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개가 내려가자 여학생들의 머리가 다시 나타났다. 나는 소곤거린 여학생 세 명을 가려냈는데,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나타났을 때 주저하지 않고 천천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경박한 말 몇 마디가 내게 얼마나 편안함과 용기를 가져다 주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나를 겁먹게 했던 것은, 수녀같이 검은 옷을 입고 부드럽게 머리를 땋고 내 앞에 있는 이 어린 아가씨들이 일종의 천사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소리를 죽여 가볍게 웃는 소리와 경솔한 속삭임이 달콤하면서도 숨 막힐 듯한 공상에서 내 마음을 벌써 어느정도 구제해 준 것이다. - P111

<나는 점점 더 현명해지고 있다.> 플레씨 학교로 되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조그맣고 현실적인 여자를 봐. 이여자가 소설가나 로맨스 작가의 여주인공과 닮았는가? 시나 소설에서 그려진 여자들의 성격을 보면, 좋은 성격이든 나쁜 성격이든, 감정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잖아. 여기 한 여자가 있는데, 아주 빨리 이해하고 존경할 만한여자야. 그녀를 이루고 있는 주된 성분은 추상적인 이성이야. 탈레랑조차 조라이드 로이터보다 더 침착하지는 않았어.>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쌀쌀맞은 감수성이 강한 성질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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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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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독자‘라니 이 무슨 반어법이란 말인가. 결코 한 문장도 쉽게 읽히지 않는, 천천히 곱씹어야 하는 울프의 독서 기록들. 그중에서도 몽테뉴의 에세와 프루스트에 도전해 보고 싶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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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의 얼굴에서 식별되지 않고 대화에서도 들리지 않는 어떤 지적인 면을 읽어 내보려고 나는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지. 명랑하고 조금 작은 눈이었어. 이윽고 활달함과 허영과 교태가 홍채를 통해 내비치는 것을 보았지만, 영혼을 감지해 보려고 한 일은 허사가 되어 버렸지. 난 순종적인 건 좋아하지 않아. 하얀 목과 주홍빛 입술과 뺨, 산뜻한 곱슬머리 타래만으로는, 장미와 백합이 시든 후에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잿빛이 된 후에도 살아남아 있을 프로메테우스 같은 섬광이 없다면 내겐 충분한 게 아니지. 햇빛과 유복함 속에서는 꽃이 한껏 피어나는 법이야. 그렇지만 인생에는 비 오는 날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말일세. 명쾌하고 기운을 돋워 주는 지성의 빛이 없는 사람들의 벽난로와 가정이 꽁꽁 얼어붙어버리는, 재앙의 11월 말이야. - P21

스타이튼 씨는 교활하면서도 신중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35세 가량의 남자로 이 명령을 서둘러 수행했다. 그는 그 서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고 나는 곧 거기에 앉아 영어로 된답신을 독일어로 바꾸는 데 몰두했다. 서류를 쓰는 동안 상사가 서서 지켜보아도 자신의 생계비를 버는 최초의 노력에 대해 내가 느끼는 통렬한 행복감은 해를 입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그가 내 성격을 읽어 내려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꼬치꼬치 살펴도 마치 투구를 쓰고 눈가리개를 내린 것처럼 나는 안전하다고 느꼈고, 무식한 사람에게 그리스어로 씌어진 편지를 보여 줄 때처럼 자신 있게 내 얼굴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외형을 살피고 성격을 뜯어볼 수는 있겠지만 거기서 무슨 결론을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내 성격은 그의 성격이 아니며 내 성격이 드러내는 기호는 그가 모르는 언어와도 같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당황한 것처럼 사무소를 나가 버렸다. 그는 그날 두 번 더 들어왔다. - P30

그는 은근한 냉소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나는 하숙집 여주인이 스타이튼과 나눈 대화를 우연히 꺼내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여주인의 말이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 뒤로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회계 사무소로 출근했고, 공장 주인의 악의에 찬 조롱을 그럭저럭 받아냈으며, 그 다음에 그가 조롱을 겨누어 던지면 꿰뚫을 수 없는 무관심으로 방패를 삼았다. 오래지 않아 그는 조상(彫像)에다 대고 헛되이 공격을 하는 것에 지쳐버렸지만 화살을 팽개치지는 않았다 - 단지 화살통 속에 고이 모셔 두었을 뿐이었다. - P33

