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감염된 문장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J. 힐리스 밀러가 말했듯이 이런 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이 ‘이전 작품들의 현존, 메아리, 인유, 손님, 유령이라는 기생체의 거주지‘가 되는 방식을 연구한다.
밀러도 말했듯 최초이자 최고의 문학 심리사 연구가는 해럴드 블룸이었다. 블룸은 프로이트의 구조를 문학 계보학에 적용하면서 작가의 ‘영향에 대한 불안‘, 즉 자신이 자신의 창조자가 아니고 선배들의 작품이 이미 자신을 넘어서서 존재하며 자신의 작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불안에서 문학사의 역동성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 P141

블룸의 역사 개념은 우리 목적에 유용하다. 그의 개념은 그처럼 많은 서구 문학을 탄생시킨 가부장적 성의 심리적 맥락을 규정하고 정의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여성 작가의 불안과 업적을 남성 작가의 그것과 구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P143

따라서 남성 시인들이 경험하는 ‘영향에 대한 불안‘은 여성 시인에게 오히려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자신은 창조할 수 없다는 불안, 자신은 결코 ‘선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글 쓰는 행위는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파괴할 것이라는 근본적인 불안)으로 다가온다. - P145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선배로부터의소외감, 남성 독자의 반감을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 여성 독자에 대한 절박한 갈구, 문화적 조건 안의 자아를 극화시킬 때 튀어나오는 소심함,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등 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며, 자아 창조를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남성 작가와 구분해주는 현상이다. - P147

그것은 불편함, 적어도 불만, 방해, 불신 등 여러 가지 세균이다. 세균은 많은 여성문학의 구조와 문체, 특히 이 책에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20세기 이전 여성문학 전반에 얼룩처럼 퍼져 있다. - P148

구두를 거부하고 천사같은 마카리에가 되는 것이 여자를 병들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두를 신는 여왕이 되는 것 역시 여자를 병들게 한다. - P156

여성 작가는 질병의 이미지, 질병의 전통, 질병과 불편함의 권유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기 본성의 불안을 비추는 많은 거울을 들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감염된 문장이 새끼를 친다‘는 개념은 여성 문인에게 너무도 잘 들어맞는 진실이다. - P158

따라서 ‘감염된 문장‘이 여성들 사이에 ‘새끼를 쳐나가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어떻게 질병을 통해 예술적 건강을 획득해내는가를 배우기 위해서도 ‘영향에 대한 불안‘이라는 블룸의 중요한 정의를 재정의해야 한다. - P161

‘여성은 박쥐나 올빼미처럼 [어둠 속에] 살고, 짐승처럼 일하며, 벌레처럼 죽는다‘고 캐번디시가 쓴 것은 자기 자신과 절망이 대결하는 쏜살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그녀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그녀의 마차 주위에 몰려들었다. 왜냐하면 ‘미친 공작 부인이 영리한 소녀들을 놀라게 하는 악귀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67

그리하여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는 당황스러운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여성 문인은 자신이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선택에 직면한 여자들이 문학작품을 창조하자 그들의 작품에는 제한된 선택에 대한 강박적 관심뿐 아니라 예외 없이 강박적 감금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 P169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신랄하게 보여주었듯이, 여성 소설가가 자신을 백설공주와 동일시하면 로맨틱한 유리 관은 죽음의 침대처럼 느껴진다. 반면 여왕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여성은 사회에서 추방한다는 암울한 사실은, 여성 문인에게 비극적이고 장엄한 이야기의 영감이기보다 늘 불안의 원천이 되었다. 고귀한 자는 결국 맥베스이고 레이디 맥베스는 괴물이다.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지만, 메데이아는 마녀일 뿐이다. 리어의 광기는 거룩하고 보편적이지만, 오필리아의 광기는 그저 측은할 따름이다. - P175

이와 동시에 자신의 여성성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플롯이나 시학의 가부장적인 성격에 정면으로 맞서는 여자는 장르와 젠더의 화해할수 없는 대립에 아연실색할 것이다. 마거릿 풀러의 일기는 이 문제를 깔끔하게 요약했다.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생의 모든 물결을 느끼면서도, 나의생각을 형식으로 주조하려고 할 때면 나는 입이 딱 붙고 무력해 - P179

