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성모마리아는 없다

둴락은 부모되기의 집착도 영아 살해와 마찬가지로 타고나는것으로 생각한다. 동물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관심이 있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모두 사느냐 죽느냐의 세상을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먹고 먹히지 않으려는 투쟁은 매일의 치명적 현실이다. "왜 암컷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크게 울어재끼고 요구사항도 많은 분홍색 작은 짐승을 돌볼까요? 그걸 돌보고 희생하는 것은 자기에게 극도로 위험한 일인데요." 뒬락이 말했다. "이 시점에 양육의 본능이 발휘되기 때문이에요. ‘무조건 돌봐야 해. 그거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라고 명령하는 거죠." - P222

앨트먼은 표본을 무작위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각 개체를 동일한 시간 동안 관찰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왜냐하면 통계학적으로 모든 행동은 아무리 ‘따분해‘ 보이더라도 중요도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앨트먼이 자신의 실험법을 개괄하여쓴 논문 「행동의 관찰연구: 표본추출방식]은 혁신 그 자체였고, 개코원숭이만이 아니라 동물계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야외 연구 방식을 영원히 바꾸었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1만 6,000번 이상 인용되었으며, 한 인류학 교수가 나에게 ‘의도하지 않은 역사상 최고의 페미니스트 논문‘이라고 설명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 P226

다. 왜냐하면 이 논문을 계기로 마침내 암컷이 수컷과 동일한 시간을 할애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앨트먼의 계획적인 천재성은 진화의 시간에서 동물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려면 수 세대에 걸쳐 동일한 동물 집단을 대상으로 장기적인 데이터를 수집할 필요를 강조했다. 앨트먼은 그 대상으로 개코원숭이를 선택했다. - P227

"성공적인 육아의 목표는 독립적인 아이를 키워내는 거예요." 앨트먼이 내게 말했다. "과하게 보호하지 않는 어미에게서 자란 새끼는 자신의 사회적 세계를 안전하게, 그러나 독립적으로 탐험하고 발전시킵니다."
낮은 계급의 암컷들은 거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학대받는다. 자신과 새끼를 보호할 사회적 입지가 없으므로 이런 어미는 앨트먼이 ‘구속적‘ 육아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새끼를 제 손이 닿는 곳에만 두려고 한다. 이처럼 품에 끼고 있는 방식이 ‘아마도‘ 초기 생존율은 더 높을 것이다. 처음 몇 주 동안 새끼가 포식이나 질병에서 좀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이 느리고 어미의자원을 더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 어미를 에너지 절벽으로 미는 결과를 낳는다. - P232

모성애의 목표는 무작정 새끼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번식할 때까지 오래 살아남는 자손의 수를 최대로 늘리는 곳에자신의 제한된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 이 일에 진정한 이타적헌신은 없다. 오히려 철저히 이기적이다. ‘좋은 엄마‘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 때와 포기할 때를 알고 있으며 그건 심지어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그러하다. - P237

7장 계집 대 계집

편협하지만 대단히 영향력 있는 다윈의 태도로 인해 이후 150년 동안 동성 경쟁의 연구는 짝을 두고 벌이는 수컷의 경쟁에만 초점을 맞췄고, 암컷의 전투적 잠재력은 대개 무시되었다." 그 결과로 암컷의 데이터가 들어가야 할 텅 빈 자리는 허위 정보로 메워졌다. 암컷은 경쟁심이 없다는 가정하에 엉터리 이론이 세워진 것이다. 실상은 그저 우리가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뿐인데 말이다.
새의 노래가 대표적인 예다. 명금류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오랫동안 성선택의 고전적 본보기로 여겨졌다. 라이벌과 성공적으로 경쟁하여 이성의 애정을 얻기 위해 한없이 정교해진 수컷들의 장식품이라고 말이다. 새가 노래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을것 같지만 저 모든 노래를 암기하려면 더 큰 뇌가 필요하다. 자그마한 날짐승에게는 에너지 면이나 신체적으로 값비싼 형질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명금류 수컷의 뇌는 노래할 필요가 없는 겨울철에 수축한다고 알려졌다. - P266

"다윈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이주성 새들에서 수컷이 부르는 노래의 정교함은 어느 정도까지 분명 성선택을 통해서 진화했어요. 하지만 그건 전체 그림의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모든 새의 노래가 다 그런 건 아니라고요." 랭모어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새들의 노래에 훨씬 많은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요. 따라서 노래가 성선택만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대신 사회적 선택을 통해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사회적 선택social selection이라는 개념은 1979년에 이론생물학자 메리 제인 웨스트 에버하드Mary Jane West-Eberhard가 주창한 것이다. 웨스트 에버하드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이 번식 철 바깥에서 성과 무관하게 영역이나 자원을 두고 벌어진 경쟁에 의해 정교하게 진화한 형질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71

