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벌 에버렛 <분수령> <그랜드 캐니언 주식회사> <상처받은 자들>
환경 인종주의

아나 카스티요 <신으로부터 그토록 멀리>
비가시적 물질들을 포착하기
위험사회

사이먼 오티즈 외 <비와 바람에 실려온 기억>
우라늄 채광 사건
인종과 계급

3장 비가시적 물질들_환경정의의 과학

환경정의운동은 본질주의적이지도 않고 유전적 결정론이 아니며 경계로 구획되지 않은 몸, 그리고 사회적 권력과 물질적/지리적 작용능력이 내부-작용하는intra-act 지점으로서 몸의 개념, 즉 횡단-신체적 물질성의 완벽한 전형이다. 로즈가 주장하듯, "생물학적 시민의 권리"가
"경험 ·정치·자본주의의 장에 과학을 재위치한다면, 그러한 일부 재위치화는 횡단신체성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는 동시에 그것의 의미를 확대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적 구성요소가 폭넓은 환경에 필연적으로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과학적 설명과 대중과학적 설명은 이러저러한 정치적인 이유를 위해 종종 하나를 희생하는대가로 다른 하나를 강조하면서 몸과 장소를 가로질러 오고 간다. 새로운 모델이 출현할 때, 그것은 (인종화된) 몸과 특정한 공간들 사이의 관계들을 포착하고 논쟁하고 재형상화하는 과학, 행동주의, 소비자운동,
문학 텍스트, 그리고 사진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퍼시벌 에버렛의 환경정의 서부극인 『분수령』은 역사, 정치, 그리고 특정 장소의 물질들이 충돌하는 가운데 과학적 행동주의가 어떤 의미에서는 주인공의 피에 존재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아나 카스티요의 마술적 사실주의소설 『신으로부터 그토록 멀리』의 한 등장인물, 사이먼 오티즈의 몇몇시의 화자, 그리고 나바호Navaho 인디언 우라늄 광부의 구전 역사와 사진 프로젝트인 『비와 바람에 실려온 기억]을 위해 인터뷰에 응했던 디네족Diné 사람들은 황폐해진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 - P159

는 위험들을 지각하고, 또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환경부정의 environmental injustice를 탐지하고 싸우려는 환경정의 활동가들이 생화학물질 오염감시와 같은 새로운 기술에 의지하듯이, 바로 그 기술이 또한 인종과 장소 사이의 변화하는 상호관계들에 관해 도발적인질문을 던지면서 취약한 사람들의 범주들을 다시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 P160

이 소설은 포스트모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플롯의 전개가 화학 분자식, 의학 서적, 낚시 미끼 설명서, 수문학 보고서, 편지, 북미 인디언 관련 협정문, 기타 법률 문서와 같은 파편적 담론에 방해를 받기때문이다. 그것은 독자가 단서를 찾아서 파편을 해독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미스터리 플롯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서사의 포스트모던한 구조는 주인공이 집착하는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구닥다리 이데올로기와 충돌한다. 주인공이 지지하는 객관적 과학의 중립적 문체는 포스트모던한 서사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유희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 수문학과 같은 물질적 실천으로부터 격리된 채로 그것의 담론적인 우주에 머문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일까. 소설이 탈근대적 회의주의에 대해 회의를 표하고 또 과학적 진리를 향한 정치적 탐구를 분명히 표명하는 대목에서, 소설은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 P169

호크스의 과학적 실천이 개인적·정치적·역사적 서사들과 분리될 수 없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과학적 탐구의 인식론이 역사적·정치적 힘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지식의 주체가 선 입장을강조하는 샌드라 하딩의 ‘강한 객관성‘이나 다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호크스가 자신을 초연한 관찰자로 상상할 때에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이 장소에 푹 잠겨 있다고 깨닫는다.
『분수령]이 환경정의 미스터리, 또는 서부극의 최종 결투 장면으로 바뀌면서, 작가는 갈등이 없지는 않지만 환경정의의 파괴를 기록하려는 주인공의 결의를 서술하는 대목에서 이전의 냉소적이며 초연한 유희적 태도를 더 이상 견지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벡처럼 자문할 수 있다.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정말 가능한가? 우리는 그것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적 거리를포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경멸이나 냉소, 무관심, 환희의 태도로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는 것이 허용이 될까?" 『분수령』은 경멸 또는냉소로 끝을 맺지 않는다. 총을 장전한 채 손에는 필름 깡통을 쥐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수문학자가 (환경) 정의를 추구하는 북미 인디언 부족과 연대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 P171

