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죽은 자의 운전 - 충돌실험용 인체모형 및 충돌한계라는 무섭고도 필요한 과학

아름답지는 않지만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사체연구의 결과가 가져온 변화 덕분에 지금은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벽에 정면으로 충돌해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1995년에 〈외상저널》에 실린 ‘부상방지에 대한 사체연구의 인도주의적 이익‘이라는 기사에서, 앨버트 킹은 사체연구를 통해 차량의 안전장치가 개선된 덕 분에 1987년 이후 매년 8,500명이 생명을 건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3점 지지‘ 안전띠를 시험하기 위해 충돌장치에 올랐던 사체 1구당 매년 61명이 생명을 건졌다. 얼굴에서 에어백이 터진 사체 1구당 매년 147명이 정면충돌에서 살아남았다. 에어백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사망했을 것이다. 또 앞유리에 머리를 부딪친 사체 1구당 매년 68명이 목숨을 구했다. - P106

어린이 자료를 제외하면 인체 주요부분의 충격 허용한도는 이미 오래 전에 파악되었다. 오늘날 사체들은 주로 신체의 주변부, 즉 발목, 무릎, 발, 어깨 등의 충격연구를 위해 이용된다. 킹은 내게 이렇 게 말해주었다.
"옛날에는 큰 충돌사고를 당하면 대부분 영안실 신세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발목이 으스러졌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도 에어백 덕분에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거죠. 사고로 양쪽 발목과 무릎이 손상되어 다시는 똑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니까요. 그게 지금 중대한 장애원인이기도 하죠." - P110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사체 머리에 꼭 맞는 흰색 두건이 씌워져 있다. 은행을 털려는 사람 같다. 팬티스타킹을 머리 위에 쓸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운동선수용 양말을 쓰고 나온 사람 같다.
매트는 노트북 컴퓨터를 내려놓고 루한을 도와 사체를 옮겨 자동차 의자에 앉힌다. 의자는 충격기 옆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루한의 말이 맞았다. 요양원과 같다. 옷을 입히고, 안아 올리고, 옮기고. 아주 늙고 병약한 사람과 죽은 사람 간의 거리는 짧은데다가 그 경계도 그리 분명하지 않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면(내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그랬다) 노년을 죽음에 점점 익숙해지는 과정으로 보게 된다. 늙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잠이 많아지고, 어느 날부터는 내내 잠자는 상태로 들어간다. 점점 더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앉히면 앉히는 대로, 누이면 누이는 대로 있게 된다. 노인들은 여러분이나 나와 닮은 만큼 UM006과도 닮았다.
나는 죽은 자들이 죽어가는 자들보다 더 대하기가 편하다. 그들응 고통을 받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화제가 필연적인 부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어색한 침묵과 대화도 없다. 사체들은 무섭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보낸 한 시간이 고통 속에 죽어가던 어머니와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단연코 쉬웠다. 어 머니가 죽기를 바랐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그게 쉬웠다는 말이다. 사체들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그것도 상당히 빨리 익숙해지는데 -놀라우리만치 상대하기가 쉽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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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죽음 이후의 삶 - 신체의 부패와 그 대처방법

대학교의 메디컬센터 뒤에는 다람쥐가 호두나무 가지에 서 조르르 뛰어다니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숲이 있다. 여기 저기 풀밭에는 사람들이 그늘에 혹은 햇볕 아래 누워 있다. 연구원 들이 그들을 어디에 내려놓느냐에 따라……
이 쾌적한 녹스빌의 언덕은 야외 현장연구소로, 인체부패만을 연구하는 세계 유일의 시설이다. 햇볕을 쬐며 누워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증된 사체로서, 과학수사의 발전을 위 해 말없이 저마다의 향기를 풍기며 기여하고 있다.
죽은 신체가 어떻게 부패하는지, 즉 어떤 생물학 • 화학적 변화단 계를 거치는지, 각 단계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환경요소는 이 런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 잘 알수록 특정 시체의 사망 시간, 즉 살해된 날짜 또는 시간까지 좀더 정확히 추정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P67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은 후 우리 몸을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고픈 생각이 있다면, 해부라든지 절단 같은 것의 이미지 때문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은 내가 볼 때 가만히 부패하는 것이나 관을 개방한 장례식을 위해 턱과 콧구멍을 꿰매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에 비해 끔찍하기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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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해부학의 범죄 - 인체해부 태동기의 시체 들치기와 그 밖의 지저분한 이야기