진다. 옛날 것은 어떤 것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는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여자인 게 정말 좋다. 그러나지금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나‘의 영역을 제한한다. 어떤 때는 진정으로 여자로서 살지만, 또 어떤 때는 숨이 막힌다. 내가 예술가 역할을 할 때 마비되는 것처럼. - P180

물론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적절하게 벌을 받는) 여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분열, 즉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극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문학에 등장한 미친 여자가 남성 문학과 달리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적대자거나 들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실제로 여성이 쓴 많은 소설과 시에는 미친 여자가 출현한다. - P189

따라서 이 미친 분신은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의 한층 반항적인 이야기에서 중요하듯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의 지극히 온건한 소설에서도 중요하다. 고딕 작가와 반 고딕 작가 두부류는 모두 선택받은 수녀와 저주받은 마녀 사이에 있는 에밀리 디킨슨처럼, 또는 고상하고 비판적인 과학자와 분노에 찬 어린애 같은 괴물 사이에 있는 메리 셸리처럼, 자신을 분열된 자아로 재현했다. 여성 작가의 이런 정신분열은 지극히 중요하다. 그것이 19세기 작가들을 (자신을 댈러웨이 부인과 미친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 둘 다에게 투사하는) 버지니아 울프, (자신을 분별 있는 마사 헤세와 미친 린다 콜리지 사이에서 분열시키는) 도리스 레싱) (자신을 석고로 만들어진 성자이자 위험한 ‘늙은 황색‘ 괴물로 본) 실비아 플라스 같은 20세기의 후배 작가들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 P190

가장 잘 알려진 최근의 몇몇 여성 시는 페미니즘을 위해 그런 패러디를 공공연하게 사용했다. 키르케, 레다, 카산드라, 메두사, 헬레네, 페르세포네 같은가부장적 신화의 전통적인 여성 인물들은 모두 최근에 여성창조자의 이미지로 재창조되었고, 이들 인물에 바친 각각의 시는 그녀의 원래 이야기를 재창조했다. - P192

「누런 벽지가 출판되었을 때 길먼은 이 작품을 위어 미첼에게 보냈는데, 미첼은 그녀가 신경쇠약에 걸렸을 때 글 쓰는 것을 금지시켜 그녀의 병을 악화시켰던 장본인이다. 몇 년 후 ‘그가’ 길먼의 이야기를 ‘읽은 뒤 자신의 신경쇠약 치료법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듣고 길먼은 매우 기뻐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말이다.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거릿 풀러 찾아보자. 다미여에도 나오고.

하지만 영국 독자가 숙고하게 되는 것은 지성에 대해서이니, 지성은 우리 소설에서 어쩌면 가장 드문 자질이기 때문이다. 지성이란 정의하기 어려운 무엇이다. 단순히 총명함이나 지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감각, 즉 인생의 묘미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 혹은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하지만 설득 가능한 상대인 제3자, 다시 말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과 소통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보는 감각이다. 그것이 『기후』의 인물들을 그토록 합리적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이자벨의 말은 이런 관계를 잘 보여 준다. - P92

왜냐하면 영국인이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미국인이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의 교육에서 첫걸음은 그토록 오랫동안 죽은 영국 장군들의 지휘 아래 행군해 온 영국 단어들의 전 부대를 물리치는 것이다. 그는 <작은 미국 단어들>을 길들여 자기 명령에 따르게 해야 한다. 그는 필딩과 새커리의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고, 자기가 시카고술집의 사람들에게, 인디애나의 공장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하지만 다음 걸음은 훨씬 더 어렵다.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 결정한 다음에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P101

그가 남들처럼 생계를 꾸리기 위해 처음으로 해본 일은 초등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었는데, 생도들을 매질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는 매질 대신 말로 훈계하기를 원했다. 위원회에서 <그런 관대함>이 학교에 폐를 끼친다는 점을 지적하자, 소로는 엄숙하게 여섯 명의 생도에게 매질을 하고는 학교 운영이<자신의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임해 버렸다. 무일푼의 젊은이가 실천하고자 했던 생활 방식이란 아마도 몇 그루 소나무와 웅덩이, 야생 동물, 그리고 인근에서 발견되는 인디언 화살촉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는 벌써부터 그런 것들에 끌리던 터였다. - P120

