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 철학 입문 -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김은주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즘도 모르고 철학도 모르는 입문자를 위한 정말 정말 좋은 책이다! 항상 입문서라고 구라치는(?) 책 읽고 좌절한 나. 이 책은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오드리 로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구어를 풀어서인지, 오타가 많은 것이 유일한 단점. 이 책은 따로 정리해야지 김은주 샘도 계속 읽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여러 번 반복해서 확인해온 것처럼, 서구 철학의 역사는 차이를 단순한 대립관계로만 이해하죠. ‘차이는 불온한 것이다‘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차이는 대립에서만 생겨난다는 전제 때문이에요. - P375

차이에 대한 이런 사고에는 ‘주체는 동일하다‘라는 전제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비주체였던 사람들이 나도 주체가 되겠다고 저항을 할 경우에 처하는 문제점을 한번 보죠. 비주체가 주체가 되는 과정은 주로 ‘우리가 모두 동일하다‘고 하면서 정리를 해왔죠. 그런데 오드리 로드는 그런 입장에 반대하잖아요. 비주체였던 사람들이 우리를 비주체로 만든 사람의 방식처럼 주체가 되겠다고 하는 것, ‘우리는 동일하다‘라고 하는 건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왜? 내가 주체의 자리에 가겠다는 방식 안에서 주체의 동일성을 선취하겠다고 하면, 우리를 비주체로 몰았던 사람들처럼 어떤 존재들을 또 비주체로 만드는 형태들이 되니까요. - P380

대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주체가 되는 것들을 막아버린다는 거죠. - P383

그래서 저는 로드의 이 문장이 흥미로웠어요. 절절하기도 하고요. "지극히 미국적인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주변을 경계하며 살아야 했고, 억압자의 언어와 태도에 익숙해져야 했으며, 심지어 때로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착각 속에 그들의 언어와 태도를 차용하기도 했다." - P384

차이는 이분법으로 볼 게 아니라는 거예요. 차이는 그들이 갖고 있는 특성일 수도 있고, 각각 다 차이가 나는 특성들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걸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고요. 이 차이를 차별로 만들고, 차이를대립이라고 생각했던 소위 동일한 주체들이 사실 자기도 하나의 차이 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이 차이들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들이 알려고 해야 되는데 거꾸로 알려달라는 것도 문제라는 거고요. 차이를 분열로 만드는 건 차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 너희들 탓이라는 게 로드가 말하려고 하는 바인 거죠. - P391

차이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지 말자는 것, 차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서구 철학, 백인들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오드리 로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죠. 그리고 차이를 분열로 책동하는 전제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차이 자체가 분열이 아니라 차이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분열을 일으킨다는 게 차이에 대한 오드리 로드의 새로운 생각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차이를 우리가 재정의하겠다‘라고 나아가는 거죠. - P391

자기의 특권을 인식하기. 나를 정상성에 놓고 말하는 게 아니고, 내가 백인이라는 특권, 내가 가진 위치의 특권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리 잡는 것. 이게 되게 달라요. 보통 우월성을 앞세워서 이야기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오드리 로드는 사실 그 우월한 자들은 우월성을 정상성이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라고 호명해요. 그런데 특권을 인식한다는 건, 내가 ‘모든 인간‘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특권을 지닌 존재로서 이야기한다는 거죠. 자신을 ‘모든 인간‘이라고 호명하지 않고. - P393

특권을 가졌다는 걸 인정하기. 자기 특권을 인정함으로써 특권에 따른 이익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특권이 주는 이익들이 있잖아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 여러 가지를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거죠.
차이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를 설명할 때 자신의 문제점을 소위 억압자들에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자기의 역량을 길러내는 것에 힘쓰라고 하는 거예요. 동시에 억압자(로드는 억압과 피억압이라는 아주 단순한 구도로 이야기를 시작하니까요)들은 피억압자들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말고, 네게 특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세계를 이해하라고 하는 거죠. - P395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가부장제를 해체시키고 가부장제라는 구조의 부정의한 억압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 다양한 차이들의 맥락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앞선 페미니스트들의 가부장제에 대한 분석을 진짜로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페미니즘이 가진 급진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급진적radical’라는 말이 뿌리라는 말에서 왔잖아요.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가 어떻게 유지되고 공고화되는지 기초적 이해를 제공한 건 사실이에요. 이들을 우리가 래디컬하다고 하는 건, 이들이 근본을 봤기때문인 거잖아요. 베티 프리단은 그것이 신화로 작동한다는 걸 봤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을 성 계급이라고 호명할 만큼 재생산제도라는 게 여성에게 얼마나 억압적인가를 보면서, 그 안에 깃든 섹슈얼리티의 문제 같은 근본성을 봤어요. - P405

