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인, 영화의 주제와 줄거리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말로 할 수 있었다면 말로 했지, 구태여 영화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겠죠. 한마디로 될 일이었으면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늘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 P267

지혜의 말처럼, 정말로 이건 영화만의 일도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예술을 배운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서 일을 했다. 문학을 전공했든, 음악을 전공했든, 무용을 전공했든, 미술을 전공했든, 연기를 전공했든. 내 동기들도 때에 따라 과외를 했고 학원에서 일을 했다. 때에 따라 상업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때에 따라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때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이제 세상 모든 예술학교는 사범대지. - P273

손과 발을 청결히 할 것, 활기차게 생활할 것, 환자에게 친절할 것, 간호원이라는 인식을 가질 것, 협동할 것, 환자의 험담을 하지 말 것, 이름을 기억할 것, 조선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것, 그리고 낙관할 것. - P330

전년 대비 도서 판매량이 증가했음을 알리는 뉴스들을 보면, 자유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 늘어난 고요한 시간이 많은 이들에게 활자와 새롭게 만나는 기회를 선사하기도 한 듯하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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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하지만 정말 고맙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니 더욱 그랬다. 곱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는 쌀알처럼 그 마음은 점점 진해졌다.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고마운 마음이 뒤늦게 다시 밀려왔다. - P134

이상주의자들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마음 씀을 더 중요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순수하게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며 이타적인 마음 씀이 과업가능할까. 물론 거기에 다가가려고 노력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마음 쓰임이 없다면 어떻게 그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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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느 시절을 통과할 때 겪게 되는 변화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앙헬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떤 베풂은 인과적인 타당성을 설명할 수 없듯 어떤 거부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 P107

그러니 체를 향한 앙헬의 믿음과 주저함에서 어떤 감동과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이 소설이 우리의 독법 속에 내재된 관습적인 환대와 물리적 거리감 사이의 낙차를, 또는 올바른 마음의 형이상학과 너절한 삶의 형이하학 사이의 낙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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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 읽다가 갑자기 다시 읽고 싶어져서. 근데 왜? 인지는 모르겠네..

그리고 다시 Q

Q: 김 박사님, 김 박사님...... 김 박사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잘 들었어요. 하지만 김 박사님...... 이 개새끼야, 정말 네 이야기를 하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네 이야기 말이야! 나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김 박사, 이 개새끼야.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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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스물한 살이었을 때, 나는 내가 어리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내 나이 정도 먹은 누군가를 보며 살 만큼 살았네, 하고 생각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까 반 고흐 정도면 딱죽기 좋을 때 죽었네, 하고 말이다. 어떤 경지에 이르고 나서도 자기 인생을 망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는 나이. 고흐가 꽤 젊어서 죽었구나 생각하게 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 P14

이런 삶이라면 당장 서른일곱 살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연수에게 말하자, 연수는 피식 웃더니 너는 남자가 되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다.
뭐라고?
우리는 저 남자랑은 다르잖아. 장 피에르 같은 사람은 모든 걸 다 소유하고서도 불행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야. 저런 우울감은 특권층만 가질 수 있는 거라고, 그게 자기 매력이라는 것조차 의식할 필요가 없어. - P23

어느 프랑스 인류학자는 말했다. 인간의 자아는 나이들어감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젊은이의 영혼을 지닌 채 살아가는 비극적인 운명 속에 놓여 있다고. 언제까지라도 자신이 어리고 젊었을 때처럼 연약한 상태로, 애정을 갈구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착각하면서. 이제 나는 무심코 잊고 있었던 문장 하나를 되새김질한다.
추한 시절에 대한 그의 오류를, 그의 빗나간 경고를, 나는 수업시간에 그가 읽어주었던 문장을 다시 꺼내어 제대로 수정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추한 시절에 관하여 그가 우리에게 읽어주었던 그 문장.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문장을 읽은 뒤 정반대의 뜻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말을 추가로 덧붙였다. 노래 가사를 인용한 것이기도 해서, 나는 여전히 그 말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건 다음과 같다.
명심하라. 반드시, 네가 싫어하던 그 무엇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 P50

하지만 며칠이 지나 연수는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우리가
겪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거야.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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