이 운동의 지도자들이 보기에 이 새로운 희망에 도달할 기회를 주는 삶의 방식은 두 가지로, 하나는 브룩 팜같은 공동체 생활이요,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 홀로 사는 것이었다. 선택의 시간이 오자 소로는 단연 두번째를 택했다. <공동체로 말하자면, 나는 천국에서 기숙사에 가느니 지옥의 독신자 구역을 택하겠다>라고 그는 일기에 썼다. - P122

그의 강인하고도 고귀한 책, 모든 말이 성실하고 모든 문장이 작가의 기량을 보여 주는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묘한 거리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소통하려 애쓰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의 눈은 땅바닥 아니면 지평선을 향해 있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으며, 반쯤은 자기 자신을 향해, 반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무엇인가를 향해 말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이 내 일기의 모토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썼으며, 그의 모든 책이 사실상 일기이다. 다른 사람들, 남자들과 여자들은 감탄할 만하고 아름답지만 그와는 거리가 멀었고 달랐으며, 그는 그들의 행동거지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초원의 개만큼이나 신기한> 존재들이었다. 다른 인간들과의 모든 교제가 그에게는 극도로 힘들었고, 한 친구와 다른 친구 사이의 거리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관계는 아주 불안정하고 실망으로 끝나기 십상이었다. 자신의 이상을 낮추는 것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태세가 되어 있었지만, 소로는 그 어려움이 애쓴다고 극복될 성질의 것이 아님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태어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북소리가 박자에 맞든 종잡을 수 없든, 들려오는 음악에 맞추어 걷게 하라.> - P128

그는 야생적인 사람이었고, 결코 길들여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에게 독특한 매력을 느끼는 것도바로 이 대목이다.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다. 자연이 그에게는 우리와 다른 본능을 불어넣었으니, 우리가 모르는 비밀들을 속삭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 P12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10-26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리아 포포바의 책 <진리의 발견>에 마거릿 풀러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다른 책은 저도 본게 없네요

햇살과함께 2022-10-26 23:16   좋아요 0 | URL
알라딘엔 안나오고 네이버 검색하니 말씀하신 <진리의 발견>만 나오네요~ 번역된 책이 없나봐요. 진리.. 엄청 유명한 책이라 이름만 들어봤는데^^ 일단 도서관 검색해서 발췌해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플로베르(59p), 순박한 마음
체호프(76p), 개를 데리고 있는 여인, 우편
도스토옙스키(79p),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악령
톨스토이(83p),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소설은 책이라는 물건 안에 갇혀 있고, 우리 독자의 눈길은 너무나 재빨리 그 위를 스쳐 가므로 그 형태를 오래 기억할 수가 없다>고 말이다. 바로 그 점이다. 무엇인가 항구적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고, 견고한 무엇을 짚어 낼 수 있다. - P57

여기서 러복 씨는 책 그 자체가 형식과 등가적이라고 말하며, 소설가들이 자기 작품의 최종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를 축조하는 방법을 감탄할 만한 섬세함과 명료함으로 추적해 낸다. 하지만 책의 형식이라는 이미지가 그렇게 맞아떨어지게 말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정말로 그렇게 딱 맞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갖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미지를 떨쳐 버리고 구체적인 대상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최상이다. 이야기를 한 편 읽으면서 우리의 인상들을 적어 보기로 하자. 그러면 아마도 러복 씨가 형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거슬리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플로베르보다 더 적당한 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니 단편인 [순박한 마음Un Coeur simple]을 골라 보자. - P59

그러므로 <책 그 자체>는 당신이 보는 형식이 아니라 당신이 느끼는 감정emotion이며, 작가의 느낌feeling이 강렬할수록 그것은 더 정확하고 실수 없이 말로 표현된다. 러복 씨가 형식에 대해 말할 때마다, 마치 우리와 우리가 아는 작품 사이에 무엇인가가 끼어드는 것만 같다. 무엇인가 이질적인 것이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 위에 얹히며 시각화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느끼고, 단순하게 이름 짓고, 그것들을 상호간에 느껴지는 관계를 바탕으로 재배열한다. 말하자면, 감정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작업하여 「순박한 마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읽기가 끝나면, 무엇이 보인다기보다 모든 것이 느껴진다. - P61