번식자와 생식력이 없는 노동자 계급 간의 노동 분할이 명확한 이런 극단적인 협동 번식은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 알려졌다. 그리스어로 ‘eu‘는 ‘좋다‘라는 뜻이다. 물론 이 용어도 또 하나의대단히 주관적인 단어다. 엄밀히 말해 여왕 한 사람에게만 ‘좋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왕을 제외한 군락의 나머지 수백만 마리는 왕족의 항문에서 분비하는 페로몬을 먹고 불임이 된 채 평생 하위계급에 머문다. 갑자기 영국의 군주제가 대단히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진사회성은 개체라는 철학적 개념에 도전하는 외계적인 생활방식이며 수많은 과학 소설에서 반이상향의 영감을 제공해왔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사회성 곤충처럼 다섯 개의 계급이 있는 독재국가를 배경으로 삼았다. 이 공상과학 속 사회가 인간과는 아주 먼 관계인 무척추동물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안심을 준다. 그러나 놀랍게도 진사회성으로 분류되는 포유류 사회가 실재한다. 괴이하기로 으뜸가는 벌거숭이두더지쥐 naked mole rat이다. - P286

8장 영장류 정치학

졸리는 100편이 넘는 논문을 썼지만 그런 대단한 학문적 성과에도 다이앤 포시Dian Fossey나 제인 구달 같은 동시대 여성 과학자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고 과학에 대한 기여도 역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졸리의 연구가 지닌 이단적 성격때문이었을 것이다. 포시와 구달은 아프리카 본토에서 실버백 고릴라와 침팬지 수컷처럼 권력을 잡은 수컷의 서열을 묘사했다. 하지만 졸리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조용히 전혀 다른 현상을 기록했다. 적대적인 알파 암컷 말이다. - P306

마마는 무리의 최상위 계급인 알파 암컷이었고 죽을 때까지40년이 넘게 그 자리를 유지했다. 드발은 마마의 지위가 그녀만의 고유한 카리스마와 사회적 기술에서 왔다고 믿는다. 침팬지 무리에서 암컷의 계급은 나이와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여러 암컷을동물원에 모아놓으면 대개 별다른 소란 없이 재빨리 서열이 결정된다. 한 암컷이 다른 암컷에게 복종의 자세를 취하면 그걸로 끝이다. 암컷의 서열은 안정적이고 웬만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드 발에 따르면 저들은 ‘위로부터의 위협이나 힘보다 아래로부터의 존중‘에 의해 서열이 유지되며 아마 ‘복종 서열subordination hierarchy‘*이라는 표현으로 더 잘 묘사될 것이다. - P322

* 이 용어는 원래 1970년대의 뛰어난 영장류학자 델마 로얼Thelma Rowell이 처음 만든 것이다. 로얼은 영장류 무리 내 관계에서 ‘지배‘만 강조되고 ‘복종‘의 중요한 역할에는 관심이 덜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로얼은 그것이 남성 동료들의 영장류에 대한 ‘무의식적인 의인화‘에 의한 선입견이라고 보았다. 앨리슨 졸리처럼 로얼 역시 전통적 사고에 도발적으로 도전한 또 한 명의 칭송받지 못한 여성 영장류학자였다. 로얼은 자신의 논문을 출판하면서 T. E. 로얼이라고 서명하여 성별을 감췄다. 그러나 이 간단한 위장술이 문제를 일으켰다. 1961년에 로얼이 런던 동물학회지에 투고한 논문에 감명받은 학회는 T. E. 로얼에게 케임브리지로 와서 동료들에게 강연을 부탁했다. 그러나 T. E. 로얼이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참석자들은 당황했다. 로얼은 강연은 할 수 있었지만 동료들과 한 자리에서 저녁을 먹지는 못했다. 학회 측은 로얼에게 커튼 뒤에 앉아 보이지 않게 식사하기를 요청했고 당연히 로얼은 거절했다. - P323

이런 고정관념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암컷의 모계 집단이더 많이 연구될수록 이들에게 무리의 지휘권이 있고, 신체적 지배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았을 때 간과된 특별한 방식으로 사회적 결과물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알파 수컷의 자율성을 조금씩 깎아내리고 있다.
마마의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마마가 ‘혈연관계가 아닌‘ 여성들로 구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힘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아른험 군집은 되도록 야생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애썼지만 피를 나눈 적이 없는 낯선 여성들을 한데 모아놨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위적이었다. 또한 이들은 평소 먹이를 넉넉하게 받았기 때문에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암컷의 결속을 방해할 요소도 없었다. - P326

