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블룸
줄리엣 미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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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여왕의 거울

괴짜에다 유명하진 않았지만, 홉킨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남성으로서 핵심 개념을 말하고 있다. 물론 신이 세상을 만든 아버지이듯 작가는 자기 텍스트의 ‘아버지‘라는 가부장적 사고는 서구 문학 세계 전반에 퍼져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듯이 이 은유는 작가, 신, 가부장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저자‘라는 단어에 내재되어 있다. ‘저자‘라는 단어에 대한 사이드의 세심한 고찰은 이 논의와 관련해 상당히 많은 내용을 요약하고 있기에 여기에 전부 인용할 가치가 있다. - P74

이 단어에는 또한 저자authour, 즉 무엇을 생겨나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사람, 낳는 사람, 개시자, 아버지 또는 조상, 문서화된 성명서를 발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 P75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양한 목적에서 문학적 부권 은유를 사용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문학작품은 문자 그대로 언어의 표현일 뿐 아니라 육체로 신비롭게 구현된 권력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따라서 가부장적 서구 문화에서 텍스트의 저자는 아버지이자 창시자이며 낳는 자, 펜을 음경처럼 생산의 도구로 쓰는 미학적 가장이다. - P78

마지막으로, ‘소유권‘이나 소유 개념이 부권 은유 안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이 복잡한 은유의 또 다른 의미를 밝혀준다. 저자/아버지가 작품과 독자의 관심을 소유한 자라면, 그는 (자기 머리에서 나온 자식들, 종이에 잉크로 구체화시키고 천과 가죽으로 ‘장정한‘) 작품의 백성이라고 할 인물, 장면, 사건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문인‘은 저자이기에, 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이자 주인 또는 지배자이며 소유자다. 서구 사회가 그 용어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르자면 그는 정신적 유형의 가부장이다. - P79

‘펜을 드는 여자’는 건방지고 ‘주제넘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구제 불능인 존재다. 어떤 미덕도 그녀의 건방진 ‘결함‘을 메울 수 없다. 그녀는 자연이 내리그은 경계선을 괴물처럼 횡단해버렸기 때문이다. - P80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문학 권력과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사상가 오토 바이닝어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은 문학 권력이 없기에 ‘존재론적 실재를 [남성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 P81

앤 핀치는 자신의 시집 『서시』의 결론에서 여자들은 ‘멍청해지라고 요구받고 그렇게 키워진다‘고 말하면서 그런 기대를 물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신랄하게 빈정대는 투로 자기 자신에게 멍청해지라고 충고한다. - P84

그러니 나의 뮤즈여 조심스럽게 물러나라.
칭찬받으려다 경멸받지 말고.
욕망을 의식할지언정, 앞으로도 쭉 날개를 움츠린 채
몇몇 친구에게, 그리고 너의 슬픔에게 노래하라.
그대는 태생상 결코 로렐의 숲에 어울리지 않으며,
그대의 그늘은 충분히 어두우니, 그대는 거기 만족하라.

생성의 에너지와 동떨어진 채 어두운 겨울 세계에 있는 핀치는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통찰력을 상실한 과부‘로 정의하고 있는 것만 같다. - P85

동시에 남성의 텍스트는 계속해서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를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여성의 미덕은 남성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발자크의 애매모호한 말을 내내 옹호했다. - P88

여성은 남성의 ‘펜‘에 의한 창조물로서 ‘감금되었다.‘ 여성은 남성이 내뱉은 ‘문장‘으로 (사형이든 징역형이든) 형을 선고받았다.‘ 남성은 여성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기소했다.‘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고에 따라 남성의 텍스트, 그림, 그래픽 속에 ‘갇혀‘ 있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우주론 속에서(죄 많은 결함투성이로) ‘날조되었다.‘ - P89

시몬 드 보부아르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남성의 ‘초월성‘은 사냥하고 죽이는 능력으로 상징된다. 여성의 자연 동일시, 그리고 내재성을 상징하는 역할은 인간 종을 영속시키는 무의식적 출산 과정과 핵심적으로 엮여 표현된다. 인간의 우월성 혹은 권위는 ‘생명을 낳는 성이 아니라 죽이는 성이 소유해왔다.’ D. H. 로런스의 말을 빌리자면 ‘생명의 주인이 죽음의 주인이다.‘ 그러니까 가부장적 시학은 가부장이 바로 예술의 주인임을 암시한다. - P90

