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리 다리외세크 <암퇘지>
영화 <죽여주는 여자>
소설 버지니아 울프 <파도>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마리 다리외세크Marie Darrieussecq의 소설 《암퇘지Truismes》는 향수판매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이 점차 돼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 P119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보일 만큼 살이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신이 심하게 살찌며 변신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주인공은 계약서를 바라보며 매니저의 성추행을 받아들이고, 향수 가게 손님들에 대한 ‘특별한‘ 마사지를 넘어 성행위 요구까지 수용하면서 점점 돼지로 변해간다. 돼지가 되어갈수록 주인공은 말을 잃어간다. 말을 하려고 해도 혀가 굳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를 잃어가고, 그렇게 생각도 잃어간다. 먹고 자고 섹스하는 생각만 한다. 가끔 다시 인간이 되면 수치심이 밀려온다. 그는 점점 잃어가는 언어들을 붙들고 글을 쓴다. 이 소설은 돼지가 쓴 소설이다. - P120

소영은 살인하지 않았다고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는다. 앞서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진실? 사람들은 진실 같은 거 궁금해하지 않아. 다들 보고 싶은 걸 보려고 하지"라고 말했듯,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주었다. 진실을 위해 굳이 나서지 않았다. 이는 아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품위유지일지도 모른다. 소영이 담배를 피우고 초를 켜는 행위는 그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자위행위인 동시에 품위유지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 P132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나란히 서 있지만 각자의 정체성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한다. 여성은 작가로 미술관에 들어가기보다 남성 작가의 작품 속에서 벗은 몸으로 미술관에 들어가기가 더 쉽다. - P141

돌아다니는 여성을 향한 길거리 성희롱은 이런 의식이 반영된 태도다. 돌아다니는 여자는 침범해도 된다는 생각에 유혹도 아닌 희롱이나 추행을 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몸을 부비고, 따라오고, 귀찮게 말을 걸며 신상을 캐묻는다. 이러한 길거리 성희롱이 ‘문제‘임을 인식한 프랑스에서는 법적 개입을 하기로 했다. 제도적 개입이 가져올 실효성과 개입의 정당성에 대해 의구심은 있으나, 이를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성희롱과 성추행 없이 길을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만 있어도 일상의 삶의 질이 얼마나 획기적으로 변할까. - P148

성인 사이트를 가장한 성범죄 사이트인 ‘소라넷‘이 무려 17년 동안 있었다고 한다. 회원 수는 100만 명이 넘었다. 이 사건을 보도하며 JTBC는 "소라넷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면서 음지에서 욕망을 채우던 남성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욕망‘, ‘채우던‘, ‘불안‘ ………. 성범죄는 주로 (남성의) 본능과 결부하고, 나아가 이 본능과 행위 주체자를 분리해 남성 또한 ‘본능의 또 다른피해자‘가 된 것처럼 그린다. 남성의 범죄 행위를 표현하는 언어들은 항상 순화된다. - P155

소라넷 폐쇄 논의가 한참 오가자 한 남성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봐야 소용없어요. 풍선효과만 만들어요." 아, 이 말은 얼마나 끔찍한가. 풍선효과? 여기서 강간이 일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저기서 일어난다고? 강간 총량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처럼 여성이 겪는 문제를 자연법칙처럼 여기며 팔짱끼고 방관하는 이들은 강간문화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구성원이다. "모든 강간은 권력의 표현이다."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rniller가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Against Our Will: Men, Women and Rape》에서 한 말이다. 강간은 고대로부터 남성 중심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 P156

혐오의 공식화는 ‘그래도 된다‘는 의식을 정당화하며 슬금슬금 일상에 스며든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피곤한데, 정치인이 앞서서 속마음을 대신 말해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사람들이 많다. 특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진정성을 떠나 정치적 언어라도 제대로 구사하기를 원한다. 페미니즘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일은 그 자체로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위선도 자꾸 연습하면 어느새 태도가 몸에 배어 결국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 - P158

