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밋퍼드양이 이름을 전하지 않는 한 친구는 그녀를 방문한 후 이렇게 썼다. 〈그녀는 일찍이 존재했던 《독신의 축복》의 가장 뺏뻣하고, 까다롭고, 과묵한 본보기로 굳어져 버려서, 『오만과 - P122

편견』이 그 불굴의 갑(匣) 안에 어떤 보석이 숨겨져 있었는지 보여 주기 전까지는 부지깽이나 난로 앞 철망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아주 달라져서, 여전히 부지깽이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가 되었다. 위트 있는 인물 묘사자가 입을 열지 않으면 정말이지 무섭다.> - P123

〈그녀는 성격이 좋고 예의 바르고 친절한 젊은 여성일 뿐이었으며, 그 점에서 우리는 그녀를 싫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런 문장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지나서도 기억에 남게 된다. 활기차고, 평이하되 흥미롭고, 자유자재로 허튼소리를 넘나드는 정신―[사랑과 우정』에는 이미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하지만 다른 것과 결코 섞이지 않는, 작품 전체에 걸쳐 분명히 들려오는 이 소리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웃음소리이다. 열다섯살 소녀는 자신의 구석에서, 세상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이다. 열다섯 살 난 소녀들은 항상 웃고 있기 마련이다. - P125

그녀가 친절함과 진실과 성실성으로부터의 일탈을 보여 주는 것은 틀림없는 감수성과 한결같은 좋은 취향, 거의 엄격한 도덕성을 배경으로 해서이며, 이런 가치들이야말로 영문학에서 가장 즐거운 것들이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메리 크로퍼드를 선악이 뒤섞인 모습으로 그려 낸다. 그녀는 메리가 성직자들을 비난하거나 준남작의 지위와 연수 1만 파운드에 대해 호의적으로 재잘대도록 더없이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만, 이따금 아주 조용하고도 완벽한 조화 가운데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러면 대번에 메리크로퍼드의 수다는, 여전히 재미있는데도, 김이 빠져 버린다. 거기에 오스틴이 그려 내는 장면들의 깊이와 아름다움과 복잡함이 있다. - P134

『설득』에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독특한 지루함이 있다. 그 지루함은 다른 두 시기 사이의 과도기에 종종 나타나는 것이다. 작가는 다소 싫증이 나 있다. 그녀는 자기가 그려 내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너무 친숙해져서, 더 이상 그것이 참신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코미디에 나타나는 신랄함은 그녀가 더 이상 월터 경의 허영이나 엘리엇 양의속물주의에 재미를 못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풍자는 가혹하며 코미디는 거칠다. 그녀는 더 이상 일상생활의 재미를 신선하게 의식하지 못하며,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이 전에도 이런 일을 했고 더 잘했었다고 느끼는 한편, 그녀가 전에 시도해 본 적 없는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설득』에는 새로운 요소가, 아마도 휴웰 박사를 흥분시키고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주장하게 했던 무엇인가가 있다. 그녀는 세상이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더 신비로우며 더 로맨틱하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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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 해리엇 테일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월리엄 고드윈

길은 일찍부터 나 있었지요. 패니 버니, 애프라 벤, 해리엇 마티노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같은 많은 유명한 여성들과 이름 없이 잊혀 간 훨씬 더많은 여성들이 나보다 오래전에 그 길을 평탄하게 닦아 내 걸음을 순조롭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내가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내 앞길에 실질적인 장애물은 별로 없었습니다. 글쓰기는 점잖고 무해한 일거리지요. 펜을 긁적인다고 해서 집안의 평화가 깨지지도 않고, 가계에 부담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10실링 6펜스어치 종이만 사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전부 쓰기에 충분합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지요. 작가에게는 피아노도, 모델도, 파리, 빈, 베를린으로의 유학도, 스승도 필요치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종잇값이 싸다는 것이 여성이 다른 어떤 직업에서보다 먼저 작가로서 성공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P12

잡지에 글을 쓰고 그렇게 번 돈으로 페르시아고양이를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있을까요? 하지만, 잠깐만요. 그런 글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라야 하지요. 그때 내가 쓴 글은 어느 유명한 남성의 소설에 대한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서평을 쓰던 중에, 나는 만일 계속해서 서평을 쓰고자 한다면 모종의 유령과 싸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유령은 여자였고, 그녀를 좀 더 알게 되었을 때 나 - P13