자유가 있는 곳에는 방종이 있다. 소설은 누구나 팔 벌려 맞이하지만, 다른 문학 형식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다. 하지만 승리자들을 바라보자. 우리는 실로 그들을 공간이 허용하는 이상으로 가까이서 많이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들이 작업하는 것을 보면 모두 달라 보인다. 새커리는 항상 곤란한 장면을 피하려고 노심초사하고, 디킨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만 빼고) 항상 그런 장면을 찾아다닌다. 톨스토이는 기초도 놓지 않은 채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며, 발자크는 기초를 어찌나 든든히 놓는지 이야기 자체는 도무지 시작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러복 씨의 비평이 개별 작품들을 읽는 데 적용되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은 마음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전반적인 시각이 더 볼 만하니, 전반적인 시각에 머물기로 하자. - P65

물론 이런 식의 일반화는 러시아 문학 전체에 적용될 때 어느 정도 진실이기는 하겠지만, 천재적인 작가가 작업에 착수하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대번에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태도〉라는 것이 단순치 않으며 극히 복잡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철도 사고를 당해 외투뿐 아니라 예의범절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은, 사고 탓에 생겨난 체념과 단순성 때문이라하더라도, 거친 말, 잔인한 말, 불유쾌하고 하기 힘든 말을 내뱉기 마련이다. 체호프에게서 드는 우리의 첫 느낌은 단순함이라기보다 당혹감이다. 도대체 요점이 뭔가, 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가? 우리는 그의 단편들을 한 편씩 읽어 나가면서 줄곧 자문하게 된다. 한 사람이 결혼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지만, 결국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참을 수 없는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데서 끝난다. - P75

체호프를 읽을 때면 우리는 <영혼>이라는 말을 되뇌게 된다. <영혼>이라는 말이 그의 책 곳곳을 누비고 있다. 늙은 주정뱅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쓴다. 〈너는 군대에서 아주 높아져서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됐지만, 네게는진짜 영혼이 없어. (………) 네 영혼에는 아무 힘도 없어.> 정말이지 러시아 소설에서 주된 등장인물은 영혼이다. 체호프에게 있어 영혼은 섬세하고 미묘하며 무수한 기질과 장애에 달려 있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영혼은 한층 깊이 있고 풍부한 것이 되며 격심한 질병과 신열을 불러일으키지만 여전히 주된 관심사이다. 아마도 영국 독자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나 『악령』을 재차 읽을 때 그토록 노력이 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79

도스토옙스키에게는 그런 제약들이 없다. 그에게는 당신이 귀족이든 평민이든, 부랑자이든 귀부인이든 매한가지이다. - P82

당신이 누구든 간에 영혼이라는 저 당혹스러운 액체, 뿌옇고 거품 나는 소중한 것이 담긴 그릇일 뿐이다. 영혼은 어떤 장벽에도 구애되지 않는다. 그것은 넘쳐흐르며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섞인다. 포도주 한 병 값을 치르지 못한 은행원의 이야기가 어느 곁에 그의 장인과 장인이 형편없이 다루는다섯 명의 정부들의 삶 속으로, 우편배달부의 삶과 날품팔이 여자의 삶 속으로, 그리고 같은 구역에 사는 귀족 여성들의 삶 속으로 퍼져 나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지쳐도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그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다. 우리를 덮치는 이 뜨겁고 펄펄끓어오르는 것, 마구 뒤섞이고 경이롭고 끔찍하고 숨 막히는 것 - 이것이 인간 영혼이다. - P83

영혼이 도스토옙스키를 지배하듯이, 톨스토이를 지배하는 것은 삶 그 자체이다. 모든 찬란하고 빛나는 꽃잎의 중심에는 항상 이 <왜 사는가>라는 전갈이 숨어 있다. 책의 중심에서는 항상 올레닌, 피에르, 레빈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모든 경험을 자신 안에 거둬들이고 세상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려보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 모든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의 욕망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산산조각내는 것은 사제가 아니라 그 욕망들을 아는 사람, 자신도 그것들에 탐닉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그것들에 조소할 때, 세상은 발밑의 먼지요 재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의 즐거움에는 두려움이 섞여 든다. 세 사람의 위대한 러시아 작가 중 가장 우리를 매혹하면서도 반발하게 하는 것은 톨스토이이다.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테뉴(-29p), 에세
디포(-44p), 몰 플랜더스, 록사나
디킨슨(-52p), 데이비드 코퍼필드