그러나 랭엄의 법칙을 짓밟고 여성에게 좀 더 힘이 실리는 과거와 미래의 비전에 희망을 주는 영장류가 하나 있으니 바로 보노보다. 프란스 드 발은 보노보를 ‘페미니스트 운동에 내려진 선물‘이라고 불렀다. 침팬지는 부계 중심에 호전적이지만 보노보는 모계 중심에 평화롭다. 인간은 양쪽에 똑같이 피를 나누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대형 유인원의 비정통적 삶이야말로 영장류에서수컷 지배가 정해진 것이라 주장하는 개념에 최후의 치명타를 날린다. - P329

보노보는 인류학을 개방하여 가부장제를 인류 조상의 보편적상태로 전제하지 않는 신선한 모델을 탐색하게 했다. 사실 영장류사촌 전반에서 가부장제가 희귀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그리고 왜가부장제가 많은 인간사회에서 진화하고 장악했는지를 묻게 한다.
패리시의 과거 지도교수였던 바버라 스머츠는 새로운 논문에서 인류의 진화 과정에 전례 없는 수준의 성적 불평등이 나타난 이유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설명하면서 보노보를 추가했다. 스머츠는 인간 사회가 수렵채집에서 집약적 농업과 가축 기르기로 전환된 것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과거 협동 사냥이 남성에게 식량자원을 통제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역시 채집 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약적 농업과 목축업이 시작되면서 여성의 이동이 제한되었고, 남성에게는 자원에 대한 통제는 물론이고 경쟁자와 싸우고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다른 수컷과 정치적 동맹을 맺는 기회가 되었다.
채집 생활 방식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이동과 자원에의 접근을 오롯이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여성도 독적으로 먹이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활동이 제한되고 남성이 고기를 비롯한 양질의 식량을 장악하면서 여성은 주체성을 잃고 성적 재산이 되었다. 이어서 재산이 자식에게 상속됨과 동시에 부계 중심의 가부장제가 사회를 장악했다. 여기에 추가로 언어 능력의 진화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통제를 확장하고 강화할수 있게 했는데, 언어를 통해 남성 지배와 여성종속, 남성우월과 여성 열등의 이데올로기를 창조하고 전파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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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생식기의 능동성

5장 생식기 전쟁

생식기만큼 빠르게 진화하는 신체 부위는 없다. 이 기관이 강력한 선택의 힘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백 년간 생식기는 적절한 과학적 조사 대상이 되지 못했다. 동물의 아랫도리가 생명체를 기술하는 항목으로서 목록에 포함되는 것은 괜찮지만 애초에 그런 변덕스러운 창조물이 왜 생겨났는지까지 파고들어 설명하려는 이는 없었다. 또이건 부분적으로 다윈에게 책임이 있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성선택의 창의적인 생동감이 생식기에만큼은 작용하지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식기관을 ‘일차적’ 성적 특성으로 여겼다. 즉 생존의 필수 요소로서 자연선택의 실용적인 지도 아래에 있는 형질로 보았다는 뜻이다. 성선택은 생식기관을 제 - P183

외한 ‘이차적‘ 성적 특성에만 적용되었다. 화려한 깃털이나 거추장스러운 뿔처럼 수컷 대 수컷의 경쟁이나 암컷의 선택과 관련된 부차적인 성적 이형 형질을 말한다. - P184

* 2018년 테트주TetZoo 학회에서 고대 조류 화석 전문가인 앨버트 첸Albert Chen에게 공룡의 음경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한마디로 답했다. "무시무시하죠." 호기심 많고 용감한 독자들은 타조 음경의 이미지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아마 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이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 P189

* 1970년대 이후로 생물학자들은 동물에서 성적으로 강압적인 행동을 묘사할 때 ‘강간‘이 아닌 ‘강제된 교미‘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는 인간에서의 강간은 오리나 빈대에게 적용되지 않은 복잡한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로 발생한다는 인식에서 비롯했다. 이것을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윈주의에 기반해 인간의 강간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제안한 소수의 남성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주장은 광범위하게 비판받아왔다. 성선택 이론에 따라 모든 남성의 내면에는 강간범이 살고 있다는 주장의 위험성 때문에 동물에 관해 말할 때는 인간적인 용어를 철저히 배제하게 되었다. - P191

선구적인 저서 『암컷의 통제Female Control』(1996)에서 에버하드는 질이든 총배설강이든 저정낭이든 암컷의 생식기는 정자를받기 위한 비활성 배관 이상이라는 사례를 제시했다. 암컷의 생식기는 능동적인 기관으로서 구조와 생리, 화학적 특성을 통해 정자를 보관, 분류, 거부할 수 있다. 매력 없는 구혼자의 정액은 갖다버리고, 선택된 정자는 난자로 가는 직통 노선에 올려 적극적으로 이동 속도를 높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로 같은 통로 속에서 헤매다 끝나게 할 수도 있다. 에버하드가 보기에 일단 씨뿌리기가 끝나면 그때부터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쪽은 암컷이다.
윌리엄 에버하드의 책은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암컷의성 자율성을 옹호하는 사람도 질은 형태가 균일한 편인 반면, 음경은 다양하고 종별 특이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브레넌도 암컷이 수컷보다 덜 다양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암컷의 생식기관은 알이나 아기를 낳는 다른 현실적인 기능 때문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연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 P199