는 그녀에게 — 유명한 시의 여주인공을 따라ㅡ<집 안의 천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내가 서평을 쓰고 있었을 때 나와 종이 사이에 끼어들곤 하던 것이 바로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허비하고 나를 하도 괴롭혔으므로, 마침내 나는 그녀를 죽여 버렸습니다. - P14

말하자면 내가 어느 유명한 남자의 소설을 평하려고 손에 펜을 들라치면, 그녀가 내 등 뒤에 살며시 나타나 소곤대는 것이었습니다. <이봐요, 당신은 젊은 여성이에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남자가 쓴 책에 대해 글을 쓰려 하는군요. 다정하고 상냥하게 굴어요. 아첨하고 적당히 비위를 맞추는 거예요. 우리 여성의 모든 술수와 책략을 쓰도록 해요. 당신에게 당신만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요. 무엇보다도, 정숙하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내 펜을 인도할 태세였습니다. 나는 여기서 스스로 공치사를 해도 좋을만한 행위 하나를 기록해 둡니다(물론 그 공은 내게 얼마간의 돈을 ㅡ 연수 5백 파운드라고 해둘까요? ㅡ 물려준 몇몇 훌륭한 선조들에게 돌리는 것이 옳겠지만요. 그 돈 덕분에 나는 생계를 위해 매력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죽였습니다. 만일 내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그것이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 P15

이상과 같은 두 가지는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입니다. 내직업 생활에 있었던 두 가지 모험이지요. 나는 그 첫 번째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ㅡ 육체로서의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말하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어떤 여성도 해결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전히 막강하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파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겉보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겉보기에는, 글을 쓰는 데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장애가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 유령과 싸워야 하고, 많은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성이 죽여 버려야 할 유령이나 깨뜨려 버려야 할 암초를 만나지않고 그저 앉아서 글을 쓰기까지는, 정말이지 앞으로도 오랜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성에게 가장 개방된 직업인 문학에서 이러하다면, 여러분이 처음으로 진입하려 하는 새로운 직업들에서는 어떻겠습니까? - P20

우리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되는 사실은, 아주 이른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인구 전체를 낳은 것은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구합니다. 또한 이 일이야말로 여성을 남성에게 - P39

종속시켜 왔고, 그러면서 그녀들 안에 인류의 가장 사랑스럽고 훌륭한 자질을 함양해 왔습니다. 나와 <상냥한 매>가 다른 것은 그가 현재 남녀의 지적 평등성을 부정한다는 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베넷 씨와 더불어 여성의 정신은 교육이나 자유를 누려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성의 정신은 최고의 성취를 이룩할 수 없다고, 여성의 정신은 지금과 같은 처지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 P40

하지만 필요한 것은 교육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과 다를 때(나는 여성과 남성이 사실상 같다는 <상냥한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의 모든 활동이 장려되어, 남성들만큼이나 자유롭게 그리고 조롱당하거나 얕보일 우려 없이 생각하고 발명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여성들의 핵심적인 활동이 항상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이런 조건들이 <상냥한 매>나 베넷 씨 같은 이들의 주장으로 인해 저해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의 견해를 알리고 존중받 - P40

기가 훨씬 더 쉬우니까요. 만일 장래에도 그런 견해가 횡행한다면, 우리는 반쯤 문명화된 야만 가운데 남게 되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의 영원한 지배와 다른 한편의 영원한 예속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노예 상태로의 타락과 맞먹는 것은 주인 노릇으로의 타락밖에 없으니까요. - P41

사실상 여성의 욕망,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려 하고 이제껏 부과되던 행동의 제약들을 극복하려는 욕망은 그녀의 삶이 가사 노동에 덜 매이게 되는 순간 태어났다. 한두세대 전만 해도 그런 노동이 항시 그녀의 주의를 사로잡고 온 힘을 소모시켰던 것이다. 물레바퀴와 바늘과 방추, 잼과 피클을 만드는 것,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여성들을 묶어 두지 못한다. 해묵은 가사 노동이 사라지자, 장차 신여성이 될 여성은 자기 안에서 보고 생각하고 판단할 여유가,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
- 레오니 빌라르 - P47