몇몇 현대 미국 문학작품은 몸과 자연을가로질러 이동하는 비가시적인 위험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나 카스티요의 작품 『신으로부터 그토록 멀리』와 사이먼 오티즈의 시는 사람들이 위험사회의 비가시적 위험과 직면할 때 발생하는 존재-인식론적 파열을 극적으로 보인다. - P183

베널리처럼, 프랭크는 그들의 가축에 끼친 우라늄의 영향을 목격함으로써 획득한 경험 지식을 증언한다. 그렇지만 아는 자를 알려진 자로부터 분리하는 과학적 객관성의 모델들과는 반대로, 그의 설명은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가 이 위험한 지역의 한가운데, 그것도 이 위험한실험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전문가들의 실험 대상이라는 사실을강조한다. 벡이 주장하듯이, 광범위한 전지구적 자연에서는 "위험에 대한 어떠한 전문가도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일반시민은 자신들의 일상 삶에 대해 수많은 ‘과학적‘ 결정을 뒤죽박죽으로 내리지만, 원주민영토의 우라늄 채광 역사는 이러한 위험사회의 명제가 특정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즉 그 명제가 피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와 기관이 원주민의 죽음을 방치한, 이 엄청난 범죄의 실상을은폐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 원주민은지적 주권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강탈당했다. - P200

원주민들은 갑자기 달라진 자연 환경에서 자신의 전통적 지식과문화적 실천을 그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생각을 괴롭히는관점들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전문지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라늄과 꽃가루의 차이를 육안이나 사진술로도 구분할 수 없다. 그렇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의 실상은 어떤 식으로든 기록되어야 한다. 이작품에 실린 사진은, 사진 자체가 보여 줄 수 없는 방사능이라는 비가시적인 위험에 대한 불안의 증거를 담고 있다. 인간과 가축, 집, 땅을 찍은 사진을 인터뷰와 함께 상호텍스트적으로 읽는 것은, 아무튼 위험 문화에 특유한 그 무시무시한 비가시성을 주목하라는 요청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P201

의학 모델들은 개인의 몸에만 주목하는 반면에, 환경정의활동가들은 장소와 공동체 사이의 물질적 연결을 중시한다.
인종과 계급이 잠재적인 환경피해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인자로 지목되었던 반면에, 거대한 규모의 생화학물질 오염감시 프로젝트들은 인종과 계급이 아닌 다른 범주를 결정인자로 지목할 수도 있다. 이 장에서 나는 환경정의 투쟁에 참여한 활동가와 문학적 재현을분석하기 위해 울리히 벡의 이론을 크게 참조하였는데, 벡이 제시한 역설의 하나로 이 장을 매듭지어야 하겠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위험사회에 거주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 위험을 똑같이 짊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P205

나는 다음의 두 장에서 신체 부하검사가 함축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인종과 계급이 위험사회의 지리-사회적 자연을 가로질러 예측 불가능한 방식들로 물질화되는 방식도 고려의 대상이다. 식민지주의 역사의 뒤에는 화학물질 침투라는 은유가 숨어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장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미국 인디언들에게 침투의 이비가시적 형식은 식민지주의의 기나긴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나타난 폭력의 양태이다.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문화적·정치적 주권을 유지하고 되찾으려는 수많은 투쟁들을 감안하면, 위험사회 전체에 퍼진 지적 주권의 상실은 원주민의 문화적 풍경에서 특히 비극적 울림을 갖는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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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델 르 쉬외르, 자연과 노동자, 관능, 에로티시즘
뮈리엘 뤼케이서, <망자의 서> 횡단-신체성, X선
울리히 벡

2장 에로스와 X선_몸, 계급, 그리고 ‘환경정의’

