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 불가능한 역동성이 이 장소를 채우고 있다. 이 길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놓고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기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겠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마도 뛰어가는 사람이 끄는 인력거가 제일 먼저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다고 내가 대답했다. 이 길을 다 지나가면 으레 죽은 사람을 태우고, 빨래하고 목욕하는 성스러운 강이 나온다. 누구나 이 길에선 시체 가루와 똥가루로 만든 가루 열반에 들어야 한다. 나보다 먼저 환생하려는 것들이 피운 매운 가루를 몸에 축적하고 내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평온한 마음, 내 안의 평화 없이는 이 길을 통과할 수가 없다. 여기는 도시지만, 나의 도시적 감수성을 버려야 걸을 수 있다. 이 도시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막연히 솟아오르기도 한다. - P86

이곳에서만큼 당당한 거지들이 세상에 있을까. 당당하게 더 내놓으래서 싫다고 하면 일순간 슬픈 얼굴로 돌아선다. 포기는 또 얼마나 재빠른지, 그 마른 몸이 슬픔의 덩어리로 돌변한다. 자기연민에 몸 둘 바를 모른다. 그러다 몇날 며칠이 흐르자 그 슬픔에 익숙해진다. 부르는 대로 주지도 않는다. 남의 슬픔에 무감각해진다. 즉각적인 좌절과 끈질긴 조름, 둘 다에 무감각해진다. - P89

영화관의 남자들이 영화의 종반으로 갈수록 흥분한다. 열광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낮에 본 한 젊은이를 생각한다. 그는 넓디넓은 뙤약볕광장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그의 옷은 모두 해졌고, 그의 바지는 벨트 부분만 조금 남아 있었다. 뼈만 남은 몸이 얼마나 더러운지 검게 번들거렸다. 그 젊은이는 왜 하필 운동장 한가운데 누워 있게 되었을까. 그는 한쪽 팔로 눈을 가리고 인생 전체를 땡볕에 방기한 채 그러고 있었다. 옆에다 슬쩍 물을 놓고 지나가긴 했지만 그 젊은이 옆에서 쏟아져 흐르는 낙심과 배고픔과 절망과 억울함의 기운은 이곳 영화관의 젊은이들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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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
(쌍안경에서 눈 떼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안마기를 치우며)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 P29

해준
남편 돌아가셨는데 벌써 출근하셨나 봐요

서래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 P33

남자 성우
공자님 말씀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난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해준의 ‘이 여자, 뭐지?‘ 표정)
난 바다가 좋아요. - P37

서래
나도 한국어 자신 없을 땐 웃어요.

서래, 처음으로 해준을 향해 미소를 보낸다. 해준, 잠시 눈이 부시다. 벌떡 일어서더니 - - P39

해준
여섯 시 오십 분까지 그 방으로 다시 오세요. 여자화장실 저기예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면서 돌아선다. 방수 밴드를 내민다.
서래의 상처 난 손 가리키며)
방수되는 거예요…………. ‘방수‘는 물에 닿아도 물 안 들어간다는 뜻이에요.

서래
간병인은 방수용품 많이 씁니다.

또 ‘아 그렇구나‘ 하는 해준.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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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 티베트족들이 일반적으로 채용하는 장례방식. 죽은 사람의 시신을 특정한 장소에 가져다 놓은 후, 독수리에게 먹이는 것이다.

