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꿈의 지도에서 출발한 코스모스의 대단원~!

인류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 1650년 전, 우주력으로는 마지막 30초가 펼쳐질 무렵에 시작되었던 온화한 간빙기, 즉 홀로세(Holocene, 충적세)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를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은 대체로 쉽게 흥분하는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지만, 지질학자들은 여러 증거를 살펴본 뒤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인류가 지구에 미친 영향을 더 잘 반영하는 이름을 새로이 붙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우리 시대를 ‘인류세‘라고 불러야 한다고 본다. 그리스 어로 ‘인간‘을 뜻하는 anthropos에 ‘최근‘을 뜻하는 cene을 합한 이 단어는 인류가 자연 환경과 그 속의 생명체들에게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름이다. - P399

과학 활동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누군가 어떤 문제를 풀려고 나섰다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했던 현상을 우연히 만나는 식으로. - P407

한편 지금 우리는 땅에 축적되는 데 수억 년이 걸렸던 탄소를 수십 년 만에 끌어내어 대기로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고 있다. 1967년에 두 과학자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만약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지구가 어떻게 변할지 말해 주었고, 그들의 예언은 정확히 그대로 실현되었다. 과학은 우리에게 미래의 재앙을 내다보는 능력을 선물해 주었다. 그것은과거에는 신들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롤런드가 한탄했듯이, "우리가 예측력을 발휘하는 과학을 개발하더라도, 결국 손 놓고 앉아서 그 예측이 현실로 실현되길 기다리기만 할 거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산호와 청개구리의 운명에는 마음이 그다지 움직이지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미래, 당신의 삶, 당신 자녀들의 삶이라면? - P414

유토피아가 없는 세계 지도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
인류가 늘 착륙하고자 하는 바로 그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는 일단 그곳에 착륙하면, 주위를 둘러보고,
더 나은 나라를 발견하면, 그곳을 향해 다시 출항할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사회주의에서 인간의 영혼(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에서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해.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904년 1월 27일
오스카르 폴라크(Oskar Pollak)에게 보낸 편지에서 - P417

내가 그 세계에서 보낸 20년 동안 배웠던 희망은 그로부터 20년이 더 흐른 지금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깃들어 있다. 이 책은 1장부터 그 희망의 이야기다. 인류가 종으로서 당시에는 한낱 추상에 지나지 않았을 미래를 위해 농업을 발명한 이야기다. 아소카의 삶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지닌 최악의 특성도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생명이 그 끈기로써 환경이 가하는 언뜻 불가능해 - P424

보이는 고난들을 다 이겨 낸 이야기다. 바빌로프와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는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 힘겨운 고난을 견딜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과학의 렌즈를 써서 우리의 참모습을 용감하게 직시했던 이야기다. 우리가 과학 덕분에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고 싶어 했던유치한 희망을 떨어낸 이야기, 수조 개의 다른 세계 중 하나에 불과한 창백한 푸른 점 위의 존재라는 참모습을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강해진 이야기다. 우리가 착취하고 고문했던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이야기다. 우리가 길었던 우주적 격리 기간을 마침내 끝내고 우주의 망망대해로 진출하기 시작한 이야기다. 과학이 우리에게 그릇되었지만 안심되는 설명으로 비약하지 않고도 자연의 신비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이야기다. 과학이 우리에게 서식지에 닥칠 위험을 일찌감치 예견하도록 해 준 이야기, 그럼으로써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먼 미래에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도록 해 준 이야기다. 과학이 우리에게 인류를 보호할 예언력을 부여해 준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더없이 소박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아직 그 무엇도 행성의 중력을 벗어나서 우주로 나간 적 없는 행성에서 살았던 한 아이가 성간 비행이 펼쳐지는 미래를 꿈꾸며 자라서 마침내 제 행성에서 이뤄진 최초의 별 탐사 사업에 기여하는 이야기다. - P425