역사의 초기에 호랑이와 독사가 인간에게 그랬던 방식으로 인종주의는 우리의 부신과 다른 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요인이다. 노동과휴식의 패턴이 노동자 자신의 신진대사가 아니라 고용자의 경제적 결정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이 매매되는 상황이 개인의 포도당 순환glucose cycle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생태학은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자연과 맺는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 의해 유지되는 자기와는 다른 사회, 계급, 젠더, 나이, 직위, 인종과 맺는 관계에 대한 연구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의 췌장이나허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억지는 아니다. - P75

20세기 후반 환경정의 이론 틀은 노동자계급의 허파로 예시되는횡단-신체성에 접근하기 위한 강력한 길잡이이다. 환경정의는 특정한 몸과 장소, 특히 문자 그대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과 장소 사이에 있는 물질적 상호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환경정의 사회운동들과 분석의 방법은 인종과 계급(그리고 때로 젠더와 성정체성)이물질적 불평등, 간혹 장소와 뗄 수 없는 불평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추적함으로써 환경혜택과 환경피해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 P77

효율적 관리를 요하는 대상으로 노동자를 정밀조사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숙련 지식‘뿐만 아니라 그의 목소리와 견해, 행위능력agency을 박탈한다. 건강은 해러웨이의 용어로 상황적 지식이자 생물학적 상태를 말해 준다. 즉 노동자의 건강상태는 노동자 자신이 접근할 수 없는 특수하고 편파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확증될 수 있다. - P83

메리델 르 쉬외르와 뮈리엘 뤼케이서는 노동자의 몸과 환경이 다양한 제도와 이해 그룹에 의해 정밀하게 감시당했던 사회적/물질적 상황에서 작품을 썼다. 그들의 작품은 자연과 자본주의, 노동자계급 사이의 관계를 폭로함으로써 그 용어가 생기기도 전에 미리 ‘환경정의‘라는개념을 명시적으로 보여 주었다. 뤼케이서가 물질을 기록하는 시를 쓰는 반면, 르 쉬외르는 노동자와 세계 사이의 에로틱한 접합을 지향하면서 노동자의 몸을 검사하고 측정하며 관리하는 관계 당국의 권력과 제도에 저항한다. 두 작가는 놀랍게도 몸과 자연 간의 손에 잡힐 듯한 상호관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연과 몸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은 인간과 분리된 세계로서 자연을 바라보았던 20세기 초반의 환경보호주의와 환경보존주의에 대립되는 환경의 의미를제시하였다. 작업장의 위험을 사람이 거주하는 방대한 자연으로까지확대하였던 뤼케이서는 오염에 대한 최근의 이론을 미리 예견하였던듯이 보인다. - P87

르쉬외르의 단편소설과 취재기사는 자연과 노동자가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위한 소모품으로 똑같이 전락하는 처지를 폭로하면서 자연과 노동자를 융합시킨다. 그렇다고 노동자의 몸이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아름다움, 가치, 에로스의 장소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엄격한 사회구성주의 관점으로는 이런 이중적 태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본주의 비판과 유토피아적 욕망, 그 어느 한쪽도 포기하길 원치 않는다. 그녀는 신체성이 자연 세계와 합류하는 대안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가치와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께 엮는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만큼 자연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이러한 느낌은 아름다운 사진으로자연을 바라보는 도회적이며 중·상류 계층적인 감상과 현저하게 대비된다. 예를 들면, 미국 버스」의 화자는 시골 여성에게 "시골 자연은 화보가 아니라, 감촉이고 배고픔이며, 일이고 사랑이다"라고 읊조린다. - P89

모성성과 노동계급의 활력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찬사가 (재생산하는) 여성의 몸을 자연의 끊임없는 생식력의 수렁으로 밀어넣는 일종의 본질주의를 내비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물질성, 살과 세계의 구성 요소에 대한 르 쉬외르의 감수성이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어떤지를 물을 수 있다. 그녀가 제시하는 야생적 물질wild matter이라는 독창적 개념은 우리가 담론에서 신체성으로, 이분법에서 나선형 중첩으로 나아가는 방법론적 전회를 행하도록 촉구한다고 하겠다. - P101

