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냐 외삼촌

숲을 가꾸는 아스트로프 의사 선생

아스트로프 이탄을 연로로 쓰고, 돌로 헛간을 지으면 되잖아. 뭐, 필요하다면 숲을 벌목할 수도 있어. 하지만 무엇 때문에 숲을 파괴하려는 거지? 러시아의 숲은 도끼 때문에 찢겨져나가고, 엄청난 수의 나무가 죽어가고 있어요. 길짐승과 날짐승의 집은 황폐화되고, 하천은 말라가고 있고, 기막힌 풍경은 돌이킬 수 없이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게으른 인간이 몸을 숙여 땅에서 땔감을 주워 올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레나 안드레예브나에게) 그렇지 않습니까, 부인? 이렇게 아름다운 걸난로에서 태워버리고, 창조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하는 것은 무분별한 야만인이나 하는 짓이에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증가시키려고 인간은 이성과 창조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은 창조가 아니라, 파괴만 일삼아 왔습니다. 숲은 점점줄어들고, 강은 말라가고, 야생동물은 사라지고, 기후는 망가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날이 대지는 점점 더 빈곤하고 추해지고 있는 겁니다. (보이니쓰키에게) 자넨 나를 빈정거리는 눈 - P485

으로 바라보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자네한텐 대수롭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리고 사실 이것은 별난 짓일 수도 있어. 그러나 벌목으로부터 내가 구한 농부들의 숲을 지나갈 때나, 혹은 내두 손으로 심은 어린 숲이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내는 걸 들을때면 기후도 어느 정도 내 수중에 있으며, 또 천년 후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나도 거기에 다소 기여했을 것이란 사실을 의식하게 되지. 자작나무를 심고, 나중에 그것이 푸르러져서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볼 때면, 내 영혼은 자긍심으로 충만해지곤 해. 그래서 나는...... (쟁반에 보드카 잔을 가져온 일꾼을 보고 나서) 하지만...... (마신다) 가야겠어. 아마 이 모든 게 결국은 별난 것이겠지. 안녕히 계세요! (집 쪽으로 걸어간다) - P486

보이니쓰키 이제 비가 지나가면 자연의 모든 것은 원기를 되찾고가볍게 숨을 쉴 테죠. 우레 비로도 나 혼자만이 원기를 회복하지못합니다. 내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상실되었다는 생각이 낮이고 밤이고 간에 집 귀신처럼 나를 질식시키고 있어요. 과거는 없다. 그것은 하잘것없는 것들에 어리석게 소모되었고, 현재는 나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겁이 납니다. 바로 그것이 나의 인생이고 사랑입니다. 그것들을 어디로 보내야 합니까?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멍으로 떨어진 햇살처럼 나의 감정은 헛되이죽어가고 있으며, 나 자신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 P495

보이니쓰키 (소냐에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야, 몹시괴롭구나!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네가 알아준다면!
소냐 어떻게 하겠어요. 살아야죠!

사이.

바냐 외삼촌,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긴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휴식이란 걸 모른 채 지금도 늙어서도 다른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그러다가 우리의 시간이 오면 공손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내세에서 말하도록 해요.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슬펐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이 우릴 가엾게 여기실 테고, 저와 외삼촌, 사랑하는외삼촌은 밝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삶을 보고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지금 우리의 불행을 감동과 미소로 뒤돌아보면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전 믿어요. 외삼촌. 뜨겁고 열렬하게 믿어요.………….(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의 두 손에 놓는다. 지친 목소리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우린 쉬게 될 거예요! 우리는 천사들의 소리를 듣고, 온통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하늘을 볼 것이며, 지상의 모든 악과 우리의 모든 고통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비 속으로 가라앉는보게 될 거예요. 그러면 우리 인생은 애무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해질 거예요. 저는 믿어요. 믿습니다.......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준다) 불쌍하고 또 불쌍한 바냐 외삼촌. 울 - P545

고 계시군요....... (눈물을 글썽이며) 외삼촌은 인생에서 즐거운일이라곤 모르셨죠. 하지만 기다려 보세요. 바냐 외삼촌. 기다려요....... 우린 쉬게 될 거예요....... (그를 끌어안는다) 우린 쉬게될 거예요!

야경꾼이 딱따기를 친다.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마리야 바실리예브나는 팸플릿 여백에 메모를 한다. 마리나는 양말을 뜨고 있다.