16년 동안 의붓딸을 성추행한 남성은 "의붓딸을 상대로 한 것으로 불특정 3자에게 다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높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작 징역 3년을 받았고 전자발찌도 부착하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일하던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요양보호사들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많은 곳을 선호한다며 "어떤 할아버지들은 기저귀 갈아줄 때 자꾸 보호사들 엉덩이를 만지고 이상한 짓을 해요"라고 한다. "안 끝나요. 여든이 넘어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와중에도 그런 짓을 해요. 죽어야 끝나." - P160

인간(남성)과 인간(남성) 사이의 폭력은 보편적으로 그냥 폭력이다. 하지만 여성을 향한 ‘인간‘의 폭력은 대부분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이라는 별도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가정 문제와 연인 문제라는 사적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다. 폭력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 체계는 이 사적 영역 앞에서, 정확히는 ‘여성이 겪는 문제‘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창으로 여자를 위협한다는 어원을 지닌 ‘위엄 위’처럼, 여성을 짓눌러야 이룰 수 있는 위엄이 남성성을 구성하고 있기에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은 남녀 ‘관계‘의 일환으로 여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비대칭적 구조이고 법, 문화, 논리, 심지어 윤리이며 인간의 도리다. - P165

가정에서, 귀가 중에, 애인과 이별할 때, 마트에서, 직장에서,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여성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여성들이 이 일상의 공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지 말라며 불쾌해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잠재적 피해자‘로 조심하며 사는 습관은 당연한가. 공포의 발생 맥락과 사회가 약자의 공포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지배하는지에 대해 무지하면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쓸모없는 분노만 늘어난다. 여성에게 조심할 것을 강요하는 습관이 바로 공포의 일상적 활용이다. - P166

소설가 김훈은 《남한산성》 100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을 할 수는 있지만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서투르다"고 말했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은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없는 사회에서 남성은 창작의 영역에서나 현실에서나 아무 여자나 그냥 죽인다. 인격이 없는 존재이기에 관계를 끝낼 권리가 여성에게는 없다.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있을만큼, 연인 사이였던 관계가 끝을 보려고 할 때 폭력이 발생하는 일이 잦다. - P170

개성 있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긴 이만희 감독이 1964년에 만든 영화 <검은 머리>는 영화의 미학적 성취와 별개로 성폭력에 대한 당대의 관념을 잘 드러낸다. 폭력 조직에서 ‘보스의 여자‘인 문숙은 어느 날 강간을 당한다. 강간 피해자이지만 ‘다른 남자와 간통을 한‘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지고, 조직의 원칙에 따라 문숙은 ‘처벌‘을 받는다. 보스는 문숙의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도록 지시한다. 이후 문숙은 앞머리를 늘어뜨려 얼굴에 남은 흉측한 상처를 가리고 산다. 또한 강제적으로 강간 가해자와 함께 살게 된다. 이는 여성 주인공의 불행한 신세로 그려지지만, 이러한 ‘문화‘가 여성에게 폭력적이고 착취적임을 비판하는 시각은 물론 담겨 있지 않다. 여성주의 관점으로 작품 앞에 설 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분열은 바로 작품의 미적 매력과 별개로, 여성이 처한 부당한 위치를 모르는 척 지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 P173

루크레티아 Lucretia는 고대 로마시대의 대표적 ‘열녀‘에 해당한다. 고대 로마의 마지막 왕의 아들 섹스투스가 그를 강간했고, 귀족 신분인 루크레티아는 당시 ‘정숙한‘ 여성들이 행하는 가장 윤리적인 선택을 한다. 바로 자살이다. 남편과 가문, 피해자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강간 피해자의 자살은 하나의 도덕규범이었다. 애초에 이 강간은 남편인 콜라티누스와 강간범이자 왕의 아들인 섹스투스 사이의 내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로마는 결혼한 여성들도 애인이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루크레티아는 남편이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정숙’했다. 섹스투스는 이러한 루크레티아를 남편이 없는 틈을 타 협박과 무력을 이용해 성폭행했다. 루크레티아는 피해를 입은 뒤 남편과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복수를 부탁하며 자결한다. 남편의 친구인 브루투스는 앞장서 왕가를 몰아내고 공화제를 실시한다. 브루투스는새로운 로마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래서 루크레티아 강간 사건은 부패한 로마 왕정을 몰아내고 새로운 공화정을 세운 하나의 계기로 여겨진다. - P175

