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라야 내가 보기엔 정말 대단할 게 없었지만, 그렇게 적은 사람들이라도 모여서, 그리고 그 작품들이 별볼일 없는 것 같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 이게 놀라운 거다. 사실 나처럼 대도시에서 산 사람들은 그런 자그마한 공연에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질 못하고 시시하다는 느낌만 받기 일쑤이지만, 한 가지 부러운 것은 그런 작은 공연들, 작은 행사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종류의 지원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아무리 적은 숫자의 사람이라도 와서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아이오와시티에서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건 뭔가를 하고 있다. 그게 참 신기해 보인다. - P120
아트 뮤지엄에 가서 내가 또 속았다는 걸 알았다. 도대체 그걸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건지. 내가 대도시에 살아서 우선 물량적으로 큰 행사에 익숙해서인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내가 가본 전시회나 공연들은 우선 그 크기가 나를 실망시키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제목이 엄청 거창하고 멋있어서 따라온 건데 겨우 그림 몇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울음소리와 우는 표정만이 있는 비디오 공연이 전부이다. - P137
전문가가 아니니까 모를 일이지만, 내가 보기엔 별로 대단할 게 없는 전시회다. 그런데 제목도 멋지고, 팸플릿도 멋지고, 무엇보다 멋진 일은 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전시회의 후원자들이 엄청 많다는 거다. 무려 아홉 곳으로부터 후원을 얻고 이루어진 전시회다. 패밀리 재단이 둘 있고, 아이오와대학도 끼어 있다. 내가부러워하는 게 이런 거다. 국내 예술가에 대해서든 외국인 예술가에 대해서든 지역사회 내의 유력한 단체, 조직들이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외국인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은 결국은 국내 예술가들과 자기네 나라 사람들에 대해 후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전시회나 공연을 보고 즐기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얻는 건 자국 사람들이니까. - P138
(그런데 나는 솔 벨로의 작품은 많이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에게서는 내 존재의 어떤 것,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건드리는 요소가 적다. 그는 사회화된 - 이런 말이 가능한가? - 작가이다). "To be a Jew is bad, to be ayoung Jew is worse, to be a young educated Jew is a crime." 그런데 이 에드몽 자베스라는 작가는 폴 오스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모든 작가가 어떤 면에서는 유태인 조건이라는 것을 체험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작가, 모든 창작자는 일종의 추방 상태에서 살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가 왜 이 작가에게 끌렸는지 알겠다. - P159
여기서 별소리가 다 오갔다. 아니 이 구절이 문법적으로 틀린 것도 아닌데 왜 이해가 안 가냐? "Would you teach me English?"라는 문장이 가능한데 왜 "Would you teach me a bird?"라는 문장은 불가능하냐고 물으니까, 캐럴라인은 문법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말이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Would you teach me sea?"라는 문장은 그러면 어떠냐 하고 물으니까, 그건 또 느낌이 들어오고 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이 문장은 한국어로 말해도 역시 좀 이상하게 들리는 문장이다. 그런데 그 이상한 낯선 효과, 일상적인 어법과 마찰을 일으키는 바로 그것이 이시에서 새의 무한 자유라는 이미지를 더 부각시켜준다고 말했다. 나는 이 시에서 새라는 단어를 다른 어떤 단어로 고칠 의향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면 이 문장에서 새는 죽은, 갇힌 새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나중에 캐럴라인이 묘책을 내놓았다. 그 묘책이란, "Would you teach me; a bird?"였다. 세미콜론 하나를 집어넣은 것이었는데, 캐럴라인은 자기가 고친 게 흡족스러운지 아주 좋아했다. 나는 번역자의 그런 마음을 안다. 내가 번역하는 사람이니까. 한 구절을 멋있게 번역해놓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꼬박 네 시간 동안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 열일곱 편을 검토해 완결지었다. 이건 아주 좋은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 P165
오늘 오후 세시쯤에 김도일씨 가족과 쇼나와 함께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땄다. 자기가 딴 분량만큼의 사과를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사과밭은 너무 아름다웠다. 저절로 떨어진 사과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거기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쇼나와 나는 각기한 양동이씩 사과를 땄고 그걸 다 샀다. 아이오와를 떠날 때까지 매일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많은 사과를 사과밭 주인은 노부부였는데 사과밭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하얀 집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윈드차임이 바람 불 때마다 내는 그 소리도 너무 아름다웠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냥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는 이상하게도 나는 아이오와에서 단 한 편의 시도, 아니 단 한 줄의 시구도 얻지 못했다. 모든 게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내 감수성이 문 꽉 닫아버리고 있는 걸까. 그렇긴 하지만 안타깝지는 않다. 내가 체험하는 것들 모두가 착실하게 내 내부로 가라앉고 있을 거다. 그리고 어느 날 시로 나오겠지. - P172