우린 쉬게 될 거예요! - P5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내면서_김정현

문제는 이렇게 의료에 대한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기후위기에 진지하게 대응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반드시 축소돼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항공부문과 비교하면 갑절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의료산업은 화석연료에 대단히 무겁게 의존하고있는 것이다. 제약회사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약품들, 병원에서 한번쓰고 버리는 일회용품들, 의료적 처치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거의 모든 도구가 석유를 원료로 한 것이다. 냉난방과 냉장 설비도 전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만 갈수록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진단, 검사, 수술 관련 기계장비들의 전력수요도 무시할 수 없이 크다. - P3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운동은 공허하고 쉽게좌절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의 언어학자 우베 푀르크센은 환원주의적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현실과 동떨어진 언어를 ‘플라스틱 언어‘라고 부른다. 그는 전문가나 기술자, 정치가, 미래학자들이 구체적인 장소와 연결될 수 없는, 실체가 불분명한 언어들을 조합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대중은 혼란에 빠지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처럼 우리의창의성과 상상력이 납작하게 뭉개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나 ‘6차 대멸종‘ 같은 용어들은 어떨까. 그 위협적인 내용의 무게에 맞게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의료기술의 발달이 임상적, 사회적, 문화적 의인성(醫因性) 질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기후운동이 전문화되어가는 만큼 대중은 자율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기후운동의 전문성 역시 근본적으로 환원주의적, 기계론적, 산업적 사고방식과 훈련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악을 악으로 타도할 수는 없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베르톨로 브레히트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5장 젠더화된 군대, 젠더화된 전쟁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전쟁이 지금과 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앤서니 기든스는 주장한다(Giddens, 1989: 346~347). 그러한 사회는 체계적이고 오랜무력 갈등과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잉여가치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성이 수렵 채집의, 국가 없는 사회에서 발생했으리라는 가정에 기초하여, 군대와 전쟁 안에서 젠더에 따른분업은 자연화되었다. 존 케이시 John Casey는 이렇게 주장했다.

남성들은 무사역할을 위해 선택되었다. 성과 관련된 경제적·생리적 차이로 인해 남성들은 동물 사냥꾼으로 선택되기 쉬웠고, 그로 인해 인간 사냥꾼으로 선택되기도 쉬웠다. (Kazi, 1993: 15에서 인용)

더욱이 크리스 나이트가 주장한바, 남성들은 함께 연대하여 사냥꾼과투사로서의 역할을 개발하여 세력화하고 피의 형제애를 여성의 월경혈에담긴 마법의 힘을 막아낼 방패로 삼았다! (Knight, 1991)
위와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장의 주장은 군대와 전쟁이 결코 ‘남성지대‘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항상 일정한 역할을 완수해 왔다. - P170

이것이 말하고 있는 바는 군대 참여와 시민권 사이에 반드시 직접적인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안에서 누군가의 권리와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군 참여 여부가 아니라 어떤 능력을, 그리고 시민 권력의원천이 될 어떤 대안을 지니고 있는가이다. 가끔은 집단들이 군 징집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의 사회적·정치적 저항력의 증대를 보여 주는 기호가 되기도 한다. - P177

필립 로스 Philip Roth의 유명한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 Portnoy‘s Complaint에서 유태계 미국인인 주인공이 늘 성적으로 흥분해 있다가 이스라엘 여군과 성관계를 맺으려 하는 순간 성적으로 무능해졌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군 경험이 ‘소년을 남자로 만든다‘고 할 때, 여성성은 이런 이미지에 쉽게 편입되지 못한다. 잭 콕Jack Cock은 아파르트헤이트와 싸운 남아공 내전시 양쪽 군대의 군 여성들을 연구했는데, 남아공 군대에서 남성 군사들의 훈련 중 여성 증오와 동성애 혐오가 만연했었다고 기술했다. "수행 못한 -기준에 못 미치는- 신병들은 종종 ‘호모새끼들"이란 딱지가 붙고, ‘엄마한테 가서 계집애들하고 놀라’는 말을 들었다" (WREI, 1992: 65). 샌드라 길버트가 기술한 바에 따르면, 1차대전 당시 군 여성 간호사들은 구원의 천사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자 간호사들은 남자의 죽음을 보면 홍분할까?"라는 식의) 못하는 게 없어 보이면서도 악의적인 이미지들로 떠올려졌다. - P184