오늘 영결식은 이름뿐인 행사가 아니다.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참석한 행사로서, 그린 데이의 노래 ‘Time of Your Life‘의 아카펠 라 연주,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동화에서 오소리가 죽어가는 우울 한 장면 낭독, 데이지라는 이름의 여자가 의과대학생으로 다시 태 어났는데 알고 보니 해부실습실의 사체가 전생의 자신, 즉 데이지 였다는 내용의 포크 발라드 등이 거의 3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한 여학생은 헌사에서 사체의 손에 감긴 거즈를 벗기다가 손톱에 분홍 빛 매니큐어가 칠해진 것을 보고 잠시 망연해진 이야기를 읊었다.
"해부학 도감에 실린 그림에서는 손톱의 매니큐어가 나와 있지 않답니다. 색깔은 당신이 골랐나요? ••••• 제가 보게 될 걸로 생각했 나요? •••••• 당신의 손 내부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답니다. ••••• 제가 환자를 볼 때면 언제나 당신이 거기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바랍 니다. 복부를 진찰할 때에는 당신의 장기를 머리에 떠올릴 거예요. 심장박동을 들을 때에는 당신의 심장을 손에 들고 있던 기억을 떠 올릴 거구요."
내가 접한 가장 감동적인 문장 가운데 하나다. 다른 사람들도 같 은 느낌이었음이 분명하다. 장내에는 마른 상태로 버틴 눈물샘이 하나도 없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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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뮈터박물관의 전시품이 되거나 의과대학 교실의 골격표본이 되는 것은, 세상을 떠난 다음 공원벤치 하나를 기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좋은 일이기도 하고 약간의 불멸성도 얻는 것이다. 이 책은 사체들이 해온 일에 대한 것으로, 기괴하고(간혹) 충격적이며(종종) 흥미롭다(언제나).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있기만 하는 게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렇게 썩어가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롭 다. 단지 사체가 된 다음 해볼 만한 일이 그것말고도 많다는 말이다. 과학에 참여하거나 예술적인 전시품이 될 수 있다. 혹은 나무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이외에도 몇 가지 가능성이 더 있다.
죽음, 꼭 지루해야 할 필요는 없다. - P11

1장 머리를 낭비하다니, 안될 말씀 - 죽은 자를 상대로 하는 수술연습

그녀는 나직이 콧노래를 부르며 탁자마다 안내서를 놓고 있다.
"머리는 누가 잘랐나요?"
테레사의 말로는 복도 바로 건너편 방에서 톱으로 머리를 잘라 냈는데, 담당자는 이본이라는 여자라고 한다. 나는 이본이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을까 궁금해진다. 테레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운반해 들어와 작은 쟁반에 올려놓은 사람은 테레사다. 나는 그녀에게 이에 대해 물어본다.
"저는 이렇게 해요. 밀랍이라 생각하는 거죠."
테레사는 예부터 잘 입증된 방법을 쓰고 있다. 물건화해서 보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인간의 시체를 대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시체를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라 생각하는 편이 더 쉽다(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더 정확하기도 하다). - P21

세미나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무것도 비취지 않고, 외과의사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복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마릴레나는 실습하던 머리 위에 하얀 보자기를 씌운다. 오늘 모인 외과의사의 절반 정도가 이렇게 보자기를 씌웠다. 그녀는 세밀한 부분까지 의식적으로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죽은 여자의 눈에 눈동자가 왜 없는지를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사체의 눈을 감겨준다. 의자를 도로 밀어넣으며 그녀는 보자기를 내려다보 고 말한다.
"평화로이 in peace 쉬세요."
내 귀에는 ‘토막으로 in pieces‘로 들리지만, 그렇게 들리는 건 오로지 나 자신 때문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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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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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를 생각할 때처럼 까마득한 먼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원시 수프’에서부터 진화한 유전자의 아득한 시간성을 상상해 본다. 나란 개체는 고작 100년 동안 유전자의 생존기계이자 운반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연결성과 시간성이 켜켜이 쌓여 진화가 이루어졌음을 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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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4-15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 판본으로 마지막 장 읽고 있어요!

햇살과함께 2024-04-15 17:05   좋아요 1 | URL
제 책도 이거 아니고 30주년판 기념판이에요~ 470인데 이 책은 630페이지?? 뒤에 주석이 엄청 붙었군요? 얼마남지 않은 괭님도 화이팅!!

건수하 2024-04-15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전 게임 이론 근처에서 통 진도를 못 나가고 있어요… 4월은 아직 남았으니! :)

햇살과함께 2024-04-15 19:47   좋아요 0 | URL
저도 게임이론에서 너무 지루해서.. 대충 ㅎㅎ 도킨스 박사님 그 당시 게임이론에 꽂히셨나봐요 ㅎㅎ 그 챕터는 유난히 길었던 것 같아요. 수하님 얼마 안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