아인슈타인이 1939년 세계 박람회 개막식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더 깊은 의미란 아마 다음과 같은내용일 것이다.
우리 우주는 약 140억 년 전 물질, 에너지, 시간, 공간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어둠은 차가웠고, 빛은 뜨거웠으며, 그 양극단이 결합함으로써 물질에 형태와 구조가 생겼다. 우리 태양보다 수백 배 더 무거운 별들이 생겨났다. 그 별들은 폭발하면서 이후 생겨날 세계들에 산소와 탄소를 공급해 주었고, 금과 은으로 장식해 주었다. 죽은 별들은 어둠이 되었고, 그 어둠의 무게는 빛을 비끄러매는 닻이었다. 그리고 그 별들의 수의에서 새 별들이 - P442

태어났다. 별들은 함께 어울려 춤추기 시작했고, 그러자 은하들이 생겨났다.
은하는 별을 낳았다. 별은 행성을 낳았다. 그 행성 중 최소한 하나에서,
뜨겁게 녹은 심장의 열기가 솟구쳐 나와서 물을 데웠다. 그러자 먼 별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던 물질이 생명을 얻어 살아났고, 별의 물질로 만들어진 생명은 결국 의식을 얻어 깨어났다.
그 생명은 땅에 의해 조각되었고, 살아 있는 다른 것들과의 싸움을 통해조각되었다.
그리하여 커다란 나무가, 많은 가지를 길러낸 나무가 자랐다. 하마터면여섯 번이나 쓰러질 뻔했지만, 여전히 용케 자라고 있다. 우리는 그 나무의 작은 한 가지일 뿐이고, 나무 없이는 우리도 살 수 없다.
우리는 서서히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을, 자연의 법칙을 배우는 법을, 나무를 보살피는 법을 익혔다. 우리가 코스모스라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별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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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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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했던 천문학자라는 세계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천문학이라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주류에서 먼 학문 분야에서, 대학교수가 아닌 비정규직 연구원이자 시간강사로, 비주류인 여성으로, 더더욱 비주류인 맞벌이 직장맘으로,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 같은 경제적(?) 관점을 우선시하는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어렵고도 지난한 과정의 박사까지 하고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지 못하고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2~3년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확보하지 못하면 고용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살아가다니우주라는 넓은 세계를 관찰하고 분석하다 보면, 이런 지구라는 좁은 세계에서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데 좀 의연해지는 것인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천문학과 관련된 우수한 기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만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세종 시대의 천문 관측기기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 그리고 그 뒷배경으로 그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우리나라 밤 하늘의 별자리 지도. 무려 천문학과 관련된 항목이 3개나 들어가 있다. 혼천의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이렇게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나? 몇 년 전에 영천에 있는 보현산 천문과학관을 들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왜 이런 외진 시골에 천문과학관이 있는지 의아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보현산 천문대가 우리나라에서 주요한 천문관측기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왕자를 읽다가 직업병 발동한 이야기. 어린왕자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 해지는 광경을 마흔 네 번이나 보았던 어린왕자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놓는이라는 문장의 천문학의 관점에서 오류를 지적한다. 문학의 감동이 깨지는 순간^^ 결론적으로 계속 노을을 보기 위해서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아야 한다는 것. 영어 원문에서는 의자를 당겨라고만 되어 있지 방향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국내 번역본은 책마다 다른 것 같다. 내가 가진 번역본은 의자를 조금 끌어당겨 앉으면이라고 되어 있다. 어린왕자 얘기에서 갑자기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설명하면서 나의 머리는 멍해졌다


그렇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는 왠지 모를 안도감도 들었다^^. 나는 한번 다 읽었다! 물론 글자를 다 읽었을 뿐이고.


