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존 케이지 어머니는 촌철살인 멘트를 날린다!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왜 계속 그렇게 하세요?"
"네가 틀렸으니까 그렇지. 틀린 게 확실하니까. 근데 그냥 모른 척 넘어가?"
"모른 척 넘어가야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정답이 있는데."
"너, 전혀 내성적이지 않구나!" - P96

동동주 싫어해?"
"제가 산다고요. 선배가 다큐 보여줬으니까 제가 살게요."
김원영은 앞장서 걸었다. 그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장애인의 성생활과 동정을 잃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전에는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김원영의 말처럼 이 세상엔 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상을 사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단정적으로 말해선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므로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김원영의 태도는 여전히 이해해줄 수 없는 것으로 남았다.
하지만 옥수수 동동주는 그녀의 단정적인 평가대로 놀라운 맛이었다. - P102

"아주 작은 것에 아주 큰 것이 담겨 있습니다. 아주 미미한 것에 이 세상 전체가 담겨 있죠.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무의미합니다.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로이드의 그림은 존 케이지를 자극했다. 그는 점점 더 거대해져가는 무언가를 상상했다. 그것은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앞으로 그가 만들어내야 할 음악이었다. 그는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을 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 P117

존 케이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나는 네가 드디어 방랑의 길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런 때를 반드시 겪고 지나가는 법이지."
그때 그는 취해 있었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째려보았다.
"존, 아버지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 없다. 그나저나 너와 함께 간다는 그 아가씨와 정말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거니?"
존 케이지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모르셔서 그렇지 그레이스는 진보적인 여자예요. 결혼 같은 것에 얽매일 여자가 아니에요."
어머니는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멍청한 선택을 했다는 뜻으로 들리는구나."
존 케이지는 헛기침을 했다. 손사래를 친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였다. 모자는 접시만 내려다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 P133

경계선성격장애로 판명된 아줌마와 그만 남아 있었다. 강사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 궁금한 게 있어요?"
그는 용기 내어 물었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면 제 인생이 바뀔까요?"
강사는 대답 없이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가더니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로 잠시 서 있다가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시작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입문‘
그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더니 말했다.
"내가 쓴 책인데 읽어봐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인생을 바꿔주지는 않습니다. 그건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이지 학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 P139

-추석 연휴 첫째 날 이기동은 어머니 집으로 갔다. 그의 아내는 시어머니와 고스톱을 쳤고 그는 소파에 앉아 추석특선영화를 보았다. 그는 원래부터 고스톱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추석 연휴 둘째 날 이기동은 장모의 집으로 갔다. 장모는 그와 고스톱을 치길 원했고 그는 즐거워 죽겠는 척 연기했다. 그의 아내는 소파에 누워 코를 골며 잤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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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 어머니 짱!!

이모들은 이기동의 집에 자주 찾아왔다. 형편이 좋았던 이모들은 그들이 집을 구할 때 목돈을 빌려주었다. 그는 이모들이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어머니와 이모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가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아무도 그의 이해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모들은 주로 그의 아버지를 흉봤다. 그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이모부들을 흉보는 분위기로 전환되어서야 비로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모들은 빌려간 돈은 언제 갚을 생각이냐고 자주 물었다. 어머니는 그를 가리키며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못 갚으면 쟤가 갚을 거야. 우리 아들 못 믿어? 장래희망이 의사라고."
"너 공부 잘하니?"
둘째 이모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물었고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 P11

- 이기동의 어머니는 아들이 의대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믿었다. 시험 점수가 평균 70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성적표에 사인할 때마다 한참 동안 망설였다. 오른손에 볼펜을 쥐고 성적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그는 어머니의 심장에 총을 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망을 잃지 마.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더 잘할 수 있어."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희망을 믿고 하던 대로 열심히 했지만, 존 케이지와 그의 제자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존 케이지의 제자인 백남준은 이런 말을 남겼다.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꾸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아직 존 케이지를 만나지 못했다. 그곳까지 가려면 한참이나 더 걸어야 한다. - P27

그러면 그녀는 두툼한 허리에 두르고 있던 앞치마가 펄럭일 정도로 빠르게 돌아서며 대꾸했다.
"뭐겠어? 나한테 도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여보, 난 단지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물은 것뿐이야."
"왜 나만 보면 다들 똑같은 걸 묻는 거지? 젠장, 나도 다른 사람한테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물었으면 소원이 없겠네." - P29

