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있는 집 자식들이 잘되는 건 왜 그렇게 뻔해 보일까.
언니, 언니는 무너지다를 무‘노‘지다로 발음하는 거 알아?
언니, 이 술집 선불이야.
언니, 어묵탕에 청양고추를 넣어야지 오이고추를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언니, 나 오늘 돈이 없어서 고깃집 앞을 지나다가 울 뻔했어.
언니, 오늘 목사님의 설교 주제는 ‘우리는 왜 일하고 있는가‘야.
언니, 맛동산을 물에 불리면 개똥처럼 보이는 거 알아?
그 밖에 그 아이가 했던 많은 말들이 밤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 P181

언니, 김오리는 늙지 않잖아. 이십 년 뒤에도 그 얼굴이고, 삼십년 뒤에도 그 얼굴이잖아. 내가 환갑이 되어도 김오리는 지금그 얼굴이야. 김오리의 매력 자본은 사라지지 않는 거야. 김오리는 나와 다르게 늙지 않고 썩지 않는 거야. 하지만 그런 김오리도 언젠가 결국 잊히겠지. 그렇더라도 진짜가 아닌데 잊힌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오리는 상처받지도 않을 거야. 상처받을 줄 모르는 존재이니까. 그건 너무 부러워. - P183

언니, 관종이 되려면 관종으로 불리는 걸 참고 견뎌야 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언니는 모르지? 한가지 더 언니가 모르는 게 있어. 관종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걸 왜 모를까. 왜겠어. 언니가 꼰대라서 그런 거지.

-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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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개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글을 씁니다. 완벽하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꿈의 힘을 날마다 체험합니다. 지독한 잠꼬대 끝에 젖은 얼굴로 깨어나면 죽음의 얼굴을 마주하고 돌아온 기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저는 알았습니다. 나쁜 꿈이 저를 살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더러운 물이 모이는 제일 낮은자리의 수챗구멍처럼 꿈은 저를 위해 온갖 두려움과 슬픔을 자신의 통로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죽고 나면 저는 다시 태어났고, 꿈에서 슬퍼하면 현실에서 울지 못했던 울음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악몽이었지만 그 꿈의 숨은 뜻은 이해와 보호였습니다. 반으로 선택되는 역설의 죽음이다.

- 김멜라 작가노트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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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터 허블청소년 1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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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아니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서늘한 진리를 보여준다. 인간이야말로 지구에 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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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 인간에게 필요한 건 추가적인 서비스나 돈 몇 푼 깎아주는 할인 쿠폰이 아니야. 바로 철학과 이야기지. 아닌 척해도 인간은 자신을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 생각해. 그 욕구를 현실로 만들어 주는 공간이나 위치에 있다고 느낄 때 아낌없이 지갑을 열지." - P11

화성 테라포밍도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화성의 하루는 24시간 37분으로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전축은 25도로 기울어져 있어, 23.5도인 지구의 그것과 흡사했다. 전 세계는 화성 테라포밍에 막대한 기술과 자본을 쏟아부었다. 화성은 국경과 언어, 인종의 구분조차 존재하지 않는 신세계였다.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가 관건이었다. 정부가 손쓰기 전에 거대한 자본들이먼저 움직였다. - P25

생각해 보면 인간의 환희와 기쁨, 절망과 분노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몰리고 심장이 빨리 뛰며 정확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어지러운 감정에 휘말리니까.
"말했잖아. 인간은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운다고."
"전혀 다른 명령과 자극에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보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 역시 전혀 이해되지 않아."
"마오 님은 인간이지 않습니까?"
"인간이니까 모르지."
마오가 대답했다. 보보의 얼굴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제 프로그램만 업데이트할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도 주기적으로 상향 조정이 필요합니다." - P81

"비인간적이라는 것 말이야. 그것만큼 가장 인간적인 말도 없지 않아?" - P94

최 교수는 습관처럼 말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딱 그만큼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에이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순리이며 우주의 법칙이니까. 이 명징한 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 희생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전제돼야 했다.
"회장님은 그걸 보여주고 싶으신 거야. 잃는 게 자칫 네가 될수도 있다고." - P95

그 순간 마오는 문득 외로움을 떠올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조금 더 큰 후에 알게 되었다. 외로움과 상실은 있었던 무언가가 없어졌을 때의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던 마오에게는, 그리움과 원망, 서운함 따위는 없었다. 여름이면 반바지 차림으로 해변을 걷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마오에게 서운함이란 가상현실과 비슷했다. 무언가 존재하지만, 정확히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
"혹시 눈앞에 없던 사람이나 물건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뭔지 아세요? 신기루나 환영은 아니고, 순우리말이라고 하는데 첫 글자는 곡으로 시작해요."
"곡두일 거야. ‘곡두 인생‘이라는 말이 있거든. 삶의 허무함을 뜻하지."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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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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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오마주한 듯 강렬한 첫문장부터(화자가 <이방인>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대상(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시니컬한 태도에서 나온 위트까지, 매력적인 소설이다. 다만, 반복되는 패턴으로 조금 지루해지는 감도 있지만.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란. 그 가족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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