티베트 눈의 여자
인도 쥐
날것 그 자체

눈의 여자는 우리가 언젠가 잃은, 그러나 우리에게 있었던, 어떤 형상일지도 모르겠다. 간직하고 있었지만 한번도 꺼내 본 적이 없는 형상. 그래서 점점 커져버린 형상,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맥 언저리에 사는 이곳 주변의 나라들 곳곳에서 눈의 여자의 이름은 각각 다르게 불린다. 그 이름이 다른 만큼 의미도 다르다. ‘그녀 설인‘ ‘악마의 할머니‘ ‘끔찍한 설인‘ ‘창녀‘ ‘갈색곰‘ 등등.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여성을 비하해 부를 때의 명명들이다. 눈의 여자가 설인이든 웅인이든 갈색곰이든 귀신이든 간에 눈의 여자는 행실이 나쁜 여성‘이다. 이제 눈의 여자는 안팎에서 ‘그년/눈의 여자’라 불린다. - P51

그리하여 이곳 사람들이 그년/눈의 여자에 대해 말하거나, 혹은 말을 삼가는 것 자체가 ‘더러운 성스러움‘이 되는 것이다. 그년/ 눈의 여자는 우리가 단군신화 속에 들어앉힌 웅녀처럼 잃어버린 시원이자, 잃어버린 어머니, 곰이라고 하대해 부르면 기분 좋은 여성적 존재다. - P55

포탈라궁의 입체 만다라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하고, 호화롭다. 가운데 황금탑이 세워져 있고 그 마지막 테두리에는 천장 하는 모습이 그대로 조각으로 재현되어 있다. 작은 사체들이 즐비하게 뉘여 있고, 반쯤 벗겨진 살, 내장들, 천장을 집행하는 라마승, 피, 독수리들이 정교하게 인형들로 빚어져 탑 둘레를 감싸고 있다. - P59

나는 그곳을 떠나 히말라야를 굽이굽이 내려왔다. 수목한계선을 지나자마자 밀림은 우거지고 기나긴 폭포는 맹렬히 소리쳤다. 내 생애 중 초록색이 그렇게 징그러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있는 곳‘에 도착했다는 슬픔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 P64

이곳에 온 사람들은 누구나 이들의 방대한 신화와 철학, 아름다운 성과 신전과 궁전, 유물에 놀란다. 그러다가도 거리에 넘쳐나는 오물과 사람 사이에서, 자신들이 밀실에서 처리하던 일을 백일하에 처리하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고는, 마치 인간들의 발꿈치 아래 몰래 숨어서 서식하는 쥐들을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마주친 듯, 단신으로 쥐 떼와 마주 선 듯, 못 볼 것을 본 듯비명을 지른다. 밭에서 아침 용변을 보면서 여자가 나에게 손을 흔든다. 하이! 물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를 돌린다. 마시던 찻잔을 움켜쥐고 아침산책을 종료한다. - P74

이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내고 우는 역할을 싫어한다. 직접 싸운다. 그리고 모두 죽인다. 어머니가 불가촉천민의 욕망을 현현한다. 혹은 민족운동을 현현한다. 어머니가 자식들을 억누르는 문화와 제도를 응징한다. 검은 어머니는 관습적인 여신의 모습에 대한 도전이다. 사랑스러운 아내여신, 현모양처여신들에 대한 저항이다. 야성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날것 그 자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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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사계절 1318 문고 119
탁경은 지음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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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의 소년이 말하길 ˝그럴 리가 없어요. 너무 비현실적인 캐릭터예요. 키는 180에, 웃음은 해맑고,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바람에 날리고, 빛이 나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 동주를 서현은 외면하려 하지만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겠지! 표지의 러블리함이 이야기에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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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끝끝내 여자라는 것 - P9

나의 ‘시하기‘, 여행하기는 일종의 ‘여자하기’와 ‘짐승하기‘이다. 나의 시는 여자하기와 짐승하기라는 끝없는 ‘하기‘의 도정 속에 있는 일종의 작용이다. 나의 시는 한사코 나이면서 나와 다른 것, 나 아닌 것, 낮은 것, 분열된 것, 작은 사람들을 향해 가는 하기의 작용이다. 만약 - P10