암컷의 생식기를 조사하면 할수록 암컷에게 난자의 수정 권한이 더 많이 주어지고 원래 중요했던 ‘정자 경주‘는 어이없는 발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포유류의 정자는 암컷의 개입 없이는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정자는 수정능획득capacitation이라는 활성화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난자와 융합할 수 없다. 이 기간에 정자는 화학적으로 변형되는데 그 과정에 자궁의 분비물이 개입하고 있어 결국 여성의 통제하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실제로 연구되지 않았으므로 더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50년 이상 인식된 과정임에도 수정능획득은 정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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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의 일처다부

2장 배우자 선택의 미스터리

다윈은 그런 ‘이차적인 성적 특성‘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제안을 했다. 하나는 암컷을 앞에 두고 수컷 대 수컷이 벌이는 싸움으로, 장수풍뎅이의 초대형 뿔처럼 규모가 큰 무기로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암컷의 배우자 결정권이며 공작새 꼬리와 같은 화려한 장식이 진화하게 되었다.
"이는 다양한 예로 보여졌다……… 암컷은 비록 비교적 소극적이지만 대개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잘 행사하고 특정 수컷을다른 수컷보다 선호하여 받아들인다. 다윈은 계속해서 그런 변덕의 전반적인 효과를 설명한다. "더 매력 있는 수컷을 암컷이 선호하기 때문에 수컷이 변화한다. 종의 존재와 양립하는 한 오래도록 시간제한 없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는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위 분류로 취급하긴 했어도 암컷과 짝지을 권리를 두고 수컷들이 대결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윈이 물의를 일으킨 부분은 여성이 성적으로 자율적일 뿐 아니라 남성의 진화를 좌 - P85

지우지하는 결정권을 가졌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마나님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준 것으로 대부분의 (남성) 생물학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 P86

다윈이 자연선택 이론을 세울 때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패트리셀리 역시 구애를 수컷과 암컷이 흥정하여 거래를 성사하는 과정으로 강조하고, 그에 합당한 개념의 틀을 세우기 위해 협상의 경제 모델로 눈을 돌렸다.

*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증가에 대한 논문으로 잘 알려진 영국 사회경제학자로, 번식을 억제하지 않는 한 인구는 언제나 식량 공급을 초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상은 다윈이 진화를 추진하는 힘을 탐색할 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맬서스를 접하기 전에 다윈은 생물이 어디까지나 개체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만큼만 알아서 번식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연구를 읽은 후 인간사회에서처럼 동물의 개체군도 적정한 수준보다 넘치게 번식하여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이고 그 결과 생존자와 패자가 갈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주요 원동력이 된 것이다. - P95

수컷 새틴정원사새의 문제 해결 능력을 시험한 어느 2009년 연구는 인지 능력이 짝짓기 성공과 연관 있으며 암새는 가장 똑똑한 수새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낸 사랑앵무 수컷이 암새에게도 좀 더 매력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암컷의 선택은 수컷의 몸과 행동뿐만 아니라 두뇌에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윈 역시 성선택으로 사람 - P96

의 인지력이 크게 진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예술, 도덕, 언어, 창의력처럼 ‘자기표현‘이 강한 행위에서 영향력이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여성의 선택이 인간의 두뇌를 명석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빅토리아 시대 가부장적 과학계의 급소를 가격하여 치명타를 입혔을 것이다. - P97

3장 조작된 암컷 신화

"바위종다리처럼 살아라. 암수가 서로에게 충실하기 짝이 없으니."라고 1853년에 목사 프레데릭 모리스Frederick Morris는 부르짖었다. 모리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열성적인 조류학자이자 새에 관한 유명한 책을 쓴 작가로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가정적인‘ 유럽종다리 Prunella modularis"의 수수한 생활방식을 따르도록 격려했다. 이 선량한 목사는 실은 자기가 여성 신자로 하여금 가정을 꾸리기전에 밖으로 나가 연인을 찾고 두 마리 수컷과 250회 이상 짝짓기하도록 종용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바위종다리 암컷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처음으로 기록한 케임브리지대학교 동물학자 닉 데이비스Nick Davies가 풍자조로 쓴 것처럼 목사의 조언은 ‘교구에 대혼란‘을 가져왔을 것이다 - P116

이제는 암새의 90퍼센트가 일상적으로 다수의 수컷과 교미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 결과 한 둥지에 있는 알의 아비가 모두 다를 수 있다. 수컷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종일수록 암컷이 외도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최근 버키드는 성적 이형이 큰 종일수록 부정을 크게 숨기고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 P117

