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건 생기지도 않을 나쁜 일을 네가두려워해서야!> 저 엄격한 감시자 양심은 이렇게 대답했다. <생길 수도 있어. 너도 알고 있잖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내 말을 따르면, 결핍의 구렁에서조차 나는 네가 단단하게 뿌리내리도록 심어 주겠어.> 그리고 길을 따라 빨리 걸어가다 이상하게 내심 느껴지는, 보이지는 않아도 모든 곳에 나타나는 어떤 위대한 존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관대함으로 오직 내 행복만을 바라고, 내 마음속에서 선과 악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내가 그의 목소리를 좇아 내 양심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지 아니면 내가 길을 잃게 하려고 애쓰는 그의 원수이자 내 원수인 악한 영의 궤변에 귀기울이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이 암시하는 길은 거칠고 가팔랐고, 유혹이 꽃을 뿌려 놓은 녹색의 길은 이끼가 끼어 있는 내리막길이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친구인 사랑의 신은 내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울퉁불퉁한 오르막을 향하면 아주 기뻐 미소를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벨벳이 깔린 내리막으로 마음이 향하면 인간을 증오하고 신에게 대드는 악마의 이마에 승리의 번득임이 지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작스레 길을 꺾었고 재빨리 발길을 되짚었다. 30분이 안 되어 나는 다시 플레 씨의 학교에 돌아와 있었다. 그의 서재에서 그를 찾아보았다. 짧은 회담과 간단한 설명으로 충분했다. 내가 확고하다는 것이 태도로 드러났고 아마도 그는 마음속으로는 내 결정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20분 간의 대화가 끝난 뒤 다른 사람을 구할 한 주라는 짧은 기간을 예고하고, 나는 내 방에 다시 돌아와서 가재도구들을 스스로 내놓았고 현재의 집에서 떠날 것을 스스로 선고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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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오스틴 <사랑과 우정> <노생거 사원>
<노생거 사원>의 고딕소설적 특징, 다시 읽어보기

실제로 러디어드 키플링은 오스틴이 남성에게 미친 기묘한 영향력과 오스틴이 남성 문화에 얼마나 유용했는지를 검토하는 이야기를 쓴다. 그 이야기에서 싸우기 좋아하는 어느 인물은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아들을 적통 후계자로 삼았다. 그 아들의 이름은 헨리 제임스였다‘라고 주장한다. - P239

오스틴은 문화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보여준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동시에 오스틴은 처음부터 자신에게는 좁은 장소 이외의 다른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의 패러디 전략은 부적절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구조에 대항한 자신의 싸움에 대한 증언이다. - P242

여자들이 그런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를 오스틴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 소피아와 로라는 캐런 호니가 최근에 밝혀낸 ‘과대평가된 사랑‘의 희생자들이다. 오스틴에 따르면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성을 대표한다. 로라와 소피아는 남자의 사랑을 이해하고 오직 그것만 원하도록 격려받았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에 강박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몰두한다. 반면 진정한 감정을 깨닫거나 다루는 능력은 없다. 그들은 남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서슴지 않는다. 반면 무지를 가장하고 겸손해야 하며 성적인 정열에는 무관심한 척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말고는 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대중적인 로맨스 소설이 어떻게 기여했으며, 여성에 대한 이런 억측이 ‘여성의’ 자기도취, 마조히즘, 망상의 뿌리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오스틴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스틴은 여성성의 사회적 정의에 대해서 이보다 더 이단적으로 도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251

클래리사나 파멜라처럼 천사 같은 본보기를 거부하면서 오스틴은 여성을 수동성과 동일시하고 남성을 공격성과 동일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비판한다. - P252

오스틴은 감상소설이 유혹자-강간자의 역할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남자들의 약탈적 충동을 부추긴다고 암시하며 리처드슨식의 난봉꾼을 비판한다. - P253

오스틴에게 여성의 가정 내 속박은 하나의 은유라기보다 실질적인 삶의 진실이고, 여성의 속박은 각각 소설 속 여성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소한 아침 방문까지 지배하는 까다로운 예의범절에 의해 더 공고해진다. - P261

오스틴은 초기 작품 전반을 통해, 특히 「프레더릭과 엘프리다」에서 가장 재미있게, 기록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건은 청혼, 결혼식, 약혼 또는 파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무도회 준비, 사랑에 대한 환멸, 가출이라는 로맨스 소설이 퍼뜨린 생각을 조롱한다. 그러나 오스틴 자신의 소설도 근본적으로는 그런 주제에 얽매여 있다. 그것이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결혼은 매우 중요하다. 오스틴의 사회에서는 결혼만이 소녀들 - P264

