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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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포항 소설(작가가 원한 제목)이자 정보라식 사랑스런 연애소설이며 환경, 해양, 질병, 장애, 돌봄, 전쟁, 집회, 데모 등을 느슨하게 포괄하는, 인간/비인간 이분법을 탈피한 SF 유머소설이다. 만국의 생물체여, 저항하라 투쟁하라 데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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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그리고 갑자기 위원장님이 고개를 들고 나에게 말했다.
"이거 눈하고 이빨 떼기 전에 물에 씻어야 되는데 좀 도와주실래요?"
나는 위원장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너무 커서 그래요."
위원장님은 대학교 복도에 나타난 거대 문어를 기절시켜 해체하는 것이 마치 일상다반사인 양 평범한 어조로 설명했다.
"화장실 앞까지만 같이 들어주면 내가 씻어다가 적당히 잘라서 오늘 저녁에 삶아서 문어숙회 해 줄게요. 버너는 사무국장보고 하나 더 가져오라고 하면 되니까……………."
"드신다구요?"
내가 지구 생물체의 항복을 요구하던 거대 문어의 힘없이 늘어진 다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걸요?"
"생물 문어 이렇게 큰 거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위원장님이 말했다. - P30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이제는 전 위원장님이 된 위원장님이 낮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나는 공상과학이 아니고 과학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위원장님이 ‘공상‘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서유럽 역사에서 과학의 발전과정과 중산층 계급의 성장에 따른 대중문화의 확산에 대해 강의하기 시작할 것이 뻔했으므로 꾹 참고 그냥 가만히있었다. - P40

위원장님은 가위를 집어 들고 능숙하게 문어 다리를 잘랐다. 육수 속의 문어를 바라보면서 해양정보과와 빼앗긴 라면냄비와 검은 빌딩과 농성 천막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어쩐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저 선생님 좋아해요."
내가 말했다. 위원장님은 시선을 들지도 않고 그대로 문어를 자르면서 대답했다.
"저도 선생님 좋아합니다. 문어 드세요."
또다시 대화가 엇나가고 있었다. 위원장님에게는 나보다 - P42

문어가 중요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가스버너 위의 냄비 너머로 위원장님에게 얼굴을 최대한 들이대고 다시 말했다.
"선생님 좋아한다는 말, 진짜 진심이에요."
그리고 나는 자리에 도로 앉았다.
이후 어색한 침묵 속에 문어를 먹으면서 나는 이것으로 완전히 차인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을 했으므로 후회는 없었다. 위원장님을 만나지 못하는 동안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얼굴을 보았을 때 확실히 깨달았고 이제 위원장님은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나를 만나주기는 할지 알 수없었으므로 나는 말해야만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위원장님은 다른 일정이 있다며 가버렸고 나는 혼자서 집에 돌아오면서 이제 평생 문어는 결단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다. - P43

대게

중간에 낀 나는 죽을 지경이었다. 술 취한 한국 호모사피엔스와 술 취한 러시아 갑각류에게 노동운동과 조직화에 대해 동시 통역을 해줘야만 하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는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몇 년 전에 검도 관련 술자리에 불려 나가 러시아인 검도 사범에게 러시아어로 신라의 화랑오계를 설명해달라는 한국인 검도 사범님의 난데없는 요청을 받은 적은 있었는데 화랑오계가 뭔지 한국어로도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내가 술을 마셨더니 일단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러시아 전공자로서 내 직업 경력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조금 더 심각했다. - P62

"쟈는 집에 안 가나?"
어머니가 다시 안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나는 노동 문제에 대해 상담하는 중이라서 아마 좀 오래 걸릴 것 같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노동 문제? 데모하고 그런 거가?"
어머니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셨다.
"쟈(남편을 뜻한다)는 교수가 될 줄 알았는데 빨갱이가 돼가지고 데모하는 게 뉴스에 나오더니 이제는 게한테까지 데모하는 걸 가르치고 남세스러워서 원......."
어머니가 이렇게 불평하셨고 대게가 러시아 출신이므로 아마도 원래 빨갱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려드려야하는지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너도 얼른 자라‘ 하시더니 안방으로 표표히 들어가 문을 닫으셨다. - P63

이 모든 일들이 작년, 재작년, 올해 사이에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한다. 바다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후대를 위해 보호해야 한다고 블라디미르 베르나츠키라는 러시아 지질학자가 1940년대에 이미 경고했지만 그런 얘기는 아무 소용도 없었고 내가 아무리 플라스틱을 적게 쓰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바다에 방사능 오염물질을 국가 단위로 쏟아붓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북극해도 발트해도 동해도 모두 오염되고 깨지고 부서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인간도 대게도,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코를골며 잠든 남편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조금울었다.
"그러니까 싸워야죠."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중얼거렸다.
"싸워서 못 하게 해야죠."
"그렇지만 어떻게요? 게는 집게발이 전부인데 이걸 다 어떻게 막아요?"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남편이 돌아누우며 웅얼웅얼 대답했다. - P66