내 마음은 그림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그분의 자태와 용모 - 이마, 눈, 피부색 ㅡ 를 상당히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떤 아름다운 용모도 자기를 닮은 모습이 좀 더 부드러워지고 세련되게 표현된 얼굴만큼 자기 중심적인 인간을 기쁘게 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들은 딸들의 얼굴 생김새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데, 그 얼굴에서는 종종 자기와 유사한 모습이 부드러운 색조와 유연해진 윤곽으로 보기 좋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게 그토록 흥미로운 그림이 객관적인 관찰자에게는 어떤 인상을 줄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던 차에 웬 목소리가 내 바로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흠, 저 얼굴에는 분별력이 있군.」 - P35

「제 얼굴은 신께서 만들어 주신 그대로입니다, 헌스던 씨.」
「신께서는 이 도시를 위해 자네 얼굴이나 머리를 만드신 건 아니지. 자네 두상에 나타난 이상과 우월감, 자존심, 세심함이 여기서 무슨 소용이 있나, 듣고 있는가? 하지만 자네가 빅벤 구역을 좋아한다면, 여기 머무르게 자네 인생이지 내인생이 아니니까.」
「내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 P39

나는 킹부인의 하숙집 적은 침대에 누워 의무라는 우상과 인내라는 물신(物神)을 세워 두었음에 틀림없다. 이 둘은 내 방의 신이 되어 버렸고, 내가 사랑스러운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관대하고 전지전능한 상상의 여신은 부드러움으로든 힘으로든 나를 그 우상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와 나의 고용주 사이에 생겨난 반감은 날이 갈수록 그 뿌리와 그림자를 더 깊이 더 짙게 뻗어 나갔고, 나는 삶이 비추어 주는 그 어떤 햇빛으로부터도 제외되었다. 나는 내가 우물의 얇은 벽 바깥 습기찬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 P43

헌스던 씨가 기름을 칠한 듯 매끄럽게 말을 하는 유형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은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스스로는 매우 민감하지만 다른 사람의 민감함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이기적인 성격을 보이는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크림즈워스나틴들 경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랄한 사람이었으며 자기만의 방식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것 같았다. 박해받는 자가 압제자에게 저항하도록 선동하려는 목적을 가진 그의 질책은, 집요한 그 재촉 속에 압제적인 어조가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는 그의 눈과 태도에서 자신의 자유에는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느라 바빴는데 인간의 모순이 드러난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나직이 웃음을짓고 말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헌스던 씨는 내가 그의 부당하고 공격적인 억측과 냉정하고 교만한 냉소를 조용히 받아들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 놓고 자신은 거의 속삭임보다 더 크지 않은 웃음에 언짢아진 것이다. - P51

여기 용의주도함이 들어 있네. 자네가 갈 길에서 첫번째겪는 난관을 물리쳐 줄 개척자가 그 속에 들어 있다고. 젊은이, 나는 자네가 어떻게 풀려 나올지도 모르는 채 올가미 속에 목을 집어넣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잘알고 있어, 그리고 자네는 그 점에서 옳아. 나는 무모한 사람을 아주 싫어할 뿐 아니라, 그런 사람의 일에 끼어들라고 날설득시킬 방도는 어디에도 없어. 무모한 사람들은 대개 자기 친구들에게는 10배나 더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지.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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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소설가들 - 헨리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191p)
헤밍웨이 - 단편집(205p)
E. M. 포스터 -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224p)