그러므로 군에서의 여성의 신분을 전시/비전시, 전방/후방이라는 이분법의 언저리에서 구성한다는 것은 사회 내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데올 - P188

로기적으로 구성한 결과에 더 가깝지 전투임무에 여성을 편입시키는 데 있어서 발생하는 객관적 어려움을 근거로 고려한 결정의 반영은 아니다. 어떤 남성 특유의 근육이 미사일이나 폭탄을 발사하기 위해 버튼을 누를 수있는 자격요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위 남성적 가치가 최고로 간주된다든가, ‘객관적‘이고, 비감정적이고, 비도덕적인 사고를 고수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경멸적으로 ‘겁쟁이‘wimp 아니면 ‘계집애 같은 놈‘pussy이라 꼬리표를 붙이는 젠더 담론이 미국 국가안보정책 담론에 만연해 있음을 캐롤라인 콘은 북미 핵방위 지식인들과 안보업무분석가들의 회의에서 현장 업무를 통해 발견했다(Cohn, 1993:227~246). - P189

하지만 걸프전은 미군 병사들에게는 이라크인들다른 편에서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과 민간인들 모두. 뿐만 아니라 다른 전쟁의 미군 병사들에 비해서도 아주 다른 경험이었다. 미국이 걸프전 참여를 그토록 열망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라크에서 베트남 전쟁의 승리를 얻고 싶어서였다는 말도 있다(Boose, 1993). 그러나 사담 후세인은 전후에도 이라크를계속 지배했고, 구 유고슬라비아와 소말리아 등지에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나토군과 유엔군들의 개입도 서툴고 무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 흥미로운 - P194

연구에 따르면, 2차대전 중의 폭격기 경험과 걸프전 당시의 폭격기 경험을비교했을 때, 2차대전 조종사들의 지배적 감정이 공포였다면, 걸프전의 조종사들은 전자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듯 신났었다고 한다(Boose, 1993).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차이를 생산했던 것은 정교한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콘이 연구했듯 국가안보의 담론이기도 하다(Cohn, 1993). 이는 유도 미사일이 자신이 예정한 목표물을 맞출 수 있다는, 오락실 게임처럼 이 목표물의 정확한 위치는 충분히 알고 있다는, 그리고 이 모두가사람이라기보다는 공격대상에 관한 것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줬다. 실제로공식 담론은 폭격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에 대해 말했다. - P195

남성을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 보는 본질주의적 구성은 민족주의군사주의 신화와 잘 맞아 떨어진다. 즉, 남자들은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싸운다(Enloe, 1990)는 ‘보호받는 이-보호하는 이‘의 신화(Stiehm, 1989)가 바로 그것이다. 주디스 스팀Judith Stiehm 같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신화를 허무는 최선의 방법은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은 기반 위에서 군에 참 - P201

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러 독일 페미니스트들과 같은 이들은 여성의 군 편입을 반대하기도 한다(Seifert, 1995). 버지니아 울프 이래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남성이 여성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이에 대한 지지와 정당화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예로, 이스라엘에는 1982년 레바논 전쟁 중에 ‘침묵에 반대하는 어머니들 Mothers Against Silence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단체가 있는데, 이들은 자기 아들들을 전쟁에 보내서 자기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고 동의하지도 않은 점령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시키는 국가에 더 이상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 P2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순함의 너른 빈터_조지 오웰
자기 비움적 창조(kenotic creation)
마리아 미즈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박솔뫼 외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김진영_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번아웃의 시기에 나를 지배했던 질문은 오직 하나 ‘왜 계속 살아야 하지?‘였는데 생의 감각이 내게 가져오는 질문은 다양하고 넓었다. 어차피 계속 살아야한다면, 나를 계속 살게 하는 삶의 형태는 무엇일까. 서울에서 계속 사는 것이 맞을까? 이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맞나? 지금과 같은 가족의 형태가 가장 적합한가?"
여전히 뾰족한 답이 내려지지 않는 질문들이다. 굳이 할 필요 없는 번민과 스트레스로 다시 스스로를괴롭히고 있는 나 자신에 처음엔 좌절했다. 이제는 도망도 더 이상 소용이 없구나, 도망도 쉼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가만 살펴보니 질문의 초점이 모두 ‘나‘에게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분명 다른 유형의 스트레스였다. 삶의 상수라고 생각되는 것에서 도망치다 보니, 정말로 상수인 것들과 변수인 것들이 구별되었다. - P85