근본적인 차이, 근본적인 문제, 구조를 혁파하거나 여성을 종속에서 끊어내려면 가부장제가 다양한 차이들의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검토할 수 있도록 차이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전략을 가져와야 하는데, 이 모든 경험을 동일하다고 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주인의 집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반대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구조를 유지하는 데 우리도 기여하는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P406

로드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사실은 이 구조를 유지시키는 위치에서 우리가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적어도 동일성의 정치는 아니어야 된다는 이해인 듯 싶어요. 동일성의 정치에서 차이의 정치로 넘어간다면 이 구조를 유지하는 데에서는 우리가 벗어날 수 있다는 거죠. - P409

그리고 이 차이를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이 감정이 가진 원천을 알아보는 것이고요. 나아가 이 감정을 새로운 힘으로 변환시킬 때, 내가 받는 차별은 내가 가진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소멸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이 주변과 중심이라는 경계들도 붕괴될 수 있다는 전망을 그리는 거죠. - P426

저는 근대적 도덕 주체, 실천 이성의 주체를 가장 최선의 윤리적 가치로 삼는 논의에서 우리가 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윤리적 전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요. 페미니즘 역시도 윤리적 전회가 필요하고요. 페미니즘의 정의와 윤리가 근대의 정의와 윤리를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페미니즘은 윤리적 전회를 일으키고 새로운 가치들을 제안하기도 했죠. 근대 도덕의 원천은 이성에 있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페미니즘은 감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들과 거기에 필요한 중요한 가치들을 제안해요. 하나는 차이와 타자성의 존재고 또 하나는 연결성, 관계성이라는 윤리적 가치죠. 로드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에서 제안하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들이에요. 그리고 로드는 분노나 혐오가 나쁘다고, 그것을 버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 P432

저는 오드리 로드의 이런 태도가 진실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공통적인 어떤 것들을 원래 갖고 있어서 하나가 아니라는 것.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를 통해서 말할 수 있고, 나와 상대방이 말을 건네고 말을 들음으로써 어떤 차이를 조율할 수 있는, 그 차이를 힘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세대와 이야기할수 있는, 어떤 페미니즘적 방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제2물결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여성들 간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는 인식론적 틀거리에서 차이를 존재론적인 힘, 즉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우리 존재를 새로 만들어내는 힘으로 여기며 다른 정치를 주창한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모색하는것으로 나아갑니다. 저는 이것이 제2물결 페미니즘의 최종적 성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4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시 독서는 도서관에서 해야~ 집중 잘된다!

학교 안가는 둘째랑 오전 도서관 독서.
3시간 있다 가자고 했으나 2시간반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

오드리 로드 멋지고, 로드 왜 멋진지 쉽게 설명해주는 김은주 샘도 멋지고.
도서관에 있는 김은주 샘 ‘생각하는 여자는~’도 빌려왔네.
엄마 책 안빌려간다며??
이건 얇아~(그치만 죄다 어려운 언니들이다:;;)

남성의 반대항으로서 여성은 우선 흔히 여성의 생물학적 성인 섹스의 문제와 사회적 성별의 측면에서 남성성의 반대항인 여성성이라는 젠더를 통해 제기됩니다. 제2물결 페미니즘은 섹스와 젠더의 관계가 인과적이라는 사유를 거부하는 거죠. 이러한 논의의 과정은 여성들의 다양한 차이를 사유하는 계기, 가부장제의 구조를 빗겨갈, 벗어날, 그로부터 무관한 ‘여성‘에 대해 사유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제2물결 페미니즘에서 이러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고요. - P306

그리고 우리의 가족은 백인들과 좀 달라. 백인들은 핵가족 단위로 살지만, 우리는 남편이 집을 나가버리는 경우도 많고, 가족을 책임지지 않아. 빈곤층이 많으니까. 흑인 엄마들은 강인해질 수밖에 없어. 남편들은 다 집을 나갔지만, 서로가 서로의 아이들을 키워줘. 그리고 우리는 남편의 여자이기도 하지만, 여자들의 여자이기도 해. - P307

