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을 차별하는 표현. 나도 모르게, 농담이라고, 걱정한다고, 자주 쓰게 되는 것 같다. 특히, 건강 중심성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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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지인들은 갑상선암 수술을 독촉했지만, 결정하기 어려웠다. 의사들은 숫자와 데이터로만 내 몸을 읽는 듯했다. 여러 검사에도 불구하고 증세와 통증은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원인이 없다는 이유로 내 증세와 통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갑상선센터 의사는 내 몸에서 갑상선만을, 내과 의사는 내 몸에서 현기증만을 보는 듯했다. 의사들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어서겠지만, 총체적으로 연결된 내 몸을 보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의료 전문인은 의사지만, 결국 내 몸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고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두려웠다. - P26
식이요법을 지도해준 분은 "질병은 몸에 찾아온 손님"이라며, 극진히 대접해서 떠날 수 있게 해주라고 했다. 질병은 죽음으로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몸을 쉴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고 덧붙였다. 엄격히 생활을 관리하며 사는 게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몸을 이토록 극진히 돌봐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을 떠올리며,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려 했다. - P28
우리는 죽음을 떠올려봄으로써 삶을 다시 묻고 이해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사색이 확산되면서 중환자실이 아니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죽음의 질을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질병을 질문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혜안을 얻을 수 있는지 이야기해볼 때다. 동일한 질병도 사회적 준비와 개인의 지혜에 따라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사소하고 평범한 질병 이야기를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32
따라서 건강만을 중심에 두는 것은 아픈 몸이 평등하게 함께 사는 과정을 방해한다. 아픈 몸이 동정과 시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의 주체로 온전히 살아가려면 건강한 몸이 중심이고, 아픈몸이 주변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을 선으로 규정하고, 질병을 절망과 악으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 사이에 발생하는 위계가 해체될 때, 아픈 몸도 차별과 배제 없는 삶을 누릴수 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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