이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한 오스틴의 침묵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진술이다. 오스틴 소설에 다른 문제들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소녀나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충분한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여성 작가인 오스틴 자신의 결핍을 증명한다. 오스틴은 사실상 자기 예술의 한계를 스스로 천명하고 수용하는바, 이것은 예술가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허용된 자기표현의 형태를 전복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다. 어리석은 문학 구조에 대한 오스틴의 조롱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한사회적 비난이 안겨주는 소외감을 분명하게 표현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 P265

오스틴은 사랑하는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두렵게도 혼자 사는 여자는 가난해지기 십상‘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오스틴은 자신의 모든 소설에서 재정 압박 때문에 결혼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무력함, 불공평한 상속법,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못한 여성들의 무지, 상속녀나 과부의 심리적인 취약성, 이용당하는 독신녀의 의존 상태, 몰두할 일이 없는 여성의 권태를 탐색한다. 이 모든 상황에 내재된 무력함은 캐서린이 뚫고 들어간영국 사회의 품위 있고 우아한 표면 뒤에 감추어진 비밀의 일부인 것이다. 오스틴의 다른 여자 주인공들처럼 캐서린은 대부분의 여성이 자기 친구인 (그 집에서 ‘이름만 안주인‘일 뿐 ‘실질적인 권력은 하나도 없는‘ [2부 13장]) 엘리너 틸니를 닮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 P280

여자 주인공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허구에 부자연스럽지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자 주인공이 되는 소녀는 미치지는 않더라도 병들 것이라고 오스틴은 암시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젊은 아가씨가 배워야 하는 몸치장, 독서, 쇼핑, 몽상에 대한 감정교육의 자연스러운 귀결을 본다. 캐서린은 이미 바스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펼치는 서로 모순되는 주장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마치 자신이 우울의 미친 동굴에 거주하고 있는 것처럼, ‘깨진 약속, 무너진 기둥, 사륜마차, 눈을 속이는 양탄자, 틸니 남매, 성 안의 비밀스러운 문에 대해 차례차례‘[1부 11장] 숙고한다. 물론 이후 한밤중에 사원을 배회하면서 캐서린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찾고 있으며, 미래의 비밀을 열어줄 사라진 여성의 옛 운명을 밝혀내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세대의 틸니 부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만큼 캐서린이 죽은 틸니 부인의 모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우리가 그녀의 환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강한 풍자적 어조 속에서도 우리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다. 틸니 부인은 바로 그녀의 자아상이기 때문이다. - P287

이것이 바로 『노생거 사원』이 래드클리프 부인의 이야기처럼 무서운 고딕소설이 되는 이유다. 소설이 묘사하는 악은 샬럿 퍼킨스 길먼, 필리스 체슬러, 실비아 플라스 같은 서로 결이 다른 작가들이 묘사한 공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시해야 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모순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았을 때 생기는 공포와 자기혐오인 것이다. 자신의 내면성과 확실성을 헨리의 부적절 - P290

한 판단으로 대체했음을 깨달았을 때 캐서린이 느끼는 혼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극적인 (더 무력화시키지는 않을지라도) 예들을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캐서린을 치명적으로 혼란에 빠뜨리는 세뇌 과정은 여성에게 항상 고통스러운 굴욕감을 주고, 여성을 서서히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플로렌스 러시는 미쳐가는 여자에 대한 잉그리드 버그먼의 유명한 영화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며 이 과정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불렀다. - P291

