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끝끝내 여자라는 것 - P9
나의 ‘시하기‘, 여행하기는 일종의 ‘여자하기’와 ‘짐승하기‘이다. 나의 시는 여자하기와 짐승하기라는 끝없는 ‘하기‘의 도정 속에 있는 일종의 작용이다. 나의 시는 한사코 나이면서 나와 다른 것, 나 아닌 것, 낮은 것, 분열된 것, 작은 사람들을 향해 가는 하기의 작용이다. 만약 - P10
시인이 이 과정에 개입하지 않거나 이 과정을 멈춘 자리에 붙박여 있다면, 그가 설사 리얼리스트라 자부하더라도, 그는 리얼하지도, 시하지도 않는 것이리라. 그는 다만 명언 제조자이거나 은유가, 아니면 센티멘털이 리얼이라 믿는 자일 것이다. 물론 이 하기의 과정은 감응하기의 선을 타고 간다. 하지만 그 도착은 끝없이 유예되어서 시하기는 어딘가를 향해 열린 채 그저 강물처럼 흐르면서 실재할 뿐이리라. - P12
여자하기와 짐승하기, 아시아하기는 이미 나에게 와있었으나 여행 이전에는 알 수 없었다. 이들의 부재하는 듯 존재하는 속성은 시 텍스트에서 시가 재현의 지연을 통해 결국 하나의 시적 구성체로서 드러내고야 마는 ‘시성詩性‘처럼 소리 없는 포효와 같았다. 이미 도래해 있었으나 알 수 없었던 것, 그것의 발자국 내딛음이 곧 부재의 운동이 되는 것, 미지가 되는 것. 설인처럼, 죽은 시인처럼, 부처와 쥐처럼 존재하는가 하면 부재하고, 부재하는가 하면 존재하는 것. 미지이면서 괴물이고, 괴물이면서 안개인 것. 그리고 유령인 것. 그러나 분자적이면서도 연결망인 것. - P15
여자하기는 일종의 여행이다. 이 여행은 여자의 몸으로 겪는 복수적이고, 관계적인 경험이다. 몸의 경험을 사유하기이다. 사유하기는 공동체하기이다. 여자하기의 여행은 그 나름의 궤적이 있다. 이 여행은 길 아닌 길로 가는, 다방면으로 준동하는, 이분법의 고착을 넘어서는 가기이다. 수직적인 것들과 중앙제동장치와는 상관도 없는, 여행하는 나라의 정부로부터도, 떠나온 나라의 정부로부터도 이방인인 사람, 바리공주처럼 이쪽에서 저쪽을 여행하는 자, 지금 있는 여기에서 지금 떠나갈 거기로 접속해나가는 길이 있을 뿐, 그 길의 증식이 있을 뿐, 사이를 건네주는 뱃사공인 여행자, 일종의 무정부상태, 계보도 조상도 없는, 모국어가 낯설어지는 상태. - P18
짐승하기는 퇴행이나 미성숙이 아니다. 일탈이나 (역)진화가 아니다. 내가 쥐를 썼다고 해서 내가 쥐로 퇴행하거나 쥐의 미성숙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 아닌 존재와의 모든 ‘하기‘이다. 벌거벗은 생명하기이다. 스스로 그러하기,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라는 두 겹(인간짐승)의 이미지하기. 짐승하기는 정서적 유대다. 짐승하기는 짐승으로 취급하기, 인간 이하로 보기와의 자리바꾸기이다. 나는 짐승하기를 통해 사람과 짐승 혹은 유령 사이의 어딘가에 있게 된다. 나와 짐승이 서로 흐릿해져서, 어떤 비인칭 지대를 만들고 다시 그곳을 우리가 통과해 간다. 서로에게 서로를 조금씩 내어주는 다른 주파수의 세상을 만들어가면서, 그 세상에서 서로의 삶을 변용해간다. 그리하여 짐승하기는 분열하기이다. - P19
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 나의 글쓰기를 이루었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 짐승하기에서 식물하기와 풍경하기, 색깔하기 등등으로 점점 나아갔다. 이것은 내가 글쓰기를 통해 근원을 찾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위계 없고 본질없는 평평한 네트워크의 세계, 잠재적인 것을 실재의 세계로 만난다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짐승과 사물과 풍경의 비밀을 운송하는 여행자처럼 나를 아시아라는 외밀의 광활로 떠밀었다. 나는 마치 제물인 나, 여자짐승을 실어 나르는 매개자인 나로서 아시아를 여행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바리공주처럼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연결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바리공주는 미리 죽은자로서, 혹은 ‘나‘에게서 ‘나‘를 밀어내버린 자로서 이미 - P22
짐승이 된 죽은 자의 세계를 여행해왔다. 죽은 자와 사물들로 이루어진 교감의 세계를 여행해왔다. 나는 여자짐승아시아라는 미지의 장소에 사는 희미한 얼굴들, 아직 여행해보지 않은 감각들을 나의 글쓰기로 만나보고자 했다. - P23