하지만 자기 기분에 따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기영혼의 무게와 빛깔과 둘레를 그 혼돈과 다양성과 불완전함 가운데 전부 펼쳐 보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일이며, 그 기술을 온전히 구사하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몽테뉴뿐이다.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그 그림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깊이를 응시하고 그 안에 비친 자신들의 얼굴을 알아보며, 보면 볼수록 자신들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잘라 말할 수 없게 된다. - P12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친숙함 가운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앞서 이 길을 갔던 예로는 고대인 두어 사람에 대해서밖에 들어 보지 못했다. 그 후로는 아무도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것은 거친 길이고, 보기보다 더욱 그러하다. 영혼의제멋대로 쏘다니는 걸음을 뒤따라가며, 그 복잡한 속내의 깊은 어둠을 뚫고 들어가, 그 무수히 자잘한 움직임을 골라 포착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것은 새롭고 독특한 작업으로, 우리를 세상의 공통관심사에서 멀어지게 한다.

우선 표현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 모두는 생각하기라는 이상하고도 재미난 과정에 즐겨 빠져들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은편 사람에게 말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 - P13

자신을 전달한다는 어려움 너머에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더 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이 영혼 내지 생명은 결코 우리 바깥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 영혼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감히 물으면, 항상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대답을 한다. - P14

자신을 아는 사람은 한층 독립적이 되며 결코 따분해하지 않는다. 삶이 너무나 짧을 뿐, 그는 깊고 차분한 행복에 속속들이 젖어든다. 그만이 삶을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은 의례의 노예가 된 채 삶이 꿈처럼 덧없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일단 순응하여 남들이 하는 것을 그저 그들이 - P16

한다는 이유로 따라 하기 시작하면, 모든 섬세한 신경들과 영혼의 능력들이 무기력에 빠져들게 된다. 영혼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된 채 내적으로는 공허해진다. 둔하고 무감각하고 무심해진다. - P17

몽테뉴는 인간 본성의 비참과 나약함과 허영에 대한 경멸을 그치지 않는다. 아마도 종교에 의탁하여 인도를 구해봐도 좋지 않을까? <아마도>라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이다. <아마도>와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무지에서 나오는 경솔한 단정을 완화하는 말들을 그는 좋아한다. - P21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단지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을 뿐이다.
Que 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 P29

<여성의 교육에 관한 그의 에세이에 드러난 증거들로 볼 때, 우리는 그가 깊이 생각했고 자기 시대보다 앞서 여성의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여성들에 대한 부당한 대접을 가혹하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종종 우리가 여성들에게 교육의 유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문명국이요 그리스도교 국가임을감안할 때, 세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관습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여성이 어리석고 주제넘다고 날마다 비난하는데, 만일 여성도 우리와 대등한 교육의 유익을 누린다면 그들은 우리보다 잘못을 덜 저지르리라고 확신한다. - P40

디포는 그녀들의 실패에 대해 지나는 말로밖에는 심판 하지않았다. 오히려 그녀들의 용기와 재치와 강인함이 그를 기쁘게 했다. 그는 그녀들에게서 유쾌한 이야기와 상호 신뢰, 그리고 자연스럽고 소박한 도덕성을 발견했다. 그녀들의 운명에는 그가 감탄하고 즐기고 자신의 삶 가운데서 경이롭게 바라본 무한한 다양성이 있었다. 이 남녀 인물들은 태초부터 인간 남녀를 움직여 온 정열과 욕망들에 대해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말했으며, 지금도 그들의 활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숨김없이 바라다본 모든 것에는 위엄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돈이라는 지저분한 주제조차도, 안락과 권세가 아니라 명예와 정직성과 인생 그자체를 위한 것일 때는 지저분하기보다 비장한 것이 된다. 디포가 따분하다고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하찮은 것들에 골몰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 P43

디킨스에 관한 오늘날의 세평은 이렇다. 그의 감성은 역겹고 그의 문체는 진부하며 그를 읽는 동안에는 일체의 교양을 감추고 감수성은 유리장 안에 넣어 두어야 하지만, 이렇게 경계하고 거리를 두더라도 그는 역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며 스콧처럼 타고난 창조자요 발자크처럼 엄청난 다작가라는 것이다. 하지 - P46