"엄마는요?"
"내 뒤에 태우면 되지."
아버지는 웃으며 맥주를 더 주문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아버지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족을 대했다. 그는 아버지를 관찰하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 마시며 하는 모든 희망적인 말들은 사실 이루어질 가망성이 거의 없는 것이며, 그걸절실히 깨달은 사람만이 술을 마시고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는거라고,
그는 술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희망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만은 그의 아버지를 보건대 어렴풋하게나마 알수 있었다. - P31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덫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었다. 이기동은 창밖을 보면서 그것의 존재를 눈으로 더듬었다.
-존 케이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이 빠져나갈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덫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었다. 존 케이지는 창밖을 보면서 그것의 존재를 눈으로 더듬었다. 그 존재는 바로 그였다. - P35

-종일 시내를 싸돌아다니면서 뭘 했니? 본다는 영화는 봤니?"
존 케이지는 어머니의 물음에 답했다.
"네, 봤어요. 착취에 대한 얘기였어요."
"오렌지농장 얘기로구나."
"정확히 말하면 이 세계에 대한 얘기예요. 어머니는 착취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반대말은 모르지만 비슷한 상황은 하나 알지.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어. 돈 한 푼 못 받고 말이야."
그는 아들의 접시에 으깬 감자 한 덩어리를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 P46

존 케이지와 그의 아버지는 잠자코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따라 맛이 기가 막힌데? 시카고에서 아들이 온다고 특별히 신경 썼나보군."
존 케이지의 어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포크를 든 채로 그릇만 노려보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맙소사,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무도 모르다니."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부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P47

- 존 케이지는 시애틀로 떠나기 전 그레이스와 함께 극장을 방문했다. 〈모던 타임즈>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찰리 채플린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급식 기계의 오작동으로 찰리가 고생하는 장면과 톱니바퀴에 끼어버린 동료에게 통닭과 수프를 먹여주는 장면이었다. 다른 몇몇 장면에서도 그는 크게 웃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그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그녀가 물었다.
"영화가 별로였어?"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별로야. 원래부터 알긴 했지만 이젠 더 확실히 알겠어. 이 세계는 잘못됐어."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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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열일곱에 이어 열아홉, 최관의 선생님의 십대 시절 3번째 이야기다최관의 선생님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어야 했지만, 허름한 판자집에 살면서도 믿음과 지지를 보내는 부모님과 서로 배려하는 가족들학교 밖 세상에서 도움과 깨닫음을 주는 어른들과 친구들 덕분에,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고민과 방황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자기 길을 묵묵히 찾아간다. '아이들이 실컷 헛걸음도 하며 자기 삶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헛걸음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인데, 우리 현실에서는 허락되지 않아 안타깝다. 다음 책은 선생님이 되어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이야기일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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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05 1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 과정에도 박수를 쳐주면 좋겠어요~~

햇살과함께 2022-04-05 19:49   좋아요 3 | URL
10대 때 삽질의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책읽는나무 2022-04-05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책 재밌겠는데요?^^

수이 2022-04-05 21:27   좋아요 2 | URL
저도 소리내어 오 재밌겠는데 했어요. 읽어야겠어요!!!

햇살과함께 2022-04-05 23:17   좋아요 1 | URL
재밌어요~ 최관의 선생님의 어머니 정말 멋지신 분이에요^^
 

"내가 말이 길었구먼, 지금 전라도 광주나 여기저기서 일 벌어지는 거 보니 지금이 전쟁이여. 지금은 전쟁 때나 다를 것이 없어. 오늘 텔레비전 보니께 또 불쌍한 사람들 수도 없이 죽고 있단 말이여. 전쟁이라면 군인들끼리 총 대포로 쌈질하다 죽는 줄 아는디 아니여. 그냥 멀쩡히 농사짓는 사람들, 정치가 뭔지 모르고 하루하루 착하게 하늘 보고 농사지으며 살던 사람들을 마구 끌 - P126

어다 쏴 죽이고 생매장하고 겁탈하고 죽이고 그런 게 전쟁이여. 광주만이 아니여. 서울이랑 사방천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거여. 살아남아야 혀. 이 어려운 시국을 잘 넘어야 혀." - P127

선생님은 말없이 몇 걸음 옮기더니 무겁게 말씀을 이어 가.
"지금 들어온 사람에게 누구냐고 묻지 마라. 얼굴도 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책만 읽으며 그대로 수업 시간을 때우자. 그리고 이번 시간이 마지막 수업이니 학생들이 학원 나갈 때 조용히 섞여서 나가. 건강해야 한다. 살아남거라."
난 그날 맨날 조는 듯한 표정에 느리게 걷는, 젊은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날카롭고 섬광 번뜩이는 쌈박한 느낌이라고는 찾을수 없는 시골 형님 같은 역사 선생님에게 푹 빠지고 말았어. 역사라는 과목을 아주아주 좋아하게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 P130