그녀는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제한된 정치참여는 너무나 탈신체화disembodied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회적 변화를 추동하지 못한다고생각했다. 때문에 그녀는 우리에게 신체성을 사회적인 텍스트의 일부로 읽을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증언하는 몸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과 겹쳐지는 방식의 한 예로 [여성은 아주 많은 것을 안다」를 들 수 있다. 거기서 르 쉬외르는 여성은 "뉴스를 그것의 출처, 즉 인간의 몸에서 습득하기 때문에 "뉴스를 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P104

르 쉬외르의 씨앗이라는 비유는, 씨앗에는 분리 불가능한 자연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이 체화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반다나 시바의 씨앗과 다르지 않다. 시바는 이렇게 말한다. "씨앗 속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생물학적 다양성과 통합한다. 생태적 이슈는 사회정의,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결합시킨다." 또 시바는 "초목과 마찬가지로 관념과삶의 양식도 씨앗에서 생겨났다. 지금 멸종 위기에 놓인 많은 씨앗들은 그 안에 사유의 또 다른 방식과 삶의 또 다른 방식의 씨앗을 간직하고있다"고 말한다. 시적 생물학사를 집필하는 르 쉬외르는 환경주의와 조화되는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의 비전을 상상한다. 앤드류 피커링이 표현하듯, 그것은 "인간 행위자가 여전히 거기에 있기는 하지만이제 비인간과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고, 더 이상 행동과 지배의 중심에 있지 않는 공간이다. "우리가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은 하나의동일한 과정에서 세계는 우리를 만든다." - P116

특정한 장치와 전문지식 없이도 몸에서 사회적 힘들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르쉬외르와 반대로, 뤼케이서는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이 없이는 올바로 해독할 수 없는 이 판독하기 어려운 힘과 물질과 씨름하였다. 르쉬외르가 자연과 노동자 사이의 긍정적이고 심지어는 에로틱한 관계를 음미했다면, 뤼케이서는 직업 질병의 역사에서 특히 악명이 높은 사건이 보여 주는 끔찍한 횡단-신체성을 묘사하였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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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신체성
물질성
생태적 주체와 생태적 사유
인간의 몸

환경정의
환경보건
환경질병
환경윤리

1장 서론-몸된 자연

강력한 윤리적·정치적 가능성은 인간 신체성과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 사이의 문자 그대로의 접촉 지대로부터 부상한다. 인간이 언제나 인간을 넘어서는 세계와 맞물리는 지점인 횡단-신체성 trans-corporeality으로 인간 신체성을 상상한다는 건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궁극적으로 ‘환경‘과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 P18

횡단-신체성은 이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다. 이론적 장소로서 횡단-신체성은 신체이론·환경이론·과학연구가 생산적인 방식으로 서로 만나고 섞이는 장소를 지칭한다. 이와 같이 인간 신체와 비인간 자연을가로지르는 운동‘은 물질과 담론, 자연과 문화, 생물학과 텍스트의 영토들을 관통해 이동하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분석을 필요하게 만든다. - P21

페미니즘 이론은 신체성과 무심성無心性, 수동성으로 비된 자연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아야 했다. 인간의 특정 그룹과 비인간 생명체에게 모욕과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 조성되어 왔던 자연/문화, 몸/마음, 대상/주체, 자원/행위능력 등의 젠더화된 이원론을 타파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 P25

투아나가 강하게 주장하듯, 페미니즘은 오로지 물질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을 무의미하게만들 수 있다. - P27

"인간 몸에 있는 대다수 세포들은 간성적inter-sex이고", "다섯 계 중 네 계에서 대부분 유기체는 재생산을 위해 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경이롭게도 치마버섯은 "2만 8천 개 이상의 성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우리는 자연이 변함없이 고정된 반면에 문화는 무한하게 유연하다는 주장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했다. 만일 이러한 생물학이 퀴어하게 들린다면, 그럴수록 더욱 좋다. ‘상황적 지식‘으로서 이 퀴어 생물학은 규범화하는 이성애-생물학의 내용과 분류뿐만 아니라, 그것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 P27