디킨스나 조지 엘리엇이 사용했던 낡은 장치 중 어떤 것도 더는 위기를 창출하지 못한다. 살인, 강간, 유혹, 갑작스러운 죽음 등은 이 높고 요원한 세계에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섬세한 영향들 -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지만 거의 말하지 않는 것이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내리고 적용하는 판단 같은 것 - 에만 좌우된다. 결과적으로, 이 인물들은 디킨스나 조지 엘리엇의 실질적이고 육중한 세계나 제인 오스틴의 세계를 촘촘히 수놓는 정교한 관습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진공 속에 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생계를 꾸리는 일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사회가 자기 주위에 마냥 둘러치는, 의미의 가장 섬세한 색조로 짜인 고치 안에서 산다. 대번에 우리는 지금까지 잠들 - P178

어 있던 기능들, 말하자면 퍼즐을 풀 때와도 같은 기발한 재주와 정신적 민활함을 사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의 쾌감은 섬세하게 가지 쳐나가며, 덩어리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대신 무한히 분화한다.

(헨리 제임스) - P179

프루스트를 읽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부단한 우회에서 온다. 프루스트에게서는 개개의 중심점을 둘러싸고 너무나 동떨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물들이 모여들므로, 그런 집적 과정은 점차적이고 복잡다단하며, 그 사물들이 이루는 최종적 관계는 극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들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다. 관계는 다른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날씨, 음식, 옷, 냄새, 예술, 종교, 과학, 역사, 그 밖에 무수한 다른 영향들과의 관계이니 말이다. - P183

관습이라 할 것이 너무나 적고 경계도 얼마 없으므로(가령 스타브로긴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꼭대기로 아무렇지 않게 이동한다) 그 복잡성은 더 깊은 곳에 있으며, 한 사람을 신적인 동시에 야수적으로 만드는 이 이상한 모순과 비정상성은 마음속 깊은 데서 서로 겹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악령』의 기이한 정서적 효과는 거기서 비롯된다. 그것은 영혼의 난국과 혼란을 드러내기 위해 가진 재주와 수단을 다할 태세가 된 광인이 쓴 것만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에는 신비주의가 만연하며, 그는 작가로서뿐 아니라 현자로서도 말한다. 길가에 담요를 둘러쓰고 앉아서,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인내로써 말하는 현자 말이다. - P187

하지만 - 학자들을 제외한다면(학문이란 주로 망자들의 작품을 판단하는 데 유용하다) - 비평가는 나머지 우리보다 오히려 더 틀리기 쉽다. 그는 불과 이틀 전에 나온 책, 알에서 갓 깨어나 아직 머리에서 껍질도 떨어지지 않은 책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독자의 마음에 드리워지는 풍요롭지만 아직 분명하지 않은 감각의 구름에서 벗어나 그것을 구체화하고 요약해야 한다. 십중팔구 그는 때가 무르익기 전에 그 일을 해야 하고, 너무 성급하게, 너무 단정적으로 그 일을 해치우기 마련이다. 〈훌륭한 책이다〉 또는 <나쁜 책이다〉라고 그는 말하지만, 그 자신도 알다시피 그저 읽는 것으로 만족할 때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 P194

상황의 힘과 또 모종의 인간적 허영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자신을 에워싸던 망설임들과 자신이 <결론>이라 부르기로한 것에 도달하기까지의 우왕좌왕하는 걸음을 숨길 뿐이다. 그리하여 비평가의 견해라는 어설픈 나팔 소리가 시끄럽고 날카롭게 울려 퍼지면, 우리 변변찮은 독자들은 고개 숙여 굴종하는 것이다. - P195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인생이 더 길다면야 한 번쯤 다시 읽어 보고 싶을 만한 것들이다. 그 대부분이 실로 능숙하고 효과적인 데다 군더더기라고는 없으므로, 왜 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지 의아해하게 된다. 아내를 여읜 소령의 비극적인 이야기인 「또 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라든가, 기차간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씁쓸한 이야기인 딸을 위한 카나리아A Canaryfor One」, 또는 「패배하지 않는 자The Undefeated」나 「5만달러Fifty Grand」처럼 투우와 권투의 땀내와 영웅주의로 가득 찬 이야기들 - 이 모두가 간결하고 강렬하게 폐부를 찌르는 잘된 작품들이다. 만일 체호프나 메리메, 모파상 같은작가들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분명 탄복할 만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찾지 못하고, 은전을 카운터에 떨어뜨려 그 소리를 들어 보는 해묵은 관습으로 돌아가 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묻게 되니 이상한 일이다. - P203