만 세평은 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도 읽고 스콧도 읽지만, 디킨스를 읽기에 마침맞은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 P47

그러므로 디킨스의 소설은 느슨하게, 대개는 극히 자의적인 방식으로 한데 묶인 개별적인 인물들의 집적이되어 버리기 쉽다. 인물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우리의 주의를 사방팔방 흩어 놓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에 빠진 나머지책을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는 이런 위험이 극복되었다. 거기서는 비록 수많은 인물들이 모여들고 삶이 온갖 구석과 틈바구니로 흘러들지만, 젊음과 유쾌함과 희망이라는 일관된 감정이 그 소란을 감싸고 흩어진 부분들을 그러모으며, 디킨스의 소설 가운데 가장 완벽한 작품에 아름다운 분위기를 더해 준다.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턴의 악령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병균, 세균(84페이지)이라는 말 <다락방의 미친 여자>(148페이지)에도 언급되었는데,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자기만의 방은 다 읽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 P10

그 사람은 교구 관리였고 나는 여자였습니다. 이곳은 잔디밭이었고 인도는 저편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대학의 특별 연구원이나 학자들에게만 허용된 장소였으며 내게 적합한 곳은 저 자갈길이었습니다. - P14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돌아가라고 손짓하며 여성이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한다고 유감스럽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 P16

이번에는 교회당 안내인이 나타나 나를 멈춰 세우고 아마 세례 증명서를 요구하거나 사제장의 소개장을 보여달라고 하겠지요. - P17

다만 시턴 부인과 그녀의 부류들이 열다섯 살의 나이에 실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더라면 아마―이것이 논의에서 뜻하지 않은 난관입니다만—메리는 태어나지 못했겠지요. 나는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 P36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전혀 무익한 일입니다. 당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더욱이 시턴 부인과 그녀 - P37

의 어머니와 그 이전의 어머니들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대학과 도서관의 초석 아래 재산을 기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도 무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이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했으며,둘째 돈 버는 일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번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턴 부인이 자기 자신의 돈을 한 푼이라도 가질 수 있게 허용된 지 이제 겨우 사십팔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의 수백 년 동안 그것은 남편의 재산이었습니다. - P38

교회당에서 울리던 오르간과 도서관의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잠긴 문밖에 있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를 생각했고, 어쩌면 잠긴 문 안에 있는 것이 더욱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성(性)의 안정과 번영, 다른 성의가난과 불안정을 생각했고, 작가의 마음에 전통이 미치는영향과 전통의 결핍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서, 마침내그날의 논의와 인상들, 분노와 웃음과 함께 그날의 구겨진껍질을 말아서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 버려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푸르고 광막한 하늘에는 수천 개의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불가사의한 사회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든 채 수평으로 엎드려 아무 말이 없었지요. 옥스브리지 거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호텔 문조차 보이지 않는 손이 닿기라도 한 듯 갑자기 열렸으며, 나를 잠자리로 인도하기 위해 불을 비춰주려고 일어나 앉아 있는사람도 없었습니다. 너무 늦었지요. - P40

옥스브리지에서의 오찬과 펀엄에서의 만찬에 대한 불가피한 귀결점은 불행히도 대영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 P41

그것은 그저 상처 입은 허영심의 외침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침해당한 데 항의한 것이지요. 여성은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왔습니다. 그 마력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 지금도 늪과 정글뿐일지도 모르지요. - P56

내 지갑에는 10실링짜리 지폐가 한 장 더 있었지요. 나는 그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지갑에서 10실링짜리 지폐가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숨을 멎게 할 정도로 놀라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갑을 열면 그곳엔 지폐가 있지요. 나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한 숙모님이 물려준 유산에서 나오는 몇 장의 종잇조각에 대한 대가로 사회는 닭고기와 커피 침대와 숙소를 제공해 줍니다. - P58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지금도 여겨지는 것은 그 당시 내마음속에서 싹튼 두려움과 쓰라림의 독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원하지 않는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항상 부득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고 또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노예처럼 아부하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 하나의 재능―작은 것이지만 소유자에게는 소중한―이 소멸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나 자신, 나의 영혼도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나무의 생명을 고갈시키며 봄날의 개화를 잠식하는 녹과 같았습니다. - P59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 P60