시인이 이 과정에 개입하지 않거나 이 과정을 멈춘 자리에 붙박여 있다면, 그가 설사 리얼리스트라 자부하더라도, 그는 리얼하지도, 시하지도 않는 것이리라. 그는 다만 명언 제조자이거나 은유가, 아니면 센티멘털이 리얼이라 믿는 자일 것이다. 물론 이 하기의 과정은 감응하기의 선을 타고 간다. 하지만 그 도착은 끝없이 유예되어서 시하기는 어딘가를 향해 열린 채 그저 강물처럼 흐르면서 실재할 뿐이리라. - P12

여자하기와 짐승하기, 아시아하기는 이미 나에게 와있었으나 여행 이전에는 알 수 없었다. 이들의 부재하는 듯 존재하는 속성은 시 텍스트에서 시가 재현의 지연을 통해 결국 하나의 시적 구성체로서 드러내고야 마는 ‘시성詩性‘처럼 소리 없는 포효와 같았다. 이미 도래해 있었으나 알 수 없었던 것, 그것의 발자국 내딛음이 곧 부재의 운동이 되는 것, 미지가 되는 것. 설인처럼, 죽은 시인처럼, 부처와 쥐처럼 존재하는가 하면 부재하고, 부재하는가 하면 존재하는 것. 미지이면서 괴물이고, 괴물이면서 안개인 것. 그리고 유령인 것. 그러나 분자적이면서도 연결망인 것. - P15

여자하기는 일종의 여행이다. 이 여행은 여자의 몸으로 겪는 복수적이고, 관계적인 경험이다. 몸의 경험을 사유하기이다. 사유하기는 공동체하기이다. 여자하기의 여행은 그 나름의 궤적이 있다. 이 여행은 길 아닌 길로 가는, 다방면으로 준동하는, 이분법의 고착을 넘어서는 가기이다. 수직적인 것들과 중앙제동장치와는 상관도 없는, 여행하는 나라의 정부로부터도, 떠나온 나라의 정부로부터도 이방인인 사람, 바리공주처럼 이쪽에서 저쪽을 여행하는 자, 지금 있는 여기에서 지금 떠나갈 거기로 접속해나가는 길이 있을 뿐, 그 길의 증식이 있을 뿐, 사이를 건네주는 뱃사공인 여행자, 일종의 무정부상태, 계보도 조상도 없는, 모국어가 낯설어지는 상태. - P18

짐승하기는 퇴행이나 미성숙이 아니다. 일탈이나 (역)진화가 아니다. 내가 쥐를 썼다고 해서 내가 쥐로 퇴행하거나 쥐의 미성숙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 아닌 존재와의 모든 ‘하기‘이다. 벌거벗은 생명하기이다. 스스로 그러하기,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라는 두 겹(인간짐승)의 이미지하기. 짐승하기는 정서적 유대다. 짐승하기는 짐승으로 취급하기, 인간 이하로 보기와의 자리바꾸기이다. 나는 짐승하기를 통해 사람과 짐승 혹은 유령 사이의 어딘가에 있게 된다. 나와 짐승이 서로 흐릿해져서, 어떤 비인칭 지대를 만들고 다시 그곳을 우리가 통과해 간다. 서로에게 서로를 조금씩 내어주는 다른 주파수의 세상을 만들어가면서, 그 세상에서 서로의 삶을 변용해간다. 그리하여 짐승하기는 분열하기이다. - P19

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 나의 글쓰기를 이루었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 짐승하기에서 식물하기와 풍경하기, 색깔하기 등등으로 점점 나아갔다. 이것은 내가 글쓰기를 통해 근원을 찾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위계 없고 본질없는 평평한 네트워크의 세계, 잠재적인 것을 실재의 세계로 만난다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짐승과 사물과 풍경의 비밀을 운송하는 여행자처럼 나를 아시아라는 외밀의 광활로 떠밀었다. 나는 마치 제물인 나, 여자짐승을 실어 나르는 매개자인 나로서 아시아를 여행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바리공주처럼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연결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바리공주는 미리 죽은자로서, 혹은 ‘나‘에게서 ‘나‘를 밀어내버린 자로서 이미 - P22