반면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당시 드물게 성폭행 사건을 고소한 여성이다. 아버지는 그를 가해자와 결혼시켜 명예를 회복하려 했다. 길고 고통스러운 재판을 견디며 그는 결국 이겼고, 가해자와 결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성폭행 피해자로 남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남겼다. 17세기에 활동한 젠틸레스키는 오늘날에 와서 더 활발하게 재발견된 작가다. 화가로서 자화상을 남기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Judith Beheading Holofernes〉처럼 남성에게 피해자로 남지 않는 여성의 강렬한 모습을 그렸다. - P177

좌우를 막론하고 사회의 정책을 주도하는 ‘고소득, 고학력‘ 남성들의 가부장적 의식 수준은 심각하다. 현실 정치는 21세기, 가정에서는 19세기, 표현의 자유는 ‘나만’ 미국 기준으로, 밥상은 한국의 전통(?)에 따라, 여성의 몸은 나를 위한 재생산 도구.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굴절시켜 자기 편한 대로 재조립하는 남성들의 좌우합작이다. 이런 의식을 가진 이들이 배웠다는 이유로 요직에 두루두루 있다. 한심한 정책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 P183

여성에게 성관계가 임신,출산,육아까지 고민을 이어지게 만든다면 남성들에게 성관계는 욕구의 주제를 맴돈다. 정작 ‘비도덕’은 여기에 있다. 흔히 성폭력도 ‘남성의 성욕‘의 문제로 접근한다. 성폭력을 공유하던 사이트인 ‘소라넷‘ 폐쇄를 두고 소라넷 지지자들은 음란물을 볼 자유를 주장했다.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남성의 욕망을 걱정하느라 여성의 생명은 뒷전이다. - P185

태아를 함께 만든 남성은 ‘비도덕‘의 화살을 피해간다. 의사와 여성 사이 ‘불법적 거래‘만 남는다. 이 거래에서조차 여성은 의사의 위험수당을 감당하느라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피임, 육아, 낙태가 ‘여성 문제‘가 되는 그 자체가 사회의 비도덕성을 보여준다. 그 남자는 어디에 있나. - P187

17~18세기 영국에서는 여성들의 커피하우스 출입을 금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남장을 하고 커피하우스에 가기도 했다. 커피 한 잔을 공공장소에서 마시기 위해 펼치는 위험한 모험이다. 여성에게 금지하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커피를 ‘보이는 장소에서 마시는 행위‘다. 여유와 쾌락을 느끼는 여성을 금지하는 행위다. - P207

그 자리가 누구의 자리냐에 따라 침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소수자들의 모임 장소는 연대와 사교, 나아가 저항의 공간이다. 모임에서는 관계와 함께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유통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관계와 언어라는 힘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소수자의 장소는 지속적으로 공격받는다. 성소수자들의 경우 많은 시간을 제 정체성을 숨기는데 사용한다. 그렇게 관계 맺기를 방해받으며 고립을 강요당한다.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은 시간의 빈곤과 공간의 박탈을 일상적으로경험한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의 자리,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 문제는 바로 일상에서 박탈당하는 ‘사소한‘ 공간을 둘러싼권리 투쟁이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린다 맥도웰 Linda McDowell은 "장소는 경계를 규정하는 규칙들을 구성하는 권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누가 어떤 공간에 속하는지, 누가 제외되어도 괜찮은지 등을 정해준다"고 했다. 성소수자가 ‘벽장‘ 속에 갇혀 있다거나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있다는 은유도 모두 공간에 빗대어 차별의 개념을 담은 표현이다. - P224