‘그래, 나는 없는 집 자식이야. 쟤네들처럼 힘껏 날 도와줄 사람은 없어. 그냥 내 힘으로 내 길을 열어야 해. 내가 정신을 못 차렸지. 어떻게 시작한 공부인데……. 아니야, 아이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어떻게 살아? 사람이 어떻게 공부만 하고 일만 하고 살아? 그래도 이제 남은 두 달은 죽은 듯 공부한다. 쟤네들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없는 집 자식이 술이나 마시고 이리저리 흔들리면 안 되지.‘
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교실로 들어가다 몸을 돌려 대진이와 신석이가 탄 자가용이 떠난 자리를 다시 쳐다봤어. - P158

"제가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다가 공장 다니고 그런 것도 어쩌면 어머니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청춘을 보냈고 전쟁을 겪었어요. 그런 아픔을 겪은 것과 제가 힘들게 살아온 게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도요. 그래서 그 공부를 하고 싶기도 해요. 단순히 개인 잘못으로만 보기에는 뭔가 풀리지 않아요." - P162

세상에! 눈이 번쩍 떠지고 등골이 오싹해져. 술에 취해 나오는대로 떠든 말을 다 기억하는 선생님 앞에 앉아 있는 게 어렵기도 하고 좋기도 해. 이런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자랑스러워. 나는 얼른 가부좌를 틀고 허리를 꼿꼿하게 폈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뱉고를 천천히 했어. 공장 다닐 때 만난 철룡이 형이 가르쳐 준 말, ‘공부는 평생 도 닦는 거다. 공부하면 안 보이던 게 보인다‘고 한말이 떠올라 술김에 선생님한테 했거든. - P169

엄마 말을 들으며 역사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어. 빈대떡집 아주머니 말씀도 떠올라. 물방울이 바위 뚫듯 평생 꾸준히 멈추지 않고도 닦는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국어 선생님이 노자 이야기하다 들려준 말도 생각나네. 젊어서는 직업마다 다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흐르는 세월 속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거기서 큰 도를 깨우친다는 말. 어떤 일을 하든 정성을 다해 하루하루 살다보면 세상 이치를 깨달아 막힘이 없다고. 그래, 돈이나 뭐 그런 거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가자. - P191

"어려운 결정 했다. 그런데 집안 형편 봐서 결정한 거지? 그러지 않아도 된다. 너는 니 길을 가야지. 아무도 너를 대신해 주지 못혀. 엄마가 그랬지? 엄마 아버지는 엄마 아버지 몫이 있는 거고 형제들은 형제들 몫이 있는 거여. 니가 다 지고 가려고 하지 마라. 할 만큼 했다. 무역 쪽이 좋으면 가. 난 니가 채소 장사 할 때장사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 내 새끼라서가 아니다. 사람은 감이라는 게 있어. 그건 책으로 공부해서 만들어지는 게아니여. 갖고 있는 게 있단 말이다. 넌 그 뭣이냐 너만의 그 무엇이 있어." - P195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뛰듯이 걸어지나가는 사람들, 광화문이라 그런가? 세상을 움직이는 주인공 같아 보이네. 엄마는 환자고 나는 보호자. 넥타이 매고 예쁘게 차려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저 사람들도 집에 가면 엄마 같은 환자가 있을까? 하긴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아프고 죽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런 사람이 왜 없겠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지. 그런데 왜 그당연한 것이 슬프고 마음이 칼로 에이듯 아프고 그럴까? - P208

"그러지. 그런디 너무 마음에 짐 지고 살 거 없다. 사랑이란 게 다 내리사랑이라고 너는 나중에 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 만나거든 두 분 만난 줄 알고 챙겨. 타지에서 온 어린아이한테 목숨 같은 소 빌려주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녀. 잊으면 안 되지." - P218

"시방 하는 일에 마음을 줘야 혀.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는 일이 중한 거여. 모자란 놈이 지난 일에 매달리는 거라고, 감옥살이도 그런 감옥살이가 없지. 지난 일에 갇혀 살면 살아도 사는것이 아녀."
"네, 안 그래도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만나 보니까 좀 풀리는 거 같아요."
"그려. 어째 안 그러겠냐. 어려서야 부모나 어른 잘못 만나 그러려니 하지만 어른이 되면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져야 혀. 누구탓도 아니여. 이제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 말이여. 니야 앞가림을 하니 걱정 없다만……." - P233