세상을 바꾸려고,라고 그는 말했었다. 학생 시절에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조직에 속해서 가장 험한현장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이야기를 그는 자주 들려주었고 그래서 내가 언젠가 물어보았다. 세상을 바꾸려고 그래서 그렇게 싸운 끝에 세상이 바뀌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그가 현장에서 30년을 보낸 지금, 그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자신이 세상을 아주 조금이나마 바꾸었다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 30년이나 지나서, 눈가에는 주름이 생기고 손목과 어깨와 허리가 수시로 아프게 된 지금에야 말이다. 싸워서 세상을 바꾼다는 건 그런 것이다. 주로 허리와 어깨가 아픈 작업이다.
"안 싸울 수는 없잖아요."
남편이 돌아누워 나를 쳐다보았다.
"열받으니까." - P67

세상 전체가 의존하면서도 무시하고 착취하는 필수 돌봄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간병사 선생님은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였고 가까운 동네 출신이라 어머니와 금방 친해졌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키워둔 채소와 가게에 들여온 반찬거리를 간병사 선생님은 집에서 해 온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그 세대 여성들은 음식을 통해 친밀감을 표현한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와 여전히 커다란 붕대에 감싸인 어머니의 다리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은 나보다 체격이크고 몸무게도 무겁다. 남편이 움직일 수 없게 되면 내가 남편을 일으키고 앉히고 눕히고 밀고 다닐 수 있을지 나는 궁리해보았다. 10년 뒤에, 15년 뒤에 할 수 있을지 궁리해보았다. 그동안 남편은 휴대전화로 이번에는 지팡이를 검색하고있었다. 남편은 현실적인 낙관주의자였고 주로 인터넷 쇼핑을 통해 미래를 대비했다. - P107

개복치

совсем недавно, сам так думал, что это вроде абсолютнопрекрасное, очаровательное, а на самом деле, оказывается, чтоВсё это только беда, самая большая пребольшая беда......
(있잖아, 모험이란 그저 고생의 다른 말일 뿐이야. 그러니까 사실은 나 자신도 모험을 그토록 원했었는데, 얼마 전까지도 말이야, 모협이란 아주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알고보니까 그저 골칫거리일 뿐이야, 전부 아주 굉장히 커다란 골칫덩어리일 뿐이라고……) - P163

"돌고래는 그게 재미있으니까요."
검은 정장 사람이 대답했다. 선우가 놀랐다.
"어째서요? 돌고래는 착한 동물 아니었어요?"
"착하거나 나쁜 동물 같은 건 없습니다."
검은 정장 사람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그냥 동물입니다." - P172

선우가 물었다.
"그럼 나도 싸우지 마?"
"안 싸우면 제일 좋지만, 우리는 그렇게 크거나 강하지 않으니까."
아빠가 신호등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선우한텐 선우의 방식이 있겠지."
선우는 아빠의 대답을 잠시 고려했다. 그리고 물었다.
"어떤 방식?"
아빠가 파란불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살다보면 알게 되겠지."
아빠가 작게 말했다.
"아빠는 아빠 방식이 있어?".
선우가 물었다. 아빠는 한참 생각하다가 곤란한 듯 대답했다.
"사실 아빠도 잘 몰라." - P179

고래

이런 삶을 견디며 오랫동안 저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을 영웅이나 반역자로 기록한다. 살아남아 뭔가 행동을할 수 있었던 운 좋은 경우에 말이다. 첫 체포, 첫 감금, 첫고문, 첫 강제 노동, 첫 생체 실험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 P226

작가의 말

참고로 <대게>에서 주인공(?) 이름으로 사용한 "예브게니"는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여러작품에서 주인공에게 붙여주었던 이름이다.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예브게니는 푸시킨의 동명 소설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일 것이다. 러시아 문학사에 ‘잉여인간‘의 개념을 소개한 작품인데 나는 사실 <예브게니 오네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푸시킨의 다른 작품 <청동기마상>에 나오는 예브게니의 이름을 러시아 노동대게에게 붙여주었다. <청동기마상>의 예브게니는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꿈꾸었지만 독재적인 권력자가 늪지대를 개발하여 도시를 - P257

건설하는 바람에 홍수가 일어나 연인을 잃고 파멸한다. <청동기마상>은 200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독재정권이 강제로 밀어붙이는 개발과 치적 사업, 이로 인한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 그리고 모든 생명이 이 때문에 함께 피해를 입고 죽어가는 상황이 현재 러시아의 현실과 비슷하다. - P258