그러나 여성 입장에서 보면 ‘변덕‘은 고무적인 성격이자 덕성이다. (이중성을 수반하긴 해도) 변덕은 여성이 그 자신을 인격으로 창조할 능력, 더 나아가 거울/텍스트 반대쪽에 갇혀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능력까지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 P94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가 만들어놓은 ‘천사‘와 ‘괴물‘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를 특별히 더 읽어내고 적응하고 초월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자기를 ‘살해해‘ 예술에 가두어놓았던 미학적 이상을 죽여야 한다. 모든 여성 작가는 천사와 정반대쪽에 있는 대립쌍인 집 안의 ‘괴물‘도 죽여야 한다. 메두사의 얼굴을 한 이 괴물도 여성의 창조력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즘 비평가인 우리에게 천사와 괴물 둘 다 ‘죽이는’ 울프적인 행위의 시작은 이런 이미지의 기원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시학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살해하기 위해 우선 분석해야 한다. 특히 여성이 쓴 문학을 이해하려면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천사‘와 ‘괴물‘ 이미지는 남성이 쓴 문학 전반에 퍼져 있을 뿐 아니라, 두 이미지 중 어느 하나라도 확실하게 죽인 여성은 거의 없을 정도로 여성문학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상상력은 거울을 통해 그 이미지를 어렴풋이 인식했을 뿐이다. 최근까지 여성 작가는 자신을 (무의식적이지만)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가 말했던 ‘수정 유리 표면‘에 살고 있는 천사나 괴물, 또는 천사/괴물의 이미지 뒤에 거주하는 신비한 존재로 정의해야 했다. - P95

빅토리아 시대의 천사 같은 여자는 가정 안에 갇힌 채 남편의 ‘의미 있는 행위의 삶‘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피와 땀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신성한 안식처가 되어야 하며, ‘명상적인 순수함‘으로 신 같은 타자성을 상기시키는 살아 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106

이 모든 화신 (에러‘에서 ‘우둔함의 여신‘까지, 고너릴과 리건에서 클로이와 실리아까지) 중 여성 괴물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본보기다. 남성이 자신의 육체적 실존, 즉 자신의 출생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능감에 대한 모든 양가적인 감정을 바로 여성이 대변하도록 만들어왔다는 주장 말이다. 타자인 여자는 삶(파괴되도록 만들어진 삶)의 우발성을 나타낸다. ‘남자가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육체적 우발성에 대한 남성 자신의 공포‘라고 보부아르는 말한다. - P121

우리는 오로라 리나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 같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텍스트의 감옥에서 여성의 펜으로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그 출발점에서 자신을 ‘천사-여자‘와 ‘괴물-여자‘로 번갈아가며 정의하는 모습을 목도할 것이다. 우리는 또 백설 공주나 사악한 여왕처럼, 이들의 초기 욕망이 양가적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유리 관 속에서 숨 막히게 꼭 - P136

끼는 코르셋으로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조이거나, 거울밖으로 나와 불같은 죽음의 춤을 추어 스스로를 파괴하라고 유혹받는다. 그러나 천사와 괴물이라는 한 쌍의 이미지가 제시하는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었어도,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불모성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받았어도, 여성 작가들은 작품을 산출했다.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 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텍스트라는 유리 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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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페이지라 두껍구나 했는데, <자기만의 방>은 170페이지이고, 나머지는 이미 읽은 <3기니>구나. <3기니> 분량이 더 많은데 제목에 왜 <자기만의 방>만 썼지? 헷갈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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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11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도 정말 좋더라구요. 맛난 커피와 함께 즐독하세요. ^^

햇살과함께 2022-10-11 21:28   좋아요 1 | URL
ㅎㅎ 어제 비가 와서 집에만 있다 답답해서 잠깐 까페로~ 울프 에세이로 읽기 시작해서 좋아서 에세이만 읽고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소설도 조만간 읽어야할텐데요.