그러니까 이 차이의 문제라는 건, 남성과 여성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에요. 여성을 섹스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사회적 성별인 젠더로 이해하고, 이 젠더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서 묻기 시작하는 거죠. 젠더를 구성하는 데 인종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인종이 여성이라는 젠더와 맞물려서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는거죠. 그래서 여성들 간의 차이들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해요. 여성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이고, 여성이라는 말 안에 단수의 여성은 없다는 거죠. - P309

‘여성은 복수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차이는 분열이 아니라 역량, 운동의 역량이다‘라는 거예요. - P312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의제를 성취하려고 할 때는 다름이나 차이를 강조하기보다는우리가 같다라는 이야기를 해야 연대가 된다고요. 그게 흔히 말하는 정체성의 정치죠. 그런데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의 끝에 나오는 오드리 로드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잖아요. 차이는 분열을 일으키는 게 아니고, 차이는 정치의 역량, 힘이라고요. 이게 이후의 여성들간의 차이, 그리고 여성 자신의 내부의 차이들을 페미니즘 정치의 주요한 주제로 삼는 제3물결 페미니즘을 만들어내는 데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 P313

동일성의 폭력이라는 건 자기와 동일하지 않은 존재를 타자화시키는 거예요. 나를 하나의 주체로 만들 때, 나는 다르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무시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이래‘라고 해버리는 걸 타자화라고 해요. 이게 바로 동일성의 폭력이죠. 그리고 이것이 정체성의 정치와 연결돼요. 정체성의 정치에서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들이 생겨요. 정체성의 정치가 무언가를 하나로 묶어버리게 되면, 그 주위에 외부가 생기고 그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일들이 생기는 거예요. - P314

누군가를 타자화시키고 동일성의 폭력을 겪어내는 방식으로 세계를 바꾸겠다고 한다면 세계가 바뀔까를 묻는 거예요. 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런 거예요. ‘정체성의 정치를 한다고 해서 실제로 연대가 될까‘하는 문제도 있지만, ‘우리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그 제도가 유지되는 방식을 대안과 비전 없이 똑같이 따라야 되느냐’는 거예요. - P315

오드리 로드는 평생을 차이의 문제에 천착했어요. 로드가 천착한 차이의 문제 중 가장 중요한 사고 중 하나는 여성의 섹습얼리티를 이성애로 단정 짓는 사고이기도 했죠. 사실상 가부장제 - P318

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것 중 하나가 이성애 섹슈얼리티를 정상 섹슈얼리티로 여기는 규준이기도 하니까요. 가부장제는 생식하는 섹스만이 섹스라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성애 섹스를 정상적 섹스로 보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보는 거죠. - P319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국내 번역본에는 사라 아메드saraAhmed의 추천의 글이 실려 있는데요. 사라 아메드는 지금 아주 중요한 페미니스트죠. 퀴어 현상학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특히 페미니스트한테 중요한 건 연대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럼 뭐가 중요하다고 하느냐면, 불화래요, 불화. 싸우는 거요. ‘난 너랑 같지 않아. 너랑 싸워도 상관없어’ 이런 거요. 불화하면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 P319

정체성의 정치학은 우리가 같다는 걸 계속 확인하는 작업들을 해요. 차이의 정치학은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과제로삼는 거예요. ‘다르다‘라는 건 목소리가 별로 없다는 뜻이에요. 왜?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이 다른 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북돋는 게 정치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차이의 정치학이라는 거예요. - P320

그런데 그것보다는 권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권력을 생산해내는 것이 차이의 정치의 목표인 거죠. - P321

권력이라고 하면 탈취의 의미, 빼앗고 빼앗기는, 소유의 의미로 생각하죠. 그런 권력이라는 건 한정적이에요. 그런데 미셸 푸코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권력은 생산되는 것이라고도 해요. 권력을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낼 수 있는 힘으로 이해하고, 주변화된 이들이 삶의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권력의 생산이라고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그럴 때 이 주변화된 사람들이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정치라면요. 이렇게 이해할 때. 로드 자신이 직면했던 것들을 바꾸는 작업의 출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언어를 갖는 것, 목소리를 갖는 것이겠죠. - P321

그런데 로드는 침묵을 하든 침묵을 깨든 억압의 구조는 상관 없이 계속 작동할 거라 말해요. 그러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고, 설치고 떠들어야죠. 침묵하며 살지 말고, 이 한 번밖에 없는 삶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꿔나가자는 거죠. - P323