해럴드 블룸은 (자신을 여성으로, 그리하여 이류로 정의한 것과 불가분하게 관련되어 있는 말)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했지만 오스틴이 자신의 의식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준 작품은 『노생거사원』이다. 캐서린 몰런드가 독자로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틴은 자신을 ‘그저‘ 이전 소설들의 해설가요 비평가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만들지 않은 소설의 집에 기꺼이 거주하고자 하는 의지를 매우 겸손하게 보여준 것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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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쓴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앙리 양, 나는 놀랐어요. 그 속에서 어떤 취향과 공상의 증거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즐겁게 읽었습니다. 취향과 공상이 인간정신의 가장 고매한 재능은 아니지만, 당신은 최고 수준은 아니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정도로 그것들을소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용기를 가져요. 신과 자연이 당신에게 준 능력을 키우도록 하세요. 그 어떤 고통스런 위기나 불의의 압력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런 취향과 공상의 힘과 진귀함을 의식하고 자유와 완전한 위안을 얻어 내도록 하세요.」 - P181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변화를 정원사가 소중한 식물의 성장을 관찰하는 것과 같이 관찰했고, 그 정원사가 자기가 아끼는 나무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면 나도 그 일에 기여한 셈이었다. 내 학생을 어떻게 해야 제일 잘 키울수 있는지, 굶주린 감정을 어떻게 품어 줄 수 있는지, 절망적인 가뭄과 시들게 하는 질풍이 이제껏 자라지 못하게 한 내면의 활기를 어떻게 바깥으로 드러나게 해줄지를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관심과 주의 깊지만 말 없는 친절로, 엄격함이라는 거친 외투를 입은 채 늘 그녀 곁에 서 있는 것, 그리고 관심이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을 아주 드물게 슬쩍 내비치는 것만으로 진정한본질이 알려지게 하는 것. 또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도움을주면서도 강제로 지시를 내리고 행동을 촉구하는 척하는 가면을 쓴 진정한 주목, 이것이 바로 내가 사용한 수단들이었다. 이러한 수단만이 깊이 울리는 만큼 민감하고, 당당하면서도 수줍어하는 프랜시스의 본성과 감정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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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벨벳 발톱이 부드럽게 건드렸다고 해서 해가 되진않죠.」
「그녀는 제게 벨벳 발톱을 내민 적이 없습니다. 제게 아주 형식을 갖추어 대했고 예의바르게 처신했어요.」
처음엔 그렇다니까요. 주춧돌에는 존중, 1층에는 정, 그리고 사랑이 제일 위에 완성되는 구조입니다. 로이터 양은 재간 좋은 건축가이지요.」 - P126

그녀가 불굴의 노력을 계속하여 보석함의 모든 부분을 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 살펴보고 훑어보다가 마침내 손가락이, 숨겨진 용수철을 건드려 잠깐 동안은 상자 뚜껑이 열렸다는 것을 나는 고백해야겠다. 그녀는 그 속의 보석에 손을 댔다. 그걸 훔치거나 깨뜨렸는지 아니면 뚜껑이 그 손가락을 탁 치면서 다시 닫혀 버렸는지는 계속 읽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 P140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이성이나 감정 둘 다, 왔다갔다 하거나 금세 인상이 새겨졌다가 곧 지워져 버리는 모래같은 것들도 아니다. 친구의 성격이 내 성격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 그가 내 원칙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결함으로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져 있다는 것을 일단 확신하게 되면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 나는 형과도 그렇게 했다. 플레에 대해서는 이런 발견이 아직은 새로웠다.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할까? 그 창백한 얼굴이 보통때보다 더 아는 체하고 더 사납게 보이며, 파란 눈을 학생들과 보조 교사들에게 엄격하게 돌리다가 내게 자비롭게 돌리기도 하면서 그가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반 개짜리 피스톨레로 커피를 저으며 - 스푼은 언제나 없었다 - 마음속에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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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동굴의 비유
메리 셸리 <최후의 인간>

여성의 어머니 나라는 그녀 ‘자신의‘ 나라인가? 메리 셸리는 무녀의 나뭇잎에 대한 ‘권리‘가 있는가? 여성 예술가는 어떤 정의와 어떤 자격의 체계를 통해 자신의 모계 유산을 요구할 수 있고, 애니 고틀립의 꿈이 주장했듯 어머니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그 힘의 생득권을 요구할 수 있는가? - P226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여성 예술가는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채 침묵 속에 자신을 억누르면서, 처음에는 소설의 집에서 천사처럼 글을 쓰려고 애썼다. - P226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동굴 감옥이 더욱 좁아져서 폐소공포증을 유발하자, 그녀는 고딕적/악마적 형태로 ‘빠져‘들었고, 브론테 자매와 메리 셸리에서 볼 수 있듯이 광적이거나 흉폭한 탈출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조지 엘리엇과 에밀리 디킨슨처럼) 작열하는 가부장적 태양이 훤히 트인 공간에서 (디킨슨이 ‘정오의 남자‘라고 불렀던 태양이) 그녀의 취약성을 강조하자 어지러워하며 물러났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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