나는 이곳에 비행기를 타고 왔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뾔 (토하다)‘라 하고 자신들을 ‘뾔뽜(토하는 사람)‘라 부른다. 하긴 이곳에 도착하면 누구나 토하기 쉽다. 산소 결핍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제국의 수도에서 출발해 이곳에 도착하는 기차가 개통되기 전이었다. 이곳에서도 그 냄새가 난다. 제국의 통치를 경험한 혹은 경험하는 국가들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 가설무대 곁에서 맡은 것 같은 값싸고, 날것이며, 가벼운 휘발성의 냄새. 날림공사로 세운 벽에서 솟아오르는 시멘트 가루의 냄새. 간판마다 씌어진 두 나라의 문자들, 현란한 색채의 깃발들, 가난의 남루와 살아남은 자들의 오염된 실상을 가린 차량들에서 나는 찌든 버터 냄새. 푸석한 낯빛의 얼굴들이 하릴없이 서성거리고, 거듭된 좌 - P27
절로 인해 깊은 슬픔이 드리운 검은 눈동자가 이방인을 쏘아본다. 추위에 튼 살갗에선 살비듬이 떨어져 날리는 것도 같고, 오랜 배반의 딱지가 덕지덕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꼭 내 나라 내 고향의 가축 시장에서 나는 냄새가 여기에서도 난다. 상대적으로 제국의 도시들에서는 무거운 쇠냄새, 우중충한 돌냄새, 석조 건물들의 하중을 몇백 년째 견디고 있는 땅 아래 켜켜이 묻힌 오래된 시체들의 냄새, 우람한 나무들이 땅 밑에서 끌어올린 물냄새, 곰팡이 냄새가 났었는데 말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짙푸른 하늘, 우주 공간 어디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은 희박하면서도 싸늘하게 투명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먼저 동공이 열리는가 싶더니 두통이 몰려온다. 숨 쉬기가 힘들다. 힘껏 공기를 빨아들이는데도 양에 차지 않는다. 공기를 향한 갈증, 나는 언젠가 다른 대륙에서의 고산증을 교훈 삼아 용하다는 이뇨제를 복용해두었지만 여전히 두통과 구토가 몰려온다. - P28
13人의兒玹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1의兒侅가무섭다고그리오. 第2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3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4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5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6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7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8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9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 P32
第10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11의兒侅가무섭다고그리오. 第12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第13의兒侅도무섭다고그리오. 13人의兒侅는무서운兒侅와무서워하는兒侅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中에 1人의兒侅가무서운兒侅라도좋소. 그中에2人의兒侅가무서운兒侅라도좋소. 그中에2人의兒侅가무서워하는兒侅라도좋소. 그中에 1人의兒技가무서워하는兒侅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適當하오.) 13人의兒技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상, 「烏瞰圖 詩第一號」 전문 - P33
지독한 매연과 콜타르의 악취와 기계의 소음이 진동하는 공사 중인 길을 따라가노라면 이 나라 유목민 인부들의 참혹상이 온몸을 후벼 판다. 봉건 체제가 지나가자 제국이 달려왔다. 봉건체제가 손발을 묶어놓더니 제국은 손발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다. 감옥이 열리니 공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 P35
그 책의 이름은 『바르도 퇴돌』이었다. 풀이하면 ‘둘do 사이bar를 듣다thos 그리고 깨우치다grol‘의 뜻이다. 둘 사이는 모든 사이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황혼 직후의 보랏빛 시간을 듣는 것. 그 사이, 틈을 ‘들을 수 있으면‘ 영원히 자유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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