다른 모든 일상생활 방식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들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내가 똑같이 하면 내 자신이 보기에 아주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이치인 것 같다. - P179
분명 누군가가 새벽에 들이밀어 넣고 간 쪽지다. 그 종이에는 이런 글귀가 타이핑되어 있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misfortune처럼 작용하는,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이의 죽음처럼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마치 자살 직전에 있는 것처럼 혹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숲에서 길 잃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런 책이다. 책이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 구실을 해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식상할 만큼 너무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 P182
그녀의 방문에는 이런 쪽지가 붙어 있다.
When you get there, there is no there, there. - Gertrude Stein - P182
나는 마틴을 볼 때마다 젊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그는 이십대는 아니고 삼십대이긴 하지만 내가 삼십대라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라는 것도 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한다는 것이지 언제 시작하느냐가 아니니까. 이대로 살다가는 아마도 10년 후 오십대에 가서 나는 또 사십대만 되어도 뭐든 시작할 수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 삶의 염치없음. 이 삶의 무기미. 오늘은 정말 날씨가 너무 좋다. 진짜 날씨가 좋은 게 아니라 멜랑콜리한 기분에 푹 빠지기에 아주 좋은 날씨라는 얘기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오늘의 중요 행사인 인터내셔널 센터에서 열리는 토론과 파티에 참석하지 않기로 말이다. 가봐야 잘 알아듣지도 못할 테지만 말이다. - P199
결국은 내가 보기엔 아이덴티티 찾기의 문제이다. 백인 위주의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일반 성생활자의 사회에서 특별한(여기서는 주로 ‘queer peop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적 언어이기 때문에 쓰지 않기로 되어 있는 용어다) 성생활자로서의 아이덴티티 찾기. 그와 마찬가지로 각 종족, 각 민족이 이 사회에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흑인들의 아이덴티티 문제가 끝나면 그다음엔 스페인어군 출신자들, 그다음엔 코리안들이 이 사회에서의 아이덴티티 찾기 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문화가 끊임없이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그것들을 껴안으면서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해가는 것이 아닐까. - P213
한국인 2세, 3세들이 이곳에서 영어로 쓴 작품들이 커다란 문학적 평가를 받게 되는 날까지는 미국 내에서의 코리안들의 문제가 명확한 문화적 안건으로서 등장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 P215
스피킹이 딸리니까, 나는 어떤 이즘을 깃발로 달든 간에 그것이 단순히 사회운동으로서가 아니라 문학 자체로서의 위력을 갖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해야 되며 또한 동시에 개인주의와 휴머니즘의 차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페미니즘문학이 사회운동이 아닌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독자에게그 힘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 자체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실존주의적인, 휴머니즘적인 것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으면 페미니즘은 단순한 휴머니즘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말만 하고 그걸로 끝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뭐냐 하면, 그렇다면 그 여성 체험이라는 것은 (이것은 나로서도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온 것이니까,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만 얽어매어야 하나의 사회적 의미로 환산되어 나오는 거냐,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는 얽어맬 수 없는 거냐, 페미니즘은 언제나 한 가지 시선만 갖고 있느냐 등등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내 스피킹 실력으로는 더듬거리다가 망신만 당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 P223