〈내게는 여자의 느낌들이 있어요. 하지만 남자의 언어밖에 없어요〉라고 [성난 무리를 멀리 떠나]의 밧세바는 말한다. 그 딜레마로부터 무한한 혼돈과 착종이 생겨난다. 에너지는 해방되었지만, 어떤 형식으로 흘러들어 갈 것인가? 기존 형식들을 시도해보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리고, 좀 더 잘 맞는 다른 것을 창조하는 것은 자유와 성취의 선결 조건이다. 나아가, 여성이라는 존재가 1860년에 처음으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그녀의 에너지의 대부분은 이미 충분히 사용되고 고도로 개발되어 있다. 그런 여분의 에너지를 한 방울도 허투루 흘리지 말고 새로운 형식에 쏟아붓는 것은 남성들의 동시적 발전과 해방으로써만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 P48

비범한 여성은 평범한 여성을 기반으로 한다. 평균적인 여성의 삶의 여건들이 어떠했는지 - 자녀를 몇이나 두었는지, 자기 몫의 돈이 있었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가족을 돌보는 데 도와주는 이가 있었는지, 하인들이 있었는지, 가사 노동의 일부를 담당했는지 ㅡ 를 알 때, 평범한 여성에게 가능한 생활 방식과 삶의 경험을 측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작가가 된 비범한 여성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P51

그러므로 19세기 초 영국에서 비범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법과 관습과 풍속에서 무수한 작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19세기 여성은 약간의 여가와 교육을 누렸다. 중류층과 상류층 여성이 자기 의사로 남편을 택하는 것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네 명의 위대한 여성작가들 -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 중에서 아무도 자식을 낳지 않았고, 두 명은 아예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 P53

19세기에도 여성은 거의 전적으로 집에서, 자신의 감정속에서만 살았다. 19세기 소설들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쓴 여성들이 자신의 성별 때문에 어떤 종류의 경험들에서는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가령 콘래드의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만일 그가 선원이 될 수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 P54

하지만 여기서도 여성들은 통념으로부터 점차 독립하고 있다. 그녀들은 자신의 가치 감각을 존중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여성 소설은 주제에서 모종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해지는 대신, 다른 여성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는다. 19세기 초의 여성 소설은 대개 자전적이었다. 여성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한 동기 중 하나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고 자기 입장을 항변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욕망이 더 이상 긴박하지 않게 되자,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을 탐사하고 전에 묘사된 적이 없는 방식으로 자신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문학에서 여성들은 남성 작가의 창조물이었으니 말이다. - P59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 P63

11 10대의 울스턴크래프트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를 지키기위해 종종 어머니의 침실 앞 층계참에서 잤다고 한다. - P97

그러니까 프랑스 혁명은 그녀의 외부에서 일어난 일개 사건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핏속에 있는 활성제였다. 그녀는 평생 항거했다 - 폭정에 대해, 법에 대해, 인습에 대해. 그녀의 내부에는 개혁가다운 인류애가 끓어올랐으며, 그것은 사랑만큼이나 증오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발발은 그녀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이론과 신념이 일부 표출된 것이었으니, 그녀는 그 특별한 순간의 열기 속에서 두권의 웅변적이고 과감한 책 『버크에 대한 답변』과 『여성의 권리 옹호』를 내놓았다. 이 책들은 너무나 지당한 내용이라 지금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그 독창성은 우리의 상식이 되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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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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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친 벽돌책. 이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똑똑해진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을까요. 완독 갑시다!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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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07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이 완독 화이팅해요. ^^

햇살과함께 2022-09-07 13:47   좋아요 0 | URL
네~ 제가 다락방님과 바람돌이님과 다른 모든 분들을 따라 읽겠습니다요 ㅎㅎ
 

피해자는 다양하다. 그런데도 많은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형사사법절차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상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내가 연대했던 많은 피해자들은 전문가들에게 수사·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질문했을 때, 그저 피해 회복을 목표로 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전문가의 조언대로 수사·재판 과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 P169

피해자에게 선택지를 주어야 한다. 그 선택지는 일반인인 피해자의 시각과 입장을 반영해서 구성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선택지를 충분히 설명한 뒤 그 선택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사법 시스템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해야 사법 시스템이 피해자들에게 온전한 선택지로 기능할 수 있다. - P170

