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봤다. 용돈은 거절하면서 몰래 천원씩 훔치는 건 어떤 마음일까. 적은 돈 없어도 티가 나지 않는 돈을 훔칠 때 느끼는 죄책감이 신세를 지면서 느끼는 부채감보다 가벼운 것일까.신경질적인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음 저편에 밀어놓았다가 끌어당겼다가 하고 있으면 반질반질하게 닦인 어둠속에서 귀신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코웃음을 치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 P116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좋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 P198
이호의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다."태어나서 처음이에요.""뭐가.""누가 내 신발 끈 묶어주는 거요."나는 멈칫했다."어릴 때, 누군가가 묶어줬을 거야. 네가 기억 못할 뿐이지."나는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정말 그럴까요."그래.""그랬으면 좋겠네요."나는 그럴 거야, 분명히 그랬을 거야, 하고 무언가를 다짐하듯 말했다. - P259
83년생 여성 ‘나’와 59년생 엄마의 몸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 여성과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밀한 고백. 여성에게 몸이란, 이 몸뚱아리란 무엇인지. ‘섹스에 내 몸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동의되며, 나이 들어감의 좋은 점 중 하나은 몸이 곧 섹스라는 생각이 점점 옅어지는 거라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이혼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저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에서 유독 ‘몸‘이라는 단어에 귀가 커졌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딸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뒤이혼을 감행했습니다.- 엄마, 나는 내 몸이 아니라 그냥 나야.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존재야. - P65
-영석 언니, 사람들은 섹스를 마음껏 즐기는게 건강한 삶이라고 말하지만, 나처럼 섹스가 싫 - P113
은 사람도 존재해,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말은 폭력으로 느껴져. 섹스에 내 몸을 사용하고 싶지 않으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깊은 잠을 자는 것엔 내 몸을 실컷 사용하고 싶지만 섹스엔 사용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런 사람이야. 만일 내가 섹스를 한다면, 나하고만 하고 싶어. 내 몸에 상처 입히지 않고, 내 마음을 깊이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