보이저 1호가 태양계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더 먼 우주로 나아가기 전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창백한 푸른 점지구를 찍은 감동적인 이야기. 지금 읽고 있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에도 이 장면이 한 편의 아름다운 드라마처럼 언급되어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 , 과학책 읽으면서도 눈물이 날 수 있다니! 너무 좋다.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관심 가지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소연이라는 -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비난받았을 -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국가와 국민들. 여성과학자로서, 비난을 감수하고 작성하고 쓴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인공위성 이외에는 아직 행성 탐사선을 보내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도 행성과학자로 천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행성 탐사선이 찍은 관측자료들을 전세계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개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계 너무 멋진 것 같다. 자기나라 세금과 노력을 들여 나온 관측자료를 전세계 누구나 연구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고, 그 관측자료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도록 독려하는 세계.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라는 마음인 것 같다.


저자의 소망처럼 우리나라도 한국형 달 탐사선을 보내어 우리의 관측자료를 전세계에 나눌 수 있을 날을 함께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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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9 2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별 볼일 없이 컴 모니터만 본다는거에 좀 놀랐어요. 천문학자는 뭔가 낭만적일거 같았거든요. 막 산을 타고 정상의 찬문대에서 뱔을 보고 ㅎㅎㅎ

햇살과함께 2022-03-19 22:01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요즘은 어느 분야든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는 걸 새삼 느꼈네요 ㅎㅎ
 

이렇게 하면 원궤도를 도는 행성의 움직임, 역행과 순행을 꽤 잘 설명할 수 있다. 당대에는 현명한 제안이었겠지만, 오늘날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은 복잡한 가정을 억지로 끼워 맞춰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비유할 때 언급되는 슬픈 운명을 맞이했다.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 개념의 대척점이라고나 할까. 태양을 중심에 두고, 행성의 공전 궤도로 원이 아니라 타원을 도입하면 간단히 끝날 일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얘기지만 말이다. - P200

별들은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 28수로 묶어두었고, 동방의 청룡, 서방의 백호, 북방의 현무, 남방의 주작이 각각 7수씩을 맡고 있다. 28수는 윷놀이 말판에서도 볼 수 있다. 말판을 잘 보면 한가운데 칸 주위로 28개의 칸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북극성과 28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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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 P13

일기 속에는 두려워하는 내가 있다. 졸업할 수는 있는까 두려웠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어쩌면 졸업 후의 더 큰 두려움을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에 천착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 P31

별까지의 거리 구하는 공식이 (겉보기등급)-(절대등급)으로 시작하는데, 밝은 별이라 절대등급이 음수인 경우를 예제로 주었더니 마이너스가 두 개 연달아 나오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진지한 얼굴로 물어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360도보다 2파이가 편한 자연과학 전공자가 있었다.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른가, 같은 깨달음을 얻으며 한 주 한 주가 흘러갔다. - P39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 P59

알고는 있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도 모른다고 하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도 모른다고 한다. 확답을 잘 하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높거나낮다고만 한다.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 P95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또다른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머리로는 안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있던 시간의 대부분은 내가 방금 한 일과 조금 전에 한 일과 한참 전에 한 일을 의심하는데 썼으니 몸으로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내게 과학자‘라는 이름표를 달아 연구실 밖으로 나오게하자마자 어설픈 확신의 말을 의심도 없이 내뱉다니. - P96

특히 쉬운 단어일수록 번안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힘’이나 ‘일‘은 일상생활에서 너무 많이 쓰는 말이라 중고등학교 과학 수업시간에 그 정의를 처음 배울 때는 오히려 낯설다. 어떤 수험생이 메모지에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고 써서 책상에 붙여놓자 이과생이 와서 속도에는 이미 방향 개념이 들어 있다며 ‘속력‘으로 바꿔 쓰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남의 일이 아니다. 아는 교사가 환경 교육 자료를 공들여 만들면서 초록별 지구‘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고 했다가 이래서 이과생은 안 된다며 의절당할 뻔했다. ‘행성‘에 이미 별 성星자가 들어가지 않느냐는 지적에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참고로 천문학에서 별은 행성, 위성, 혜성 같은 천체를 제외하고 스스로 빛을내는 천체를 말한다. - P120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왜 슬픈지 캐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게 마흔세번째인지 마흔네번째인지 추궁하지도 않고, 1943년 프랑스프랑의 환율도 물어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줄 수는 없지만, 해 지는 것을 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천문학자가 생각보다 꽤 쓸모가 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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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는 운 좋게도 태양의 생명 거주 가능 영역에서 안쪽 가장자리에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영역은 매년 약 1미터씩 바깥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지구는 이미 가장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의 70퍼센트를 썼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직 수억 년이 남아 있으니, 그동안 탈출 전략을 짜고실행하면 된다. 태양의 은총이 우리를 떠나 다른 행성들로 옮겨 간다면, 그래서 지구가 더 이상 생명의 정원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 종은 망망대해 같은 은하에 흩어진 머나먼 섬들로 항해를 떠날까? 우리가 코스모스의 변화를 영원히 회피할 은신처는 없다. 어디든 최대 수십억 년 머무를 수 있을 뿐, 그 이상 더 머무를 안전한 장소는 없다. - P372