형벌은 범죄자에 대한 국가 형벌권의 발동, 즉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함으로써 재범 방지와 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형사사법 절차는 가해자(피의자/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을 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피해자는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밝힐 ‘증인‘으로서 부수적 · 주변적 · 수동적 지위에 놓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응보‘는 제대로 되고 있는가? 아니다.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당사자의 지위도 아닌 피해자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안긴다. 결과 역시 범죄의 피해와 해악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제대로 된 응보도 되지 않는다. 결국 형사사법 절차를 거친 많은 피해자들은 피해를 온전하게 회복하지도, 사회에 복귀하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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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엇을 참작할지가 전적으로 판사에게 맡겨져 있으며, 이 재량권을 악용하는 경우 견제 장치가 전무하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 정상참작감경은 재벌이나 권력자 피고인을 위해 기능하이 되어 상하의 베이스까고, 성범죄 가해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다. 판사들의 재량은 강자, 다수자, 가해자를 위해 발휘된다. - P115

이제 한국 판사들이 쥔 강력한 무기인 정상참작감경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판사들은 정상참작감경이 부당한 권력에 대항해 시민들을 지키기 위한 무기, 특별법의 남발로 인한 형벌 불균형을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그 무기가 지키는 대상은 피해자, 약자, 소수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판사들 손에 쥐어준 그 무기의 주인이 판사가 되는 것이 합당한가? 입법 미비, 양형기준 미설정,
수사 과정 문제 등 외부로만 책임을 돌리는 판사들에게 자발적 변화를기대할 수 있을까? 권한은 빼앗기기 싫고 책임은 외부로 돌리면서 언제까지 그 무기의 주인으로 서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그저 무지몽매한 시민들 때문인가? 판사들은 그 무기의 주인이 아니다. 그 무기는 시민들이 판사들에게 빌려준 것이다. 따라서 무기를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진짜 주인’이 그 무기를 찾을 것이다. - P121

‘보낼 수 있지만 안 보낸다.’
2020년 7월 6일,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의 운영자 손정우를 미국에 송환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재판부(서울고법 형사20부: 강영수, 정문경, 이재찬)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이렇다. 또 ‘재량‘이다. 그동안 디지털 성폭력 범죄자들을 선처해왔던 한국 법원의 재량이 이번에 또 반영되었다. 재판부는 법대에서 엄중한 목소리로 "면죄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범죄인에게 적극적 수사 참여를 독려했지만, 법원의 선언은 틀렸다. 법원은 늘 그렇듯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예비) 범죄자들에게는 아무리 악질적인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약한 한국에서 재판받을 수 있으며, 몇 년(징역) 살겠다는 각오만 하면 수억 원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한국 법원이 디지털 성범죄를 양산한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 P129

그러나 이것으로 한국 법원이 정말 변했다고, 변하고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하다. 시민들의 사법 감시가 소홀해지면 법대 위의 그들은 언제든 변화 전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변화의 가능성은 백래시backlash를 부르기 마련이며, 그런 의미에서 변화를 위한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실제로 나는 2019년 말, 연대 활동 중단을 계획하면서 주변에 백래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당시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반성폭력 운동이 여론의 형성과 오프라인 시민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중이었고, 입법적 보완을 포함해 수사와 재판 등 형사사법 절차의 전반에서 변화의 요구가 힘을 얻고 있었다. 물론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는 여전히 힘이 부족했기에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불과했지만, 그 가능성이 바로 가해자-강자-다수자를 움직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 P144

2022년 5월 2일, 미국에서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50년 만에 뒤집으려는 대법원 다수의견 1차 초안 전문이 공개되었다. "미약한 추론으로 이뤄진 ‘로 대 웨이드‘ 사건은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며, 두 사건(나머지 하나는 1992년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 판례)은 임신중지 문제의 국가적 해결로 이어지기는 커녕 논란을 악화시키고 분열을 깊게 만들었다"는 게 초안의 주요 내용이었다. 긴즈버그Ruth BaderGinsburg 대법관의 사망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합류하면서 보수색이 짙어진 연방대법원이 50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돌리려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2022년 6월 24일, 결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중 5명의 다수의견으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했다. 심지어 보충의견을 통해 피임 (그리스월드 대 코네티컷), 동성혼(로런스 대 텍사스), 동성 성관계(오버게펠 대 호지스) 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해 역사적 후퇴를 선언했다. - P145

"현재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닙니다."
2010년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만나는 전문가들마다 내게 한 말이었다. 왜 피해자인 내가 수사·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좁은지, 어째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지 물으면 내가 당사자가 아니니 당연하다고 했다. 난 범죄 피해를 입었는데, 피해로부터 회복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왜 당사자의 지위에 있지 못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분과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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