실제의 작품은 그 세부 하나하나가 모두 한 독자 내부에서 그 독자라는 한 개인과 한 인간 존재의 세부들과 만나 서로 갈등하고 마찰하고 교통하면서 전달될 수 있을 때 그 문학작품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 P225
미시시피강을 건너 쿼드시티로 입성할 적에 우리가 지나가는 다리 말고 가까이에서 불이 환하게 켜진 수많은 아치가 있는 다리를보았는데 그때 내가 저 다리가 한국의 제1한강교라는 다리와 흡사하다고 말했었던 것을 기억했는지 마크가 그 다리를 건너서 아이오와시티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런데 쿼드시티에서 그 다리로 나가는길을 찾기가 쉽지 않은지 계속 뱅뱅 돌길래, 내가 마크에게 다리 하나 찾는 데 한평생이 다 걸리겠다고 말했더니 갑자기 뒷좌석에 앉았던 리오넬이 승자, 고맙다. 방금 시 한 줄을 얻었다. 그거 내가 써먹어도 되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크가 그것을 과거 시제로 쓰면 멋진 소설로 들어가는 첫 구절로 썩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각기그 구절을 써먹어라, 나도 그 구절을 한번 써먹겠다고 말했다. - P245
한국에서 고속도로로 어느 낯선 시골 지역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평온하고 쓸쓸하고 조금은 서글픈 느낌. 이 고질적인 서글픈 느낌은 뭘까. 나는 언제나 아늑함 평온함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서 서글픈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가 뭘까. 가령 내가 옛날에 대학다닐 때 썼었던 시, 「사랑하는 손」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가 바로 그런 것을 잘 보여준다. - P246
1한시 반에 마지막 패널 디스커션에 참석. 공식적 행사들이 이번주로 모두 마지막이 된다. 패널 디스커션의 주제는 ‘Lost in the Fun House‘이다. 미국에 와서 얻은 미국에 관한 이미지를 얘기하라는 것인데, 그 제목 자체가 주최 측 미국인들이 비미국인들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무언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우리 비미국인들이 미국을 펀 하우스로 보아주길 바라며 그 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고 당황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 무의식적인 우월감. 그런데 이 제목은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어떤 작가의 소설 제목이다. 사실은 나 자신 존 바스도 이 주제에 관해서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같은 참가자인 비미국인들이 느낀 것이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참석한 것인데, 연사들의 얘기가 너무 개인적인 차원이라 실망했다. 아니면 내가 너무나 진지한, 엄숙한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 와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정말로 굉장히 엄숙한, 경직된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구나 하는점이었는데 그것을 패널 디스커션에서 또 한번 확인한 셈이다. - P262
내가 대답한 내용인즉슨, 나는 이곳 사회와 문화 속에서 여러 가지 갈등, 이를테면 흑백간의 갈등(이건 구식 갈등이 되었고), 수많은 소수민족 집단의 미국 체제와의 갈등, 지금 최고조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 그리고 특수 성생활자들(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이 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으려 애쓰고 드디어 인정받기 시작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들, 이 모든 - P263
갈등이 그 모든 개인과 개별적인 집단이 이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들이며 이 문화를 가만있지 못하고 자꾸만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추진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나는 미국 문화가 아직 자기 아이덴티티를 확립하지 못한 문화로 보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 다양한 개인적 · 개별적 집단들이 자기ㅌ아이덴티티를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고, 그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다양한 개별적 집단들이 끊임없이 이 사회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시도될 것인데, 그게 바로 이 사회와 문화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끊임없이 세분화·개별화되는 집단들의 자기 아이덴티티 확보를 위한 노력들이 이 사회와 문화 속에서 갈등들을 일으키면서 한 개의 커다란 아이덴티티, 미국 문화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해나가게 만드는 것이라는 게 내 느낌의 전부였다는 것이었다. - P264
내가 미국 문화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측면이다. 가장 큰 집단으로부터 가장 작은 집단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개별화·세분화되면서 인간의 진정한 인간화를 위한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그들 하나하나의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한 노력과 논의가 허용되고 그것이 놀라울 만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이 레즈비게이 문제는 이미 중심적인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되어 있고, 그 단계에서 벌써 다시 세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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