몸을 통한 구별은 차별의 기초를 형성한다. 혐오는 갈수록 오락이 되어간다. 혐오를 ‘표현‘할 ‘자유‘는 소극적 침묵의 도움을 받아 은근슬쩍 만개한다. 차별받는 대상에 대한 의도적 무시가 지속되면서 정말 무지 덩어리가 되어버린 이들과 싸워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자기만의 방‘을 위한 투쟁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 P225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가득한 《파도》는 부유하는 ‘나‘를 정착시키지는 못해도 부유하는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치 여섯 명의 자아로 분열된 버지니아 울프의 영혼이 새겨진 듯한 작품 《파도》. 독백과 독백이 뒤섞이며 삶의 이야기는 직조된다. 출렁이는 의식과 이리저리 왔다 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인간의 삶이 파도와 같다. "너에게 대항하여 나 자신을 내던지리라, 패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으며, 오 죽음이여! 파도는 해변에 부서졌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묘비명은 《파도》의 마지막 문장이다.
여섯 명의 주인공 중 특히 소설가를 꿈꾸는 버나드의 독백은 나와 타자 사이에서 어떻게 뒤섞여 살아야 하는지 갈등하는 모습을 잘 드러낸다. "달에서도 나무에서도 충분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전부이지만, 그러나 그것조차도 잡을 수 없는, 너무도 불완전한,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외로운 나는, 거기에 나는 앉아 있다." - P228

‘미친 여성‘이야말로 가부장제가 자신의 존속을 위해 우선적으로 세울 수밖에 없는 금기인 것이다. 가장 상투적인 일반화의 옷을 입고 실행되는 금기 - 이것이 여성의 ‘미친/들린‘ 상태의 야누스적 얼굴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탄생시켰던 독일어에서 ‘미치다verrückt sein‘는 어원적으로 ‘자리를 약간 이동하다‘를 의미한다. 있으라고 한 자리, 혹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자리에서 조금 벗어난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미친‘ 상태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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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혐오로 맞서면 안 된다"고 말하는 ‘점잖은‘ 태도는 ‘남성혐오‘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만나 꾸준히 여성의 목소리를 ‘정리‘하려고 애쓴다. 이미 존재하는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새로운 언어를 ‘남성혐오‘라고 명명하며, 전자의 혐오보다 후자의 ‘혐오‘가 ‘문제‘되도록 만든다. 이제는 추모 현장에까지 ‘메퇘지들‘이나 ‘메갈년들‘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여자들이 뭘 하기만 하면 ‘메퇘지들‘이나 ‘메갈년들‘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북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종북 빨갱이‘가 튀어나오면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더욱 극심해질 수 있다. 여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 P65

언어의 재개념화는 절실하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광복절은 ‘광복‘과 무관한 날이다. 8월 15일 광복절 즈음 TV에서 "광복절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에요. 우리는 해방되지 않았어요"라는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던 날, 나는 새삼스럽게 충격받았다. ‘일제로부터 해방‘이라는 개념에 대한 나의 무지 때문이었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제’는 끝나지 않았다. ‘공식적‘ 해방과 무관한 이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나, 이것이 바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생각하는 일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여성혐오의 해법으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제안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와 결합했을 뿐 가부장제를 대체하지 않았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임금노동자의 가정을 굴러가게 하는 가정 내 노동자, 곧 부불노동자의 존재는 여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최저임금과 무관하게 집안의 노동은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에 맡겨져 있고, 그들의 무급노동으로 ‘집안‘이 굴러간다. - P66

누군가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주장할 때 그 권리가 자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동안 ‘특권‘을 누려왔다는 뜻이다. 조심과 불편은 정의롭게 분배되지 않았으며, 안전은 특권화되었다. "어디 여자가"라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말은 여성살해까지 그 고리가 이어져 있다. 언어 하나하나를 붙들고 집요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익명으로 사라진 수많은 ‘ㅇㅇ녀‘들의 ‘원통한 혼‘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 - P67

아직도 자궁의 이야기는 부족하다. 수많은 딸들이 자궁에서 사라졌다. 가난한 여성들은 ‘대리모‘라는 이름 아래 인권침해를 견디며 자궁거래에 참여한다. 내가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어떤 자궁의 이야기도 있다. 일제시대에 포르말린 용액 속에 담겼으며 그 후 국과수에서 계속 보관하던 조선 여성의 생식기(2010년에 ‘폐기’되었다), 19세기에 유럽으로 팔려와 사망 후에도 1970년대까지 박물관에 전시된 사라 바트만 Sara Baartman의 생식기. 자궁에는 ‘냄새‘보다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내 방, 짙푸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그림 <아이리스Iris> 덕분에 자궁냄새가 가득하다. - P84