진정 숙모님의 유산은 내게 하늘의 베일을 벗겨주었고, 밀턴이 우리에게 영원히 숭배하라고 천거한 신사의 크고 위압적인 모습 대신 훤히 트인 하늘을 보여주었습니다. - P61

누군가가 어느 순간에 어떤 재능의 가치를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가치들은 변화할 것입니다. 백 년이 지나면 이 가치들은 완전히 변하겠지요. 더욱이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집 문 앞에 이르러 생각하건대,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한때 자신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활동과 힘든 작업에 참여할 것입니다. 아이 보는 여자는 석탄을 운반할 것이고 가게 주인 여자는 기관차를 운전할 것입니다.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에 근거를 둔 모든 가설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 P63

픽션은 상상력에 의한 작업이긴 하지만 조약돌처럼 땅 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은 그러할지모르지만요. 픽션은 거미집과 같아서 아주 미세하게라도 구석구석 현실의 삶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종종 그 부착된 상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지요. - P65

그리하여 아주 기묘하고 복합적인 존재가 생겨납니다. 상상에 있어서 여성은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전적으로 하찮은 존재입니다. 시에서는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여성의 존재가 고루 퍼져 있지만, 역사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녀는 거의 읽을 줄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 P68

그동안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의 누이는 집에 남아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녀도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세계를 알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요. 그녀에게는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을 기회는커녕 문법과 논리학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책을, 아마도 오빠의 책이었겠지만, 집어 들고 몇쪽을 읽었지요. 그러면 그녀의 부모님이 들어와서 양말을 꿰매거나 국을 끓이는 데 신경을 쓰라고, 책이나 논문 따위를 붙들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호되게 나무랐지만 그것은 선의에서 나온 꾸지람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자들의 삶의 조건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으며, 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 P73

그러나 내가 지어낸 셰익스피어 누이의 이야기를 검토하면서 생각하건대 그 이야기에서 사실이라 할 수 있는 점은, 16세기에 태어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여성은 틀림없이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또는 마을 변두리의 외딴 오두막에서 절반은 마녀, 절반은 요술쟁이로공포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일생을 끝마쳤을 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적 재능을 발휘해 보려고 시도한 천부적 재능을 지닌 여성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고 저지되었으며 자기 내면에서 상충하는 충동들로 고통받고 갈가리찢겨서 틀림없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잃었을 거라고,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77

커러 벨, 조지 엘리엇, 조르주 상드, 이들의 작품이 입증하듯이 이 내면적 투쟁의 희생자들은 남성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비효과적으로나마 자신을 베일로 가리려 애썼습니다. - P78

우선 조용한 방이나 방음장치가 된 방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갖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 P81

19세기에도 여성은 예술가가 되도록 고무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고요. 오히려 여성은 냉대받고 얻어맞으며 설교와 훈계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런 사실에 항의하고 저런 사실에 논박할 필요성 때문에 지나치게 긴장되었고 생명력은 위축되었을 겁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여성운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아주 흥미롭고도 불명료한 남성의복합적인 심리에 근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성이 열등하기보다는 남성이 우월하기를 바라는 뿌리 깊은 욕망으로서, 남성을 예술의 전면뿐 아니라 도처에 서 있게 함으로써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도록 합니다. - P85

18세기 후반 여성들 사이에서 드러난 지극히 활발한 마음의 행위―대화와 모임, 셰익스피어에 관한 에세이 쓰기, 고전 번역 등―는 여성이글을 씀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기초하고있습니다. 대가가 지불되지 않을 때에는 경박했던 일이 돈으로 위엄을 갖추게 됩니다. "끼적거리려는 참을 수 없는욕망을 가진 블루스타킹"을 비웃는 것은 여전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들이 지갑 안에 돈을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지요. 그리하여 18세기 말 무렵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데, 내가 만일 역사를 다시 쓴다면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그것을 더 충실하게 묘사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만약 『오만과 편견』이 중요하다면 그리고『미들마치』와『빌렛』, 『폭풍의 언덕』이 중요한 작품들이라면, 35) 시골 저택에서 아첨꾼들과 사절판 책 속에 파묻혀 - P100