"명금류는 #미투 운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고와티의 말이다. "암컷의 협조 없이는 물리적으로 수정이 불가능하거든요."
그 후로 10년 동안 조류 친자 연구의 광풍이 불면서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증거들이 해일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남성 중심) 조류학계의 눈에 암새들은 여전히 정숙하기만 했다. 어쨌든 다윈-베이트먼-트리버스가 말한 원칙에 따르면, 암컷은 다수의 짝짓기로부터 얻을 게 없고 잃을 것뿐이다. 사회적 배우자에게 들키기라도하면 불륜을 저지른 암컷은 버려지거나 심하게는 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강간이 불가능한 상태인데도 암 - P119

새는 제 씨를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수컷들의 생물학적 특권에 억지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심지어 팀 버키드 같은 조류학자도 암새가 강제적인 혼외정사로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으며, 어떻게 암새가 수새를 꼬드겨 한 배우자하고만 짝짓게 하는지를 두고 논쟁했다. - P120

성적으로 거리낌 없는 명금류 암컷은 행동생태학계를 뒤흔든 ‘일처다부제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암컷은 수컷에게 빼앗긴 성적 운명의 통제권과 알의 친자 결정권을 되찾기 시작했다. DNA 검사 기술로 도마뱀에서 뱀, 바닷가재까지 다른 암컷들의 정절이 속속 철회되었다. 일처다부의 경향은 모든 척추동물에서 발견되었고 무척추동물에서도 예외가 아닌 표준으로 선언되었다. 한편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는 진정한 성적 일부일처는 극히 드물어 지금까지 알려진 종의 7퍼센트 미만에서만 확인되었다.
"수 세대의 생식생물학자들이 암컷은 성적으로도 일부일처성이라고 가정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틀렸다는 게 명확해졌다." 2000년에 출간된 『난교Promiscuity』에서 팀 버키드가 이렇게 인정했다. - P122

이제는 허디의 친부 혼동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주류 학계의 사고에 통합되고 있다. 오늘날 수컷의 영아 살해는 영장류사촌 사이에서도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51종의 영장류에서 의심되거나 실제로 목격되었다. 대부분 외부에서 침입한 수컷이 번식 시스템에 진입할 때만 살해를 시도하며, 특히 젖을 떼지 않은영아들이 타깃이다. 같은 패턴이 수사자에서도 보이는데 알파 수컷이 새로 무리를 장악하면서 새끼 사자를 죽인다. 요약하면 앞에서 내가 실수로 유혹했던 암사자는 생물학적으로 나와의 섹스를 강요받은 셈인데, 그건 내 작은 으르렁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내가 자신의 아이들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31

허디는 전반적인 영장류에서 수컷이 자신의 새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새끼를 돌보게 조종당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명백한 사실은 수컷은 오로지 제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새끼만 돌보기 때문에 일부일처가 암컷에게 최고의 전략이라는 흔한 가설에 찬물을 끼얹었다. 저런 생각은 도시의 사무실에서 질이나 하는 남성 포퓰리스트 베스트셀러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유행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야외에 나가 암컷 영장류의 야생적인 - P132

행동을 관찰한 인류학자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허디는 바바리마카크와 개코원숭이 연구에서 성욕이 왕성한 암컷들이성을 이용해 복잡한 친자 관계의 그물로 다수의 수컷을 끌어들인사례가 보고되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수컷들은 평상시 다른 수컷의 자식까지도 데리고 다니며 보호했다. 우리 조상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임신과 상관없는 성적 행동은 수정의 빈도를 증가시키지는않더라도 어린 새끼의 생존율을 높였어요. 그러니까 암컷에게는궁극의 번식 전략인 셈이죠." 허디의 말이다. 허디는 어미 쪽의이런 일처다부 전략이 우리의 사람과Hominidae 선조들처럼 이례적으로 생장이 느린 영아를 긴 세월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특히 유용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 P133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정자 경쟁이다. 큰 고환은 정자를 더 많이 생산하여 암컷의 생식관을 가득 채우고 다른 정자가 쌓이지 못하게 막거나 먼저 들어간 다른 수컷의 정자를 깨끗이 씻어낸다. 실버백은 제 근육의 힘으로 애초에 다른 수컷이 하렘에 접근하지못하게 막아 암컷들이 오로지 그에게 충실하게 만든다. 반면 침팬지 암컷은 임신할 때마다 여러 수컷과 500~1,000번을 교미한다. 이런 바람기의 물리적 결과가 바로 체격과 비교하여 고릴라보다열 배나 더 큰 침팬지 수컷의 고환이다. 경쟁자의 정자를 쓸어내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궁금해하는 인간의 고환은이 둘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 - P135