페미니스트들한테 참 중요한 게, 이거예요. 언어, 목소리. 페미니스트들은요, 실은 폭력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페미니스트들이 과격하다고 하는데, 말은 과격하죠. 왜 과격할까요? 말이 없던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 과격해요.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사학이 없어요. 페미니스트들은 항상 언어와 목소리를 이야기했어요. 왜? 자기 목소리로 말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페미니스트들의 말은 언제나 더듬는 말이었죠. ‘너 조리 있게 말을 해봐. 울지 말고‘ 이런 말들은 폭력이에요. ‘내가 알아듣게 네가 말해야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게 말을 해야 한다는 건 두 번째 문제예요. ‘어버버’ 하면서 말하는 거 있잖아요. 울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는 거요. 사람들이 흔히 ‘비이성적‘이라고 욕하는 방식으로, 페미니스트의 말하기는 대체로 그래요. 몸으로 말하기. 몸으로 펼쳐내기.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 언어와 목소리를 갖는 게 페미니스트의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에요.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의 언어와 목소리가 폭력적인 거죠. 동일성의 폭력.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주려고 하죠. ‘네가 나를 설득해봐‘ 하는 게 아니고요. 이게 페미니스트들이 지닌 중요한 태도라고 저는 생각해요. - P325

흔히 차이의 정치학을 분열의 정치라며 비난하는데, 정치의 목표가 달라요. 정체성의 정치학은 단결을 목표로 하지만, 차이의 정치학은 차이 나는 존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목표예요. 그렇죠? - P327

그런데 차이의 정치학은 우리가 약자일 수 있는 가능성을 노출하고, 우리가 약자임을 인정하는 게 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데중요한 요소라는 걸 이해하는 일 같아요. - P328

우선은 내가 차이를 지녔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면, 시야가 넓어져요. 그건 나만이 차이를 가진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다채롭게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거예요. - P330

보편적이라는 건데, 공자가 왜 보편적이죠? 2,500년 전 중국 사람이 하는 말인데. 예수의 말씀이라는 것도 중동 지방에서 2,000년 전에 했던 말씀인데 그걸 왜 보편이라고 하나요.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사람들을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어떤 흑인 여성이 말하는 걸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하는 게 말이 되냐는거죠. 그 안에는 이미 편견이 있는 거예요. 누구를 보편으로 삼고, 누구를 보편 인간으로 삼는 거요. 사실 그들도 특수한 것일 수 있는데 왜 보편으로 삼느냐는 거죠. - P333

그래서 이 차이의 정치학은 차이를 분열로 이해하거나 연대를 해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연대와 새로운 이해를 마련할 수 있고, 다양한 차이를 지식을 넓혀가는 자원이자 원천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 P336

그러니까 ‘차이를 이야기해서 같이 싸울 수 없다‘가 아니라 ‘차이를 이야기함으로써 같이 싸울 수 있다라는 건데, 이게 굉장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에요. - P338

저는 페미니즘의 중요한 성찰 중 하나가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봐요. 바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섹슈얼리티를 주체화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거죠. - P341

그런데 이게 왜 잘못 생각하는 거냐면, 그 섹슈얼리티는 가부장제가 말한 섹슈얼리티이고, 생식이라는 의미의 섹슈얼리티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해야 돼요. 그들이 말하는 섹슈얼리티가 틀려먹었다는 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래서 로드가 섹슈얼리티를 활용하고 섹슈얼리티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고 하는 겁니다. 로드가 강조하는건, 섹슈얼리티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활용되지 못한 힘이자, 무엇보다도 여성적이며 영적인 지평에 있는 큰 힘이라는 사실이에요. - P343

뭐냐면, 포르노그래피의 핵심은 성애적 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그런 행위를 특정한 응시와 시선에 포박시키고 그 응시의 보편과 일관성 속에서 기호로 읽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애적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행위를 일반화하고 보편화하고 응시화하면서 대상화시켜버리는것, 그게 정말 문제가 되는 거죠. - P350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페미니스트의 상상력은 이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게끔 매일매일의 우리 삶의 조건들을 변화시키는 것들이거든요. 미래의 좋을 어떤 날들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요. ‘미래의 어떤 날에 이게 다 이루어질 거야‘가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충만한 삶을 지향해요. 그게 무슨 말일까요. 저는 페미니스트의 삶이 그런 것 같아요. 고통스럽죠. 왜죠? 안 보이던 게 보이니까. 그런데 충만해요. 그로 인해서 열린 감각들로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활력을 얻을 수 있고요. - P352