소영광_무신론자에게 보내는 편지

이런 맥락에서 조지 오웰의 말을 음미해도 좋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 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 저는 저 ‘단순함의 너른 빈터‘가 우리를 기존의 진지함으로부터 뺄셈하게 하는 안식일의 시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P95

쉼 호를 만드는 편집자들은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느냐가어떻게 쉬느냐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저자들과 함께배워가고 있어요. 선생님의 신학적 논의는 제 머리에 쥐가 나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사유로부터 더 배울 게 있다는 예감도듭니다. - P101

편집자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요약해서 소개한 ‘자기 비움적 창조(kenotic creation)‘ 도식이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시나요? 더엄밀한 논의 풍성한 전거들이 있지만 우리편지에서는 생략하기로 해요. 관건은 저 신적인 창조 이해가 과연 세계의 기원을 사실 그대로 설명하느냐가 아니라, 세계 안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인 함의를 제공하는가일 것입니다. - P104

하나님의 안식은 타자가 존립하기 위한 빈터를 마련하는 창조의 기쁨, 곧 자기를 비운다는 점에서 자기 바깥으로 벗어나는 무아적인(ecstatic) 기쁨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님이 신학자들의 감사의 말에서 주목하셨듯이 능동적인 자리에서 수동적인 자리로 물러나는 일, 자기를 이차적인 위치로 퇴각시키는 일은 내 욕망이나 실적, 삶의 영역에 이미 침투해 있는 타자의 기여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비춰 본 안식은 우리 안에 이질적인 타자가 존립하는 일을 즐거워하고, 타자의 등장에서 촉발된 공존을 입체적으로 음미하고 향유하게 합니다. - P105

복음서에서 예수는 공적인 삶을 시작하기 전에 성령에 이끌려서 40일간 광야에서 기도합니다. 우리는 저 40일간의 광야 생활을예수의 피정(靜)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피정은 문자 그대로 빈틈없는 일상에서 물러나서 정숙하게 자신을 살피는 일에 해당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가 피정 직후에 자신의 메시아적 소명을 선언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소명이란 다름 아닌 안식의 구현자로 사는 것입니다. - P107

연어*채효정_농사짓기에서는 뭐가 일이고 뭐가 쉼인가?

효정 1980년대까지 농촌은 서양식으로 농촌 근대화정책을 따라 소농들을 없애고 비료와 농약을 투입해서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변화해 왔어요. 그걸 비판하면서 유기농, 친환경, 생태농, 자연농 같은 대안적 담론과실천들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농촌의 현실을보면 생태적인 방법으로 농사짓지 않는 분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같은 시장과 소비자 중심의 농산물 인증 체제하에서 유기농업을 오롯이 개인이 떠맡게 되면, 농민들은 정말 뼈가 삭거든요.
그래서 체제전환운동포럼에서 농생태적 전환이 체제전환의 핵심이라고 했던 거고요. 저는 밭을 빌렸더니, 빌려주신 분이 제 밭까지 로타리 치고 비닐 멀칭까지싹 다 해 주셨더라고요. 선의로 해 주신 걸 화를 내겠어요, 싸우겠어요? 처음에는 주위에서 제초제 친 논두렁만 봐도 내가 말라 죽는 것 같고 가슴에 화가 가득 차고 - P133

그랬는데요. 물론 지금도 마음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왜 나는 그걸 안 하고 다른 방식으로 하려고하는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오랜 관계 속에서 진득하게 설득해 나가야 한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 P134

또 저는 텃밭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도 부여하는데요. 에코 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자급의 삶은가능한가』를 보면 ‘타로 밭의 정치‘로 끝나거든요. 미 - P142

즈는 텃밭을 여성들의 정치 공간으로 적극 상상합니다.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거나 멀리 돈 벌러 가거나 민회에 가서 싸우는 동안 여자들이 들판에서 밭을 일구면서마을 일을 의논하고 같이 운영해 나가는 모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인도의 칩코 운동(벌목을 막기 위한 나무 껴안기 시위)은 대표적인 사례고요. 아까 구멍가게의 비공식 경제, 재생산영역이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여성들의 자급과 자치의역량도 비가시화되었어요. 저는 이런 ‘들판의 민주주의‘에 주목하고, 다른 정치를 상상할 때 반드시 참고하고 복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텃밭을 생활 정치의 장으로도 적극 조직해 보면 좋겠습니다. - P143