베이트먼의 연구를 둘러싼 논쟁은 확실히 정치적 사안이 되었다. 패러다임의 토대는 빅토리아 시대의 쇼비니즘에서 구축되었고 페미니스트 과학자들에 의해 무너졌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는 양극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견고한 과학도 힘을 쓰지 못할 수 있다. 고와티는 자신의 개방적인 정치적 태도가 방해되어 자신의 논문이 널리 읽히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꼭 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몇 년 전 앤절라 사이니 Angela Saini가 과학에 만연한 성차별을 기록한 책 『열등한 성』을 집필하면서 트리버스를 인터뷰했을 때, 트리버스는 고와티의 ‘그 대단하신 논문‘2을 읽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오늘날 여전히 베이트먼의 패러다임을 가르치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고와티의 비판적 연구는 ‘정치색이 강하다‘는 이유로 추천 독서 목록에 오르지 못한다.
세라 플래퍼 허디는 "실증적 태도를 가진 생물학자들은 F로시작하는 단어를 들으면 일단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물론 자신들의 가정이 얼마나남성주의적이고, 자신들의 다윈주의적 세계관의 이론적 근간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인지는 간과하고 있지요." - P144

베이트먼은 성역할을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 까다롭고 소극적인 암컷 대 무분별하고 경쟁적인 수컷으로. 그러나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하는 그림에서 성역할은 과거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다양할 뿐 아니라 유연하고 유동적이다. 사회적, 생태적, 환경적 요인, 그리고 심지어 무작위적 사건 모두 그 성격을 결정하는 힘이 있다. - P145

4장 연인을 잡아먹는 50가지 방법

다윈의 시대에 번식은 양쪽 성이 합심하여 다음 세대를 창조하는 조화로운 과제로 여겨졌다. 이런 낭만적 사고방식이 오늘날에는 다소 예스럽게 보인다.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동물계 전체에서 암컷과 수컷이 합의할 수 없는 성적 의제를 들고 빈번하게 충돌한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사랑은 전쟁이고 성적 갈등은암수 간에 적대적으로 작용하는 주요 진화적 힘으로 이해되고 있다. 남녀가 서로를 속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대립하는 이해관계의 줄다리기는 적응과 역적응의 진화적·군비경쟁을 유발한다. - P155

부인할 수 없이 매력적인 이 광경은 공작거미 수컷이 목숨을 걸고 추는 춤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많게는 구혼자의 4분의 3이 암거미의 마음에 들지 못해 끝내 잡아먹힌다. 연민을 자아내는 위풍당당함이 이 작은 오스트레일리아 거미를 뜻밖의 인터넷 스타로 만들었다. 그룹 비지스의 <Staying Alive(살아 있어야 해)〉를 배경으로 한 수거미의 만화경 같은 구애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달성했다. - P163

성적 동족 포식은 빅토리아 시대 남성 생물학자들의 편협한 시야에 혼란을 야기했을지 모르지만, 암컷의 관점에서 보면 교미 중이나 전후에 연인을 잡아먹는 행위에는 분명한 진화적 이점이 - P170

있다. 어미는 자식을 위해 최고의 유전자를 원하고 또 새끼를 보살피려면 자신도 크고 건강해야 한다. 구혼자들을 잡아먹을 능력이 되는데 먹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 P171

인간은 뱃사람을 잡아먹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가는 여성의 성적 동족 포식에 오랫동안 사로잡혔다. 저들은 궁극의 팜파탈이며 탐욕스러운 성적 욕구와 지배욕을 가진 특별한 여성은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동시에 두려운 존재이다. 남성우월주의와 성적 능력의 ‘자연적 질서‘를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적 매혹과 고정관념의 응어리가 과학에 쉽게 스며들었다. 암컷의 동족포식 현상을 기록한 많은 과학 논문에 사용된 언어를 조사한 한 최근 연구에서는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고부하‘ 언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비난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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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도, 표지도 맘에 든다.
글자 크기도 커서 읽기 좋다. (요즘 노안으로 지하철에서 책 읽기 점점 힘들다...슬프다...).
다만, 책이 너무 무겁다. 페이지 분량에 비해서도 너무 무거운 책이다.
질이 좋은 무거운 종이인가 보다.
난 서서 한 손으로 들고 읽을 수 있는 가벼운 페이퍼백이 좋다고.
책은 재미있다.