자연의 대용어로 스콧은, "사물의 삶이 얼마나크게 인간적 의미와 감각을 초월하는지를 보여 주는 물리성physicality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에드워드 케이시와 데이비드 에이브럼과 같은환경주의 현상학자들은 인간의 경험과 인지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제한된 특정 장소와 결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케이시는 "장소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조건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로렌스 부엘은 "인간은 자신이 거주하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을 구축하는 문화생물학적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가 생산하는 모든 인공물은 그러한 환경의 흔적을 간직한다"고 주장한다. 생태비평은 "텍스트와 세계 사이의 분리"를 계속해서 강조하는 연구의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 P33

프롬은 "환경"은 "점점 더 세계 내 인간존재의 바로 그 구성물질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를 끌어들이면서, 에드워드 케이시도 유사한 주장을 한다. "내 몸과 자연은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연속되어 있다. [・・・・・・] 문화와 자연으로 이뤄진 섬유들은 하나의 연속된 직물을 구성한다. 몸과 장소가 연속적임을 인정하려면 전통적인 분과학문적 경계를 가로질러야 한다. - P41

특히 장애연구는 몸과 장소 사이의 물질적/사회적 상호교환을 추적하기 위해 폐쇄된 몸이라는 의학 모델들을 거부한다. 로즈메리 갈런드-톰슨은 "장애연구는우리로 하여금 모든 몸이 수태의 순간부터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둘러싼 것에 반응하면서 변신하고, 몸에 역사를 기록한다. 몸이 세계와 마주칠 때 발생하는 변화를 우리는 장애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한다. - P42

말과 살, 흙은 이제 더 이상 개별적 개체가 아니다.
낸시 투아나는 주목할 만한 에세이 [끈적끈적한 다공성 :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증언하기]에서 유사한 혼합을 포착한다. 그녀는 바람, 비, 홍수, 살, 인종주의, 정치, 심리학, 수문학, 가난, 그리고 폴리염화비닐PVCs이 뒤섞이며 혼합되듯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사회적 실천과 자연 현상" 양자의 "복합적 상호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상호작용주의 존재론interactionist ontology은 ‘끈적끈적한 다공성‘이라는 개념화로 요약된다. "살-내 살과 세계 살의 끈적끈적한다공성이 [존재한다.] 이 다공성은 우리가 세계에 속해 있고, 세계를 발생시키고, 세계 안에 존재하게 하는 경첩이다. 그것이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 얇은 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끈적거린다고 부른다. 이 박막membrane들은 피부와 살, 예단과 상징적인 상상물, 습관과 신체화와 같은 다양한 유형을 지닌다. - P49

로레인 코드가 아름답고 정교하게 서술한 ‘생태적 주체‘라는 개념에 가깝다. 그것은 "자신의 인식론적-도덕적-정치적 활동에 대한 책임을 고백하고 그러한 책임을 떠안기 위해 집합적 · 개인적 입장을 표명하는 주체를 말한다. 코드가 옹호하는 ‘생태적 사유에 따르면, "우리의 연구는 지식이 생산되고 논의되며 유포되는 장소인 ‘저 아래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 P55

내가 이 책 전체를 통해 주장하는 바는 자아의 구성 물질을 더 광범 - P62

위한 환경과 상호연결로 이해함으로써 주체성 개념에 일대 전환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 자아는 복합적인 경제적·정치적·문화적·과학적·물질적인 연결망과 얽힐 수밖에 없기에, 외관상 안과 밖의 경계가 분명했던 인간 주체는, 이제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내던져진 자신을 발견한다. 과거에 단 한 번도 윤리적 또는 정치적 문제와 연관이없었던 실천과 행동이 별안간 눈앞에 놓인 위기들의 구성 요소가 된 것이다. 이것은 전지구적 기후 변화의 사례에서 특히 명백하게 나타난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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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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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지 않으려 했다. 아니, 정희진 선생님의 책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 읽으려 했다. 도서관에서도 여러 번 마주쳤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도 몇 번인가 사려다 그만 두었다. 12월에 다녀온 정희진 선생님의 북토크에서 선생님께서 본인의 책 중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는 책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책이다(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으나 이런 취지로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그 말을 듣고서야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사면 바로 읽지 않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제목의 친밀한폭력이라는 상반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그러나 아내 폭력의 현실을 이렇게 잘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이 있을까? 가정이라는 친밀한 공간에서(누구에게?), 누구나 편안함을 누리고(누가?) 사랑을 주고받고(누군 주고 누군 받고?) 이해 받아야 할 것 같은 친밀한 공간에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말해도 이해 받지 못하고 흔한 부부간의 갈등이나 다툼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폭력,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행하는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리처드 겔즈의 연구에 따르면, 5년간 미국에서아내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의 수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의 수와 비슷하며 미국의 소아마비 환자 모금 본부(March of Dimes)에 의하면 임신중 남편의 구타가 기형과 유아 사망의 주 원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 기혼 여성의 5퍼센트는아내 폭력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호소하였다. - P38