산이 가팔라지자 엄마는 힘든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시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도 나도 말없이 걸었어. 엄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 천천히 걸어 거리를 벌렸지. 자식 키우며 남편과 살아온 시간 속에서 당신만의 삶은 얼마나 누려봤을까? 엄마 안에서 저절로 솟구쳐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는 욕망, 희망, 꿈 뭐 이런 걸 얼마나 누리며 살아왔을까 싶어.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이런 거 말고, 주민등록에 올라 있는 이름으로 불리는 우주에 단 하나뿐인 사람으로 존중받고 자기 자신을 마음껏 활짝 펼쳐보며 살아 봤냐는 거지.
부모는 저 낙엽처럼 떨어져 땅을 덮어 주고 거름이 되어 새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다 주고 가는 거라고 말하지만, 그건 말하기 좋아 하는 말이고, 어떻게 사람한테 그런 희생을 강요해? 봄과 여름을 마음껏 누리지도 못한 채 스러져 가는 아픔을 강요할 수는 없어. 그건 너무 잔인해. - P245

그때 엄마가 그랬어요. 세상 나무나 풀은 봄이 오면 다 같은 때 잎 나고 꽃피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대추나무처럼 늦되는 나무는 소리 없이 물과 양분을 가지 끝까지 끌어올리며 기다린다고. 그러다 때가 오면, 자기한테 맞는 때가 오면, 잎 트면서 꽃 피고 열매 맺고 그런다고."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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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관의 선생님이 검정고시 준비하며 공부하는 정독도서관^^ 반갑다. 도서관 마당에 나무, 잔디, 덩굴에 벤치도 많아서 공부하다 쉬기도 좋고 그냥 산책하기도 좋은 곳~

공부는 스님이 날마다 목탁 두드리고 불공드리듯,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틈만 나면 기도하듯 죽는 날까지 하는 거라고. 그러면서 깨달아 가는 거라고, 깨달아? 깨닫는다고 밥이 나와 돈이 나와? 아니야, 그것도 아닌 거 같아. 돈많다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아. 그러면 난 왜 공부를 하는 거지? 생각 속으로 빠져들수록 힘은 빠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다 장사 시작할 때 마음이 떠올랐어. 장사 첫날, 채소 사라고 외쳐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 혼자 울먹이던 모습. 큰돈을 들여받아온 채소를 채소 사라는 말이 안 나와 당황했지만 여하튼 다 팔았어. 나는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뻤고 결국 그 힘으로 어둠에서 빠져나왔지. - P11

"야! 이거 가져가."
의자 옆에 세워 둔 비닐우산을 내게 내밀었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잔말 말고 들고 가. 책 다 젖어."
그러면서 쓰고 있던 우산을 내게 씌워 줬어.
"갖고 가. 내 동생도 너처럼 공장 다니며 공부해. 동생 생각나서 주는 거야."
무섭게 쏟아붓는 빗소리에 말이 잘 안 들리네.
"……."
"왜 싫으냐?"
"아뇨, 고마워요. 잘 쓸게요. 고맙습니다." - P25

민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나도 일어섰어. 그러고는 우리 둘은 나란히 서서 공원 오솔길을 천천히 걸었지.
"야 인마, 울긴 왜 울어.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사는 게 힘들어. 어려서부터 자꾸 힘든 일이 생겨."
"민우야! 난 안 울기로 했다. 우리가 왜 우냐? 독하게 살자."
"알아. 나도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 약해져. 엄마도 불쌍하고."
"난 검정고시 공부한 뒤로 울지 않기로 했어. 공부를 하든 뭐를 하든 나를 위해서 뭔가 할 거야. 가만히 무기력하게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 P46

"지금은 음악이 밥 먹여 주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음악, 그거 참 좋은 겁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검정고시 하는 놈이 무슨 음악이야‘ 이런 생각 하면 안 돼요. 나중에 어려운 시기 넘어가면, 아니지 어렵고 힘들수록 꼭 음악이나 미술 이런 거, 그러니까 예술을 가까이 하세요. 먹고살기 힘든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할 수있지만 우리 인생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고 꼭 봐야 합니다. 그냥 모르고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워요. 나중에라도 꼭 예술을 가까이하세요."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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