운 힘과 물질과 씨름하였다. 르쉬외르가 자연과 노동자 사이의 긍정적이고 심지어는 에로틱한 관계를 음미했다면, 뤼케이서는 직업 질병의 역사에서 특히 악명이 높은 사건이 보여 주는 끔찍한 횡단-신체성을 묘사하였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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