이 책을 읽으며 경제력에 대해 착각 내지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이 경제력이 있다면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업주부로 살다보니 경제력이 없어 폭력을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 경제력이 있었다면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났을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에 있는 사례 중에서 많은 경우 남성이 무직이거나 돈을 벌어도 돈을 주지 않고 오히려 여성이 돈을 벌어 남편과 가정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녀들은 지옥에서 탈출하지 않는가? 어린 자식 때문일 수도 있고, 여성 스스로 가정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이혼녀로 낙인 찍히는 것이 더 두려운 사람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공포.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거나 도망치다가 남편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폭력은 예측가능한 고통이지만, 언제 남편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한 공포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도망쳐 나왔지만 알 수 없는 불안공포속에서 살기보다 예측가능한 고통속으로 들어간다.


사례의 폭력 남편들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본 연구의 50사례 49명의 남편 중 약 40퍼센트인 19사례가 무직이었다. 직업이 있다 해도 부인과 함께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아내 혼자 일했다. 이 문제로 아내가 불만스러워하거나 항의하면 남편은 폭력으로 대응한다. 이는 현대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인 성별 분업 논리가 실제로는 분업이 아니라 협박과 강제 속에서 여성의 이중 노동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준다.(실제로 여성은 세계 공식 노동력의 3분의 1, 비공식 노동력의 5분의 4를 담당하면서, 전 세계수입의 10퍼센트만을 받으며 세계 재산의 1퍼센트만을 소유한다.) - P158



이 책의 주장은 폭력이 문제야가 아니라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을 통해 아내 폭력이 정상화, 사적화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이 글의 초점은 가족이라기보다 폭력이다. 즉 본 연구가 밝히고자 한 것은 가족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아내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이 연구는 가족 관계에서는 폭력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가족에서는 폭력이 발생할 리가 없다는 담론에 대한 비판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 관계가 권력 관계라면, 어떤 의미에서 폭력은 불가피한 인간 문제이다. 나의 관심은 부부 간에 폭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부부 간에는 폭력이 발생할 리 없다고 믿게 하는 사회적 권력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아내 폭력이 문제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폭력이 가족 관계에서 발생해서라기보다는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을 통해 폭력이 정상화, 사적화(私的化, privatization)되기 때문이다. - P250



아직도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을 가벼이 생각하는 세상. 이 책의 초판으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북어 운운하는 속담은 퇴출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맘충과 된장녀라 불리는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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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8 0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포의 권력 동문선 문예신서 116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서민원 옮김 / 동문선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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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보았다! 글자를 보았을 뿐이다. 역자 서문이 과장이 아니다. 최소한의 지식이 없어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다. 죽기 전에 크리스테바 언니를 (책으로) 직접 만날 일이 있을까. 다른 책의 인용이나 해석의 간접적 만남만 가능할 듯. 아브젝시옹과 오염과 혐오와 고통과 공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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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27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더 읽어야 하지만 저도 다 읽으면 별 셋 줄것 같습니다. ㅠㅠ 정말 고생하셨어요, 햇살과함께 님 ㅠㅠ 그리고 진심으로 완독 축하합니다!!

햇살과함께 2024-01-28 07:3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완독 축하합니다!
2월 책은 재미있기를! 이제 구매해야겠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