던 외로운 귀족들만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한 시간의 강연에서 피력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훨씬 중요한 사실일 것입니다. 이런 선두주자가 없었다면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은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 P101

제인 오스틴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런 환경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녀의 조카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숙모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따름이다. 왜냐하면 숙모님에게는 종종 찾아갈 만한 독립된 서재가 없었고, 또 숙모님이 쓴 작품의 대부분은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를 받으며 쓰여야했기 때문이다. 숙모님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인들이나 방문객, 또는 가족의 범위를 넘어선 사람들에게 눈치채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리하여 제인 오스틴은 원고를 숨기거나 압지 한 장을 덮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생각해 보면, 19세기 초에 여성이 받을 수 있는 문학 훈련이라고는 성격 관찰과 감정 분석 훈련이 고작이었지요. 그녀의 감수성은 몇 세기 동안 공동 거실의 영향을 받아 훈련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이 그녀에게 인상을 남겼고, 개인들의 관계가 항상 그녀의 눈앞에 있었지요. 그러므로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녀는 당연히소설을 썼습니다. - P103

그러나 그녀들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조금도 움직이지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순전한 가부장제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그런 비판에 직면하여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이본 그대로의 사물을 고집하는 일은 대단한 재능과 성실성을 요구했겠지요. 그 일을 해낸 것은 오직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뿐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또 다른, 어쩌면 가장 훌륭한 미덕입니다. 그들은 남성처럼 쓰지 않고 여성이 쓰듯이 썼습니다. 그 당시 소설을 썼던 수천 명의 여성들 가운데 그들만이 영원한 현학자들의 끊임없는 충고ㅡ이렇게 써라,저렇게 생각하라를 완전히 무시했지요. - P114

하지만 그들도 문학을 매수할 수는 없어. 문학은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니까. 나는 비록 당신이 교구 관리라 해도 나를 잔디밭에서 쫓아내도록 용인치겠어. 그러고 싶다면 당신의 도서관을 잠그라고. 그러나당신은 내 자유로운 마음에 문이나 자물쇠, 빗장 따위를 달 수는 없어. - P116

그녀는 픽션이나 시를 쓰려면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문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방이 필요하다는 결론(평범한 결론이지요.)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여러분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으로 하여금 이런 결론을 끌어내도록 만든 생각과 인상들을 털어놓으려고 노력했지요. - P158

어느 누구도 이 점에 대해 이보다 명료하게 표현할 수없을 겁니다. "요즈음뿐 아니라 과거 이백 년 동안에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영국의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위대한 작품들을 산출하는 지적 자유로 해방될 희망이 아테네 노예의 아들만큼이나 없는 것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좀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과거 무명 여성들의 노고 덕분에, 그리고 신기하게도 두 차례의 전쟁 덕택으로, 즉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거실에서 뛰쳐나오게 했던크림 전쟁과 약 육십 년 후 평범한 여성들에게도 문을 열어준 유럽 전쟁으로 인해 이러한 해악은 개선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러분은 오늘 밤 여기 모일 수 없었을 것이며, 여러분이 연간 500파운드를 벌 수 있는 기회는,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불확실하긴 하지만, 극히 적었을 것입니다. - P16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나는 - P164

이제 여러분의 힘으로 그녀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백 년 정도 살게 되고 (우리가 개인으로 살아가는 각자의 짧은 인생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라 말할 수있는 공동의 생활을 언급하는 겁니다.)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의 거실에서 조금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본다면, 그리고 하늘이건 나무이건 그 밖의 무엇이건간에 사물을 그 자체로 보게 된다면, 아무도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므로 밀턴의 악귀를 넘어서서 볼 수 있다면, 매달릴 팔이 없으므로 홀로 나아가야 하고 남자와 여 - P171

자의 세계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의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그것이 사실이므로ㅡ을 직시한다면, 그때에그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칠 것입니다. 그녀의 오빠가 그러했듯이, 그녀는 선구자들이었던 무명 시인들의 삶에서 자기 생명을 이끌어내며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 작업 없이, 우리 편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녀가 다시 태어날 때 그녀가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끼게끔 만들겠다는 결단 없이, 그녀가 출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위해 일한다면 그녀가 출현하리라는 것과, 비록 가난한 무명인의 처지에서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