서곡 2022-10-22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민음판 자기만의방에는 삼기니도 수록되어있군요!

햇살과함께 2022-10-22 09:14   좋아요 1 | URL
네~ 저는 3기니 민음사 북클럽 특별판으로 읽었는데 여기에도 있는 줄 몰랐어요 ㅎㅎ 제목에 같이 좀 넣어주시지. 심지어 3기니가 분량이 더 많은데요~
오늘 외출할 때 읽다만 이 책 읽으려고 꺼냈는데 서곡님 어찌아시고 ㅎㅎ

서곡 2022-10-22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제목에 없군요 자기만의방이 분량이 적어서 같이 냈나봐요 / 아 그러셨군요 ㅋㅋ 즐독하시길요 !!
 














너무나 좋은 책인데, 각 잡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 완독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 감정적으로 건드려서 읽기 힘들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상상하던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철저히 법률적인 관점에서, 법조전문가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기반하여,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적시한 책이다판사들이, 검사들이, 변호사들이, 경찰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출소한 가해자로부터 보복범죄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 호소하자 경찰은 ‘당하면‘ 오라고 했다. 내가 ‘당하면 여기 이 자리로 와서 말할 수 있겠냐고 했지만, 자기들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더라. - P20


이런 안일한 경찰의 태도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보복을 당하고 오지못하게 되었던가.



형사사법 절차는, 사법 시스템은 성폭력 피해 이후 피해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길 중 하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길은 험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길을 따라 걸어도 목표한 곳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도 그 길에서 말, 시간,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도착 지점에서 승소했다는 판결문 하나만을 받았다. 이렇게 ‘법대로‘는 최선의 선택지가 되기엔 아직 불안하고 거칠며 좁은 길이다. - P521


D님은 경찰 수사, 검사 조사, 재판과 재판 이후 까지, 사법 절차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기술하고 있다. 또한, 가해자 및 그 주변인들의 2차 가해, 보복성 고소, 가해자의 죽음 문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모욕, 합의 강요 등 피해자가 피해 회복을 위해 재판이라는 사법 절차를 선택하기로 결정할 경우 가야할 길을 정확하고 처절하게 안내한다.



피해자가 숨을 고르고 사회 복귀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데, 사회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다. ‘회복적 사법 restorative justice‘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피해자의 실질적 회복에 대한 관심은 적은 것이다. 신변보호, 주거와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관련된 각종 의료적 지원, 직업교육 등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안전망 구축 등 아주 기본적인 회복 지원도 여전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긴 ‘응보적 사법 retributive justice‘ 역시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아직은 지나치게 큰 기대일 수 있다. 그렇기에 ‘법대로‘하는 것은 피해자가 여전히 많은 상실을 각오해야 하는 선택지다. 법적 절차가 종료된 후 피해자가 사회로 복귀하기까지 사법 시스템은,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 P89


설령 피해자는 재판에서 승소하더라도 그 기쁨도 잠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상처투성이인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D님은 회복적 사법이 필요하나, 아직 우리는 응보적 사법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말한다.



"현재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닙니다."
2010년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만나는 전문가들마다 내게 한 말이었다. 왜 피해자인 내가 수사·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좁은지, 어째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지 물으면 내가 당사자가 아니니 당연하다고 했다. 난 범죄 피해를 입었는데, 피해로부터 회복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왜 당사자의 지위에 있지 못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분과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 P161


형벌은 범죄자에 대한 국가 형벌권의 발동, 즉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함으로써 재범 방지와 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형사사법 절차는 가해자(피의자/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을 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피해자는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밝힐 ‘증인‘으로서 부수적 · 주변적 · 수동적 지위에 놓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응보‘는 제대로 되고 있는가? 아니다.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당사자의 지위도 아닌 피해자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안긴다. 결과 역시 범죄의 피해와 해악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제대로 된 응보도 되지 않는다. 결국 형사사법 절차를 거친 많은 피해자들은 피해를 온전하게 회복하지도, 사회에 복귀하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 P171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고 뼈저리게 다가온 사실은 피해자가 사법절차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막연히 검사가 피해자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렇지 않다. 피해자는 사건의 증인일 뿐, 사건 정보를 제대로 받지도, 판결문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법적 절차는 철저히 가해자와 가해자 변호사의 주장에 따라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나서더라도,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제대로 확인하거나 챙겨보지 않고, 가해자의 주장과 가해자의 사정만을 고려하여 다양한 정상참작을 통해 아주 가벼운 형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피해자가 동의했다/피해자가 동의했다고 가해자가 인식할 만했다