우리가 가진 복합적 감정들 가운데 부정적인 것이나 고통에만 민감하도록 길드는 게 아니라, 그 안의 기쁨들을 수용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여성들이야말로 더 긍정해야 된다는 거죠. - P355

이게 왜 중요하냐면, 차이의 정치를 하는 데 외부의 힘을 받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자기를 긍정하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이 차이를 긍정하기 위해서요. 고통 속에서 삶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저는 로드가 섹슈얼리티를 말했을 때, 이것은 ‘우리가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로드는 차이의 동력으로서 성애와 섹슈얼리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섹슈얼리티와 연결된 신체의 중요성을 페미니즘의 의제나 논의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신체의 억압과 대상화에 대해이야기하고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문제로 삼는 거죠. - P356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라는 글은 로드의 가장 유명한 글일 거예요. 저는 로드가 참 멋있어요. 로드는 흑인이잖아요. 흑인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노예였고요. 그런데 ‘주인‘이라는 말을 써버리잖아요. 얼마나 도발적인가요? 노예였던 자가 주인을 호명하고 주인의 도구로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당당함. 경멸의 표식을 가진 자가 자기에게 경멸의 표식을 준 자들의 이름을 호명하죠. 자기에대한 경멸이 있었다는 걸 애초에 상기시키는 거죠. 그런데 그걸 역량으로 삼아서 나는 다르게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주 멋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 P357

아그래서 로드는 여성들 간에, 여성들이 차이가 날수록 상호의존해야 한다고 해요. 신기하지 않아요? 차이가 날수록 상호 의존해야 한다는 건 차이가 나는 존재들이 서로에게 역량을 불어넣 넣어주는 것empower도 중요하고, 그 차이 나는 경험들에 대해서 열려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로드는 그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싸우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혜를 얻는 방식을 강조하는 거죠. - P365

그래서 로드는 말합니다. 이 "차이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직면했을 때, "비로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된다고요. - P37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2-05-06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좋아해요^^* 책에서 본<여성성의 신화>랑 <시스터아웃사이더>도 꼭 읽고싶어요!!

햇살과함께 2022-05-06 17:02   좋아요 2 | URL
저 미미님 읽는 거 보고 구매~
이 책 진짜 ‘철학’이란 제목 들어가서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이해하기 쉽게 반복해서 잘 풀어주는 것 같아요.
7장까지 다 읽고 1장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해요!
 

파이어스톤은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한데, 《성의 변증법》을 이해하는 데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마르크스Karl Marx는 경제 변천과 발전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로 이해하죠. - P240

특히 마르크스는 노동자와 자본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근본적인 모순이 끝나면 이후에 다른 문제들은 점차 해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파이어스톤은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이런 분석이 틀렸다는 거예요. - P241

‘여성이여, 당신은 계급이다! 그러니까 계급의식을 각성해서 혁명을 일으키자!’ 이게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책 《성의 변증법》의기본적인 내용이에요. - P243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와는 다르죠. 《여성성의 신화》가 개인의 삶들을 살피는 이야기라면, 파이어스톤은 ‘여자로 태어났으면 계급의식으로 각성하라‘라고 하는 거죠. 《성의 변증법》은 각성을 촉구하는 책이에요. - P244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을 차용해서 여성의 존재론적 지위를 분석하는 거예요. 베티 프리단이 개인으로 보는 것에 그쳤다면, 파이어스톤은 계급으로 접근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 착취와 피착취가 일어나는가를 분석하는 거예요. - P246

그리고 자본가 입장에서 노동자 인건비는 그냥 비용이에요. 비용처리해야 되는 항목. 형광등 값이랑 똑같은거예요. 어떤 공장에서 기계 하나 감가상각해서 낡은 기계 바꾸려는 것처럼 계산으로 처리되는 거예요.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우를 안 하니까 소외가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자본가 개인이 못돼 처먹어서 소외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 구조가 착취를 발생시킨다는 게 핵심이에요. - P247

우리가 어떤 문제를 구조로 본다는 건, 한 개인의 인격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노동자-자본가 간의 계급 모순과 투쟁관계 역시 그 개인들의 사이가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 P247