태양도 우리처럼 늙는다. 언젠가 태양은 핵에 품고 있는 수소 연료를 다 써 버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억~60억 년 뒤에는 수소 핵융합이 벌어지는 영역이 서서히 바깥쪽으로 넓어질 것이다. 열핵반응이 벌어지는 껍질이 점점 더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온도가 약 1000만 도 미만으로 낮아지는 때가 올테고, 그러면 태양 내부의 수소 핵융합로가 작동을 멈출 것이다. 그 후 수억년 동안, 태양의 자체 중력에 힘입어서 이제 헬륨을 풍부하게 가진 핵이 다시한번 수축할 것이다. 수소가 타고 남긴 재가 연료가 되어 태양의 핵융합로를재가동시킨다. 그 덕분에 태양은 수억 년의 시간을 더 벌 것이다. 그 반응에서 탄소와 산소 같은 원소들이 생성될 것이고, 추가 에너지가 생산되어 태양이 계속 빛날 것이다. - P374

태양은 대기가 일종의 별 폭풍을 일으키면서 우주 공간으로 확장됨에따라 서서히 기체를 잃을 것이고, 결국에는 황색 왜성에서 적색 거성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 금성과 지구에 미치는 중력이 약해져서 두 행성이 좀 더 안전한 거리로 이동하겠지만, 그 시기도 잠시일 것이다. 불그레하게 팽창한 적색거성은 수성을 잡아 삼킬 것이다. 생명 거주 가능 영역이라는 은총의 영역은더 멀리 더 빠르게 바깥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 인류가 제대로 해낸다면, 우리도 그렇게 이동할 것이다. 태양의 진화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새집을 찾아볼 시간이 10억 년쯤 있으니 코스모스 - P374

에서 우리의 새집이 될 만한 세계들을 탐색할 시간은 충분하다. 그때쯤이면인간 자체도 거의 틀림없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존재로 진화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먼 후손들은 별의 운명 자체를 통제하거나 조절할 방법을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 P375

멕시코의 수리 물리학자 미겔 알쿠비에레(Miguel Alcubierre)는 「스타 트렉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어, 이론적으로 광속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드는 계산을 해 보았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 우주선 - P392

은 태양에서 그 먼 행성계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 미만으로 줄여 줄것이다. 그런데 잠깐, "무엇도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 라는 것은 과학의기본 중의 기본 법칙이 아니던가? 맞다. 하지만 알쿠비에레 워프 드라이브(Alcubierre warp drive)의 멋진 점이 무엇인가 하면, 우주선이 아니라 우주가의 움직인다는 것이다. 우주선은 마치 공처럼 그것을 감싼 시공간 속에 가만히 들어 있고, 그 속에서 어떤 물리 법칙도 깨뜨리지 않는다. 미국의 공학자 해럴드 화이트(Harold White)는 그런 우주선을 날리는 데 드는 막대한 에너지 문제를 비롯해 알쿠비에레 드라이브의 몇 가지 난점을 살펴봤고, 그 결과 광속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우주선이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아직 우리에게는 먼 이야기다.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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