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돈을 받고 변호를 하는 것. 그것도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변호하는 것. 주연은 그것만큼 쉬운 일이 또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도 김 변호사는 아주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 마냥 구는 태도는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간절히 믿으면 뭐든 다 들어줄 것처럼 굴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 다른 신들처럼. - P11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지만, 그건 그렇게 쉽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건 한때는 사소한 일에도 사무치게 행복했던 한 가족의 전부를 무시하는 말이었다.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지.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을 내뱉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상처 입은 엄마는 찢어진 가슴을 하염없이 치면서 자신을 탓할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며 지내 온 착한 딸에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미안할 것이다.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지. 적어도 그건 딸을 먼저 보내고 삶의 전부를 잃은 여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그저 학교에 찾아가 누구든 제발 도와달라고, 내 딸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안다면 제발 이야기해 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 P83
진실이요? 백번 천번도 넘게 말했습니다. 전 아니라고요.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진실을 듣는 게 아니구나. 세상은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구나. - P142
서은과 주연은 친구였을까, 아니면 친구를 가장한 불공정한 관계였을까. 사람들 말대로 주연은 악마일까. 주연의 거짓에 속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설령 주연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해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왜 주연은 하필 서은이 죽어 가던 그 순간만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스스로에게 되물을수록 장 변호사는 자신이 없어졌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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