여성을 착취해야만 사실상 이 계급관계가 유지되는 거예요. 그래서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약간 분석을 했죠. 이 재생산 문제가사회 안에 있고, 여성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게 나와요. 이러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불충분한 시도였다는 것이 파이어스톤의 평가고요. - P249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서구 문화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문화 구조 그4 자체,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 구조 자체까지도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진화를 통해서 성차별이 이렇게까지 발전해온 거라는 거죠. 그래서 자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분석 방법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해요. - P252

대파이어스톤의 성 계급은 이후에 비판도 많이 받죠. 성 계급을 생물학적으로만 묶을 수 있느냐는 식의 비판들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는 거죠. 지금도 가족을 아주 중요한 단위로 삼고, 한국 사회도 가족 중심 사회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이 세계는 우리에게 투쟁의 공간이고, 우리가 위안을 얻을 곳은 가족밖에 없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가족이 위안의 공간이라는 발화를 누가하는 거죠? 가족은 위안의 공간이고, 가족은 나를 돌봐준다는 이야기를 여자가 할까요, 남자가 할까요. - P261

성추행하고 나서 ‘딸 같아서 만졌다‘라고 하는 것도 생각해보세요. 그럼 딸은 지 멋대로 만질수 있다는 건데, 그 자체가 딸의 몸이 가부장의 것이라는 생각인거잖아요. - P262

낙태는 왜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걸까요. 여성들이 낙태할 권리를 갖게 된다는 건 재생산의 권리가 여성의 권리로 넘어온다는 거고, 그러면 가부장제가 흔들리는 거죠. - P264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섹슈얼리티를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보는 점에는 매우 동의한다고 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페니스 선망은 성기가 없다고 질투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은 권력에 대한 질투, 가부장제 권력과 승계에대한 묘사라는 점에서 상당히 들을 만한 이야기라고 봐요. 왜냐하면 파이어스톤은 어떻게 여성이 매우 불평등한 구조 안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계급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줘야 하잖아요. - P269

사실상 근대적 의미의 가족은 자본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요. 부권제 역시도 부계 상속을 통해 유지된다는 점에서 사적 소유의 재산권과 떼려야 뗄 수 없어요. 확실히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재생산을 담지하는 사회경제적 최소 단위를 가구와 일치하는 가족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 P275

그런데 모성과 모성애는 또 구별되어야 하잖아요. 모성은 이런 거죠. 여자의 생식 능력으로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으면 여러 몸의 현상이 벌어져요. 젖이 나올 수 있고 자기가 낳은 존재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기도 하죠. 그런데 여기에 애착관계만 있는건 아니잖아요. 복합적이죠. 그러니까 모성은 생리 능력에 수반되는 어떤 현상들이에요.
그런데 애의 문제, 애정을 갖는 문제, 친밀성의 문제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부성과 부성애가 다른 것처럼 모성과 모성애도 다른 거죠. 특히 모성애라는 말 자체는, 또 한번 강조하지만 핵가족의 산물이에요. - P281

이 아동기의 숭배를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들의 양육과 모성애라는 신화인 것이죠. - P289

그리고 아동의 순수함과 모성애의 지극함은 결합되어 가부장제를 지탱합니다. - P290

제 생각에는 여성을 성계급으로 모이게 하는 것보다 여성을 하나의 성 계급으로 모이게끔 하는 장치들이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노출시키는 게 파이어스톤의 정말 중요한 업적이라고 봅니다. 이 장치들을 하나씩 해체하자는 게 상당히 혁명적인 결론인 것 같아요. - P294

가족, 생식, 섹스, 친밀감, 섹슈얼리티 같은 것들이 일치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걸 우리가 인정해야 되는 것 같아요. - P295

이걸 "성, 연령, 인종 구분과 권력심리의 문화적 소멸"이라고 해요. 계급으로서 성sex이 없어진다는 건, 간단히 말하자면 성 구분이 없어진다는 거죠. 성 구분이라는 게 계급이고, 그게 불평등 구조를 만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파이어스톤을 따르면 성 계급이 사라진다는 건 성 구분이 없어진다는 거고, 즉 섹스‘들‘ 혹은 n개의 성이 된다는 거겠죠.
연령이나 인종의 구분도 사라지는 거고요. - P297

그리고 삽입 중심의 섹스만 섹스로 이해하는 것, 즉 모든 섹슈얼리티 활동들을 재생산, 생식에만 몰두하게 하거나 그렇게만 이해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생각들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 P3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