짐승이 된 죽은 자의 세계를 여행해왔다. 죽은 자와 사물들로 이루어진 교감의 세계를 여행해왔다. 나는 여자짐승아시아라는 미지의 장소에 사는 희미한 얼굴들, 아직 여행해보지 않은 감각들을 나의 글쓰기로 만나보고자 했다. - P23

나는 이곳에 비행기를 타고 왔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뾔 (토하다)‘라 하고 자신들을 ‘뾔뽜(토하는 사람)‘라 부른다. 하긴 이곳에 도착하면 누구나 토하기 쉽다. 산소 결핍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제국의 수도에서 출발해 이곳에 도착하는 기차가 개통되기 전이었다. 이곳에서도 그 냄새가 난다. 제국의 통치를 경험한 혹은 경험하는 국가들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 가설무대 곁에서 맡은 것 같은 값싸고, 날것이며, 가벼운 휘발성의 냄새. 날림공사로 세운 벽에서 솟아오르는 시멘트 가루의 냄새. 간판마다 씌어진 두 나라의 문자들, 현란한 색채의 깃발들, 가난의 남루와 살아남은 자들의 오염된 실상을 가린 차량들에서 나는 찌든 버터 냄새. 푸석한 낯빛의 얼굴들이 하릴없이 서성거리고, 거듭된 좌 - P27

절로 인해 깊은 슬픔이 드리운 검은 눈동자가 이방인을 쏘아본다. 추위에 튼 살갗에선 살비듬이 떨어져 날리는 것도 같고, 오랜 배반의 딱지가 덕지덕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꼭 내 나라 내 고향의 가축 시장에서 나는 냄새가 여기에서도 난다. 상대적으로 제국의 도시들에서는 무거운 쇠냄새, 우중충한 돌냄새, 석조 건물들의 하중을 몇백 년째 견디고 있는 땅 아래 켜켜이 묻힌 오래된 시체들의 냄새, 우람한 나무들이 땅 밑에서 끌어올린 물냄새, 곰팡이 냄새가 났었는데 말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짙푸른 하늘, 우주 공간 어디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은 희박하면서도 싸늘하게 투명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먼저 동공이 열리는가 싶더니 두통이 몰려온다. 숨 쉬기가 힘들다. 힘껏 공기를 빨아들이는데도 양에 차지 않는다. 공기를 향한 갈증, 나는 언젠가 다른 대륙에서의 고산증을 교훈 삼아 용하다는 이뇨제를 복용해두었지만 여전히 두통과 구토가 몰려온다. - P28

13人의兒玹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1의兒侅가무섭다고그리오.
第2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3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4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5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6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7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8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9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 P32

第10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11의兒侅가무섭다고그리오.
第12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13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13人의兒侅는무서운兒侅와무서워하는兒侅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中에 1人의兒侅가무서운兒侅라도좋소.
그中에2人의兒侅가무서운兒侅라도좋소.
그中에2人의兒侅가무서워하는兒侅라도좋소.
그中에 1人의兒技가무서워하는兒侅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適當하오.)
13人의兒技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상, 「烏瞰圖 詩第一號」 전문 - P33

지독한 매연과 콜타르의 악취와 기계의 소음이 진동하는 공사 중인 길을 따라가노라면 이 나라 유목민 인부들의 참혹상이 온몸을 후벼 판다. 봉건 체제가 지나가자 제국이 달려왔다. 봉건체제가 손발을 묶어놓더니 제국은 손발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다. 감옥이 열리니 공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 P35

그 책의 이름은 『바르도 퇴돌』이었다. 풀이하면 ‘둘do 사이bar를 듣다thos 그리고 깨우치다grol‘의 뜻이다. 둘 사이는 모든 사이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황혼 직후의 보랏빛 시간을 듣는 것. 그 사이, 틈을 ‘들을 수 있으면‘ 영원히 자유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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