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재와 은교의 대화에서 황정은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직하고 담담한 슬픔이 담긴. 모두가 각자의 그림자와 무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나는 저것이 사람 사는 것하고 어딘가 닮았다고 늘 생각해 왔어요.
라고 말하며 무재 씨는 주먹만 하게 줄어든 무를 쥔 손으로 마뜨료슈까를 가리켜 보였다.
기본적으로, 사는 것이 그렇다고 나는 생각해 왔거든요.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그림자들을 목격하면서, 그런 생각을 조금씩 삼켜 왔다고나 할까, 점차로 물이 들었다고나 할까. - P142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 P1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고 봐, 이제 자란다.
자라나요?
자라지.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짙어져. 인력이랄까, 그런 것이.
아.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여우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바짝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잖아.
호랑이가 아니고요?
호랑이라니.
.....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
호랑이고 여우고 간에,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반구 형태의 양철 갓이 달린 전등을 기판 쪽으로 바짝 밀며 말했다.
이빨 있는 것 앞에서는 좌우지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거란 말이야. - P32

여 씨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요즘도 이따금 일어서곤 하는데, 나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까 견딜 만해서 말이야. 그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림자라는 건 일어서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잖아?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들어서.
하여간에 말이지,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서랍 속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앰프 껍질에 꽂힌 나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 P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심결혼보험이라는 주제는 참신한데, 전개가 산만한 느낌. 너무 많은 곁가지 이야기들로 뻗어가는데 결말은 허무한 느낌. 윤고은 작가님 책 처음인데 내 취향이 아닌가. 밤의 여행자들 다시 도전해봐야 하나.

그리고 현대문학 핀시리즈 책도 처음인데 폭이 좁은데 하드커버라 책이 활짝 펼쳐지지 않아 읽기 불편했다. 개인적으로 하드커버 안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문고판형으로 만들려면 소프트커버가 읽기 편할 것 같다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2-02-07 0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정말 소재가 참신해서 궁금했는데.. 산만하군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2-02-07 07:43   좋아요 2 | URL
저한테는 좀 산만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제 취향이 아닌가봐요 ㅎ
 

이런 설거지도 5호 상자에나 들어가던 거다."라고 했다. 아빠도 "그래, 2호상자에는 그게 안 들어간다고. "하며 거들었다.
"그건 결혼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고요. 부모님이 요리를 해주셨으니 당연히 설거지는 밥을 먹 - P95

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거죠." 언니의 말에, 먹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K는 조용히 일어나 싱크대의 고무장갑을 집어 들었다. K의 오빠가 빈 그릇을 싱크대 쪽으로 날랐고 설거지까지 함께 했다. 변화라면 변화였다. - P96

"사람은 뭐라도 키우게 되어 있는데." - P99

어느 밤의 도로에서 정우가 해준 말 위를 이제 안나는 흘러간다. 그 말은 겨우 한 문장 정도였지만 자꾸 불어나고 불어나 안나를 든든하게 채운다. 삶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알아. 먹구름에 가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도 생기고, 애써 준비한 마음이 오해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생기겠고, 삶의 타이밍이 늘 한 발 늦을 수 있고, 내 경우엔 미련도 품을 수 없을 만큼 열 발쯤늦을 때가 많고, 시간 낭비 같은 산책도 많지. 회복불가능할 정도의 일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 - P258

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아. 잔열이, 그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 P259

그리고 둘은 세상에 오롯한 것이란 지금 이 순간뿐인 것처럼 뜨겁게 포옹하는 거라고, 안나가 말했다. - P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