피해자는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피해자는 원래 이상했다

진짜 피해자라며 그럴 수 없다

모든 것이 피해자를 조종하는 배후의 음해와 모험이다

피고인의 정신 상태가 불안하다/피고인은 심신미약이다

피고인의 가정환경, 혼인 경험,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고려해달라

피고인의 나이를 고려해달라

신문 기술로 피해자 제압하기

잘못된 정보로 사실관계 흐르기

자료. 정보를 짜깁거라 왜곡하기

피해자를 고소하기/국민참여재판 신청하기

최후변론을 활용해 피해자를 공격하고 변호인 자신을 변호하기

P224-235

 

이런 악질적인 성범죄 전담전문 변호사들의 전략을 보면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 유치함에도 판결에, 양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이제 연대를 더 확장하려 한다. 사법 시스템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 교육, 국제관계 등 다양한 사회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계를 통해서만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사법 감시 형태를 다양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 당신의 연대가 필요하다. 당신도 피해자의 그림자가 될 수 있다. 당신이 내민 손이 피해자를 살릴 수 있다. 당신이 다듬는 길이 결국 이 사회를 바꿀 것이다. 그러니 길로, 광장으로 나오길. 나는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 P523


마지막 5장에서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디지털 성범죄 재판 방청기를 통해더 이상 지역 구분도 모호하고피해자도 특정 되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의 철저한 처벌을 위해 많은 시민의 재판 모니터링과 연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마지막에 첨부된 'n번방', '박사방', '프로젝트n번방' 피고인들의 재판 과정 및 결과와 형량의 일목요연한 표에서 결연함이 느껴진다.


D님은 이제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연대를 넘어서 시스템의 문제 해결에 더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재판 모니터링 교육, 온라인 세미나 뿐만 아니라 법조인이나 예비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 심포지엄 참석 등을 통해 법조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형사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런 활동의 일환일 것이다.

 

한 개인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많은 일을 짊어지고 있는 D님이 아프지 않고, 개인적 여유도 가지는 삶을 살기 바란다.

 

이 책의 마지막 더 깊이 읽기를 위한 자료에 여러 책들과 자료, 기사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러 관심가는 책이 있지만, 그 중에서 존재를 몰랐던 이 책을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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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10 1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사놓고 읽지 아직 읽지 않았는데 햇살님 리뷰를 보니 정말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책은 정말 법조계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읽어야 하는게 아닌지.... 아직도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결 같은걸 보면 정말 분노가 솟구치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 말이지요.

햇살과함께 2022-10-10 16:48   좋아요 2 | URL
n번방 사건 이후 박사방과 프로젝트n번방 사건에서는 판결이나 형량에서 고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나 여전히 부족하고 언제 백래시가 일어날지 모르니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겠어요!!

미미 2022-10-10 17: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해자가 사법절차상 당사자가 아니란부분 저는 훑다가 발견했는데 충격이었어요.
그런 말도 안되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가해자들 아닌 피해자들을 압박하는것. 그런
것들을 먼저 개선해야할것 같아요. 이렇게 가해자에 유리한 점들이 군사정부의 잔재라는 설명을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답답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10-11 12:21   좋아요 2 | URL
민사와 형사는 법리적 개념부터 다르구나 라는 것을 절절히 느꼈네요..
형사 사건이라도 사건의 성격에 따라 ‘피해자‘의 지위나 당사자성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텐데, 너무 일률적인 적용은 아닌지,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인지, 다른 국가들의 형사 사법 제도나 피해자 지위는 어떤지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더 알고 싶어졌어요!

2022-10-11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2-11-03 16:04   좋아요 3 | URL
우리 형사소송법이, 옛날 군사정권 시절에 하도 피의자들, 피고인들에 대한 고문 등 가해행위가 심했어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계속계속 발전해 왔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미흡했던 점이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 피해자 보호에 관해 문제제기도 많고 절차상으로도 여러 규정이 들어오긴 했는데 실제로는 갈길이 먼 것 같아요.

