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해협을 건널 때 나는 스텔라에 대해 생각했다. 그 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가 되살아나는 것은 현재가 깊은 강의 수면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흐를 때뿐이다. 그럴 때면 수면을 뚫고 내려가 밑바닥을 마주한다. 그런 순간에 나는 무한한 충족감을 느낀다. 내가 과거를 생각하고 있다는 충족감이 아니라, 그 순간 내가 현재에서 더없이 충일하게 살고 있다는 충족감이다. 과거에 떠받쳐진 현재는 여타의 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너무 가까이서 압박하는 현재, 카메라의 필름이 눈에만 닿을 때의 현재보다 수천 배 더 깊기 때문이다. - P58

아버지를 묘사하는 글을 쓰려다 보면 지루해진다. 그 유형이 너무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그 유형에는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나 특이함, 로맨스가 없기 때문이다. 이 유형은 강판 조각처럼 색깔이 없고 온기나 입체감도 없으며 정밀하고 뚜렷한 선들이 무수히 그어져 있을뿐이다. 내 상상력을 사로잡을 틈새나 구석이 없다. 내 마음을 움직일 나뭇가지 하나 내보이지 않는다. 그 유형은 완전히 구비되어 있고 완벽하며 이미 묘사되어 있다. 물론 나는 그들에게 감탄한다고 속으로 말한다. 나아가 그들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정직성, 진실성, 지성에 경탄한다. 그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 명확하게 내 지각에 박혀 있기에, 그들과 같은 방에 있으면 내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안다고 느낀다. - P74

그런데 아버지는 함께 살기에 불쾌하다는 점이 주위에 해가 된다는 생각을 결코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격분해서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버지는 무의식적으로 "이건 내 천재성의 증거야."라고 말했고, 칼라일을 끌어들여 그 생각을 확인하고는 거친 분노에 탐닉했던 듯하다. 천재적인 남자는 분노를 분출한 후 애처롭게 사과한다는 것이 그 인습적 패턴의 일부였다. 아버지는 아내나 누이가 자신의 사과를 당연히 받아들일 테고 자신은 천재성 덕분에 양민 사회의 규율에서 당연히 면제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과연 천재적 인물이었던가? 아니, 슬프게도 그렇지 않았다. "괜찮은 이류일 뿐이지."라고 아버지는 프리섬의 크로켓 구장 주위를 거닐다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과학자가 되었어도 잘해 냈을 거라고 말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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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의 의미가 완전히 이해되는 것 같았다. 투명해진 단어들은 더 이상 단어가 아니었고, 너무 강렬해진 나머지 그 단어들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그 단어들이 내가 이미 느끼고 있는 감정을 밝혀 주는 것 같아서 어떤 단어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느낌을 설명해 보려 했다. "이 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아."라고 어설프게 말했다. 바네사는 잊었을 것이다. 내가 그 뜨거운 풀밭에서 느꼈던 기이한 느낌, 시가 현실화된다는 느낌을 누구도 그 말에서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이 그 느낌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그 감각은 내가 글을 쓸 때 이따금 느끼는 것과 일치한다. 펜은 향기를 띤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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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니 그 감정은 강렬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신체의 어떤 부위에 대한 감정 - 그 부위를 만지면 안 되고, 그것을 만지도록 내버려 두는 건 잘못이라는 - 이 본능적인 것임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는 버지니아 스티븐이 1882년 1월 25일이 아니라 수천 년 전에 태어났고, 수천 명의 여자조상들이 이미 습득한 본능에 처음부터 맞부딪쳐야 했음을 입증한다. - P14

나는 그것을 말로 옮김으로써 실재로 만든다. 그저 말로 옮김으로써 완전하게 만든다. 이 완전함은 그것이 내게 상처를 줄 힘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말로 옮김으로써 고통을 없앴으므로 나는 단절된 부분들을 결합하면서 큰 기쁨을 얻는다. 이것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일 터다. 그것은 글을 쓰면서 내가 무언가의 속성을 발견하고 어떤 장면을 제대로 살려 내고 어떤 인물을 결합할 때 느끼는 환희다. 여기서 이른바 나의 철학이랄까, 어떻든 한결 같은 생각에 이른다. 즉 목화솜 뒤에 어떤 패턴이 숨어 있고, 우리 즉 모든 인간은 그 패턴에 연결되어 있으며, 온 세계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이고, 우리는 그 예술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 P19

1895년 5월 5일에 그것이 입증되었다. 그날 이후로 가족의 생활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새벽에 나는 놀이방 창문에 기대 서 있었다. 6시쯤이었다. 뒷짐을 진채 고개를 숙이고 거리를 올라가는 시튼 의사가 보였다. 날아다니거나 내려앉는 비둘기들이 보였다. 고요, 슬픔, 되돌릴 수없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고 푸르른 봄날 아침이었고 사방이 정적에 잠겨 있었다. 그 기억이 모든 것이 끝났다는 느낌을 되살린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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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의 "헝거"에 영감을 받아 CBS 팟캐스트로, 다시 두 권의 책으로 나온, 100명에 가까운 여성들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어릴 때 성추행이나 유사강간을 당하는지(아버지, 이모부, 사촌오빠, 아파트 경비원 등등의 인간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기 몸을 부정당하고, 외모에 대해 품평을 당하고, 꾸밈을 강요받는지.. 남성들에게는 특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쩌면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나도, 내 지인 중에도 유사한 경험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엉덩이에 손대는 건 얘기할 것도 없다.


