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서 신청한 책. 연체하지 말고 빨리 읽고 반납하자.
이날부터 세 자매는 서로를 봄 여름 가을이라고 불러주었다. 가끔은 매화 난초 국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름을 향한 불만이 커질수록 자매의 결속력도 단단해졌다. 물론 심사가 틀어지면 이 장소팔 고춘자야, 못생긴 추녀야, 소리가 주먹질과 함께 오가기도 했다. 가끔은 이름이비교적 평범한 둘째도 하지감자야, 하녀나부랭이야, 소리를 면치 못했다. - 오늘의 할 일 - P11
네모가 후루룩 면발 빨아올리는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신다. 네모와 함께하는 커피 타임은 규가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였다. 이번 미션에 합류해 처음 네모를 만났을때 그는 규의 눈으론 누가 누군지 구별이 잘 안 되는 이국의 청년일 뿐이었다. 네모라는 이름이 독특하다는 규의 말에 어렴풋이 짐작한 대답이 돌아왔다. 국적도 뭣도 거부한 채 노틸러스호를 타고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해저이만리』의 네모 선장. 네모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를 제 이름으로 삼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니. 수십년째 내전으로 곪아가는 이 나라의 네모는 무엇을 거부하고 싶어서 스스로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하지만 규의 의문이 무색할 정도로 눈앞의 네모는 도무지 긴장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눈부시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헤벌쭉 웃기만 하는 태평한 젊은이였다. - P45
칠순이 훌쩍 넘은 노인네가 볼살이고 눈꺼풀이고 떨리는 거야 지극히 당연한 순리라고 규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규에게 어느 귀퉁이에 붙었는지도 모를 땅덩어리 사람들을 위한 답시고 제 피와 살을 만들어준 병든 어미의 고통은 모른척하는 천하의 싸가지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몸이 납덩어리를 매단 듯 천근만근이다, 눈밑이 칼바람에 속절없이 떨리는 문풍지처럼 파르르 떤다, 풀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눈앞이 뿌옇다, 어머니가 열거하는 고통은 가깝고도 구체적이었지만 규의 마음은 멀고 먼 추상의 고통을 향해 내달렸다. 그런 규를 향해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남편과 달리 어머니는 온갖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끝내 마지막 말만은 접어두었다. 규로선 언제고 들을 각오가 되어있는 그 말. 그래서 간혹 이곳의 낭자한 고통이 마음을 짓눌러올 때면 규는 어머니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스스로 읊조려보곤 했다. 제 자식 잡아먹은 년이 무슨 염치로 남의 자식을 살리겠다고………… - 아무도 없는 집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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