독서괭 2022-11-03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 읽고 햇살님 리뷰 읽으러 왔습니다. 저도 리뷰 써야하는데 책이 묵직해서 쉽지 않네요~ 햇살님 리뷰는 중요한 부분 콕콕 집어주신 듯요^^
저는 이 책과 함께 <디어 마이 네임>을 같이 읽었는데(이건 현재진행형) 이책도 참 좋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1-03 17:01   좋아요 2 | URL
정말 리뷰 쓰기가 쉽지 않은 묵직한 책입니다...
그렇지만 독서괭님은 멋진 리뷰를 쓰실 것이므로, 기다리겠습니다~
오 그 책도 흥미롭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이제 서문 읽기 완료..
12월까지 완독하려면 주당 최소 100페이지씩 읽어야겠다.

하지만 이들보다 우리 프로젝트에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엘런 모어스와 일레인 쇼월터의 새로운 논증이었다. 그들의 작업은 19세기 여성 문인에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학과 문화가 있었음을, 다시 말해 19세기에 분명하고도 풍부한 여성문학의 하위문화, 즉 여성들이 의식적으로 서로의 작품을 읽고 관계 맺는 공동체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모어스와 쇼월터가 이 공동체의 역사 전반을 매우 훌륭하게 추적한 덕분에 우리는 중요해 보이는 몇몇 19세기 작품을 파고들 수 있었다. 우리는 후속 집필을 통해 20세기의 핵심적인 작품들을 유사한 방식으로 읽을 계획이다. 그 작품들은 남성 문학의 주장과 강제에 대응했던 여성문학의 원동력을 이해할 시금석이 되어주었다. - P21

데니즈 레버토프가 열기로 가득한 교육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시낭송을 위해 블루밍턴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수정/개정의 도취라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지금은 너무 쉽게 폐기해버리는, 1970년대의 많은 초기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처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었고, 문학적인 것이 개인적이었고, 성적인 것이 텍스트적이었고, 페미니스트는 속죄하는 존재였고 기타 등등! (그것들은 진정 계시였고) 이런 계시들을 냉소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로고스 중심적인 권위를 몇몇 이론가들이 말했던 ‘기원의 순간‘ 탓으로 잘못 돌리는 위험을 무릅쓴다 해도 인정해야 한다.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건 축복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그 축복 중 일부가 마치 맛있는 후식처럼 우리와 함께 개종의 여정을 떠났던 최초의 학생들에게 나눠지기를 희망한다. 수전이 언급한 ‘눈맞춤‘은 분명 전기 충격처럼 짜릿했고, 우리 사이를 지나간 계시와도 같은 이해의 네트워크 자체였다. 그것은 아마 레버토프가 「마음속에서」를 썼을때,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우리 모두가 동의했다는 의미다. 말하는 사람을 결코믿지 마라. 페미니스트의 분석을 믿어라. 적어도 지금까지 그렇다. - P33

샌드라: 육아, 어머니 되기, 어머니! 우리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연구하고 쓰던 때를 되돌아보면, 우리 프로젝트에서 항상 핵심이었던 것은 모성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가부장적 시‘와 ‘가부장적 시학‘에 저항하면서 우리 세대의 모든 페미니즘 비평가처럼 창조성에 대한 대안적 수사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펜이 은유적으로조차 음경을 말하지 않는다면(그리고 음경은 확실하게 펜이 아니었다!) 자궁은 어떨까? - P36

이 질문이 시사하듯, 페미니즘 비평을 위해 19세기 연구는 여전히 탐색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다. 한편으로 그 시대의 성이데올로기는 여러 면에서 특히 억압적이었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가 오래전에 설파했듯, 그 시대는 여자들을 코르셋에만 감금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박탈과 불만족과 함께 ‘사적인 집‘에 감금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그 시대의 미학적 정치적 명령은 광범위한 혁명 운동뿐만 아니라 여성의 상상력에서 나온 가장 풍요로운 산물을 만들어낼 만큼 영향력이 컸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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