하지만 누구보다도 소설가에게 근본적인 한 가지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조합하는 능력, 즉 통합된 비전을 이룩하는 힘이다. 걸작의 성공은 결함의 부재보다는 - 우리는 걸작에 대해서는 더없이 중대한 결함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 자신이 선택한 시계(視界)를 총괄하는 정신의 엄청난 설득력에 있다. - P212

그리하여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포스터 씨의 노선을 보여주는 단서를 찾게 된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속해 있는 양대 진영 중 어느 쪽인가 하는 말이다. 대체로 말해 소설가들은 톨스토이나 디킨스 같은 설교자 내지 교사 진영과 제인 오스틴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순수 예술가 진영으로 갈라진다. 포스터 씨는 동시에 양진영에 속하려 하는 듯하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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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기싱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 (149p)
토마스 하디 <이름 없는 주드> (170p)

이것은 일종의 자유이다.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충만하기 때문에, 누구나 바랄 만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매력은 그런 힘이 이미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손닿는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책, 펜, 작은 시골집, 그러면 세상이 그대 발밑에 있다. - P140

밧세바가 짐마차에 실린 화초들 사이에서 작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어여쁜 모습에 미소 지을 때, 우리는 이미 그녀가 얼마나 심한 괴로움을 겪을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로움을 주게 될지 알아차리거니와, 이렇게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하디의 능력을 입증해 준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인생의 모든 신선함과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매번 그런 식이다. 그의 인물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그에게 무한히 매력적인 존재들로 보인다. 그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을 더 친절하게 배려하며, 그녀들에게 어쩌면 더 깊은 관심을 갖는 듯하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헛되고 운명은 가혹할지언정, 그녀들 안에 삶의 열기가 남아 있는 한 그녀들의 걸음은 활달하고 웃음소리는 감미롭다. 그녀들에게는 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장엄한 침묵 가운데 잠겨드는, 또는 일어나서 구름의 움직임과 꽃피는 숲속의 싱그러움과 하나가 되는 힘이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과는 달리 다른 인간존재에 대한 의존 때문이 아니라 운명과의 갈등 때문에 고통당하는데, 그것이 우리의 더 엄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P160

우리는 그의 인물들을 상호 관계 속에서 알 수 없는 대신, 세월과 죽음과 숙명에 대한 관계에서 안다. 도회지의 조명과 군중 가운데서 분투하는 그들을 볼 수 없는 대신, 대지와 폭풍우와 계절과 드잡이하는 그들을 본다. 우리는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엄청난 문제들 중 몇몇을 마주하는 그들의 태도를 안다. 그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실제 인간보다 훨씬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는 그들의 세세한 특징이 아니라 위엄있게 확대된 모습을 본다. 우리는 테스가 잠옷 바람으로 <거의 제왕과 같은 위엄을 가지고서> 세례 예식문을 읽는 것을 본다. 우리는 마티 사우스가 <추상적인 인류애라는 고상한 가치를 위해 자기 성의 속성을 무심히 거부한 존재>와도 같이 윈터본의 무덤 위에 꽃을 놓는 것을 본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성서적인 위엄과 시정이 있다. 그들에게는 정의할 수 없는 힘, 사랑이나 증오의 힘이 있으니, 그것은 남자들에게서는 삶에 대한 반항의 원인이 되고 여성들에게서는 고통을 겪는 무제한적인 능력이 되는 힘이다. - P164

작가의 의식적인 의도를 넘어서서 그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더 깊은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도 알아내야 한다. 하디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소설이란 <인상이지 논증이 아니다>라고 그는 우리에게 경고했고, 또 이렇게 말했다. 〈정돈되지 않은 인상들에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진정한 삶의 철학에 이르는 길은 우연과 변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상들에 대한 다양한 독해를 겸손하게 기록하는데 있을 것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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