이러한 ‘문화’가 19세기의 관념만은 아니다. 실제로 성폭행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결혼으로 자신의 죄를 ‘책임’지는 형태는 한국에서도 비교적 최근까지 법의 인정을 받았다. 1999년 1월 《인권하루소식》 1291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여고생을 성폭행해 강간치상죄로 기소된 20대 남자가 피해자 부모로부터 "딸이 자란 뒤 결혼하라"는 합의를 받아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7세 여학생을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차에 태워 외진 곳으로 끌고 가 강간한 가해자는 1심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후 항소심에서 위의 합의를 조건으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 P90

그 때문에 ‘미러링‘은 어렵기도 하지만 거울을 비췄을 때 상이 맺히는 부분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수많은 현실은 그 거울 속에 다들어오지도 못한다. ‘남성혐오‘는 형식상으로도 이렇게 불가능하다. 여성혐오의 대칭으로 남성혐오라는 개념을 언론이 적극적으로 유포하지만, 이조차 여성혐오다. ‘뒤집어진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일단 상대가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여성들은 언어를 익혀나가며 입을 열고 있지만, 그동안 이 입을 억압하던 남성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귀는 얼마나 진화했을까. ‘양심이 있는 귀‘로 진화하지 않으면 여성들의 진화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더 정확히는, 알아듣기를 거부한다. - P97

<바람난 가족>에서 부부관계가 끝난 후 호정(문소리)은 혼자 자위를 한다. 여성의 자위 장면이 한국 영화에서 드물기도 하지만, 남편 옆에서 성관계 후 자위하는 모습은 용감하기까지 하다. "꼴리는 건 자유지만 덮치는 건 폭력이다"는 2011년 잡년행진에 등장했던 구호이다. 이 구호에 대해 한 남성이 내게 무척 불편하다는 마음을 밝힌 적이 있다. 저 문장을 보고 ‘왜 남자가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을 굳이 들고 나왔는지‘라는 생각이 들더란 것이다. - P99

생리대 광고에서 "깨끗해요"를 강조하듯이 여성은 깨끗해야 한다. 한국은 심지어 귀신도 처녀 귀신이다. 다른 남자가 다녀가지 않은 몸(처녀), 먹은 흔적이 없는 몸(살), 세월의 흔적이 없는 몸(주름살), 이슬만 먹고사는 깨끗한 몸(배설)이어야 한다. 여성들은 털을 밀고 땀을 더욱 단속하며 주름과 모공을 가린다. ‘하얀 얼굴‘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자외선과 사투를 벌이는 여성들은 여름이면 자발적으로 온 얼굴과 팔을 칭칭 감고 다니기도 한다. - P104

여성은 흔적과 과정을 숨겨야 마땅한 존재이기에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여자‘에 대한 혐오가 표출되기도 한다. "여성들 ‘길거리 화장‘ 자제하길"이라는 기사까지 나올 지경이다. 냄새를 비롯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요소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단속하려는 태도는 단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 아니다. 가리고 수줍어하는 것이 ‘여자다움‘에 맞는 행동이므로 화장하는 과정을 공공장소에서 뻔뻔스럽게 노출하는 여성을 거북하게 바라본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여자의 태도에 당혹스러워한다. - P105