저는 원래 삶의 목표 중 하나가 자급자족이었는데, 농촌에 내려와 살면서 오히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았어요. 그런데 자급자족(Self-sufficiency)을 넘어선 공급자족(Community-sufficiency)은 혼자 자급하는 게아니라 이웃들의 일을 돕고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며 필요를 충족하는 삶이에요. 저는 공급자족의 방식으로 풍요를 채워 가는 삶에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상상하기 어렵고 장벽이 있을지라도 새로운 삶을 꿈꾸는 동료들을 만나 관계를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 P146

정기현*이정화_책 만드는 사람들이 도시 농부가 된 이유

박솔뫼 작가가 쓴 ‘붙이기‘라는 제목의 원고가 있거든. 검열 때문에 완전히 다른 두 영화를 맥락 없이 갖다 붙인 내용에 대한 글이야. 그 무맥락의 붙임, 전혀 다른 두 개를붙이는 게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여기저기에서 느꼈어. - P156

내 경우는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때혹은 내 몸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움직일 때 가능한 것 같아. 예를 들어서 등산을 하면 너무 힘들잖아. 처음엔 힘들고 괜히 왔다 싶다가 어느 시점에 몰입이 되면서아 걷길 잘했구나, 하고 머리가 가벼워지는 거야. 그래서 완전 소화를 하려면 내 생각을 넘어서는 지점까지 몸을 움직여야 하는구나 생각했어.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다니아 쉬블리 소설 <사소한 일>

하미나_곧바로 응답하지 않기

언젠가 권여선 작가의 인터뷰에서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은 적이 있다. 동의한다. 텅 빈 시간, 텅 빈 일정, 텅 빈 머리, 텅 빈 대화. 이런 것들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마주쳐야하는데 그렇게 마주친 자신의 존재를 감당하는 일이란...... 정말이지 끔찍하다.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나머지 우리는 해야 할 일을 만들고, 쓸데없는 말로 침묵을채우고, 사람과 사건에 대한 이론을 계속해서 생성해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충분히 버티는 사람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 P21

프리다이빙은 그간 내가 얼마나 경직된 채 무리하며 일해왔는지 돌아보게 해 주었고, 힘을 주기보다 이완하는 쪽이 훨씬 배우기 어렵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다. 이전의 방식, 힘을 줘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있음을 가르쳐 주었고 동시에 힘을 주지 않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프리다이빙이 아니라 바다가 가르쳐 준것이라고 말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후로는 무얼 하든 조급함이 많이 줄었다. - P24

- 요가를 한다. 너무 열심히는 하지 않는다. 다음날 또 가고 싶을 정도로만 한다. - P27

하미나와 독자들_당신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하미나 이 문장도 좋았어요. "쉬는 것이 생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기쁘기 위함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기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데 무척인색하다고 느끼거든요. 오로지 기쁨을 위해서 어떤 일을 선택하는 것, 기쁨을 누리는 걸 꺼려 한다고 생각해서, 진짜 쉼에 이 또한 중요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P47

신기한 경험이었다. 걷다 보니 자연스레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기분이 평소보다 좋아졌다. 핸드폰을 보고 있지 않으니, 자연과 사람을 천천히 관찰할 기회도 생겼다. 자연스레잡생각이 사라졌고 어지러웠던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아, 나한테 맞는 쉼은 걷기였구나." - P49

이 부분도 밑줄 그었는데요. "쉬지 않는 시간도 결국 쉬는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저는 이번에 글 쓰면서 느꼈는데 제가 자꾸 쉬는 시간도 사실은 일하기 위한 시간으로 생각해 버리는 버릇이 있는 거예요. 내가 몸을 가볍게 해서 다음번 펀치를 잘 날리기 위해서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연 님은 반대로 쉬는 시간을 위해 쉬지 않는 시간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인간은 이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삶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취하며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이 부분도 좋았습니다. 세상에 대해 그렇게까지 우리가 적극적인 뭔가를 할 수는 없지만 태도나 표정 정도는 바꿀 수 있다는 그 정도의 행위성을 짚은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