과학적 가부장제
성의 가소성

들어가며. 다윈의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암컷들

다윈은 성선택의 역학에서 수컷끼리의 경쟁 외에도 ‘암컷의 선택female choice‘이라는 요소의 필요성을 알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설명하기는 몹시 껄끄러웠으니, 암컷에게 수컷을 쥐락펴락하는 불편할 정도로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발상이었고, 앞으로 2장에서 보겠지만 궁극적으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과학적 가부장제의 입맛에 맞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다윈은 암컷의 선택이란 수컷들의 허세전에 ‘관중으로 서 있는 여 - P21

그러나 이런 편리한 성적 분류의 원조가 다윈은 아닐 터, 아마 그도 동물학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개념을 빌려왔으리라. 기원전 4세기에 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최초의 동물 연감이자 번식에 관한 논문인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On the Generationof Animals」를 썼다. 다윈이 이 기념비적 연구를 그냥 지나쳤을 리없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성역할의 분담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두 가지 성이...……… 있는 동물에서……… 수컷은 효율성과 적극성을………… 암컷은………… 수동성을 상징한다."
암컷의 수동성과 수컷의 활력이라는 고정관념은 동물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됐다. 그만큼 오랜 시간의 시험을 버텨왔다는 것은 수 세대의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옳다고 느꼈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진짜 옳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모든 영역에서 과학이 가르쳐준 한 가지가 있으니 직관은 종종 인간을 오도한다는 사실이다. 군더더기 없는 이분법적 분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틀렸다는 점이다. - P22

1장 무정부 상태의 성

이 책은 비인간 동물에 관한 책이므로 일단 성과 젠더를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생물학자는 동물에게 젠더가 없다는 말에 대부분 동의한다. 젠더란 성별을 나타내는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개념이며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따라서 생물학자들이 암컷이라 말할 때는 오로지 생물학적 성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성은 또 무엇일까? - P41

"남성호르몬이니 여성호르몬이니 하는 것은 없습니다. 흔히들 착각하지만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똑같은 호르몬을 갖고 있습니다." 크리스틴 드레아Christine Drea가 스카이프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게 말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란 성 스테로이드를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효소의 상대적인 양과 호르몬 수용기의 분포와 민감성, 그게 전부입니다." - P50

생식기관을 결정하는 일은 약 60개의 유전자가 오케스트라처럼 협업하는 과정이다. 성을 결정하는 이 유전자들은 성별에 따라 X 염색체나 Y 염색체에 딱딱 나뉘어 있기는커녕 모두 다 성염색체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이 유전자들은 게놈 전체에되는대로 흩어져 있다.
SRY 유전자는 말하자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게놈에 이 정소 결정 인자가 존재하면 성결정 유전자에 지시를 내려정소를 발생시키는 T 음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만약 SRY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오케스트라는 난소가 되라는 O 음을 연주할 것이다. 오랫동안 유전학자들은 별개의 두 경로가 존재하여 하나는 수컷으로(SRY 유전자의 존재로 유발된다), 다른 하나는 암컷으로(SRY 유전자의 부재로 유발된다) 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진화가 성에 대해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적 해결책을 제공했다는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 P56

혼란스럽게 뒤얽힌 양성 유전자의 관계는 성의 가소성을 설명한다. 뒤엉킨 톱니바퀴 중 어느 것이라도 발현에 변화가 생기면 새로운 변이를 생산할 것이다. 이는 진화를 추진하고 동물이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면서 적응하고 활용하게 하는 재료가 된다. - P58

일부 파충류, 어류, 양서류는 성의 분화가 마스터 유전자가 아닌 외부적 요인에 자극받는다. 거북의 예를 들어보자. 거북은 바다에서 무겁게 몸을 끌고 나와 열대 해변의 모래에 알을 파묻는다. 이때 섭씨 31도 이상에서 부화하는 알은 난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반면에 27.7도 이하에서는 정소를 만든다. 두 온도 사이에서는 수컷과 암컷이 섞여서 나온다.
열은 성을 결정한다고 알려진 외부 자극의 하나일 뿐이다. 햇빛 노출, 기생충 감염, pH 수치, 염도, 수질, 영양, 산소 압력, 개체군 밀도, 사회적 상황(주위에 이성이 얼마나 많은지 등) 따위가 모두한 동물의 성적 운명에 영향을 준다. - P63

"생식샘 수준에서는 분명히 수컷과 암컷 사이에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연못이나 가서 닥치는 대로 잡아서 보면 여전히 수컷이나 암컷, 둘 중의 하나로 보일 겁니다." 로드리게스가 내게 말했다. - P66

크루스에 따르면 성의 양식에는 염색체, 생식샘, 호르몬, 형태, 그리고 행동의 다섯 종류가 있다. 이것들은 서로 합의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평생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적되고 창발적이며, 유전자나 호르몬은 물론이고 환경 또는 경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소성 덕분에 우리가 좀 내부와 종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성과 성적 표현의 다양성이 가능해진다.
"변이는 진화의 기본 틀입니다. 변이가 없다면 진화 시스템이존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성적 특성에도 변이가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 P71