생리대 부작용 논란의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그중 하나는 여성의 몸에 대해 이처럼 침묵하게 만든 악습에 있다. 생리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만든 사회가 결국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 꼴이다. TV에서 생리대 광고는 1980년 9월부터 오후 9시 이전에 주류 광고와 함께 전면 금지되었다가 1990년대 들어 다시 등장했다. 그때 광고에 등장한 액체는 파란색이었다. 순진한 남학생은 여자들은 ‘거기‘에서 진짜 파란색 피가 나오느냐고 묻기도 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생리대‘라는 말이 불편하다며 ‘위생대‘라고 부르자던 정치인도 있다. ‘위생‘이라는 개념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 현상에 더욱 강하게 개입한다. 실제로 프랑스어에서 생리대는 ‘위생수건 serviette hygiénique‘이다.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가 쓴, 몸을 중심으로 일생을 담은 소설《몸의 일기 Journal d‘un corps》에서 주인공의 어린 아들은 ‘위생수건‘이 생리대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식당 화장실에서 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 P107

캐나다 시인 루피 카우르Rupi Kaur는 자신의 생리혈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으나 두 번이나 삭제당하는 경험을 했다.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생리혈이 아니더라도 오줌, 콧물, 땀 등을 여성은 더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여성에게 ‘관대하게‘ 허락된 액체는 눈물이다. 애교와 마찬가지로 눈물이라는 ‘약자의 무기‘를 쥐어주고 ‘여성성‘을 드러내도록 한다. 영화에서는 생리혈보다 ‘처녀를 증명하는 피’를 더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액체 중에 눈물과 함께 관대한 대접을 받는 액체다. ‘처녀막이 터져’ 피가 나오는 ‘전설‘을 가부장제는 사랑한다. 또한 시각 매체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은 주로 여성의 ‘젖가슴‘에 초점을 맞춘다. 그 가슴에서 나오는 ‘젖milk‘이 아니다. - P109

월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재생산에 기준을 둔 남성의 입장에서 주로 서술된다. 월경을 시작하면 여자가 ‘되고‘ 월경을 마치면 여자로서 ‘끝난’ 것처럼 표현한다. 생식을 기준으로 여성의 성을 보기 때문이다. 에밀리 마틴Emily Martin은 "월경의 목적이 임신이 아니라 질을 관통하는 혈류 자체, 즉 주기적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 자체, 여성의 몸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출혈 자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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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입으로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글 뒤에서 페미니즘을 비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즘이 완전무결하며 언제나 ‘올바른 길‘만 걸어왔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에게완전무결한 요구를 하며 정의를 가장해 페미니스트의 입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모두의 진정한‘ 평등과 정의를 위해 여성을 열심히 단속하는 그 마음의 진정성이야말로 의구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 P41

페미니즘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종종 지배하고 진압하려 한다. 실제 성차별주의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성차별주의자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혐오사회Gegen den Hass》를 쓴 카롤린 엠케Carolin Emcke는 이러한 걱정의 실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속에는 혐오와 원한과 경멸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걱정이라는 모습을 땀으로써 용인할 수 있는 한계점의 위치를 옮겨놓는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하는 "이게 다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은 페미니즘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걱정거리를 찾는다. ‘수구‘ 우파가 북한 인권을 걱정하듯이. "걱정의 대상이 반드시 그 원인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걱정의 대상은 때로 걱정하기에 적합한 것처럼 만들어지기도 한다." - P45

‘지금, 여기‘에는 항상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이 있다. 문제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권력이 지배자다. ‘나중‘은 실체가 없다. 나중이라는 시간은 결국 ‘영원히 나중‘이 된다. 그렇게 저항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에서 점령당한다. 역사가 조금이라도 진보하는 순간은 나중으로 밀려나는 목소리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들리도록 만드는 그 순간이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장소를 박탈당한 이들이 바로 사회의 약자다. 소수자들의 ‘저항 축제‘는 그래서 필요하다. 그시간 그 장소에서 ‘일시적 해방‘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현재는 그토록 귀하며, 여기의 안전은 언제나 불안하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 지금 보이는 몸짓을 막지 말아야 한다. 재발견의 번거로움을 남기지 말고, 지금 여기의 존재를 억압하지 않으며, 그 목소리를 묵살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의 진보다. ‘우리‘는 말하고 움직여야 한다. - P52

가네코는 도쿄에서 식모살이, 노점 일 등을 거치며 공부를 하려고 발버둥치지만 끼니를 때우기도 버겁다. 수많은 상처를 안고 ‘나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 이것은 하쓰요 상을 알게 되면서 하쓰요 상이 내게 읽게 해준 책들의 감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하쓰요 상 그 자신의 성격이나 일상생활에 자극을 받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335쪽)
가네코가 자기 인생에 ‘단 한 명의 여성‘이라 말한 니야마 하쓰요는 그의 지적 성장에서 중요한 영향을 준 친구다.