내가 원래부터 바다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포항에 와서 살게 되면서 환경이 달라지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집 제목은 사실 "포항 소설"로 하고 싶었다. (포항시에서 왠지 아주 좋아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래빗홀 편집부 여러분도 반대하고 남편도 반대하고 다들 그런 제목으로는 책 안 팔린다고 말려서 나는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쓴 소설이지만 제목 정하기 진짜 너무 어렵다.
그래서 "포항 소설"을 제목으로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포항 자랑으로 ‘작가의 말‘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동해안 지역은 정말 예쁘다. 바다는 어디나 다 아름답지만 포항은 포스코가 있어서 공업 지대의 풍경과 바다의 절경이 어우러져 송도해변에서 포스코와 해수욕장을 번갈아 바라보면 이거야말로 미래 SF 도시 같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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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6-08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첫 문단 읽는데... 와아.... 힘이 쭉 빠지네요. 저도 이 책 있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어요. 얼른 읽고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4-06-08 22:36   좋아요 1 | URL
심각한 얘기를 코믹하게~ 시작하시면 금방 읽으실 거예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멜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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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사는/읽는 유일한 수상작품집. 올해 작품 중에는 김지연의 <반려빚>과 김기태의 <보편 교양>이 흥미로웠다. ‘빛’이 아닌 ‘빚’을 반려라 여기며 사는 화자와 입시에 올인하는 고등학교에서 인문 교양 수업을 실현하려는 교사의 고군분투가 웃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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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_반려빚

정현은 다 때려치우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가도 그래도 저건 다갚고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죽으면 어차피 다 끝인데그걸 왜 굳이 다 갚으려는 건지 스스로가 이해 안 되기도 했지만그래도 정현은 빚진 것 없이 깨끗하게 죽고 싶었다. 자신의 부채를 언제나 부모에게 떠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상속 포기를 하면 그만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가족들이 자신의 속사정을 낱낱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늘 저거 어디 가서 사람 구실은 하고 살려나,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변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동안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빚이 일억 육천이나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됐다. 다른 가족들보다 장수를 하든가 빚을 다 갚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죄로 과로하며 살고 있으니 장수는 이미물건너간 것 같고 살아 있는 동안 빚을 다 갚는 수밖에 없었다.
빛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였다. - P206

해설 전청림_망한 삶의 천재

반려빚 시대에는 누군가에게 얼마만큼 특정한 빚을 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빚을 지는 일 없이는 꾸려질 수 없다는 성찰이 중요하다. 우리의 모든 미래는 돈이 든다. 청년의 좌절과 N포를 거쳐 2020년대의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희망의 불모지에 진입했다. 이 희망의 사막 속에 사는 청년에게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서투르고 부족한 사회의 설명일 뿐이다. 마침내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와 ‘돈미새(돈에 미친 새끼)‘라는 자조적 멸칭에 도달한 청년은 이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삶 자체가 끝없는 경제적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의식(食)을 갖출 돈, 집, 그 안을 채울 가구와 살림뿐만 아니라 가성비와 가심비를 만족시켜줄 온갖•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안정감조차 이해타산적 계산 없이는 상상될 수 없다. - P236

해설 성현아_반항하는 자는 부조리가 있나니, 그 가짜가 참되도다

알베르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명확함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세계 앞에서 생겨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다. 반면, 세계는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입장에서 언제나 불명확하다. 여기에서 바로인간의 비통한 열망과 그에 응해주지 않는 세계 사이의 영원한대립이 생겨난다. 부조리란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 카뮈는 삶이 가치 없다고 판단하여하는 자살은 부조리를 해소해버리므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부조리를 살려놓고 직시하며, 이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반항이란 인간이 "자신을 넘어서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대결"하는 것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부조리를 끈질기게 인식하며 그와 집요하게 싸워내려는 열정적인 태도야말로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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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14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빚 ㅎㅎㅎ 대박인데요 ㅋㅋㅋ 웃픕니다...김지연 작가의 단편을 몇 개 읽었는데 특유의 개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햇살과함께 2024-05-15 00:16   좋아요 1 | URL
제목이 다한 ㅋㅋㅋ 맞아요 김지연 작가 독특한 날카로움이 있어요

다락방 2024-05-15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빚 때문에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담아갑니다. 땡투 들어오면 접니다.

햇살과함께 2024-05-16 20:58   좋아요 0 | URL
저와 평생 함께한 반려빚 ㅋㅋㅋ 🤣
 

김남숙_파주

도대체 뭘 했어요? ......정호가요.
현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몰라요.
현철은 짧게 말했다. 그런 것은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모르겠네요. 그냥 매일 그 속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혔으니까. 아니, 이미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저 새끼 전역하면 진짜다 끝이다. 생각하면서 버티고. 근데 진짜 끝이더라고요. 허무하게. 허무해서 더 화가 나더라고요. 사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도 해요. 근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넘어가면 나는 다음번에 또 이렇게 넘어가겠구나, 하는 생각. 앞으로 계속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고 상상하니까 내 다음이 무서워지고, 내가 무서워지고. 무서워지니까 또 밉미치게 밉고. 이해 안 되겠지만 그래서 그랬어요. 전역하고 나서 매일 생각했어요. 목 조르는 생각, 칼로 찌르는 생각.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렇게 골라내다보니 이렇게 시시해진 것도 같고. 그땐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어떤 사람한테는 삼 년이 어저께 같아요. 그 생각에 묶여서 시간이 안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현철이 나에게 물었다.
근데, 결혼하실 겁니까?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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