"남성성은 여성성의 적응 과정으로서 진화했습니다." 크루스가 설명을 이어갔다. "최초의 남성이 한 일은 여성의 몸에서 번식을 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식세포 분리의 기초가 되는 신경내분비학적 과정을 자극하고 조정하는 일이죠. 남성은 행동상의 촉진자입니다."
남성이 원래 여성으로부터 진화한, 즉 여성에서 파생된 성이라면 거기에는 난자 제조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논리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크루스가 남성성의 한복판에서 고대 여성성의 살아 있는 유물을 발견했으니, 바로 정소이다.
"우리는 정소에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다고 보여주는 현미경 사진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에스트로겐, 즉 가장 대표적인‘여성’ 성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사실은 수컷의 정소와 정자 발달에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 P73

"여성 성 스테로이드는 남성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합니다. 당연하죠, 남성은 원래 여성이었으니까요."
하여 크루스 말하길, 성경의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태초에 여성이 있었고 여성이 남성을낳았다. 진화를 보는 이런 대안적인 관점에서 ‘암컷이란 무엇인가‘ - P74

라는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은 다음과 같다. 여성은 성의 시조이다. 이 원시적 난자 제조기의 유물은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이 사실을 통해 남성이 내면의 여성성과 접촉하는 것을 재해석할수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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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운동 부족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데 그 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문제, 사무실의 디자인, 아니면 단순히 게으름으로 인한 정적인 생활에서 찾을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인간의 뇌와 신체는 걷기 - P8

를 통해 더욱 나아질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의 감정, 생각의 명료함, 창의성, 사회·도시·자연과의 연계성 등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걷기는 모두에게 필요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정기적으로 걷는 행위는 개인과 사회 전반에 많은 이득을 제공하고, 또 이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 책은 걷기의 과학과 산책을 할 때 느끼게 되는 진정한 즐거움 두 가지 모두에대한 예찬이다. 단순한 행동의 변화가 신체적·정신적인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싶다. 걷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이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다. 우리의 두뇌와 신체는 일상생활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에서의 움직임을 위해 고안되었다. 규칙적인 움직임과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사고, 감정 그리고 창의성을 개선시키고 동시에 건강을 증진시켜줄 것이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인간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해 걷기를 시작하자. - P9

그들은 세 번의 실험을 통해 실험 참가자가 앉아 있을 때보다 일어서 있을 때 과제의 결과를 더 빠르게 도출해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지 서 있기만 하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인지와 신경계가 더 활성화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걷기가 뇌 혈류를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장시간 크게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저 규칙적인 간격으로 일어서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인지적 활성화를 일으켜 보다 많은 신경인지적 자원을 활성화해 뇌의 상태에 변화를 가져온다.
걷기가 인지 조절 향상 외에도 다른 많은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걷기가 심장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심장 말고도 몸 전체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걷기는 스트레스와 손상을 입은 신체의 기관들을 보호하고 기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음식물의 장 통과를 도와 소화기능에 순기능을 발휘한다. 정기적인 걷기 활동은 노화에 제동을 걸고 더 나아가 역노화라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 P18

걷기는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하고, 내면을 자신과 차단시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역시 운전을 하고, 항상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그러나 걷 - P19

기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이동수단이다. 걷기로 많은 것을 해소할 수 있다. 걷기는 정신을 맑게 해 꼼꼼히 생각하고 사고할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몸과 뇌의 경험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다른 종류의 움직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자전거, 기차, 버스와 같은 이동 수단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주변 환경과 단절시킨다. 기계적으로 전진하고, 때로는 유리 가림막 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며, 충돌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 잡히고 새로운 노래를 찾아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거기엔 매우 특이한 수동성이 있다. 바로 앉아 있는데도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걷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걷기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발이 다른 발보다 앞서 나가고 자신의 동력을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이고 우리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P20

내가 호주머니 속 개인 연구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한가? 스마트폰 워킹앱은 걷기를 실천에 옮기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만보계는 나의 죄책감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나는 하루에 최소 9,500보를 걸으려고 노력하고 가능한 매일 1만2천 보 이상 걷기를 바라며, 1만 4천보 이상 달성한다면 아주 만족한다. 현재 나는 9,500 보라는 일일 목표는 거의 매일 달성하고 있고 한 달 기준 18일 정도는 1만 2천 보를, 10일 - P36

정도는 14,500보를 달성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만보기 기능이 없다면 매일 몇 보를 걷는지, 정확하게 오랫동안 기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앱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기록한다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이러한 지루한 작업은 주머니 속 작은 로봇에 맡기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 P37

엘리엇이 "가자, 당신과 나"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걷기라는 놀라운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과학, 역사, 골격과 근육 그리고 신경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매우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넘어지고, 느긋하게 걷고 어슬렁거리고, 가끔은 헤매고 터벅터벅 걷고, 유유히 걷고, 저벅저벅 걷고, 성큼성큼 걷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떼며 걸어가자. 우리의 여행은 고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움직임의 역학 그리고 두뇌의 가장 깊은 곳으로 떠나 세계 여행을 하게 되고, 또 목적을 가지고 함께 걸으며 세상을 바꾸는 여정을 그릴 것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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