《노동자 세이로프》를 감격에 겨워 나에게 권한 것도 하쓰요 상이었다. 《죽음의 전야》를 빌려준 것도 하쓰요 상이었다. 베르그손이나 스펜서나 헤겔 등의 사상 일반을, 혹은 적어도 이름이라도 알게 해준 사람이 하쓰요 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의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은 하쓰요 상이 갖고 있던 니힐리스틱한 사상가들의 사상이었다. 슈티르너, 알티바세프, 니체 그런 사람들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331쪽)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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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혔을 때 자신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페미니스트 검증으로 포장한다. ‘진짜 페미니스트’인지 검증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지켜본다. 한 손에는 확대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아주 작은 꼬투리라도 집어 올릴 수 있는 핀셋을 든 채 언제라도 ‘실수‘를 포착할 준비를 한다. 탈탈 털어 작은 먼지라도 잡아내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한다. ‘진짜‘ 혹은 ‘진정한‘에 대한 집착은 진짜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누구도 진짜가 아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 P5

너는 ‘메갈‘이냐 아니냐,워마드에 비판적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질문을 가장한 검증의 태도에 나는 응할 생각이 없다. ‘종북‘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싶지 않듯이, 나는 ‘메갈‘이나 ‘워마드‘로 ‘오해’받을까 봐 조심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조심하도록 만드는 권력이 바로 내가 대항하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흘러가듯이 페미니즘, 한국 내의 페미니즘, 온라인에서 작동하는 페미니즘, 메갈리아, 나아가 워마드도 시시각각 흘러간다. 쉽게 규정짓거나 판단하기 어렵다. 개별 사안을 비판하는 것과 낙인을 찍어 "○○은 진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다. 물론 일부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극단적인 발언을 뱉기도 한다. 하지만 그 행동을 교정하려 하기보다, 그러한 행동이 발생하도록 만든 감정의 맥락을 수용하는 것이 먼저다. - P7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진짜‘를 정의하고 선택하는 권력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 진짜 여성, 진짜 페미니스트, 여성이 있어야 할 진짜 자리, 진정한 여성의 삶을 알려주려는 사람들의 충고는 사양한다. ‘진짜‘는 모르겠으나 내 삶과 나의 길, 나의 자리, 나의 역할, 나의 욕망, 나의 사랑은 각각의 ‘나‘들이 찾아야 한다. 이 ‘나‘들은 문화와 관습이 정해주는 자리가 아닌, 충분히 다른 세계를 갈망할 권리가 있다. - P10

구별의 기준이 선명해질수록 차별이 문화로 안착하기 쉬운 환경이 된다. 혐오는 주로 이러한 구별과 밀접하다. 이분법은 혐오를 설계하는 중요한 지침서로 작용한다. ‘무엇‘의 권리를 말하면 자동적으로 다른 무엇은 권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서 ‘무엇만‘ 중요하다는 거냐고 따진다. 이 ‘분노‘는 어느 정도 진심이다. 사드THAAD 배치 과정에서 진짜 성주 사람과 외부인, 진짜 페미니스트와 메갈(‘꼴페미‘, ‘페미나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호남 사람과 아닌 사람, 백인과 비백인……. 이렇게 커다란 집단으로 나누어 구별하는 데 익숙해진 사고는 개개인의 차이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구별을 빙자한 차별의 대표적 예는 ‘성역할‘이다. 엄마가 맡은 ‘밥 하는 사람‘의 역할을 성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 P22

정말로 여자가 ‘같은 여자라서‘ 여자를 돕는다면 사회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금의 제도와 문화를 결코 유지할 수 없다. 노예제 폐지보다 가부장제 폐지가 더 어려운 이유는 여성 억압의 역사가 250년의 노예제보다 길어서만은 아니다. - P34