인터뷰를 한 많은 분들이 모두 다 치유되어, 문제가 해결되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너무 좋다. 아직도 자기를 부정하고, 외모에 신경 쓰고, 기억으로부터 고통을 느끼고,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여 현재의 불완전한 감정과 상태를 말하고, 계속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알아가고 나아가고 공부해 가는 것.


김인선과 봄날의 책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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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5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0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3-05 21: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치유가 되진 않을 거 같아요. 그냥 덮어놓고 사는 거. 나이 들었으니 티내지 않고 사는 것일뿐. 정말 좀 이런 일들이 사라졌음 좋겠어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2-03-06 00:42   좋아요 1 | URL
저도 덮어놓는 성격인데.. 이렇게 드러내는 용기가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수이 2022-03-05 2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추행 당하고 그런 건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중학교3학년때 버스 안에서 사람들 가득한데 교복 치마에 대고 계속 성기 문지르던 40대 아저씨 얼굴을 아직까지 잊지 못합니다. 엉엉 울면서 문 근처로 갔다가 쳐다보니 너무 얌전한 얼굴로 악마처럼 미소 짓던 그 얼굴이 이 나이 될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내려서도 엉엉 울면서 쳐다보니 여전히 웃고 있더라구요. 아 정말 지금 생각하니 죽이고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2-03-06 00:39   좋아요 1 | URL
저도 어릴 땐 생각하지 못했는데, 커서야 그게 성추행이었구나 하고 인지하게 된 기억들이 있어요. 세상에 죽일 놈들이 너무 많아요;; 어린 vita님도 많이 놀랐겠어요..
 

주의 정치평론가인 애너벨 크랩이 호주에서의 아내와 남편, 여성과 남성이 일과 가정에서 직면하는 차별에 대해 다양한 사례, 통계, 실험, 연구 조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심리학 책에서 볼 수 있는 통쾌하거나 뜻밖의 결과를 보여주는 통계나 실험의 반전 같은 건? 없다. 모든 통계와 실험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누구에게? 남성에게만 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성에게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일하는 엄마와 일하는 아빠에 대한 편견, 결혼한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여성, 결혼한 남성과 결혼하지 않은 남성에 대한 편견. 회사의 책임있는 직책의 담당자를 뽑는다면 누구를 추천하겠는가? 모든 조건이 동일한 남성과 여성 중에서, 또는 여성이 약간 더 탁월한 조건인 경우? 그 남성이 결혼한 경우와 아닌 경우? 그 여성이 결혼한 경우와 아닌 경우? 생각하는 바 대로다. 나도 당연히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안전한 선택을 하겠지. 내가 여성을 뽑는다면? 사람 볼 줄 모르는 여성이 되겠지!


결혼한, 자녀가 있는 남성이 '아내'라는 든든한 자원을 가짐으로써 얼마나 많은 '결혼 프리미엄'을 가지는지 대한 통계도 많다. 결혼한 남성이 직장에서의 연봉도 더 높고, 승진도 더 유리하고, 사회적 신망과 기대도 더 높다. 심지어 모든 연구가 '결혼하지 않은 남성'보다도 유리하다. 하지만 반대로 가정에 충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남성이 처한 상황도 많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내지 못하는 아빠들, 일터에 갖혀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빠들, 전업주부가 된 남편에 대한 부정적 시선들.


애너벨 크랩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일터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가정과 일터를 연계시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만 패자라고 가정해버리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패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일터로 진출하면서 발생하는 일과 가정에서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여성을 '배려'하는 할당제나 차별 철폐 조처 같은 정책만을 고민하는 것은 절반의 해결책이며, 남성에게도 일터에서 가정으로 진입할 수 있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아내'가 필요없는 정책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온 노르웨이의 정책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노르웨이는 1977년부터 남성들도 유급 유아휴직을 사용할 있도록 하였으나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 3% 밖에 되지 않자, 1993년부터는 표준 유급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아빠여야만 수당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법으로 아버지가 더 적극적인 부모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더는 남성들이 자기 가정의 집안일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아이의 "보모 노릇"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


표지에 있는 "모든 문제는 가사 노동에서 출발한다!"는 강렬한 문제의식, 이 책을 읽기 전 나조차 남성들이 가사 노동을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가사 노동 불평등의 문제를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나에게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또 한 꺼풀 벗기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이론적인 설명보다 저널리스트의 글 답게 다양한 사례들에 대한 설명이 많고, 저자 본인이 일과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웃픈 상황들, 서글픈 현실에 대한 때로는 독설과 위트가 담긴 문장들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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