가정은 부계 중심, 사회는 강한 남성연대의 인정으로 구축되어 있어 여성이 여성과의 관계를 위해 가족관계부터 배반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예제 속에서 ‘흑인 노예‘와 달리, 여자는 모두 ‘같은 계층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편 여자라는 이유로 계층과 지역을 막론하고 겪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여성 문제’는 이 보편성과 개별성 사이에 난감하게 걸쳐 있다. 그러나 여성이 정치세력화될 때는 개별성을 강조해 연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면, 여성이 하나의 주체적 인간이 되려 할 때는 ‘같은 여자‘로 묶어놓는다. - P35

여성은 여성을 비판하기도, 지지하기도 쉽지 않다. 남성 사회의 평가 기준에 맞춰 비판에 참여하거나 지지를 선택해야 안전하다. 남성 집단의 욕을 먹는 여자에게는 여자도 같이 욕을 해야 하며, 남성집단의 칭찬을 듣는 여자에게는 여자도 같이 칭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의 적인 여자‘가 되거나, 여자라서 단순히 여자를 지지하는 평평한 상황이 된다. 남성 사회에서 찍힌 여성은 사라진다. 반면 남성은 여성들에게 아무리 욕을 먹어도 삶을 위협받는 일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 모두가 남성 사회의 인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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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아… 당신이 말하지 않길 원하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건 중요한 거니까요. 눈치채지 못했나요? 난 지난주부터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그때 당신이 내게 친절히 대해주신 덕분이죠. 지난밤 카드놀이를 함께 했을 땐 꼭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잠자리에 들며 스스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죠. 다음 날 아침, 당신이 벽난로 앞에서 내게 책을 읽어주었을 때도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느꼈답니다. 그날 밤도 저는 어린아이처럼 단잠에 들 수 있었어요. 나를 옥죄던 두려움과 끔찍한 기분이 싹 사라진 것 같았죠. 이 모든 건 당신이 집에 종일 머무르며 나를 돌봐준 덕분이에요. - P15

매닝엄, 대사를 읊는다.

매닝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끔찍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고난의 물결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하느냐. 어느 것이 더 고귀한가.

* 이 부분을 읊을 때 낸시가 머핀을 가지고 들어와 두고 다시 나간다.

벨라
목소리가 정말 환상적이에요. 당신이 배우가 되지 않은 건 큰 실수예요. - P19

러프
(일어나 벨라에게 향하며) 그걸 우리가 알아내야 합니다. 지붕도 있고 화재용 비상구도 있으니 그 길을 통해 다락에 갔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겁먹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남편분은 유령도, 마술사도 아닙니다.
이제 절 믿고 말씀해보세요. 다락에서 나는 소리가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벨라
가스등의 빛, 그 빛 때문이었죠. 빛이 밝아졌다 희미해졌다를 반복했거든요…. 오, 드디어 이걸 누군가에게 말할 날이 오다니!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전 수사관님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어요. - P42

벨라
안 돼요. 하지 마세요. 남편이 돌아오면 할 말이 없어요.

러프
그가 당신을 옭아맬 자격이 없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면 부인은 더욱 할 말이 없을 겁니다.

벨라
오, 신이시여, 두려워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죠?

러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계속 나아가는 것. 지금 돌아간다면 우리는 길을 잃을 겁니다. 우리는 문제와 마주하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도박을 해야 합니다. 함께하겠습니까?

벨라
하지만... 좋아요. 마주해요. 마주해야죠. 하지만 빨리 해야 해요. - P77

러프
부인, 이리 와서 앉으세요. 자, 앞으로의 삶은 전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 부인을 위한 데본셔 크림입니다. 눈에 활력이 돌아왔군요. 물론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겠죠. 나의 등장으로 오늘 밤은 부인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생애 가장 끔찍한 밤을 보내게 해서 미안합니다.

벨라
끔찍하다라… 오, 아니에요. (자신만만하고 행복에 겨운 느낌으로) 훌륭한 밤이죠. 내 생애 가장 훌륭한 밤이었어요.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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